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현상금
< [아머드 스켈레톤 뱀파이어 남작]이 유니크 등급 스킬 [흡혈종속]을 사용했습니다. >
< 핀 아들러가 [피의 하수인]으로 거듭났습니다. >
< 종속체의 마법적성이 뛰어납니다. >
< 주체인 [아머드 스켈레톤 뱀파이어 남작]가 [정신지배]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
< 주체가 [정신지배] 스킬을 이용해 흑마법의 기초를 전수합니다. >
< [피의 하수인]이 레어 등급 스킬 [윈드커터]를 습득했습니다. >
< [피의 하수인]이 레어 등급 스킬 [그림자 이동]을 습득했습니다. >
"하... 피 맛이 독특하군요. 마음에 들어요."
제니퍼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한번 깜빡였다.
그러자 붉었던 눈동자가 본래 색인 푸른빛을 되찾았다.
"피 맛?"
"블러드 클라우드에 사용된 피와는 맛이 달라요. 뭐랄까? 더 품격있고 우아한 풍미가 있어요."
"제 고조 할아버지께선 리옹에서 탈출하신 망명귀족이셨습니다."
난 인사팀장 핀 아들러의 말을 듣고나서야 시스템 메세지 중 마법적성이 뛰어나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귀한 귀족의 유전형질이군. 샤를!"
그 순간 내 앞에 금발머리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메카닉 네크로맨서의 무덤 속 정비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연구정령 샤를이었다.
"혈액샘플을 채취하겠습니다."
샤를은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주사기를 꺼내 인사팀장 핀 아들러의 손목 혈관에 꽂아넣었다.
"주사기 한 대 분량으로 연구가 가능하겠어?"
"부족한 혈액은 배양해서 사용하겠습니다."
연구정령 샤를은 그렇게 말하며 내 손에 금발머리를 가져다 댔다.
마치 쓰다듬어달라는 듯한 태도였다.
난 샤를의 머리를 두어 차례 쓰다듬어준 후 메카닉 네크로맨서의 무덤 속으로 돌려보냈다.
- 이렇게하면 핀이 제 피의 하수인이 됐다는 걸 아무도 모를 겁니다.
제니퍼가 인사팀장의 목덜미를 쓰다듬자, 송곳니 자국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단장님, 무엇이든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제니퍼와 눈이 마주친 인사팀장 핀 아들러는 내게 무릎 꿇으며 말했다.
"일단은 밀러쉴더스에서 암약하며 제니퍼와 소통하세요. 필요한 일이 있으면 따로 지시하겠습니다."
내가 인사팀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일어나며 말했다.
"거래대금은 어떻게 처리하는 게 편하시겠습니까? 임시계좌를 만들어서 입금해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 마그니움 주괴로 받죠."
"그럼 바로 준비시키겠습니다."
제니퍼의 손짓에 따라 일어난 인사팀장은 감히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허리를 깊게 숙이며 말했다.
***
"아, 아서. 어떻게 됐나?"
에어로트럭이 지하주차장에서 다 올라오기도 전에 휴고 가르시아가 조수석으로 다가와 물었다.
"공헌도 697만 점을 거래하고 오는 길입니다."
내가 대답하기가 무섭게 용병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됐다! 됐어!"
"난 아직 배틀슈트 할부금이 11억 크레딧이나 남았는데, 이걸 탕감해준다고?"
"우리 대표가 그렇게 통이 큰 사람이 아닌데... 정말 모든 부채를 탕감해줄까?"
"용병을 부려서 공헌도를 수집하는 사냥기업이 용병을 희생시키려고 들었어. 이 정도 보상도 안해주면 어떤 용병놈이 밀러쉴더스에서 일하겠다고 하겠냐?"
"4군단에 우릴 팔아넘겼으니 조슈아 빌헬름한테 따로 비용을 청구하겠지."
"그럼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가르시아 팀장이 용병단을 설립하지 않겠어?"
난 한순간에 수억 크레딧의 빚을 탕감받고 자유의 몸이 되어서 흥분한 용병들을 보며 명령했다.
"꺼내드려."
그 순간 에어로트럭 짐칸이 열리며 워리어 한 기가 휴고 앞에 293억 크레딧 어치 마그니움 주괴를 내려놓았다.
"이게 뭔가?"
"첫번째 전투에서 밀러쉴더스 전속용병들의 기여도는 2.9%였습니다. 거기에 해당하는 정산금입니다."
"아하하하! 이 친구 정말 재미있는 농담을 하는군."
내 대답을 들은 세사르는 배를 잡고 웃어댔다.
"자네 덕분에 전속용병들이 탕감받은 빚만 5조 크레딧이 넘어. 우리가 어떻게 이 돈을 받을 수 있겠나?"
휴고 가르시아는 절대 받을 수 없다며 마그니움 주괴가 든 가방을 직접 에어로트럭 짐칸에 실으며 말했다.
그는 날 보고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곤 용병들을 향해 물었다.
"아서 단장이 없었다면 여기 몇 명이나 서서 웃고 떠들 수 있었겠나?"
그가 묻자, 소란스럽던 용병들이 하나둘 입을 다물었다.
"이젠 다들 알겠지만, 이번 전투에 참여한 레이튼과 카윈 그리고 루비치 그룹의 사냥기업 소속 전속용병들은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그건 나도 처음 듣는 얘기였다.
< 전술 통신망에 공유된 정보입니다. >
< 10대 그룹 중 이번 사막정화 작전에 참여한 건 서열 6위 레이튼 그룹, 8위 카윈 그룹, 9위 루비치 그룹 그리고 밀러 그룹이었습니다. >
< 레이튼 시스템즈 사 소속 전속용병 중 63%가 사망 또는 실종됐습니다. >
< 카윈 디펜스 사 소속 전속용병 중 39%가 사망 또는 실종됐습니다. >
< 루비치 가드 사 소속 전속용병 중 57%가 사망 또는 실종됐습니다. >
< 밀러쉴더스 사 소속 전속용병 8,293명 중 사망 또는 실종된 인원은 216명으로 2.6% 수준입니다. >
'다른 사냥기업들에 비하면 사상자 수가 적은 편이군.'
내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이었다.
"방금 접한 소식에 따르면 레이튼 시스템즈는 계약해지 자체를 거부했고 카윈 디펜스는 20% 수준의 부채탕감 조건을 내걸고 용병들을 해산시켰다."
휴고 가르시아가 사막정화 작전에 참여한 다른 사냥기업들의 동태를 밝혔다.
"루비치 가드는 이번 기회에 실적이 부진한 용병들을 방출시켰다더군."
그러자 세사르 알마챠가 끼어들어 말을 보탰다.
"퉤! 다른 곳은 몰라도 루비치 그 자식들은 정말 너무했군."
"전속용병이 반이상 죽어나갔는데, 어떤 보상도 없이 방출시켜?"
"우리도 아서 단장이 없었으면...!"
용병들은 하나같이 가장 가혹한 태도를 보인 루비치 가드를 욕했다.
그때 휴고 가르시아가 용병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에겐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직접 용병단을 세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용병단으로 들어가는 것이지. 형제들은 어떤 길을 원하는가?"
"당연히 가르시아 형님이 용병단을 설립하셔야지!"
"언제든 우리를 희생양으로 쓸 놈들 밑으로 들어갈 수는 없잖습니까?"
"휴고 형님은 뻔한 걸 묻고 있소!"
휴고 가르시아가 묻자, 용병들이 앞다투어 그를 용병단장으로 추대했다.
하지만 휴고를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내가 용병단을 세우면 지금보다는 조금 자유로울 수 있겠지. 하지만 밀러쉴더스가 뒤에서 지원해주지 않으면 군소 용병단 신세를 면치 못할 거야. 자네들, 떠돌이 용병단 신세에 만족할 수 있겠나?"
그가 현실적인 부분을 내세우자, 용병들의 표정이 굳어갔다.
그 모습을 한번 돌아본 휴고가 세사르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세사르가 휴고 옆으로 다가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린 우리보다 능력있고 의리까지 지킬 줄 아는 용병을 알지. 아서 단장이 우리를 이끌어준다면 밀러쉴더스가 지원해주는 것만 못할까?"
그건 내가 예상한 방향이 아니었다.
"지금 이 많은 용병들을 저보고 책임지라는 겁니까?"
"아서 단장이 워슈트로 지원해준다면 밀러쉴더스 밑에서 죽을 똥 사는 것 보다 낫지."
휴고 가르시아는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살려줬더니 밥벌이까지 책임지라는 듯한 태도였다.
"휴고 형님! 아서 단장하고 얘기 끝낸 거 아니었소?"
"단장님은 처음 듣는 얘기신 것 같은데?"
"아서 단장이면 믿을 수 있지."
"밀러쉴더스는 국지전에서 입은 부상이 낫기도 전에 우릴 사막정화작전으로 내몰았는데, 아서 단장이 그럴 리는 없잖아?"
"그럼! 우릴 뒤에 남겨두고 용병연합 여섯 곳을 몸소 구하신 분이잖아?"
"용병을 막 부리지 않는 것만해도 난 찬성이요!"
"나도 찬성입니다!"
"아서 단장, 우리 좀 받아주시오!"
용병들의 뜻이 하나로 모이고 있었다.
'내가 8천 명이 넘는 용병을 이끌 수 있을까?'
- 이미 동부사막에서 여기 팔미라 시까지 8천 명이 아니라 3만 명이 넘는 용병들을 훌륭하게 이끌어오시지 않았습니까?
그때 내 아공간 메카닉 네크로맨서의 무덤에서 데스오러를 연마 중이던 게릭슨이 정신파를 보내왔다.
- 아서님이시라면 용병들도 잘 이끄실 수 있을 거에요.
시체보관실에서 스켈레톤을 일으키기에 한창이던 테리도 내 정신파를 전해 들었는지 통신을 보내왔다.
- 주인님께선 일개 사냥기업을 압도하는 전력을 갖추셨고 충분한 자금까지 손에 넣으셨으니 충분히 이들을 이끄실 수 있을 겁니다.
제니퍼까지 나서서 응원해주니 자신감이 부쩍 커졌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우와아아아!"
"당장 용병협회로 갑시다!"
난 당장이라도 용병협회로 몰려가려는 용병들을 막아세운 뒤 제니퍼에게 물었다.
'용병들의 퇴직절차는 마무리 된 건가?'
- 밀러쉴더스와 관련된 모든 부채를 탕감조치했고 100% 해고절차를 완료했다고 합니다.
'인사팀장도 정신파를 사용할 수 있나?'
- 뱀파이어 혈족끼리는 텔레파시를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잘 됐군.'
난 제니퍼의 확답을 듣고나서야 휴고와 세사르 등 용병들에게 말했다.
"사망자와 부상자부터 처치하고 용병협회로 이동합시다."
***
그 시각, B-21구역 4군단 예하 기간트 중대장실.
중대장실에 모인 12명의 장교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홀로그램 TV를 지켜보고 있었다.
- 진상조사 위원회가 파악한 4군단장 조슈아 빌헬름의 죄는 다음과 같습니다.
- 하나. 국지전 과정에서 로두스 성국의 공격을 사전에 대비하지 않은 죄.
- 국지전 패배 결과, 타이탄급 골렘 3기 반파, 골렘나이트 3명뿐만 아니라 수 많은 기간트와 용병들이 전사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 둘. 사막정화 작전에서 골렘전술교범을 무시하고 타이탄급 골렘 10기를 작전지역에 몰아넣어 원소폭발을 야기한 죄.
- 원소폭발 결과, 골렘나이트 10명과 10기의 타이탄급 골렘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팔미라 시 동쪽 800킬로미터라는 비교적 가까운 지역에 마력오염지역이 형성됐습니다.
- 진상조사 위원회는 4군단장 조슈아 빌헬름이 그간 쌓은 공을 감안하여 마력오염지역을 탐사할 기회를 줬습니다.
- 하지만 조슈아 빌헬름 중장은 비겁하게 이 기회를 거절한 바, 그의 신분을 격하하고 그의 시민등급을 1등 시민에서 5등 시민으로 강등시키는 바입니다.
"저게 무슨 개소리야!"
헬무트 대위는 테이블을 내리치며 분을 토해냈다.
"말도 안됩니다. 마력오염지역을 탐사하란 건 죽으러 들어가란 말 아닙니까?"
"아아...! 이젠 제 군생활도 끝났습니다!"
"저... 조슈아 군단장이... 5등 시민이 됐다는 건... 제가 골렘나이트가 될 가능성도 사라졌다는 뜻이겠죠?"
"이런 젠장!"
방송을 본 장교들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통스러워했다.
자신을 이끌어줄 라인이 무너졌으니, 장벽방어군에서 출세할 길이 사라져버린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홀로그램 TV에 또 다른 뉴스가 펼쳐졌다.
- 다음 뉴스입니다.
- 밀러 그룹 산하 사냥기업 밀러쉴더스가 전속용병들을 대거 계약해지했습니다.
- 계약이 해지된 용병들은 곧바로 용병협회에 찾아가 새로운 용병단에 가입했다는 소식입니다.
- 이로인해 단원이 한 명뿐이었던 아서 용병단은 8천 명이 넘는 베테랑 용병들을 보유하게 됐습니다.
- 이는 용병단 랭킹 19위에 해당하는 수준입니다.
- 아서 용병단의 단장 아서는 4등 시민으로 알려졌습니다.
홀로그램 창에는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밝은 금발에 녹색 눈을 지닌 아서의 모습이 비춰졌다.
"저, 저 개자식!"
"헬무트 대위님, 저 놈... 대위님께 대들던 그 용병나부랭이 아닙니까?"
"사막정화 작전으로 우린 나락으로 떨어지게 생겼는데, 배신자 용병 새끼는...!"
그 모습을 본 장교들은 분통을 토해냈다.
눈이 충혈될만큼 홀로그램 창 속의 아서의 모습을 노려보던 헬무트 대위는 짓씹듯이 말했다.
"에르칸 중위, 블랙마켓에 가서 저 새끼 목에 현상금 좀 걸고 오도록."
"어, 얼마나 거실 겁니까?"
"카이 헬무트 이름으로 500억 크레딧. 기간트 중대 운영자금으로 1,500억 크레딧."
"중대장님! 중대 운영자금을 유용한 사실이 밝혀지면... 바로 불명예전역입니다!"
에르칸 중위는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차피 난 조슈아 라인으로 낙인 찍혔다. 야전에서 사냥교화부대나 지원하며 인생을 낭비하느니 불명예제대가 낫다."
***
어두운 밤, F-11구역의 뒷골목.
F-11 구역은 가로등도 없어서 라이트를 켜지 않으면 앞을 구분할 수 없을만큼 낙후된 지역이었다.
"여깁니다."
워머신을 본 딴 마스크를 쓴 남자가 외벽이 허물어져가는 건물의 뒷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조셉 메를린이었다.
그가 가리킨 건물은 어찌나 낡았는지 허물어진 외벽 사이로 쿰쿰한 냄새가 나는 건물 안을 엿볼 수 있을 정도였다.
누가봐도 마약중독자들이나 살 법한 허름한 건물이었다.
"정말 여기가 블랙마켓이라고?"
"블랙마켓으로 들어가는 문은 분 단위로 바뀝니다."
그때 조셉 메를린이 자신의 메탈 목걸이를 만졌다.
그건 통신단말이었다.
그 순간 시스템이 내 시야에 시간을 띄웠다.
< 해당 문이 [블랙마켓의 통로]가 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1분 24초입니다. >
시스템의 안내대로 시간이 경과한 순간이었다.
녹슨 문에서 옅은 마력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조셉 메를린이 보내준 타이머를 보며 문을 주시하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을만큼 미약한 마력이었다.
내가 돌아보자, 조셉 메를린이 물었다.
"들어가시겠습니까?"
"그러지."
난 앞으로 나서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그 순간 완성 직전이었던 마법식의 마지막 매듭이 지어지는 걸 느꼈다.
< 유니크 등급 스킬 [공간왜곡]을 습득하셨습니다. >
문을 열자, F 구역 뒷골목이라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