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세이지 크리스탈
< [적층구조 배리어]를 사용하셨습니다. >
대열 후미를 때린 충격파는 순식간에 길게 늘어선 수송트럭 행렬을 날려버린 뒤 내 워슈트까지 덮쳤다.
충격파가 내 적층구조 배리어를 때린 순간, 콰과과과과! 하는 굉음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붉은 배리어가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붕괴되지는 않았다.
'쇼크웨이브에 비하면 견딜만 한 수준이군.'
전에 당했던 3레벨 엘리트 좀비 크랩의 쇼크웨이브보다 약한 충격이었다.
물론 당시 크랩은 1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쇼크웨이브를 터트렸었다.
반면에 이번 충격파가 발생한 최초 폭발지점은 최소 2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였다.
그걸 감안한다면...?
'폭발의 중심에서 발생했을 충격은 핵폭발...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군.'
폭발지점엔 어떤 상황이었을지 상상만해도 아찔할 정도였다.
물론 크랩을 상대할 때와는 달리 워슈트와 기간트워리어급 배틀슈트까지 내 마법사용을 도왔다.
그때보다 마력소모는 적고 마법의 효과는 더 강해진 이유였다.
그 덕분에 충격파를 손쉽게 막아낸 것도 사실이었다.
그때 콕핏 안에 설치된 디스플레이 중 가장 위쪽 디스플레이에 에어로트럭의 모든 창문이 폭발하는 모습이 보였다.
< 세사르 알마챠 소유의 에어로트럭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
< 에어로트럭 파손율 21%! >
< 비행마법진 파괴로 운행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온 순간이었다.
수송트럭 한대가 날아와 에어로트럭 후미를 때려버렸다.
그러자, 에어로트럭이 힘 없이 앞으로 밀려났다.
본래대로라면 에어로트럭의 무게에 2톤에 달하는 워슈트까지 더해졌으니 무게 때문에라도 어느 정도 밀리다 멈췄어야했다.
하지만 그 순간 모래폭풍이 우리를 덮친 게 문제였다.
모래폭풍에 휘말린 에어로트럭은 가볍게 날아올랐다.
콰과과! 하는 모래바람 소리가 어찌나 큰지, 내 워슈트가 움켜쥐어서 에어로트럭의 지붕이 우그러드는 소리가 파묻힐 정도였다.
- 젠장! 짤리는 한이 있어도 이번 임무는 받지 말았어야 했어!
- 이제와서 그런 소리한다고 뭐가 달...
전술 통신망을 통해 사냥 1팀장 휴고와 사냥 2팀장 세사르의 티격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우린 이미 에어로트럭과 함께 허공을 날고 있었다.
하지만 머지 않아 쿠궁! 하는 충돌음과 함께 추락했다.
"괜찮습니까?"
- 아직 죽진 않은 것 같군.
에어로트럭 지붕과 내 워슈트 사이에서 겨우 버티던 휴고가 대답한 순간이었다.
< 주의! 높이 40미터의 모래파도가 밀려오고 있습니다! >
< 경고! 충격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온 직후, 퍼버벅! 하고 수십 미터 높이의 모래파도가 우리를 덮쳐버렸다.
- 으아악!
- 안돼!
- 모든 용병에게 알린다! 배틀슈트를 폐쇄하고 비상용 산소탱크부터 지켜라!
그때 전술 통신망을 통해 절규하는 용병들의 비명과 휴고 가르시아의 명령이 들려왔다.
< 충격파의 영향으로 운용 중이던 정찰드론 1천 대 중 854대를 잃었습니다. >
< 충격파의 영향으로 약 250미터 이상 이동하셨습니다. >
< 현재 사용자님을 덮친 모래의 두께는 13미터 수준입니다. >
난 시스템 메세지를 읽으며 뒤를 비추는 디스플레이부터 확인했다.
반경 5미터 크기의 붉은 배리어 너머로 황색 흙더미가 뒤덮여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워슈트 3,4호기 출고!'
그 순간 내 뒤에 두 기의 워슈트가 나타났다.
미리 출격을 준비하고 있던 데스윙과 제니퍼의 워슈트들이었다.
난 그 모습을 확인한 후, 적층구조 배리어를 해제해버렸다.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기긴했지만... 마법사란 사실까지 공개할 필요는 없겠지.'
내가 휴고와 세사르의 관심을 끌지않기 위해 적층구조 배리어를 해제한 순간이었다.
투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황색 흙더미가 우리를 덮쳤다.
'위로 길을 내자.'
난 데스윙과 제니퍼에게 명령하고 내 워슈트도 일으켜 지상으로 가는 굴을 파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휴고와 세사르가 흙더미에 깔렸지만 걱정하진 않았다.
'4단계 강화시술자가 캡틴급 배틀슈트까지 입었으니, 알아서 잘 빠져나오겠지.'
내가 생각한 순간, 제니퍼의 정신파가 전해져왔다.
- 주인님, 지상이에요!
가장 먼저 지상까지 올라간 건 제니퍼의 워슈트 4호기였다.
뱀파이어 남작의 반열에 오르더니, 기량이 올랐는지 데스윙까지 앞질러버린 것이다.
난 제니퍼가 낸 굴 쪽으로 길을 내서 지상으로 올라왔다.
충격파와 모래폭풍이 쓸고 지나간 대지는 땅이 뒤짚어진 모습이었다.
키 큰 나무는 없었지만, 짧은 수풀이 펼쳐져있던 대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남은 건 엉망진창으로 쌓인 황색흙과 돌무더기 뿐이었다.
그리고 그 흙과 돌 사이에 수송트럭의 잔해와 배틀슈트들이 여기저기 파묻혀 있었다.
- 젠장, 이 정도면... 사상자가 꽤 되겠어.
나보다 한발 늦게 나온 사냥 1팀장 휴고 가르시아는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그리곤 곧장 내게 물었다.
- 아서, 자네 워슈트들로 용병들을 구출하는 걸 도와줄 수 있겠나?
"가능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시간을 오래 끌면... 4군단에게 꼬리를 잡힐 수 있습니다."
- 나도 남 좋은 일만 시키자는 건 아니네.
"그럼 반은 밀러쉴더스의 용병들을 구하고 나머지 반은 저들을 돕는 걸로 하죠."
- 고맙네. 세사르?
- 이쪽은 내가 맡을테니까 애들이나 구하러 가.
휴고가 세사르를 돌아보며 묻자, 세사르는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 그렇게 말했다.
휴고는 곧바로 밀러쉴더스 소속 용병들이 이동 중이던 동쪽을 향해 날아갔다.
난 곧바로 방금 파고나온 굴로 들어가 워슈트를 한 기씩 소환했다.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4군단이나 다른 용병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
약 1시간 후.
마지막으로 지하로 내려온 건 데스윙이 탄 워슈트 3호기였다.
난 워슈트 3호기를 메카닉 네크로맨서의 무덤으로 역소환시켰다.
< 전술 통신망에 보고된 사상자 현황입니다. >
< 총원 : 78,553명 >
< 사망자 : 14,951명 >
< 부상자 : 31,208명 >
< 실종 : 1,296명 >
< 이 중 충격파의 영향으로 사망한 인원은 895명, 부상자는 4,185명입니다. >
< 충격파의 영향으로 발생한 사망자 98%는 이전의 전투에서 극심한 부상을 입은 인원들이었던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
< 이번 구출작전에서 아군 워슈트 86기가 구출한 인원은 28,599명입니다. >
'수송트럭이 통째로 날아갈 정도의 충격이었으니 이해는가지만... 너무 허무하게들 죽었군.'
배틀슈트까지 갖춘 3단계 강화시술자가 좀비와 싸우다 죽은 것도 아니고, 이송 중에 폭발의 여파에 휘말려 죽었다고 생각하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문제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시체조차 찾지못한 천 명이 넘는 실종자들이었다.
'안타깝지만 그들을 찾겠다고 여기서 더 지체할 순 없어.'
난 마음을 정리하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굴 앞을 지키던 사냥 2팀장 세사르와 밀러쉴더스 소속 용병들이 외부 시야를 가리기 위해 펼쳐뒀던 천막을 거둬들였다.
- 정말 고생했네. 자네가 워슈트를 내주지 않았으면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을 거야.
가장 먼저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넨 사람은 흰머리의 용병 프렌켈이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내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 아서 단장, 우리가 잘못 생각했네. 그때 남쪽으로 우회했으면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거야.
그 순간 시스템이 내 시야에 지도 한장을 펼쳐서 보여줬다.
< 전술 통신망에 등록된 지도입니다. >
< 최초 폭발예상지점은 현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214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입니다. >
< 구출작전 과정에서 많은 용병들이 남하하여 우회하자고 주장한 프렌켈을 포함한 용병단장들을 질타했습니다. >
< 대부분의 용병들은 사고 이전에 동쪽으로 이동하던 수송트럭 대열이 잠시나마 지체된 건 용병단장들의 우회주장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
< 일부 용병들은 그들 때문에 폭발의 발원지에서 더 멀어지지 못해 사상자 규모가 커졌다고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
난 그제야 많은 용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프렌켈이 내게 허리를 숙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수만 명의 용병들이 그들을 규탄하니, 그도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 디미트와 렌코 등 나중에 합류한 용병연합의 수장들뿐만 아니라 내가 구했던 여섯 용병연합의 수장들도 내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이미 지난 일입니다. 그리고 저도 그 정도 규모의 폭발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 원소폭발이라니... 그건 정말 나도 예측하지 못했네. 내가 그런 위험을 예측했다면 절대, 결코! 남쪽으로 우회하자는 말은 하지 않았을 거야.
프렌켈의 변명은 절절하기까지 했다.
그건 사실 내가 아니라 이 전술 통신망에 접속한 수만 명의 용병들에게 하는 변명 같았다.
난 그의 변명보다 한 가지 단어가 궁금했다.
'원소폭발이 정확히 뭐지?'
< 양자암호통신망에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원소]는 현자의 돌 즉, [세이지 크리스탈]의 근원이라고 명시되어있습니다. >
세이지 크리스탈은 모든 마력로의 핵심재료였다.
'그 말은... 배틀슈트에 장착한 초소형마력로들도 저렇게 폭발할 수 있다는 거야?'
거기까지 떠올리자, 내 팔과 머리 등에 소름이 돋았다.
세이지 크리스탈이 폭발할 수 있다는 말은, 세이지 크리스탈로 만든 배틀슈트와 워슈트의 마력로 또한 폭발할 수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 [세이지 크리스탈]은 매우 안정적인 구조입니다. >
< 1만 캐럿 이상의 [세이지 크리스탈]의 그 안정적인 구조를 강제로 붕괴시킬 경우, [원소폭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정보를 찾아냈습니다. >
1만 캐럿이면 2킬로그램이란 소리였다.
'내가 초소형마력소 제작에 사용했던 세이지 크리스탈이... 100캐럿이었으니까 20그램 정도였군.'
세이지 크리스탈은 고작 20그램짜리 하나에 1억 크레딧이란 거금에 거래되고 있었다.
'근데, 1만 캐럿이면 얼마쯤 해?'
< 1만 캐럿 무게의 [세이지 크리스탈]은 1조 크레딧입니다. >
'무게는 겨우 100배 차이인데, 값은 1만 배나 차이나는군?'
< 이 가격은 [마법 아카데미 알자스]에서 [세이지 크리스탈]을 수입할 때, 거래대금으로 지불되는 금액입니다. >
< 1만 캐럿 이상의 [세이지 크리스탈]은 타이탄급 골렘에 장착되는 중형마력로의 핵심부품 중 하나입니다. >
< 이는 팔미라 시에서 전략자원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시정부에서 독점 관리하고 있습니다. >
1조 크레딧.
만져본 적도 없는 거금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타이탄급 골렘에 장착되는 중형마력로라는 걸 만들어보고 싶었다.
'팔미라 시에서 구할 수 없으면... 알자스로 직접 찾아갈수밖에 없겠군.'
내가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데 시스템이 메세지를 띄워올렸다.
< 현재까지 1만 캐럿 이하의 [세이지 크리스탈]이 [원소폭발]을 일으켰다는 사례는 보고된 바 없다고 합니다. >
< [양자암호통신망]에 공개된 정보들을 취합해 예측합니다. >
< 이번 폭발의 위력은 사용자님께서 자폭시킨 사일런스스톰의 수소핵폭발보다 35배 이상 강력한 수준이었습니다. >
< 이것은 [중형마력로]의 세이지 크리스탈 붕괴시 발생하는 [원소폭발]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
< 검색 결과, 타이탄급 골렘이 중형마력로를 탑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
'핵폭발보다 강력한 수준이면... 방사능 피해 같은 게 있을 것 같은데?'
< 원소폭발이 발생할 경우, 반경 10킬로미터 가량의 공간이 강력한 마력으로 오염되어 마법 사용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반경 10킬로미터면 2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있는 우리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다.
'그 정도 폭발력이면... 주변에 있던 성기사나 다른 골렘들도 무사하긴 어려웠겠군?'
< [양자암호통신망]에서 [타이탄급 골렘] 또는 [성기사]의 방어력에 대한 정보를 찾지 못했습니다. >
시스템의 예측대로 타이탄급 골렘이 탑재한 중형마력로가 터진거라면?
'로두스가 한방 먹였다는 뜻이군. 이 정도 폭발이면 그 주변에 있던 다른 골렘이나 기간트들도 연쇄폭발했을 법 한데?'
< 연쇄폭발을 의심할만한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 [세이지 크리스탈]은 매우 안정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중형마력로의 폭발이 [원소폭발]로 이어질 가능성은 0.0071%에 불과합니다. >
'아쉽군. 골렘이던 기간트던 이번 폭발로 다 쓸려나가버렸으면 원수 같은 4군단 자체가 해제되어버렸을텐데!'
저번 전투에서 귀족 셋을 잃은 것으로도 모자라, 이번 복수전에서도 골렘을 잃었다?
- 조슈아 빌헬름 군단장의 신분이 격하될지도 모르겠군요.
그때 제니퍼가 정신파를 보내왔다.
'격하?'
- 3대 가문에선 큰 잘못을 저지른 귀족을 벌할 때, 그의 귀족신분을 빼앗고 가문에서 축출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을 격하라고 부르는데, 귀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벌입니다.
'4군단장이 격하되면 그 자의 부하들도 줄줄이 옷을 벗겠군?'
- 아마 귀족이 아닌 자들은 사냥교화형에 처해질지도 모릅니다.
제니퍼의 정신파를 들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4군단장과 그 휘하의 군인들이 힘을 잃으면 나를 포함한 용병들은 팔미라 시에 한결 편하게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시스템이 생소한 메세지를 띄웠다.
< 사용자님, 조셉 메를린의 계좌잔고가 바닥 나 [양자암호통신망] 접속이 끊어졌습니다. >
'뭐?'
< 양자암호통신망의 경우 접속과 정보 검색만으로 요금을 지불해야합니다. >
< [세이지 크리스탈]과 [원소폭발] 등에 관한 정보는 각각 30억 크레딧, 65억 크레딧이었습니다. >
난 시스템 메세지를 읽고 고개를 내젓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지 정보 검색하는데 95억 크레딧을 뜯어가다니...'
사실 내 돈이 아니라 조셉 메를린의 계좌에서 지불된 금액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돈이 내 돈 같았다.
조셉 메를린은 나와 한배를 타기로 약속했을 뿐, 내가 일으켜세운 언데드도 아닌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 아직도 허리를 숙이고 있는 프렌켈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사과는 그쯤하시죠. 여기서 지체한 시간이 너무 깁니다. 많은 차량을 잃었으니, 당장 출발해야합니다."
용병단장들은 사과가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멀쩡한 용병들은 동료의 시신과 저온수면캡슐을 들고 이동한다!
사냥 1팀장 휴고 가르시아가 전술 통신망을 통해 용병들을 통솔하기 시작했다.
난 용병들이 동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워슈트에 탑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