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바덴 베르크
1시간 후, 바덴 절벽.
바덴 절벽은 팔미라 시에서 서남쪽으로 870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었다.
< 1군단 상황실에서 [바덴-베르크 방어작전]에 관한 작전정보를 보내왔습니다. >
< [바덴-베르크 방어작전]을 다운로드 하시겠습니까? >
'다운로드해.'
그 순간 내 머릿 속으로 바덴 절벽부터 시작해서 베르크 강가까지 이어지는 작전지도가 펼쳐졌다.
바덴 베르크 작전은 2급 기밀작전이었다.
당직사령에게 각종 탄약과 삼중수소 카트리지 그리고 병력까지 지원받는다는 조건을 걸고 정식으로 합류한 후에야 작전계획을 열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운로드한 작전정보에 따르면 크라노야 시를 점령한 소드테일 무리를 막을 군사적 요충지가 바로 바덴 절벽에서 베르크 강가까지 이어지는 방어선이었다.
이번 바덴 베르크 방어작전에 참여한 건 1군단이 이끄는 장벽방어군 50만 명과 제 11 사냥교화사령부의 15만 병력 그리고 내가 지휘하는 24,000여 명의 용병들이었다.
난 그중에서도 제일 왼쪽 바덴 절벽 부근에 배치됐다.
정확히는 내 왼쪽엔 170미터 높이의 깍아지른듯한 바덴 절벽 바로 아래에 자리를 튼 7사단이 있었다.
거기서 5킬로미터 우측에 나와 24,000여 명의 용병부대가 자리잡았다.
그리고 다시 우리부대의 우측 5 킬로미터 지점에 22연대가 자리를 잡았다.
이 방어작전에서 우리는 10개 사단, 13개 연대와 함께 바덴 절벽부터 베르크 강가까지 무려 100킬로미터를 방어해야했다.
내가 다운로드한 바덴 베르크 방어작전 작전정보에 따르면 장벽방어군에 소속된 사단은 37,000명, 연대는 1만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건 내가 살던 세상과도 다른 편제단위였다.
난 작전지도를 다시 한번 살피며 다운로드한 작전계획에 따라 명령했다.
"전술 통신망에 작전계획 업로드했다. 휴고, 세사르, 훔멜스는 에어로트럭을 이끌고 작전지도에 표시된 곳에 지뢰지대를 구축해."
- 작전계획 확인했습니다.
휴고가 대표로 대답하고 에어로트럭에 오르자 대기 중이던 용병들이 1300여 대의 에어로트럭에 올라 세 사람을 따라 움직였다.
그들은 진지와 진지 사이의 빈 공간에 점액지뢰를 깔 예정이었다.
그래야 소드테일이 우리를 피해 팔미라 시로 곧바로 진격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난 용병들이 모두 빠져나간 것을 확인하고 공터에 남은 거대한 로봇들을 살펴봤다.
그건 7사단에 소속된 136 기갑중대의 병력이었다.
내가 7사단으로부터 136 기갑중대의 지휘권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그 136 기갑중대에는 두 종류의 탑승형 로봇이 존재했다.
스파이더 장갑로봇과 슈퍼샷 전차가 바로 그 로봇들이었다.
"기동형 야전성벽을 구축해라!"
내가 명령한 순간이었다.
공터에 첩첩이 쌓여있던 검은색 컨테이너 박스들 꼭대기에 있는 컨테이너박스 양옆으로 길다란 다리가 튀어나왔다.
거미처럼 길쭉하고 굽은 다리였다.
내가 그 다리에 시선을 빼앗긴 순간이었다.
컨테이너 박스 탑의 8번째 층을 이루었던 스파이더 장갑로봇이 70미터 높이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가느다란 다리에 비해 거대한 몸통때문에 위태로워보이는 점프였다.
하지만 스파이더 장갑로봇이 착지하자, 처저정~ 푸쉬~! 하는 비교적 가벼운 소음과 함께 거미 다리가 접히며 충격을 분산시켜버렸다.
'이건... 마법이 아니라 그냥 다리 힘으로 버틴 거 잖아?'
몸체 크기만 따져도 가로세로 10미터에 몸 길이만 20미터에 달하는 로봇이었다.
그런 거대한 쇳덩어리가 무려 70미터 높이에서 뛰어내린 것치곤 너무 정숙한 착지였다.
스파이더 장갑로봇은 여덟 개의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여 작전지도에 표시된 성벽구축 예정지로 향했다.
그리곤 곧바로 다리를 접어 바닥에 배를 깔았다.
요란한 소음 따위는 발생하지도 않았다.
그 순간 뾰쪽하게 세운 여덟 개의 거미다리가 푹! 퍼걱! 하는 소음과 함께 흙을 파고들어갔다.
< 작전지도에 표시된 성벽구축 예정지와 일치합니다. >
"이대로 진행해."
그 순간 공터에 쌓여있던 스파이더 장갑로봇들이 달려와 땅에 다리를 찔러넣으며 성벽을 쌓기 시작했다.
600대에 달하는 스파이더 장갑로봇은 순식간에 세대씩 쌓아 높이 30미터, 둘레가 4킬로미터에 달하는 원형성벽을 구축했다.
'이렇게 쉽게 성벽을 만든다고?'
< 용병협회가 제공한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한 결과입니다. >
< 장벽방어군뿐만 아니라 도시탈환사령부, 사냥교화사령부 등 외부로 원정을 나가는 부대는 모두 스파이더 장갑로봇을 운용한다는 기록을 찾았습니다. >
'확실히 이 정도 규모면 장벽만큼은 아니라도... 버틸만 하겠어.'
난 새로운 로봇에 대한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성벽으로 다가가 스파이더 장갑로봇을 훑어봤다.
컨테이너 박스처럼 생긴 스파이더 장갑로봇의 몸체 옆엔 유리질 모듈이 줄지어 박혀있었다.
'시각센서인가? 왜 이렇게 많이 박아뒀지?'
내가 유리질 모듈을 나도 모르게 쓰다듬으려는 순간이었다.
그때, 전술 통신망으로 136중대 중대장 베르톨트 대위의 목소리가 들렸다.
- 임시 작전사령관님, 슈퍼샷 전차 100대 전원 이상없습니다.
돌아보니 어깨 높이가 15미터에 몸길이는 25미터에 달하는 사족보행 로봇들이 서 있었다.
슈퍼샷 전차들이었다.
등에 거대한 50mm 기관포를 세 문씩 장착한 슈퍼샷 전차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100대의 슈퍼샷 전차들은 성벽을 따라 일정 간격을 맞춰 늘어 서 있었다.
마치 내 명령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슈퍼샷 전차, 포탑모드!"
내가 명령하자, 스파이더 장갑로봇으로 만든 원형 성벽 안에서 대기 중이던 100대의 슈퍼샷 전차가 각자 정해진 성벽 앞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성벽을 이룬 스파이더 장갑로봇 중 2,3층을 이룬 장갑로봇에서 각각 네 개씩 거미 다리가 튀어나왔다.
여덟 개의 거미 다리는 슈퍼샷 전차를 통째로 들어올렸다.
3층 꼭대기에 올라간 슈퍼샷 전차는 스파이더 장갑로봇 위에 배를 붙였다.
그리곤 3층을 이룬 스파이더 장갑로봇의 몸통을 끌어안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처러럭,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슈퍼샷 전차의 다리 단말과 스파이더 장갑로봇의 몸통에 있는 요철이 서로 맞아들어가며 강하게 결속됐다.
'처음부터 저렇게 합체할 수 있게 만들어진 모양이군.'
팔미라 시의 장벽방어군이 외부 출정을 나가서 전투할 때, 어떤 방식으로 싸울지 그 전술을 엿본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 작전사령관님, 서남방향에 4백만 개 규모의 지뢰지대를 설치했습니다.
- 서북방향 130만 개 규모의 지뢰지대도 설치완료했습니다.
- 동남방향...
점액지뢰를 설치하러 나갔던 휴고와 세사르 그리고 훔멜스 등의 용병들의 보고가 이어졌다.
그와 동시에 내 시야에 펼쳐져있던 작전지도가 완성됐다.
< 크라노야 섬멸작전군이 복귀했습니다. >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온 순간, 워슈트 좌측 디스플레이에 성벽 너머에 차를 댄 에어로트럭 1,300여 대의 모습이 보였다.
그건 정찰드론이 촬영한 영상이었다.
- 크라노야 섬멸작전군 총원 24,034명 복귀했습니다.
"성문 개방!"
내가 명령하자 내 정면에 있는 스파이더 장갑로봇의 파일럿이 통신을 보내왔다.
- 임시 작전사령관님의 명령으로 기동형 성벽의 성문을 개방합니다.
그 순간 슈퍼샷 전차를 등에 업지 않은 중앙의 스파이더 장갑로봇이 마치 엘리베이터처럼 위로 올라갔다.
세 대의 스파이더 장갑로봇이 위로 들리자, 기동형 성벽의 아랫부분에 빈틈이 생겼다.
일종의 성문인 셈이었다.
휴고가 이끄는 에어로트럭 1300여 대가 그 성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왔다.
난 그 모습을 확인한 후 성벽 위의 스파이더 장갑로봇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 임시 작전사령관님의 명령으로 기동형 성벽의 성문을 폐쇄합니다.
통신과 함께 방벽 위에서 대기 중이던 스파이더 장갑로봇이 다시 하나씩 그 틈에 몸을 끼워넣었다.
나는 워슈트의 내부 디스플레이에 뜨는 전술정보를 바라봤다.
< 오큘러스 시스템이 [바덴-베르크 방어작전] 전술지도를 실시간 업로드합니다. >
< 기갑전력 100% 배치 완료. >
< 용병 및 전투용 안드로이드가 성벽에 배치되지 않았습니다. >
< 작전구역에 설치된 점액 지뢰지대를 푸른색으로 표시합니다. >
그 순간 용병들이 깔고 온 지뢰지대가 전술지도에 표시되었다.
- 서남부 점액지뢰지대 : 400만 개
- 서북부 점액지뢰지대 : 130만 개
- 동남부 점액지뢰지대 : 130만 개
- 동북부 점액지뢰지대 : 130만 개
소드테일 대집단이 몰려오는 방향인 서남부 방향에는 다른 방향보다 3배 많은 지뢰를 깔았다.
7사단에서 점액지뢰와 점액탄환을 포함한 많은 군수물자를 보급 받은 덕분에 풍족하게 뿌릴 수 있었다.
지뢰 반경 1미터 안에서 움직임이 감지되면 대상을 향해 접착제를 뿜어내는 게 점액지뢰였다.
우린 그런 지뢰를 성벽 기준 반경 3킬로미터 안에 가득 깔아놓았다.
이 땅을 지나가려면 지뢰를 밟을 수밖에 없도록 지뢰지대를 설치한 셈이었다.
그 정도면 비행능력이 없는 1,2레벨 소드테일들은 발이 묶일 수 밖에 없었다.
"용병들은 지금 전송한 작전계획에 따라 지정된 위치로! 안드로이드들은 탄약을 비롯한 군수물자를 나른 후에 자리를 잡는다."
내가 명령하자, 점액탄을 쏠 수 있게 특수제작한 20mm 기관포를 든 용병들이 스파이더 장갑로봇이 펼쳐준 다리 위를 걸어올라갔다.
그들은 4킬로미터 길이의 성벽 위에 자리잡은 100대의 슈퍼샷 전차 사이사이에 배치되었다.
1,2레벨의 소드테일을 막는 게 그들의 임무였다.
3레벨 소드테일은 슈퍼샷 전차와 워슈트들이 노릴 예정이었다.
용병들이 걸어간 길로 3천 기가 넘는 워리어들이 점액탄환 박스와 대형 확성기를 들고 따라올라갔다.
워리어들은 스파이더 장갑로봇 한 대마다 다섯 대의 대형 확성기를 설치했다.
워리어들이 장벽에서 내려와 공터에 남은 점액탄환 박스와 각자가 사용할 20mm 기관포까지 들고 올라가려고 할 때였다.
드드드드! 하고 땅이 미약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 경고! 소드테일 대집단의 선두가 반경 11킬로미터 지점을 통과했습니다. >
< 1군단이 제공한 오큘러스 시스템의 관측영상입니다. >
'이제 7분도 안 남았군.'
시스템은 메세지와 함께 내 좌측 시야에 쥐색 파도와 먼지구름이 천천히 밀려오는 영상을 비춰줬다.
그 순간 우리 서북방향과 동남방향에서 두두둥! 하고 묵직한 포성이 연이어 들려왔다.
5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발사된 포성이라 둔탁한 소리였다.
< 7사단과 22연대가 포격을 시작했습니다. >
- 임시 작전사령관님, 저희도 포격을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그때 전술 통신망을 통해 슈퍼샷 전차에 탑승한 기갑중대장 베르톨트 대위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작하세요."
내가 명령한 순간이었다.
성벽 위에 줄지어 늘어선 슈퍼샷 전차, 그 위에 설치된 50mm 기관포들이 콰라라락! 하는 포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슈퍼샷 전차의 50mm 기관포 세 문의 포신에서 하얀 포연이 뿜어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뒤로 후폭풍이 일었다.
땅에 고정된 스파이더 장갑로봇과 단단히 결속한 덕분에, 슈퍼샷 전차가 뒤로 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막대한 폭발력에 차체와 스파이더 장갑로봇이 일부 진동하는 것까지 막아주진 못했다.
1백 대의 슈퍼샷 전차가 동시다발적으로 포격을 시작하자 둘레가 4킬로미터에 달하는 원형성벽 주변으로 노란 흙먼지가 치솟기 시작했다.
그 순간 워슈트 콕핏의 정면 디스플레이에 정찰드론들이 촬영한 영상이 펼쳐졌다.
50mm 기관포 포탄이 날아가 오와 열을 맞춰서 걸어오는 소드테일의 행렬에 먼지와 살점으로 된 길다란 점선을 그어버렸다.
천 마리가 넘는 소드테일들이 50mm 기관포탄에 맞고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터져나갔다.
그 자리에서 뿌연 흙먼지가 일어났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50mm 탄두는 소드테일 행렬에 100미터 넘는 점선을 그은 후 땅에 파묻혔다.
그 순간 꽈과광! 하는 폭발음과 함께 소드테일들이 오와 열을 맞춰 걷던 땅이 뒤집어져버렸다.
검은 흙먼지가 가라앉은 곳엔 피와 살점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산산조각 난 소드테일의 수보다 천 배 이상 많은 소드테일이 그 뒤에서 끝도 없이 밀려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난 다른 점에서 놀랐다.
'50mm 기관포가 저 정도 위력이라고? 단순히 포탄이 충돌하는 것만으로는 뒤늦게 폭발한 게 설명이 안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