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114화 (111/152)

114화. 추천장

지하 6층에 도착해 에어로트럭에 타자, 휴고와 세사르가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내 입만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무슨 일 때문에 긴급 협조요청까지 한 겁니까?"

난 소드테일 소탕과 관련된 관급의뢰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했다.

"설마... 크라노야 섬멸작전을 통째로 받아오셨단 말씀입니까?"

"이미 서남부 전선에 투입된 용병단들이 전선을 뒤로 물리며 후퇴 중이라더군. 그들을 도와 적정선까지 전선을 밀어내리는 역할이다."

"그럼 작전통제권은 누구에게 있는 겁니까?"

세사르는 임무자체보다 감투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 용병협회에서 제공한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합니다. >

< 현재 [멸망한 도시 크라노야 섬멸작전]에 참여 중인 용병은 총 15,957명 34개 용병단입니다. >

< [작전통제권]은 사용자님께서 장벽을 벗어나신 순간부터, 용병협회 8번째 이사로 선임되신 사용자님께 양도됩니다. >

난 시스템 메세지를 확인한 후 대답했다.

"이번에 용병협회 이사직을 맡게 됐다. 장벽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우리가 전선을 통제해야해."

"네? 아서 단장님이 8번째 이사가 되셨단 말씀이십니까?"

"어...? 강화시술자가 아닌 자가 용병협회 이사로 선임된 기록이 있었나?"

휴고와 세사르는 이사직을 맡았다는 말을 듣자마자 눈이 휘둥그래졌다.

"용병으로 활동하는 사이보그도 있을텐데, 이사직을 맡은 게 이례적인 일인가?"

"물론 팔미라 시에서도 용병으로 활동하는 사이보그들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용병단을 꾸릴만큼 실력있는 인물은 드뭅니다."

"동쪽의 항구도시 로렌에 가면 그런 용병단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것 같습니다."

휴고와 세사르의 말을 듣고나서야 용병협회장이 얼마나 이례적인 결정을 했는지 실감이 됐다.

"관급의뢰는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밀러쉴더스도 1년에 2건 이상 맡기 어려웠는데, 시작부터 관급의뢰를 받아오시다니..."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그럼요! 관급의뢰를 받아본 용병단과 그렇지 못한 용병단은 신뢰도와 의뢰비 수준이 천지차이입니다."

세사르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흥분해서 열변을 토해냈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공헌도를 주는 동부사막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관급의뢰는 일반 좀비사냥보다 더 높은 공헌도를 줍니다."

난 세사르의 설명을 들으며 운전대를 잡은 3팀장 훔멜스에게 말했다.

"일단 물류창고로 돌아가지. 오늘 안에 자재가 많이 들어올 거야."

"출발하겠습니다."

훔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에어로트럭을 출발시킨 순간이었다.

< 라이언 빈슨 협회장이 통신을 요청했습니다. >

< 연결하길 원하십니까? >

'그래 연결해.'

난 방금 전까지 대화하고 나온 협회장이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했다.

그때 협회장의 얼굴이 내 왼쪽 시야에 펼쳐졌다.

- 아까 미처 못한 얘기가 있었네.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 자네 승급의뢰에 협회 직원이 장난을 좀 쳤더군.

협회장이 말한 순간 회색 눈에 곱슬머리 남성의 사진과 인적사항이 내 시야로 출력됐다.

- 파커 스펠만 과장

- 마일즈 워싱턴 본부장의 카드키를 훔쳐 아서 용병단의 단장 아서의 신상정보를 열람.

- 청소의뢰를 신청했던 노이만 반도체의 루이 노이만 회장과 접선.

- 루이 노이만 회장은 노이만 반도체의 최신 칩셋인 뉴로모픽칩 NS-059의 설계도를 유출시킨 범인이 아서라고 확신.

- 조셉 메를린과 관련된 위험을 고지하지 않고 아서에게 승급의뢰를 맡김.

.

.

.

'노이만 반도체가 어디길래 나를 제거하라는 청소의뢰까지 맡겼나 했는데... 크릭에게 넘겼던 뉴로모픽칩 설계도가 문제였군.'

- 이 쥐새끼가 용병협회 건물에서 대포폰을 사용해서 겨우 잡아낼 수 있었네. 원하면 재료를 보내줄 때, 같이 포장해서 보내주지.

"감사히 받죠. 루이 노이만 회장은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 자네 명성이 높아지긴 한 모양이야. 그쪽에서 먼저 화해를 요청해왔어.

"제 목을 따려고 했으니, 저도 루이 노이만 회장의 목을 원합니다."

- 자네 말이 맞네. 그쪽은 화해의 대가로 노이만 반도체의 지분 10%를 제안했지만, 그게 어디 자네 목에 비하겠는가?

"지분 10퍼센트요?"

난 라이언 빈슨 협회장의 통신을 듣자마자 시스템에게 물었다.

'당장 노이만 반도체에 대해 검색해봐.'

< [노이만 반도체]는 업계 17위의 중견기업입니다. >

< 작년 한 해 동안 생산한 반도체는 1억 8천만 개이며 작년 매출액은 103조 크레딧입니다. >

< 작년 순이익은 16조 크레딧입니다. >

< [노이만 반도체]의 최대 주주는 루이 노이만으로 47% 주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

< [노이만 반도체]의 주식 10%의 가치는 약 4조 2천억 크레딧입니다. >

< 이는 경쟁업체인 [멀레이니 반도체]에서 뉴로모픽칩 NS-059와 유사한 제품을 생산한 후 주가가 65% 폭락한 현재가격 기준으로 계산한 가치입니다. >

그건 여러모로 충격적인 정보였다.

난 겨우 5천만 크레딧만 받고 뉴로모픽칩의 설계도를 크릭에게 넘겼었다.

하지만 그 결과, 노이만 반도체의 기업가치는 78조 크레딧이나 날아가버린 것이다.

"서로 실수한 건 잊어버리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군요."

- 어? 그럼 노이만 회장의 화해를 받아들이겠다는 건가?

"약소하긴 하지만, 지분 10% 정도면 화는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 자네 뜻이 그렇다면 루이 노이만 회장에게 화해의사를 밝히겠네.

라이언 빈슨 협회장은 그 말만 남기고 통신을 종료했다.

'4조 2천억 크레딧이면... 거부하기엔 너무 큰 돈이군.'

***

그 시각, 용병협회 정문 앞.

수십 대의 에어로리무진들이 늘어서서 도로를 점거하고 있었다.

- 여긴 용병협회 입구입니다. 용병협회에 용무가 없으신 분들은 차량을 빼주십시오!

일단의 경비원들이 몰려나와 운전자들을 돌려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에어로리무진을 몰고 온 스카우터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 뭐. 우리가 무장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까칠하게 굴어?"

"내가 계속 점거하고 있겠데? 아서 단장 나올 때까지만 기다린다고!"

"이봐, 신입인 것 같은데 가서 음료수 좀 뽑아와라."

그들은 배틀슈트를 차려입은 경비원들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10대 그룹 중 서열 5위 캘러핸 그룹의 사냥기업 캘러핸 리스크의 스카우터인 카를로스는 경비원들에게 너스레를 떠는 스카우터들을 눈여겨봤다.

D 구역은 시경찰이 활동하지 않는 무법지대였다.

그런 무법지대 중에서 용병협회 건물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용병협회 소속 경비원을 아랫사람으로 대할 정도면... 누군지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카를로스가 자신의 스마트글라스를 터치하자 경비원에게 음료수를 사오라며 100 크레딧짜리 코인을 던진 반백의 남성의 얼굴이 스캔되었다.

- 그레이스톤 파트너스의 대표 프란시스 그레이스톤

- 그레이스톤 가문의 셋째

- 자산규모 : 7천억 크레딧 이상

- 특이사항 : 자산 93% 이상이 그레이스톤 그룹 주식이며 보유 중인 배틀슈트는 캡틴 급 한 기 뿐입니다.

프란시스 그레이스톤의 신상정보를 읽은 카를로스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천억 크레딧도 제시하지 못할 주제에 왜 이런 판에 끼어든거지?'

카를로스는 비록 월급쟁이였지만,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의 규모는 그레이스톤 가문의 3남보다 많았다.

'베테랑 용병 8천 명 이상을 스카우트할 수 있다는 건, 밀러쉴더스를 통째로 사들이는 것과 같아. 그레이스톤 그룹 회장이 직접 찾아오지 않으면 승산이 없는 싸움이지.'

카를로스는 프란시스 그레이스톤을 비웃는 대신 다른 스카우터들의 신원을 파악하느라 바쁘게 스마트글라스를 조작했다.

그때였다.

경비원들이 가로막은 도로 너머에서 도로가 바닥으로 비스듬히 내려가며 위이이잉! 하는 기계음을 토해냈다.

"올라온다!"

"아서? 아서 단장이야?"

"저리 비켜봐!"

그 순간 에어로리무진에서 뛰쳐나온 스카우터들이 주차장 입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배틀슈트 차림의 경비원들이 인간 띠를 만들어 그들을 막았다.

카를로스는 그 모습을 보고도 여유롭게 에어로리무진에서 내렸다.

'어차피 아서 용병단은 내 손 안에 있다.'

쭉정이들이 목소리를 높여봐야 판돈을 올려놓는 순간 다 떨어져나갈 수 밖에 없는 판이었기 때문이다.

"야! 비켜!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나 밀러쉴더스 소속 조지 스톤 과장이야! 아서 님하고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라고!"

그때, 회색머리의 중년남자가 경비원들에게 호통을 쳐댔다.

'조지 스톤이라... 인사팀장도 아니고 과장급이 왔다? 영입할 생각이 없군. 전속 용병을 다 내보내고도 영입하는 시늉만 하다니, 무슨 생각이지?'

카를로스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밀러 그룹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때 조지 스톤 과장의 목소리를 들은 중소기업 출신 스카우터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반발했다.

"지들이 방출해놓고 왜 다시 찾아온 거야?"

"여기 다른 사냥기업도 많아! 우리도 숟가락 좀 뜹시다!"

하지만 포마드로 깔끔하게 머리를 넘긴 남자가 소리치자, 소란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밀러쉴더스가 그렇게 대단해? 난 루비치 가드의 인사팀장 미겔 페레스다! 급 안되는 쭉정이들은 주제파악하고 빠져!"

미겔 페레스는 한벌에 3억 크레딧이 넘는 고급 정장 차림이었다.

"루비치 가드?"

카를로스는 다급한 마음에 곧바로 마스크를 쓰며 물었다.

그건 음성차단 기능을 탑재한 보급형 아티팩트였다.

루비치 그룹은 비록 10대 그룹 중 서열 9위에 불과했다.

캘러핸 그룹에 비하면 4단계나 아랫급이란 뜻이다.

하지만 그들이 작정하고 치고 들어온다면 카를로스 자신이 가져온 패로도 위태로울 수 있었다.

그때 지원팀 여직원의 목소리가 스마트글라스와 연동된 인이어를 통해 들렸다.

- 루비치 가드는 이번 사막정화 작전에서 57%의 전속용병을 잃었습니다.

- 캘러핸 리서치에서 확보한 정보에 따르면 루비치 가드의 인사팀장 미겔 페레스가 현재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은 3천억 크레딧입니다.

"배틀슈트는? 용병들은 등급 높은 배틀슈트에 환장하는 거 몰라? 왜 스카우트에 제일 중요한 배틀슈트에 관한 기록이 없어?"

- 루비치 가드가 보유한 여분의 배틀슈트는 커맨더 급 기준 한 기 뿐입니다.

- 하지만 이 커맨더 급 배틀슈트는 최근 사망한 4단계 강화시술자를 위해 주문제작된 제품으로 사이보그인 아서 단장에겐 적합하지 않습니다.

카를로스는 그 말을 듣고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긴 우리처럼 커맨더 급 배틀슈트를 일반인 전용으로 만들 수 있는 회사는 드물지.'

카를로스와 캘러핸 리스크는 아서 단장이 사이보그라도 부담없이 입을 수 있는 커맨더 급 배틀슈트라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건만 성사시키면... 나도 전무이사가 될 수 있어!'

겉으로 보기에 아서 영입은 단순한 스카우트로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보유한 아서용병단이 밀러쉴더스의 전속용병 8천 명을 휘하로 둔 순간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밀러 그룹보다 10대 그룹 중 순위가 더 높은 사냥기업들이 39%에서 63%에 달하는 전속용병을 잃은 사막정화 작전에서 밀러쉴더스는 고작 2.6%의 전속용병만 잃었다.

그리고 그 주역은 바로 사이보그 아서였다.

'8천 명의 베테랑 용병들을 제외하더라도 아서와 그의 로봇 전력은 3만 용병 이상이야.'

바로 그 점이 수십 개의 기업들이 아서에게 목을 매는 이유였다.

'이건 용병기업 네다섯 개를 인수하는 기업인수합병 건이야. 저렇게 제대로 준비조차하지 않고 찾아온 놈들은 이 판에 낄 자격도 없어!'

카를로스가 미겔 페레스에 대한 정보를 확인한 순간, 지하주차장 입구에서 에어로트럭 한 대가 올라왔다.

에어로트럭의 조수석 창문으로 아서 용병단의 단장 아서와 밀러쉴더스에서 이름을 날렸던 4단계 강화시술자 틸로 훔멜스의 모습이 보였다.

"아서 단장님! 우리 루비치 가드는 커맨더 급 배틀슈트를 준비해놨습니다!"

루비치 가드의 미겔 페레스는 카를로스의 예상대로 커맨더 급 배틀슈트를 제안했다.

하지만 그때, 지금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던 검은머리의 중년남자가 소리쳤다.

"이봐, 아서용병단에 4단계 강화시술자가 몇 명인데 커맨더 급 배틀슈트 하나로 되겠어?"

"넌 또 뭐야?"

"아서 단장님, 저희 카윈 디펜스에선 커맨더 급 배틀슈트 3기를 준비했습니다. 어딜가도 이만한 제안은 못 들어보실 겁니다."

그는 10대 기업 중 8위인 카윈 그룹의 사냥기업 카윈 디펜스에서 나온 사람이었다.

빨간머리의 정장이 소리치자, 아서 단장을 태운 에어로트럭이 멈춰섰다.

"카윈? 카윈 디펜스가 커맨더 급 배틀슈트를 3기나 마련할 수 있어?"

카를로스가 말한 순간 인이어를 통해 지원팀원들의 보고가 연이어 들려왔다.

- 본사에서 확보하지 못한 정보입니다.

- 팀장님, 블러핑일 수 있습니다.

- 카윈 디펜스는 이번 사막정화 작전에서 39%의 전속용병을 잃었습니다.

- 팀장님! 저 자는 카윈그룹 회장의 다섯째인 이그나시오 카윈입니다!

"이그나시오 카윈? 오너일가라고? 카윈 디펜스의 대표는 넷째 페르난데스 카윈 아니었나?"

- 사막정화 작전 실패로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정보입니다.

"그런 중요한 정보를 왜 이제야 말해!"

카를로스는 전무이사가 되는 꿈이 연기처럼 흩어지는 걸 느꼈다.

"커맨더 급 배틀슈트 3기? 어느 회사에서 제작한 제품입니까?"

조수석 창문을 내린 아서 단장이 빨간머리의 이그나시오 카윈에게 묻자,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나왔다.

"젠장, 이번에도 10대 그룹이 다 헤쳐먹는구나!"

"커맨더 급 배틀슈트 3기면 최소 3천억 크레딧 아니야?"

"텄다. 텄어!"

그때였다.

후우우웅! 하는 바람소리가 들리더니 허공에서 건쉽 한 대가 나타났다.

"거, 건쉽이다!"

"뭐, 뭐야? 또 협회장 암살시도인가?"

"하필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그 모습을 본 스카우터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자신의 에어로리무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를로스는 그들처럼 도망칠 수가 없었다.

"설마 아서를 영입하기 위해 건쉽까지 동원한 건 아니겠지?"

그는 용병협회장 라이언 빈슨의 동상 뒤에 숨은 채, 건쉽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때 건쉽이 천천히 내려와서 정차하자 좌측 문이 열리더니, 드레스코트를 차려입은 노신사가 내렸다.

"아서 단장님, 저는 토비아스 빌헬름 공자를 모시는 집사 라움이라고 합니다."

***

백발의 노집사는 내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하지만 고개를 숙였는데도 뭔가 당당한 느낌이었다.

"라움 집사께서도 절 영입하러 오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저와 제 부하들이 4군단장님께 어떤 대우를 받으셨는지 모르십니까?"

난 둘러갈 것 없이 조슈아 빌헬름 전 군단장에 대한 얘기를 꺼내들었다.

'3대 가문 중 하나인 빌헬름 가문이면 여기 모인 누구보다 훌륭한 제안을 내놓을 수 있겠지. 하지만 조슈아 빌헬름이 우릴 희생양으로 내놓았는데, 곧장 그의 집안에 머리를 숙이고 들어갈 순 없어.'

그건 돈이나 보물 따위로 평가할 수 없는 문제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를 버리는 패로 쓰지 않겠다는 신뢰였기 때문이다.

그 순간 백발의 노집사 라움의 눈빛이 칼날처럼 서늘하게 변했다.

"토비아스 공자님께선 아서님이 골렘 아카데미에 입학하실 수 있도록 추천장을 써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집사 라움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하고 서버렸다.

'골렘 아카데미? 설마 골렘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교인가? 골렘을 만질 수도 있고?'

골렘 아카데미라는 단어 하나가 내 심장을 미친듯이 뛰게 만든 것이다.

- 타이탄급 골렘을 만들기 위해 3대 가문이 힘을 모아서 세운 학교라고 들었어요.

그때 메카닉 네크로맨서의 무덤 속에서 피를 흡수하고 있던 제니퍼가 정신파를 보내왔다.

'정말 타이탄급 골렘을 만드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는 뜻이군?'

- 골렘 아카데미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가르치며 어떤 학생들을 받아들이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골렘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는 추천장을 돈으로 구할 수 없다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모든 것이 베일에 쌓여있다는 뜻이었다.

'그게 더 신빙성을 높여주는군...'

제안 자체는 흠 잡을 데가 없었다.

문제는 과연 빌헬름 가문을 믿을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일단 저쪽의 저의가 뭔지 짐작할 시간이 필요하겠어.'

조슈아 빌헬름은 30만 명의 용병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놈이었다.

그런 놈의 가문이 사막정화 작전의 생존자 중 가장 성공한 나에게 호의를 베푼다?

그런 나사빠진 상상을 하기엔 팔미라 시의 어두운 면을 너무 많이 목격했다.

여긴 약육강식 그 자체인 생태계였기 때문이다.

그때 나와 노집사 라움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용병협회 소속 경비원들이 보였다.

그 순간 용병협회장과 나눴던 대화 중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제가 용병협회 8번째 이사가 됐다는 건 아시고 오신 겁니까?"

"이, 이사? 용병협회 이사가 되셨단 말입니까?"

"모르셨군요. 저번에 시경찰로 이직한 게오르그... 휴고 그 사람 이름이 뭐였죠?"

"플래시소드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게오르그 덴입니다."

내가 묻자, 내 오른쪽 뒤에 서 있던 휴고가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게오르그 덴이라는 자는 이사직을 내려놓고 시경찰로 이직한 대가로 기간트를 받았다는데, 골렘 아카데미 추천장이라... 저울의 무게추가 좀 안 맞는 것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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