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119화 (116/152)

119화. 양식장

콘크리트처럼 굳은 접착제를 때려부순 지 1시간 후.

용병들은 지난 1시간 동안 단 한번도 쉬지않고 해머를 내려쳤다.

돌아보니 1,300대가 넘는 에어로트럭 주변에 1레벨 소드테일의 머리가 허리 높이까지 쌓여있었다.

제일 마지막에 들이닥친 개체가 1레벨 소드테일이었다.

그래서 돌덩이를 깨부수면 가장 먼저 1레벨 소드테일의 시체가 나오고 그 아래에 2레벨 소드테일의 시체가 나왔다.

처음엔 1레벨 소드테일의 머리도 하나에 3만 크레딧이라며 신나게 발굴하던 용병들이었다.

하지만 2레벨 소드테일의 머리를 구하자마자 에어로트럭에 실었던 1레벨 소드테일의 머리를 밖으로 내던져버렸다.

위험등급 3인 2레벨 소드테일의 머리에는 현상금만 7억 크레딧이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웬만한 보급형 배틀슈트를 사고도 남을만한 거금이었다.

그때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워리어가 던진 2레벨 소드테일의 몸이 내 에어로트럭 뒤에 쌓인 시체더미에 쌓였다.

3천 기가 넘는 워리어들은 용병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목 없는 2레벨 소드테일의 몸만 가져오고 있었다.

그때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왔다.

< 경고! 현 위치에서 약 80 킬로미터 떨어진 서남쪽 방향에서 촬영한 영상입니다. >

그와 동시에 시스템은 내 왼쪽 시야에 영상을 재생시켰다.

정찰드론은 상공 1킬로미터 높이에서 날아가며 지상을 관측하고 있었다.

그때 산악지형의 고개를 넘어오는 소드테일들이 보였다.

그건 족히 수백만 마리는 될 법한 규모였다.

산등성이부터 산아래 펼쳐진 들판까지 가득 메운 소드테일들은 마치 강이 범람하듯 들판을 뒤덮어가고 있었다.

< 정찰드론이 130 킬로미터 떨어진 산악지형을 넘는 소드테일 대집단을 포착했습니다. >

< 촬영영상을 분석해 소드테일의 수를 추정합니다. >

< 정찰드론이 촬영한 영상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최소 400만 마리 이상으로 파악되었습니다. >

'400만 마리? 그게 끝인가?'

영상 속에서 정찰드론의 시야는 산등성이 너머까지는 닿지 않았다.

정찰드론을 보내 언덕을 넘어야 어느 정도 규모의 대집단인지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찰드론을 보내서 산등성이 너머를 확인해!'

< 산악지형 너머를 관측하려면 10 킬로미터 이상 비행해야합니다. >

< 정찰드론이 현 위치에서 5킬로미터 이상 멀어질 경우, 에너지 부족으로 복귀할 수 없습니다. >

본래 내가 운용하는 드론의 정찰 가능 반경은 30킬로미터에 불과했다.

하지만 배터리를 추가하고 골격을 가벼운 소재로 바꿔 반경 90킬로미터까지 정찰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해놓은 상태였다.

산등성이를 넘어서 정찰하면 돌아올 때 사용할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의미였다.

'지금 해당 지역에 있는 정찰드론은 몇 대지?'

< 1,000대 입니다. >

'그럼 500대만 산등성이 너머로 보내. 드론을 포기하더라도 적의 수는 파악해야한다.'

1레벨 소드테일은 평소 시속 100 킬로미터의 속도로 1시간 이상 달릴 수 있다.

당장 13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고 안심할 수 없는 거리라는 뜻이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놈들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전투계획을 짤 수 있기때문이다.

내가 명령한 순간, 좌측 시야의 영상이 두 개로 분리됐다.

그리고 하나의 영상이 빠르게 산등성이를 향해 움직였다.

500기의 정찰드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등성이를 넘어버렸다.

그 순간 산꼭대기부터 지평선까지 뒤덮은 소드테일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건 끝도 없이 펼쳐진 소드테일의 바다였다.

'이런... 더 멀리 가 봐. 도대체 얼마나 모인 건지 파악해야겠다!'

< 고속정찰 모드로 비행합니다. >

< 주의! 비행가능 시간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

정찰드론들이 비추는 영상은 전보다 5배 이상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소드테일은 정찰드론들이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고 추락할 때까지 그 끝을 보이지 않았다.

< 고속정찰에 참여한 500대의 정찰드론이 파괴되었습니다. >

상공 1킬로미터 높이에서 떨어진 결과, 좌측에 펼쳐지던 영상이 검게 변해버렸다.

'파악한 소드테일의 수는 어느 정도야?'

< 촬영영상을 토대로 계산합니다. >

< 계산 결과, 최소 1천만 마리 이상으로 파악되었습니다. >

< 지평선 너머는 관측하지 못했으므로 추가병력의 존재는 알 수 없습니다. >

'천만 마리면...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야.'

애초에 우리가 준비한 병력과 탄약으로는 최대 150만 마리의 1레벨 소드테일을 상대하는 게 한계였다.

하지만 산을 넘어 밀려오는 소드테일들은 그 한계를 아득하게 넘은 상황이었다.

'잘못하면 후퇴하다 포위당할지도 모르겠어.'

이번 전투에서 70만 마리가 넘는 소드테일을 손쉽게 잡았던 건 레벨마다 속도가 다른 소드테일의 접근방식때문이었다.

9마리에 불과한 3레벨 소드테일을 잡고 몇 분 후에 2레벨 소드테일을 사냥했다.

그리고 1시간 이상의 여유시간을 갖은 뒤에 1레벨 소드테일들이 밀려왔다.

그건 지난 120년 동안 용병들이 소드테일을 사냥한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희안하게도 그 어떤 소드테일도 칼꼬리를 땅에 박아넣으며 달리거나 하늘을 날지 않았다.

'1, 2, 3레벨 소드테일이 발을 맞춰서 이동하다니...'

천만 마리에 달하는 커다란 쥐들이 하나같이 두 발로 걸어서 야트막한 산지를 넘어오는 모습은 기괴함 그 자체였다.

이대로 놈들을 상대했다간 1,2레벨의 소드테일을 상대하면서 하늘에서 공격하는 3레벨 소드테일까지 방어해야했다.

그건 용병들이 감당할 수 없는 방식의 공격이었다.

"휴고, 현재 섬멸작전군의 탄약 상황은 어떤가?"

- 점액지뢰는 한번 살포할 분량이 남았고, 점액탄환은 250만 발 남았습니다.

"이번 전투에서 소모한 점액탄환이 130만 발이었으니, 두 번 교전하기도 어렵겠군?"

- 새벽쯤에 1차 보급이 도착할 예정입니다.

< 1차 보급품 도착까지 남은 시간은 약 5시간 10분입니다. >

우리가 여기까지 이동하는데 6시간쯤 걸렸으니, 보급부대가 출발한 지 1시간도 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탄약도 부족하고 놈들의 패턴도 다르군. 소드테일이 천만 마리 이상 모여서 저렇게 전술적으로 움직인 기록이 있나?'

< 용병협회에서 제공한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한 결과입니다. >

< 가장 많은 수의 무리를 이룬 소드테일 집단은 185만 마리 규모였습니다. >

'전술교범에도 등록되지 않은 상황이라니...'

난 시스템 메세지를 읽고 행동방침을 정했다.

"전 병력, 전리품 수거를 멈추고 차량에 탑승하라!"

난 한시라도 빨리 후퇴해야겠다는 생각에 명령과 동시에 관련 영상을 용병단장 급 용병들에게 송출해버렸다.

그리곤 에어로트럭 뒤에 쌓인 시체더미를 메카닉 네크로맨서의 무덤으로 입고시켜버렸다.

- 자, 작전사령관님... 뭔가 이상합니다!

- 저 놈들이 왜 저런 꼴로 걸어오는 겁니까?

- 저게 도대체 몇 마리야?

- 20년 넘게 소드테일만 사냥했는데 저런 모습은 처음 봅니다!

전술 통신망은 이미 당황한 용병단장들의 목소리로 난장판이었다.

< 2레벨 소드테일의 목 없는 시체 3,956구를 입고했습니다. >

< 메카닉 네크로맨서의 무덤 3층 [시체보관실]에 입고된 2레벨 소드테일의 목 없는 시체는 총 28,517구입니다. >

난 에어로트럭 뒤에 쌓인 시체더미를 입고한 후 명령했다.

"최소 1천만 마리 이상의 소드테일 대집단이다. 싸우더라도 보급부대와 만나 탄약부터 보급한 후에 뒤로 빠지는 방식으로 싸운다."

- 명령받았습니다!

- 뭣들 해? 작전사령관님 말씀 못 들었어? 당장 에어로트럭으로 달려!

전술 통신망이 소란스러워진 순간이었다.

- 작전사령관님, 60킬로미터 후방에서 장벽방어군 병력으로 추측되는 무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때 100미터 상공까지 올라간 휴고가 전술 통신망을 통해 보고해왔다.

'뭐?'

- 영상 업로드했습니다.

휴고의 보고가 들린 순간이었다.

내 배틀슈트 디스플레이에 워머신과 아이언스톰 그리고 거미처럼 생긴 로봇으로 이루어진 부대의 모습이 비춰졌다.

< 워머신 1천 대 >

< 슈퍼샷 전차 500대 >

< 아이언스톰 1만 대 >

< 스파이더 장갑로봇 3천 대 >

< 사단 규모의 기갑부대입니다. >

< 신원확인을 위해 통신을 연결하시겠습니까? >

울트라소닉 소드를 든 워머신과 30mm 기관포를 12정씩 장착한 아이언스톰은 내게도 익숙했다.

하지만 50mm 체인건으로 무장한 슈퍼샷 전차와 거미처럼 생긴 스파이더 장갑로봇은 처음보는 기갑전력이었다.

'아니. 저런 기갑부대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내가 전달받은 작전내용엔 기갑부대의 지원은 없었는데?'

< 1군단 상황실과 통신을 연결하시겠습니까? >

'연결해.'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온 순간이었다.

내 배틀슈트 내부 디스플레이에 군복차림의 30대 후반 백인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 1군단 상황실, 당직사령 로리오 라브 중령이다.

"크라노야 섬멸작전의 임시 작전사령관 아서입니다."

- 무슨 일이지?

"크라노야 섬멸작전군은 소드테일 대집단을 발견했습니다. 일단 후퇴하여 탄약을 재보급한 후 전투하려는데, 사단급 기갑부대를 발견했습니다. 저들은 어디 소속입니까?"

- 음...

내가 묻자 당직사령 로리오 라브 중령이 침음을 토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말하지 않고 지켜보자, 다시 입을 열었다.

- 이는 2급 군사기밀작전이다. 임시 작전사령관은 작전에 참여하지 않은 자에게 관련정보를 누설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겠나?

"약속합니다."

- 현재 오큘러스 시스템이 관측한 소드테일은 1억 마리를 돌파했다.

"그건... 제가 전달받기로는 8천만 마리라고 들었습니다."

- 상황이 급변했다. 놈들의 수가 빠르게 늘어난 것도 문제지만, 소드테일들이 재조직되고 있다.

그 순간 내 시야에 새카만 영상이 재생됐다.

< 1군단 상황실에서 보낸 오큘러스 시스템의 관측영상입니다. >

그건 내 정찰드론이 촬영한 시점보다 더 높은 하늘에서 찍은 영상 같았다

그리고 그 영상 속엔 내 정찰드론들이 확인하지 못한 지평선 너머의 모습이 펼쳐졌다.

산악지형부터 넓은 평야를 거쳐 길게 늘어선 소드테일 행렬은 멸망한 도시 크라노야 시까지 이어져 있었다.

문제는 산등성이를 넘은 소드테일들처럼 발 맞춰 걷지 않는 일반적인 소드테일들이었다.

놈들은 사방에서 몰려들어 크라노야 시로 들어가고 있었다.

- 장벽방어군은 서남부의 소드테일들이 크라노야 시에 모였다가 정예화되서 나오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 정예화된 소드테일은 몇 마리나 되는 겁니까?"

내가 묻기가 무섭게 내 시야에 정예화된 소드테일 현황이 띄워졌다.

- 1레벨 소드테일 3천만 마리 이상

- 2레벨 소드테일 1천만 마리 이상

- 3레벨 소드테일 3천 마리 이상

"당직사령님, 3레벨 소드테일이 3천 마리 이상이라니... 이게 사실입니까?"

- 불행하게도 사실이다.

내가 실시간으로 증가하는 소드테일 현황판의 숫자를 보며 눈쌀을 찌푸린 순간이었다.

- 우린 1군단과 3군단의 병력 50만이 모루가 되어 놈들을 막고 제 11 교화사령부의 병력 15만이 놈들의 측면을 공격해 소드테일 대집단을 소탕할 계획이다.

당직사령 로리오 라브 중령이 말한 순간 배틀슈트 내부 디스플레이에 전술지도와 함께 작전개요에 관한 설명이 펼쳐졌다.

그때 작전지도에 밀려 얼굴 화면이 작아진 당직사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임시 작전사령관이 원하면 가까운 7사단에서 탄약을 보급해줄 수 있다.

그와 동시에 휴고가 발견한 사단급 병력의 위치가 작전지도에서 반짝였다.

당직사령은 은근히 내가 자신들의 전투에 합류하길 바라는 투로 말했다.

'기갑전력 60만 명이면 적은 수는 아니지만... 2레벨 소드테일과 3레벨 소드테일의 수가 너무 많군.'

내가 워머신보다 월등하다고 자부하는 워슈트조차 5기가 모여야 무리없이 3레벨 소드테일 한 마리를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당직사령이 언급한 7 사단의 병력 편성을 보면 워머신은 전체 기갑전력 중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50만 병력 중 워머신은 채 5만이 안된다는 뜻이었다.

그런 워머신으로 근접전에선 깡패나 다름없고, 중장거리 전투에선 회피기동으로 대구경 기관포를 농락하는 3레벨 소드테일을 상대하기는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난 당직사령 로리오 라브 중령의 심경을 이해했다.

하지만 내가 장벽방어군 소속도 아닌데 아무런 보상도 약속받지 못한 채, 위험을 자초하고 싶지는 않았다.

"제가 받은 의뢰와는 다른 내용입니다. 더군다나 장벽방어군의 기갑부대와 우리 용병들의 장비구성이 달라 용병들이 위험에 빠질 가능성도 보입니다."

내가 한발 빼자, 당직사령이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배틀슈트 내부 디스플레이에서 작전지도는 사라지고 그의 상반신이 확대되었다.

- 아서 이사, 내가 뭘 도와주면 되겠나?

고작 2만 4천여 명의 용병들에게 매달리는 걸 보니,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할 상황인 모양이었다.

"용병들이 바라는 게 마그니움 말고 더 있겠습니까?"

- 현상금과 공헌도는 내가 조정할 수 없는 영역이네.

"그럼... 군수물자 목록을 열람하고 싶습니다."

- 군수물자?

"풍족한 보급을 받는다면 용기를 내서 싸워볼만할 것 같습니다."

난 대놓고 군납물자를 탐냈다.

하지만 당직사령은 내게 호통조차 치지 못했다.

- 적정선을 찾아보세.

< 1군단 상황실에서 군수품 목록을 보내왔습니다. >

***

크라노야 시 서쪽, 베레 호수 접경.

쏴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파도가 호수변으로 밀려갔다.

그 순간 호수 수면 아래에서 거대한 그물망이 올라왔다.

그 그물망 안에는 성인남성 허벅지만큼이나 굵은 붉은 물고기가 가득 차 있었다.

붉은 대두어들이었다.

하늘로 치솟았던 그물망은 일정 구획을 뒤덮으며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그 순간 그 구획 옆의 수면 위로 붉은 대두어들이 팔딱거리며 튀어올랐다.

그물망이 올라온 곳 뿐만 아니라 반경 300킬로미터가 넘는 베레 호수 전체가 붉은 대두어 양식장이었던 것이다.

그때 다시 거대한 그물망이 올라왔다.

수십만 마리의 붉은 대두어를 통째로 가둔 그물망은 금새 수면 아래로 빨려들어갔다.

수십 80미터까지 내려간 그물망은 크라노야 시의 항구 아래에 위치한 거대한 수중 터널을 향해 끌려들어갔다.

수중터널을 이동한 그물망은 10여분 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지름 1미터 두께의 쇠사슬과 그 쇠사슬에 걸린 그물망이 멈춘 곳은 머리 지름이 30미터에 달하는 쥐의 머리 위였다.

거대한 쥐는 몸이 상반신과 하반신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상반신과 하반신 사이엔 130미터 길이의 붉은 유리관이 연결된 상태였다.

그 순간 하반신의 엉덩이 방향에서 길이가 200 미터는 족히 넘을 것 같은 칼꼬리가 날아와 그물망을 갈랐다.

콰르르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수십만 마리의 대두어가 거대한 쥐의 입 안으로 쏟아졌다.

그때 수백 개의 칼꼬리가 깔대기 모양을 만들었다.

그러자 수십만 마리의 대두어가 한 마리도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칼꼬리로 만든 깔대기를 따라 거대한 소드테일의 입속으로 밀려들어갔다.

쿠청, 쿡! 쿠청, 쿡!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대두어들이 괴물의 입안으로 씹혀들어갈 때였다.

붉은 유리관 뒷부분에서 길다란 촉수가 솟구쳤다.

촉수는 깔때기를 이룬 칼꼬리 옆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촉수 끝엔 정수리에서 턱까지 길이가 1미터에 달하는 동양인 남성의 얼굴이 달려있었다.

인간의 얼굴에 비하면 그 크기가 거대하다고 할만 했다.

하지만 크기를 제외하면 피부색이나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흑백이 선명한 눈동자까지 갖춘 인간의 형상이었다.

그때 눈을 부릅 뜬 동양인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 키이이익!

그때 쥐의 하반신 부근에서 철퍽, 철퍼덕! 하고 물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촉수 끝에 달린 남자는 이내 고개를 털더니 아래를 내려다봤다.

쥐의 하반신 아래엔 컨베이어 밸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 주변엔 지름이 3미터에 달하는 물풍선 30여 개가 떨어져 있었다.

마치 태반처럼 생긴 물풍선들이었다.

그 순간 컨베이어 벨트 옆에 설치된 15미터 길이의 로봇팔들이 위잉! 처적! 하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봇팔들이 태반을 찢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양수가 터져나왔다.

쥐의 하반신이 토해낸 3미터 크기의 붉은 물풍선을 찢자 양수가 쏟아졌다.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완전히 성장한 소드테일이었다.

기이하게도 방금 태어난 소드테일의 엉덩이엔 꼬리가 무려 84개나 달려있었다.

3레벨 소드테일이었다.

그 순간 로봇팔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 3레벨 소드테일을 들어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놓았다.

컨베이어 벨트는 쉬지않고 움직여 공장 밖으로 3레벨 소드테일을 옮겼다.

3레벨 소드테일은 1미터 높이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추락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그때 뻥 뚫린 공장입구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 가라! 가서 볼드윈 가문의 배신자들을 참살하라!

그건 촉수 끝에 달린 동양인 남자의 고함소리였다.

그 순간 컨베이어 벨트에서 떨어진 3레벨 소드테일들의 고개가 동시에 동양인 남성의 얼굴을 향했다.

- 내가 볼드윈 가문의 진짜 후계자 아토스 볼드윈이다!

촉수 끝의 얼굴, 아토스 볼드윈은 쉴 새 없이 괴성을 토해냈다.

그건 쥐와 사람의 목소리가 뒤섞인 것 같은 소리였다.

- 볼드윈의 핏줄은 단 한 명도 남기지말고 처단하라!

미친 듯이 외치는 아토스 볼드윈은 팔미라 시의 시의원 미하엘 볼드윈과 묘하게 닮은 얼굴이었다.

그 순간 방금 태어난 30여 마리의 3레벨 소드테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의 목소리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듯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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