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용병협회 이사
"처음 듣습니다."
"4군단 관할구역에서만 생활하셨다면, 들어보지 못하셨을 수도 있겠군요."
그로처 부단장은 고개를 한번 주억거리더니 내 앞의 홀로그램 창을 조작했다.
그러자 1.5미터 높이의 홀로그램이 테이블 위에 생겨났다.
- 종족 : 오염된 소드테일 렛맨
- 위험등급 : 2~5 등급
- 특징 : 진화흔적이 뚜렷하지 않으며 진화할 때마다 꼬리 수만 늘어남.
'이게 실제 크기라고...?'
홀로그램은 키 1.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쥐의 형상이었다.
문제는 처음엔 하나였던 소드테일 렛맨의 꼬리가 점차 늘어났다는 점이었다.
'구미호도 아니고 쥐 꼬리가... 저건?'
그때 메카닉 네크로맨서의 무덤 시체보관실에서 사령술을 연마하던 테리가 통신을 보내왔다.
- 소드테일, 저게 바로 체인소드의 원형이에요.
수십 개로 불어난 소드테일 렛맨의 꼬리가 한순간에 좌우로 칼날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테리의 통신처럼 체인소드를 닮아있었다.
톱날 같은 칼날들이 길이 4미터에 달하는 꼬리를 따라 펼쳐지자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징그럽지만... 어떻게보면 공작새의 꼬리 같기도 하군.'
- 기갑토벌군이 몇 차례나 토벌에 실패했었다고 들었어요.
'기갑토벌군이?'
- 네, 원래 소드테일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생체병기였어요. 본래대로라면 좀비를 사냥하고 소드테일끼리 번식까지 할 수 있게 설계됐었는데 좀비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바람에 생식능력을 잃었데요.
내가 테리의 통신을 듣고 있는데, 그로처 부단장이 팔미라 시 서남부의 지도 중 거대한 호수를 터치하며 말했다.
"크라노야는 본래 이 근방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이 멸망한 120여 년 전까지만해도 팔미라 시보다 번성했던 도시였다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소드테일은 크라노야 시에서 좀비를 소탕하기 위해 만든 생체병기였죠."
그 순간 크로노야 시와 그와 관련된 시정부에서 발주한 관급의뢰에 대한 정보가 촤르륵 펼쳐졌다.
- 멸망한 도시 크라노야 섬멸작전
- 참전대가 : 용병 1인 당 1천만 크레딧(일당)
- 목표 1. 오염된 소드테일 렛맨을 소탕하고 그 생산시설을 파괴하라.
- 목표 2. 소드테일 소굴이 된 크로노야 시의 중앙통제시스템을 확보하라.
- 보상 1. 빌헬름 테크놀로지에서 제작한 최신형 기간트 10년 대여.
- 보상 2. 원하는 스펙의 기간트 제작 및 소유권 이전.
놀라운 건 두 번째 보상이었다.
"이 도시의 중앙통제시스템만 확보하면 기간트를 준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팔미라 시에서 법적으로 기간트 판매가 가능한 겁니까?"
난 그로처 부단장의 대답을 듣고도 믿을 수가 없어서 용병협회장인 라이언 빈슨에게 물었다.
"공을 세워서 상으로 받는 건 가능하지만 판매됐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네. 그로처, 저번에 게오르크가 경정으로 진급하고 기간트를 대여했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그로처 부단장은 협회장에게 대답한 뒤 내게 설명했다.
"엘리트 좀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1레벨의 오염된 소드테일은 위험등급 2로 평가됩니다. 혼자서 스프린터 셋 정도는 상대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크라노야 시의 공장에서 계속 생산된다는 점입니다. 놈들을 상대하신다면 그 점을 기억하셔야합니다."
그는 이미 내가 이번 임무를 맡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우리 용병협회는 크라노야 시의 탈환이나 소드테일의 완전한 소탕보다 개체수 유지에 집중했었네."
용병협회장 라이언 빈슨은 이번 의뢰가 완수되는 걸 원치 않는 것 같았다.
"기간트를 받을 수 있다면 욕심내볼만 한 의뢰 아닙니까?"
"달성할 수 있는 목표였으면 지금 내가 여기 이렇게 앉아있겠나? 크라노야 전선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라도 놈들을 사냥하고 있겠지."
협회장 라이언 빈슨은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다른 좀비들과 달리 소드테일 좀비는 진화해도 몸이 커지지 않습니다."
그때 그로처 부단장이 홀로그램 영상들이 재생시키며 설명했다.
그건 키 1.5미터에 불과한 소드테일 렛맨이 4미터가 넘는 체인소드처럼 생긴 칼꼬리 20여개를 이용해 하늘을 날거나 달리는 모습이었다.
그 중 특히 내 눈길을 사로 잡은 건, 수십 개의 칼꼬리를 땅에 박으며 질주하는 소드테일 렛맨의 영상이었다.
"그건 3레벨 소드테일의 영상입니다. 순간속도가 시속 1천 킬로미터 이상이죠."
시속 1천 킬로미터면 1초에 270미터 이상을 주파할 수 있는 속도였다.
< 3레벨 좀비 머슬보다 2배 빠른 속도입니다. >
총알에는 못 미치겠지만, 화살보다는 4배나 빠른 속도였다.
"시속 1천... 킬로미터라고요?"
"이 놈들은 일반좀비와 달리 진화할수록 몸집이 커지는 대신 꼬리가 많아지는데, 꼬리가 많아질수록 빨라집니다."
그로처 부단장은 놀란 내게 설명했다.
"이제 내 말을 이해했나? 크라노야 시에 가까워질수록 이런 괴물들이 많아지지."
"일반 용병들이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군요. 3레벨만 해도 이 정도인데... 4,5 레벨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괴물이 아니겠지."
협회장 라이언 빈슨도 4레벨 이상의 소드테일을 직접 마주해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이런 임무를 왜 용병들에게 맡기는 겁니까? 차라리 수소폭탄 같은 핵공격을 감행하면 쉽게 처리할 수 있을텐데요?"
"욕심때문이지."
난 라이언 빈슨 용병협회장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내 표정으로 드러났는지 그로처 부단장이 설명했다.
"시정부는 온전한 크라노야 시를 원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소드테일 생산기술을 원하는 거지. 어쨋든 크라노야 시가 멸망하기 전엔 반경 2천 킬로미터까지 좀비를 몰아냈었으니까."
라이언 빈슨 협회장이 말을 보태자, 크라노야 시 섬멸작전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관계가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평시라면 크라노야 시 밖으로 나온 소드테일의 수가 1천만 마리 미만으로 유지됐을 겁니다. 하지만 최근 동부사막에서 국지전과 사막정화 작전이 연이어 벌어지는 바람에 놈들의 수가 평소보다 8배 이상 많아졌죠."
그로처 부단장의 말을 들은 난, 난감한 표정을 연기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생체병기로 만들어진 소드테일이 어떤 위용을 보일지 궁금하긴 하지만... 당장은 정비를 핑계로 시간을 벌어야 해.'
새로 일으킨 워리어들에게 워슈트도 맞춰주지 못했는데, 곧바로 임무를 받고 싶지가 않았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말씀하신 전쟁에 참가한 지 겨우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당분간은 탑승형 로봇을 정비해야해서 당장 임무를 맡기는 곤란합니다."
"나도 신생 용병단에게 무리한 임무를 떠넘기고 싶은 생각은 없네. 하지만 아서 용병단보다 규모가 큰 용병단들은 관급전쟁을 수행 중이거나 이번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어서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용병은 자네들이 가장 많은 상황이네."
협회장 말대로 이번 사막정화 작전에 참가한 레이튼 시스템스, 카윈 디펜스, 루비치 가드 사는 최소 39%에서 최대 63%의 전속용병을 잃었다.
"크라노야 시에선 계속해서 오염된 소드테일이 생산되는데 개체수를 줄여줘야할 용병들이 부족하니 놈들이 무서운 속도로 영역을 넓히고 있네."
라이언 빈슨 협회장이 말하자, 그로처 부단장이 지난 1주일 사이에 소드테일의 영역이 얼마나 빠르게 확장됐는지 지도를 이용해 보여줬다.
"이대로라면 전선은 계속 후퇴할 수 밖에 없어. 그럼 2,3일 내에 서남부에 위치한 중소마을 200여 곳이 놈들의 영역권 안으로 들어가고 말 걸세."
그 모습을 본 라이언 빈슨 협회장은 팔미라 시와 크라노야 시 사이에 위치한 중소마을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팔미라 시 서남부에 마을이 200곳이나 되나?'
< 용병협회에서 제공한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한 결과입니다. >
< 팔미라 시는 발지크 도시연합에 소속된 도시입니다. >
< 발지크 도시연합에 소속된 여러 도시들은 팔미라 서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
< 이들은 긴밀한 군사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를 [연합군]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
< 팔미라 시 서쪽은 연합군의 영향이 미치는 지역으로 동부사막에 비해 좀비집단의 수가 적은 편입니다. >
< 상대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에 많은 마을이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
난 시스템 메세지를 읽고 용병협회장에게 물었다.
"협회장님의 고향이 그쪽에 있는 겁니까?"
"아니, 난 팔미라 토박이일세."
"그럼 그렇게까지 중소마을들을 걱정하시는 이유는 뭡니까?"
"귀족들은 자신들이 팔미라를 이만큼 키운 줄 알지. 하지만 정작 최전선에서 싸우는 이들은 어디 출신인가? 워머신을 입고 최전선으로 내몰리는 장벽방어군 병사 대부분이 타지 사람들이야. 용병들도 마찬가지네."
팔미라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내가 봤을 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주장이었다.
낮은 레벨의 좀비를 사냥한 공적은 용병들과 장벽방어군의 최하층 병사들이 더 높게 쌓았을 수 있다.
하지만 4레벨 엘리트 이상의 좀비들은?
'기간트나 골렘이 나서지 않으면 용병들만으로는 잡을 수 없는 괴물들이지.'
내가 대답 없이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데, 꽝! 하는 굉음과 함께 지하 11층 전체가 울렸다.
돌아보니 구겨진 팔걸이를 보고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라이언 빈슨 용병협회장의 얼굴이 보였다.
"미안하네. 답답한 마음에 팔걸이에 팔을 올려놓는다는 게 그만..."
순수 마그니움으로 만든 의자의 팔걸이를 생각없이 팔을 올려놓는 것만으로 구겨버리는 능력은 정말 가공할만했다.
"아서, 내가 아서라고 불러도 되겠나?"
"그러십쇼."
"아서, 용병협회 차원에서 내가 도와줄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얘기해보게."
라이언 협회장이 말한 순간, 제니퍼가 정신파를 보내왔다.
- 워슈트의 재료 매입을 용병협회에서 대신해달라고 부탁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흠... 용병협회가 나서주면 재료매입이 한결 쉬워지긴 하겠군.'
사실 재료매입부를 맡은 호너가 2천억 크레딧에 달하는 건물을 사옥으로 사라고 한 건 거래처에 신뢰를 주려는 이유였다.
난 이번에 번 2조 크레딧이 넘는 현금으로 적어도 4천 대 이상의 워슈트를 만들 계획이었다.
골격과 장갑은 백골산에서 확보한 카라페이스의 뼈조직이 있으니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동력원인 소형핵융합로와 캡틴 급 초소형마력로를 만드는 데 필수재료인 100캐럿 이상의 세이지 크리스탈과 진은, 오리하르콘 등의 고가의 마법재료들이 문제였다.
- 용병협회에서 주문한다면 전략물자라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진 못할 겁니다.
용병협회가 나서서 재료를 사준다면 쓸데없이 2천억 크레딧이라는 거금을 건물을 사는 데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메카닉 네크로맨서의 무덤이 있으니 워슈트 제작은 재료만 확보되면 이동 중에 해도 되겠어.'
난 제니퍼의 대답을 듣고 결정했다.
"저희가 신생 용병단이다보니 재료매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거라면 내가 처리해주지. 목록을 띄워보게."
그 순간 테이블 위의 홀로그램 창에 재료목록이 펼쳐졌다.
- 소형핵융합로 CFR-101 : 4,000 대
- 세이지 크리스탈 (100 캐럿 이상) : 4,000개
- 진은 : 4 킬로그램
- 오리하르콘 : 571 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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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매입대금 : 2조 크레딧
"2조 크레딧?"
재료목록을 본 라이언 빈슨 협회장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단장인 제가 3등 시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량의 매입을 거절당했습니다."
내 4등 시민이란 신분은 호너가 클라크 케미컬에서 퇴사한 후 처음 부딪힌 장애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호너가 아서용병단이 아닌 다른 회사를 차렸어도 겪었을 문제이긴 했다.
그 또한 4등시민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3등 시민이 되는 건 어떤가?"
"공헌도야 어렵지 않지만... 3등 시민이 되려면 DNA를 제출해야된다고 들었습니다."
3등 시민이 되려면 공헌도 10만 점이 필요했다.
4레벨 좀비 디스트로이어의 머리를 두 개나 숨겨놓고 있는 내겐 공헌도 10만 점은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유전자를 제출했다가 시정부에서 내 복제인간이라도 만들면?
'괜한 위험을 자초하느니 4등시민으로 사는 게 낫지.'
내가 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순간이었다.
"그건 내가 처리해주지."
"협회장님께서요?"
"그로처, 협회에 이사 자리가 몇 개 남아있지?"
"게오르그가 탈퇴해서 3자리 남아있습니다."
"그래? 아서, 용병협회 이사가 되보는 건 어떤가? 협회 이사가 되면 채혈 같은 과정 없이 3등 시민이 될 수 있네."
그때 게릭슨의 정신파가 전해져왔다.
- 주군, 용병협회 이사면 10 자리밖에 없는 중책입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남은 세 자리 중 다른 두 자리는 니콜라스 데커와 카일 브라운의 자리일 겁니다.
두 사람 모두 5단계 강화시술자로 4대 기사로 불렸던 인물들이었다.
협회장은 5단계 강화시술자들이 차지했던 자리를 내게 주려는 것이었다.
"저에게 이사 자리를 주신다고요?"
"원래 유능한 용병단장들이 앉는 자리네. 아서 용병단이 용병규모로는 19위로 발표됐지만 워슈트 같은 기갑전력까지 합치면 능히 캘러핸 다이나믹스 못지 않다고 생각하네. 그럼 용병계를 대표할만 하지."
캘러핸 다이나믹스는 10대 그룹 중 5위인 캘러핸 그룹의 사냥기업이었다.
그리고 그 계열사 중엔 울트라소닉 소드를 만든 캘러핸 블레이드 사도 있었다.
용병협회장은 그런 대기업의 사냥기업인 캘러핸 다이나믹스와 이제 생긴지 이틀째인 아서용병단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은 것이다.
내가 만든 워슈트를 높게 평가해주니 기분은 좋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의아한 마음도 들었다.
"제 뭘 믿고 그런 자리를 주시겠다는 겁니까?"
"4군단이 머리 위에 피를 뿌린 위급한 상황에서 혼자 내빼지 않고 수만 명의 용병들을 구했잖나?"
"저 말고도 수십 년 동안 협회를 일한 선배님들이 계신데, 제가 그런 자리에 올라도 괜찮겠습니까?"
"듣기론 자네가 기간트를 탄 기간트워리어에게 호통을 쳤다지?"
"순간 욱해서 한 소리하긴 했습니다."
"용병들 중 기간트를 탄 기간트워리어에게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이 한 손으로 꼽을 걸세. 이 정도면 대답이 됐나?"
라이언 빈슨 협회장은 내 배포를 칭찬했다.
하지만 난 그 속에 숨은 뜻을 느낄 수 있었다.
'귀족과 공개적으로 맞섰기 때문이군.'
아무래도 용병협회장은 귀족들과 척을 진 자신과 내가 비슷한 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답이 됐습니다. 귀한 자리를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핫하! 저 재료는 오늘 중으로 보내주지."
라이언 빈슨 협회장이 한차례 크게 웃자, 마그니움 합금으로 구성된 지하 11층 전체가 우우웅! 하고 울려댔다.
"그럼 출정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