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96화 (93/152)

96화. 디스트로이어

테리까지 총 87기의 워슈트에 탑승했을 때였다.

하늘에서 붉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피다!"

한 용병이 붉은 빗방울의 냄새를 맡고 외치자, 전술 통신망으로 팀장들의 명령이 쏟아졌다.

- 4군단 놈들이 피에 무슨 장난을 쳤을지 모른다.

- 헬멧 해제하지마!

그때였다.

내 정찰드론들이 비춘 불빛에 빗방울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거대한 무언가가 드러났다.

그 괴물체는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운 속도로 추락하고 있었다.

< 4레벨 좀비 [디스트로이어]입니다. >

시스템은 내 시야에 느린 화면으로 추락하는 디스트로이어를 띄워줬다.

놈은 3레벨 엘리트 좀비 크랩보다 훨씬 큰 키에 온몸이 초록색 피부로 뒤덮여있었다.

< 해당 [디스트로이어]의 키는 8.3 미터, 몸무게는 20톤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

< 4레벨 엘리트 좀비 브레이커와 비슷한 신체조건이지만 위험등급 4로 위험등급 5인 브레이커보다는 낮습니다. >

시스템이 메세지를 띄운 순간이었다.

꽈광! 하는 소음과 함께 땅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에어로트럭이 살포한 지뢰 수백 발이 동시에 터져나갔다.

< 액화질소 지뢰 폭발로 기온이 내려갑니다. >

< 현재 워슈트 외부 기온은 영하 3도입니다. >

그때 얼어붙은 핏방울이 우박이되어 투두둑! 하고 워슈트 장갑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디스트로이어의 추락으로 발생한 흙먼지는 피로 이루어진 빗방울들에 의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그 순간 건물을 철거할 때 쓰는 쇠공만큼 큰 디스트로이어의 머리가 드러났다.

전체적으로 터질듯한 근육질의 몸매였다.

하지만 정작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머리만큼이나 큰 놈의 주먹이었다.

< [디스트로이어]는 한번에 800미터 높이까지 점프할 수 있습니다. >

< 현재 밀러쉴더스 소속 모든 용병들은 놈의 사정거리 안에 있습니다. >

< 경고! [디스트로이어]의 돌진에 주의하셔야합니다! >

시스템이 경고성 메세지를 쏟아낸 순간이었다.

전술통신망으로 휴고의 명령이 터져나왔다.

- 저격수는 액화질소탄만 쏘고 나머지는 아껴!

- 디스트로이어는 팀장들이 상대한다!

사냥 2팀장 세사르의 통신이 들렸을 땐, 이미 19기의 배틀슈트가 빠르게 디스트로이어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 주군, 우리도 합류합니까?

워슈트를 입은 데스윙이 내게 물었다.

'아니, 우린 저 놈들을 상대한다.'

난 새까맣게 밀려오는 좀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 동쪽에서 8만 마리 이상의 좀비집단이 접근 중입니다. >

< 접전까지 1분 40초! >

< 남쪽에서 3만 마리 이상의 좀비집단이 접근 중입니다. >

< 접전까지 15분 20초! >

< 서남쪽에서 4만 마리...

시스템은 내 시야에 붉은 점으로 표시한 좀비집단을 표시하며 경고메세지를 연이어 띄워올렸다.

'데스윙은 제니퍼와 함께 워슈트 40기 이끌고 디스트로이어 좌측을 맡아라!'

- 예, 주군!

- 주인님, 흑마법을 사용해도 될까요?

데스윙이 대답하는데, 제니퍼가 내게 물었다.

'이번 전투에선... 모두 마음껏 기량을 펼쳐봐라. 흑마법이건 사령술이건 제한을 두지마!'

-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군!

- 주인님, 부디 몸 조심하세요!

데스윙과 제니퍼는 정신파를 보내며 지뢰지대 바로 앞까지 달려나갔다.

그때 드드드드! 끼기긱! 하고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은 에어로트럭들이 서로 마찰하는 소리가 났다.

수만 마리의 좀비들이 몰려오자, 땅이 흔들리고 그 위에 쌓은 에어로트럭들까지 흔들린 영향이었다.

그때, 내 워슈트 안의 디스플레이 화면을 뚫고 아머드 소울리퍼 아치스가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 주인님, 저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2레벨 이하 좀비들의 영혼수집을 허가한다.'

- 저, 정말이십니까?

'그래. 망령을 수집해오면 레이쓰 헤비머신건을 만들어주마.'

내 창고 샤를의 아공간에는 여분으로 사둔 것까지 합쳐서 헤비머신건 200대가 쌓여있었다.

아치스가 원한다면 200 기의 레이쓰 헤비머신건으로 망령군을 조직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아치스는 드디어 망령군을 조직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난 모양이었다.

샤를은 아직 증식장갑을 갖추지 못한 워리어 41호의 넉넉한 배틀슈트 안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 워리어 41호는 워슈트 41호 안에 탑승해 있었다.

난 내부통신망을 통해 연구정령 샤를에게 명령했다.

"알들을 땅에 묻어라."

- 얼마나 깊게 묻을까요?

"50센치미터 깊이로."

- 연구소장님, 표면에 균열이 가 있는데 그렇게 얕게 묻었다가 알들이 부서지지 않을까요?

"너무 깊게 묻으면... 부화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과거 코소브 생명과학 연구소가 위치한 지하에서 텔레포트 포탈을 통해 들어온 영혼들이 지상으로 빨려올라간 기억이 있었다.

당시엔 도대체 어디로 빨려가는 건지 몰랐다.

하지만 팔미라 시로 복귀한 후, 고치로 변한 아머드 스켈레톤들이 표면이 부드러운 알로 변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몇몇 알들은 이미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부화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영혼을 흡수해서 고치에서 알로 변한거라면... 이번 전장에서 의미있는 변화가 있을지도 몰라."

- 연구소장님께 그런 깊은 뜻이 있으신 줄도 모르고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샤를이 대답한 후 샤를의 워슈트를 보호하는 네 기의 워슈트들 중 두 기가 샤를과 함께 땅을 파고 19개의 알을 파묻기 시작했다.

그때 뒤쪽에서 크와아악! 하는 괴성이 터져나왔다.

워슈트의 스피커를 통해 괴성을 듣고 돌아보니 무식하게 달려오다 액화질소를 품은 지뢰를 밟고 넘어지는 좀비들이 보였다.

놈들은 바닥에 쓰러지기가 무섭게 얼어붙은 다리가 깨져나갔다.

하지만 지뢰를 밟고 쓰러지는 놈들보다 그 뒤에서 달려오는 놈들의 수가 더 많았다.

***

10분 후, 4군단 사령부 지휘통제실.

상석에 앉은 군단장 조슈아 빌헬름은 검은 머리를 빗어넘기고도 모자라 옷매무새까지 가다듬었다.

하지만 그러고도 긴장이 풀리지 않는지 다리까지 떨어댔다.

3대 가문의 혈족이 한번의 전투에서 셋이나 죽어나간 일은 10년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하는 보기드문 사고였다.

그 말은 반대로 로두스의 기습으로 억울하게 죽은 세 귀족가문의 복수를 하면, 그에 따른 포상이 있을거란 뜻이었다.

이번 작전의 책임자인 조슈아 빌헬름이 초조와 기대를 동시에 느끼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번 건만 제대로 해결하면... 나도 혼인행이다!'

그가 멋지게 복수하고 알자스 마법아카데미 출신의 미녀와 결혼할 생각에 젖어들 때였다.

"참모장님, T-85 구역의 블러드 클라우드 일부가 아직도 흩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전장을 감시하는 오큘러스 시스템을 모니터링하던 부사관이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대형 홀로그램 모니터로 전체적인 전투상황을 살피던 군단장 조슈아 빌헬름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하지만 귀족의 품위를 지키기위해 최대한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하사, 엘 카펜터! 블러드 클라우드는 5분 전에 힘을 잃고 사라졌어야하지만, 현재 T-85 구역에선 무슨 이유인지 블러드 클라우드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모니터링 요원이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사관 나부랭이가 블러드 클라우드 같은 대규모 마법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조슈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우측에 앉은 울리히를 불렀다.

"참모장?"

"준장, 울리히 모스치토!"

관등성명에 군기가 바짝 들어간 걸 보니, 그도 괴현상의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블러드 클라우드가 정상작동하지 않은 이유를 알아봐."

"옛!"

참모장 울리히는 조슈아 빌헬름 군단장의 명령을 듣자마자 지휘통제실을 뛰쳐나갔다.

"T-85구역 확대해."

군단장 조슈아 빌헬름이 명령하자, 지휘통제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홀로그램 모니터에 붉은 구름이 펼쳐졌다.

문제는 붉은 구름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는 점이다.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브, 블러드 클라우드의 영향으로 영상정보 확보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참모장 옆 자리에 앉아있던 작전참모 아킨 소령이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T-85구역은 전선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 조슈아 침착하자.'

조슈아 빌헬름은 수십 기의 타이탄급 골렘을 이끌고 마법아카데미 알자스에 가서 자신의 위용을 자랑하는 상상을 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화가 사그라들었다.

마음을 가다듬은 조슈아는 매우 사무적인 목소리로 작전참모에게 물었다.

"마법사단에서 실수했을 가능성은?"

"정확한 건 확인해봐야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짧은 갈색머리의 레이너 아킨 소령은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블러드 클라우드를 운용하는 마법사단의 실수가 아니라면? 뭐 때문에 블러드 클라우드가 사라지지 않는거지? 이미 피를 뿌리고 사라졌어야하잖아?"

"예, 예정대로라면 늦어도 3분 전에는 사라졌어야합니다."

레이너 아킨 소령은 바들바들 떨며 조슈아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걸 누가 몰라? 그러니까 왜 진작 사라졌어야할 블러드 클라우드가 아직도 남아있냐고!'

조슈아 빌헬름 군단장은 답답한 마음에 습관처럼 작전참모의 뺨을 때리려고 손을 올린 순간이었다.

"어, 어? 블러드 클라우드가... 점차 영역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때 모니터링 요원이 다시 손을 번쩍 들며 보고했다.

"오큘러스, T-85구역의 5분 전 영상 재생시켜."

- T-85구역의 5분 전 영상입니다.

군단장이 명령하자, 스피커를 통해 오큘러스 시스템의 알림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모니터에 블러드 클라우드가 T-85구역의 5분의 1만 뒤덮은 모습이 재생됐다.

"5분만에 T-85구역의 시야를 전부 차단했다?"

그건 단순한 오작동으로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블러드 클라우드를 처음 형성시킬때보다 빠른 확장속도였기 때문이다.

"음... 군단장님. 이건 마법사단의 실수가 아닌 것 같습니다."

작전참모 레이너 아킨 소령은 이번에도 한발 뒤늦게 대답했다.

"그럼?"

"장벽 밖에서 블러드 클라우드를 이 정도로 통제할 수 있는 건..."

"뱀파이어? 감히 흡혈귀 놈들이 내 작전에 끼어들었다고!"

4군단장 조슈아 빌헬름은 알자스의 미녀를 얻으러 가는 길을 흡혈귀 따위가 방해한다고 생각하니 피가 끌어올랐다.

***

세사르는 130미터 상공에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어깨엔 4레벨 좀비를 상대하기위해 특수제작한 3미터 길이의 저격총이 견착되어있었다.

'특수냉각탄도 14발밖에 남지 않았어.'

4레벨 좀비 디스트로이어는 잡힐 것 같으면서도 계속 틈새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내가 놈의 오른쪽 어깨를 노릴테니까, 맞추면 반댓발을 노려!"

사냥 2팀장 세사르는 전술 통신망에 말한 후, 방아쇠를 당겼다.

그 순간 약실에서 장약이 폭발하고 그 폭발력이 탄환을 밀어냈다.

탄환이 막 저격총의 총열을 벗어나려는 순간이었다.

그 총열 끝에 반투명한 총열이 나타났다.

길이 30미터에 달하는 비정상적으로 긴 총열이었다.

탄환은 그 총열을 따라이동할수록 속도가 빨라졌다.

그리곤 총구를 벗어났을 땐, 탄환 끝이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세사르의 특이능력 탄환가속이었다.

그 순간 4레벨 좀비 디스트로이어 상공 100미터 부근에서 꽈르릉! 하고 천둥같은 총성이 터졌다.

그 직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디스트로이어의 어깨에 맞은 아이 주먹만 한 탄환이 터져나갔다.

놈이 엄청난 충격에 못이기고 오른쪽 무릎을 휘청한 순간 놈의 어깨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때, 사냥 1팀장 휴고가 디스트로이어의 왼쪽 발목 옆을 스쳐지나갔다.

인비져블 블레이드가 디스트로이어의 발목을 베자, 콰득! 하는 파열음이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디스트로이어의 발목에서 좀비 특유의 썩은 피가 튀어올랐다.

'됐다!'

세사르가 속으로 환호하는데, 휴고가 곧바로 반대쪽으로 뛰쳐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 얕았다!

휴고의 말을 듣고 디스트로이어의 상처를 확대해보니, 인비져블 블레이드가 베고 지나간 자리에서 회색 뼈가 보였다.

하지만 제대로 자르지 못했는지 디스트로이어는 균형을 되찾고 있었다.

- 빠져!

그 모습을 본 세사르가 다급하게 명령했다.

그 순간, 지상에서 디스트로이어의 다리를 노리던 열 기의 배틀슈트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직후 지름이 1미터를 넘기는 거대한 주먹이 휴고의 배틀슈트를 노렸다.

하지만 놈의 주먹은 한발 늦어 허공만 때리고 말았다.

그러자 마치 허공에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때린 것처럼 주변이 왜곡되며 하얀 충격파가 부채꼴로 터져나갔다.

순간적으로 디스트로이어의 주먹이 음속을 돌파한 결과였다.

무거운 물체일수록 음속을 돌파하면 주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디스트로이어가 발생시킨 충격파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1킬로미터나 떨어진 에어로트럭으로 쌓은 피라미드가 우르르! 하고 울리더니 에어로트럭 서너 대가 굴러떨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도 디스트로이어는 분기가 안 풀린 모양이었다.

크롸롸롸! 하고 찢어지는 괴성을 내지르며 상처입은 발목을 높이 들었다 곧바로 땅을 내리찍으려고 들었다.

- 제길, 어스퀘이크다!

상공에서 다음 탄환을 발사하려던 세사르가 그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외친 순간이었다.

꽈광! 하는 굉음과 함께 땅바닥이 좌우로 갈라져버렸다.

4레벨 좀비 디스트로이어가 발을 내딛는 것만으로 깊이 30미터 길이 400미터에 달하는 땅이 찢어져버린 것이다.

130미터 상공에서 내려다본 지상에는 제멋대로 찢겨나간 자국만 네 곳이나 남아있었다.

그 자국을 남긴 괴물과 싸우는 중만 아니라면 눈길을 빼앗길 수밖에 없을만큼 장관이었다.

세사르는 그 모습을 구경할 겨를도 없이 전술 통신망에 다급하게 물었다.

- 다들 괜찮나? 부상자부터 보고!

- 마루, 정신차려!

- 스테파노도 의식을 잃었습니다!

사냥 20팀장과 14팀장이 디스트로이어의 발딛음으로 발생한 충격파에 휘말려 전투불능상태에 빠졌다는 보고였다.

4단계 강화시술자만 여섯을 잃은 세사르는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들 중 그와 함께 사냥한지 10년이 넘지 않는 부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휴고의 목소리가 전술 통신망을 통해 울려퍼졌다.

- 이 자식... 어스퀘이크를 쓰는 줄 알았는데, 우리가 속았다!

그 순간, 세사르도 깨달았다.

자신이 가속한 특수탄을 맞고도 디스트로이어가 휴고의 인비져블 블레이드를 흘려낼 수 있었던 이유를!

'지진을 일으키는 특이능력이 아니었던 거야!'

그때 사냥 17팀장 파코가 물었다.

- 팀장님, 도대체 놈의 특이능력이 뭡니까?

- 괴력이다. 어쩌면 가속까지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군.

세사르는 자신이 대답하고도 믿고 싶지가 않았다.

'괴력과 가속이라니... 누가 이런 조합의 특이능력을 이런 괴물에게 내려줬단 말인가?'

특이능력은 발현한 주체가 인간인지 아니면 좀비인지에 따라 아주 큰 차이를 빚어낸다.

인간은 고작해야 몸무게가 100킬로그램 내외에 불과하지만, 4레벨 좀비는 무려 20톤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괴력과 가속은 기본적인 신체능력 자체가 불가사의한 4레벨 좀비에겐 그야말로 최적의 특이능력이었다.

- 설마, 특이능력이 아니라 단순히 힘과 속도만으로 지진을 일으켰단 말입니까?

- 그래. 놈도 이제 제 능력이 들통난 걸 눈치챈 모양이군.

휴고는 하얀 눈을 번뜩이며 입꼬리를 올리는 디스트로이어를 보며 양손을 펼쳐보였다.

- 산개!

- 산개하라!

그 모습을 본 지상의 팀장들이 앞다투어 사방으로 거리를 벌렸다.

세사르의 시야에 산개하는 배틀슈트들과 달리 포위망을 좁혀가는 자들이 보였다.

***

- 아서? 어서 물러나게!

느긋한 걸음으로 4레벨 좀비 디스트로이어를 둘러싸는데 사냥 1팀장의 휴고의 목소리가 전술 통신망을 통해 전해져왔다.

"놈의 공격패턴은 이미 숙지했습니다."

하지만 난 담담하게 대답했다.

'왜 크랩과 같은 위험등급 4로 분류됐는지 알겠군.'

< 4레벨 좀비 [디스트로이어]는 3레벨 엘리트 좀비 [크랩]과 달리 갑각이 없으나 질긴 피부와 탄력있는 근육을 갖췄습니다. >

'그래봐야 크랩보단 단단하지 않아.'

< 플라즈마 파워드 건의 가스혼합이 완료됐습니다. >

< 40 문의 플라즈마 파워드 건이 [디스트로이어]를 조준완료했습니다. >

< 포격을 허가하시겠습니까? >

시스템은 내 시야에 디스트로이어를 포위한 40기의 워슈트와 각자의 플라즈마 파워드 건의 사선이 서로를 겨누지 않음을 표시해주며 물었다.

'허가한다.'

그 순간 내 워슈트의 왼팔에 장착된 플라즈마 파워드 건에서 즈왕! 하는 소음이 들리더니 어른 주먹만 한 탄두가 쏘아졌다.

곧이어 4레벨 좀비 디스트로이어가 서 있던 자리에서 꽈과과광! 하는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터져올랐다.

< 40발의 포격 중 16발을 적중시켰습니다. >

'음속의 여섯 배짜리 탄환을 반이나 피했다고?'

< 특이능력 [가속]을 발현시킨 [디스트로이어]입니다. >

< 일반 [디스트로이어]에 비해 속도감각과 회피능력이 뛰어난 개체로 파악됩니다. >

내가 시스템 메세지를 읽으며 워슈트의 오른 팔로 울트라소닉 소드를 뽑아든 순간이었다.

- 아, 아서? 방금 그건 뭔가?

- 50미리 기관포인 줄 알았는데...

- 내 전투보조시스템은 탄환의 궤적조차 포착하지 못했어!

휴고와 세사르 등 여러 사냥 팀장들은 내 플라즈마 파워드 건의 위력을 보고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 주군, 뼈가 많이 부러지긴 했지만, 아직 죽진 않았습니다.

그때 게릭슨이 포격 결과에 대해 정신파로 보고해왔다.

내가 손을 내젓자, 염력 마법이 디스트로이어를 가렸던 흙먼지를 한순간에 거둬버렸다.

4레벨 좀비 디스트로이어는 팔다리뿐만 아니라 척추와 목까지 부러진 상태로 워슈트들에게 짓밟혀 있었다.

- 직접 목을 베시겠습니까?

'좋지.'

난 게릭슨의 질문에 마다하지 않고 디스트로이어의 목 옆으로 다가가 울트라소닉 소드를 내리쳤다.

콰득! 하는 소음과 함께 초당 11만 번 이상 진동하는 울트라소닉 소드가 놈의 목뼈에 걸렸다.

내가 가볍게 울트라소닉 소드를 뽑아내자, 워슈트들이 기다렸다는듯 놈의 몸을 뒤집었다.

난 다시 한번 울트라소닉 소드를 휘둘렀다.

그러자 쩡! 하는 맑은 쇳소리와 함께 디스트로이어의 목이 잘려버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휴고와 세사르 등 다른 사냥 팀장들을 둘러봤다.

몇몇은 배틀슈트의 헬멧까지 해제할 정도로 놀란 표정이었다.

"선배님들께서 고생하셨는데, 제가 이 놈의 머리를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난 시정부에서 건 현상금만 1천억 크레딧인 디스트로이어의 머리에 발을 얹으며 휴고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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