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슈퍼샷 전차
난 지금까지 세 종류의 50mm 기관포를 경험했다.
첫번째는 워슈트의 왼팔에 장착된 플라즈마 파워드 건이었다.
두번째는 소드테일 전문 사냥용병단이 아이언스톰에 장착한 50mm 기관포였다.
플라즈마 파워드 건은 단단한 탄두로 적을 물리적으로 파괴했다.
그리고 소드테일 전문 사냥용병들이 운용한 50mm 기관포는 점액을 터트려 적의 이동속도를 저하 또는 이동 불능 상태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플라즈마 파워드 건의 탄환보다 무거운 소드테일 전용 50mm 기관포의 탄환에 점액 대신 폭약을 넣는다고해도 방금 전에 슈퍼샷 전차가 보여준 폭발은 만들어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난 궁금한 마음에 워슈트를 입은 채로 장벽 위로 날아올라가며 말했다.
"콕핏 개방!"
내가 장벽 위에 내려서며 말한 순간이었다.
내 옆에 설치된 슈퍼샷 전차의 50mm 기관포가 다시 콰라라라락! 하고 포성을 토해냈다.
그 순간 난 익숙하지만 낯선 느낌을 받았다.
< 레어 등급 스킬 [기초마법연구]를 사용하셨습니다. >
< 메카닉 직업 유니크 등급 스킬 [연구자의 인내]를 사용하셨습니다. >
익숙하지만 낯선 게 뭔지 느낌을 되짚어보는 순간이었다.
칼날처럼 벼려진 내 집중력은 음속을 돌파한 슈퍼샷 전차의 포탄을 슬로우모션으로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바로 그 순간!
난 날아가는 포탄에서 마력을 느꼈다.
그건 마치 아티팩트에 새겨진 마법식에 흐르는 정련된 마력처럼 안정되어있었다.
난 나도 모르게 처음 느끼는 마력의 독특한 패턴과 술식구성에 빠져들어버렸다.
그리고 눈 깜짝할 순간만에 그 안에 숨겨진 비밀을 모두 풀어내버리고 말았다.
< 유니크 등급 스킬 [익스플로전] 마법식을 습득하셨습니다. >
< 레어 등급 스킬 [시약 - 주문강화] 마법식을 습득하셨습니다. >
< 언커먼 등급 스킬 [충격신관] 마법식을 습득하셨습니다. >
'포탄에 익스플로전 마법진을 새기고, 그 주문을 강화하기위해 시약으로 쓸 폭약을 넣어?'
그건 지금까지 내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주문강화방식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접한 주문강화방법은 혈법뿐이었다.
스톨즈의 팔찌에서 훔친 혈법 주문강화는 자기희생이라는 주술적인 방식으로 주문을 강화했다.
문제는 그런 자기희생적인 방식이 자신의 건강을 갉아먹으면서도 대단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혈법이 언커먼 등급으로 평가받은 이유가 아마 그 효율성때문이겠지.'
하지만 자기희생이 아니라 그 자체가 폭발력을 지닌 폭약으로 폭발마법을 강화한다면?
고작 1킬로그램 수준의 폭약으로 미사일 공격 못지 않은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아찔한 생각이 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이건... 대 좀비전에 사용되는 무기가 아니야!'
좀비를 상대하는 무기는 은밀해야한다.
소음이 주변에 있을지 모르는 더 강력한 좀비들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슈퍼샷 전차가 50mm 기관포를 마음 껏 쓸 수 있는 이유는 소드테일의 영역권이라는 특수성 때문이었다.
일반좀비의 천적으로 불리는 소드테일이었다.
일반 좀비가 포성을 듣고 달려오더라도 좀비사냥에 특화된 소드테일에게 사냥당할 수밖에 없는 장소란 뜻이다.
문제는 내가 확인한 장벽방어군의 병력구성이었다.
아이언스톰과 슈퍼샷 전차.
둘 모두 엄청난 소음을 만드는 전쟁병기였다.
'50만 명의 병력이 모두 소드테일을 상대하기위해 무장했다는 건 말이 안되지.'
장벽방어군이 직접 소드테일을 상대할 거였으면, 용병들에게 크라노야 섬멸작전을 맡기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답은 하나였다.
평소에 적으로 삼는 누군가를 대상으로 무장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좀비가 아니라면 누굴 상대하려고 이런 요란한 무기를 만들었을까?'
그때 출장사무소가 내게 말했던 도시 이름들이 생각났다.
로두스, 아키텐, 트리어, 알자스...
이들의 적이 인간이 만든 도시라면?
익스플로전 마법진이 새겨진 포탄을 인간의 도시를 향해 발사한다면 어떻게 될까?
슈퍼샷 전차는 다른 도시를 멸망시키기 위해 준비된 무기 같았다.
나는 불쑥 고개를 든 도시 간 전쟁에 대한 생각을 묻어두고 지금 해야 되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슈퍼샷 전차들의 포격을 총지휘하고 있는 베르톨드 대위에게 물었다.
"베르톨트 중대장님, 3레벨 소드테일을 위해 탄약을 조금 아끼는 게 어떻겠습니까?"
- 136 기갑중대의 통제권은 임시 작전사령관님께 있습니다.
베르톨트 중대장의 말대로 난 1군단으로부터 136 기갑중대의 통제권을 넘겨받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베르톨트 대위를 아랫사람 부리듯 할 수는 없었다.
그는 한 계급만 승진하면 기간트 워리어의 길로 접어드는 1군단의 엘리트 장교였기 때문이다.
"그럼 사격을 중지해주세요."
내가 명령하자, 포격이 일시에 멈춰버렸다.
< 소드테일 대집단이 7.5 킬로미터 지점을 통과했습니다. >
'소드테일 숫자는 얼마나되지?'
< 현재 [바덴-베르크 방어선]으로 접근 중인 소드테일은 최소 3천만 마리 이상입니다. >
< 사용자님이 이끄시는 현 위치로 접근 중인 소드테일은 최소 140만 마리 이상입니다. >
시스템이 대답한 순간이었다.
작전지도에 폭 20킬로미터 길이 150킬로미터에 달하는 소드테일 행렬의 모습이 표시됐다.
하지만 우리가 맡은 바덴 절벽 방향으로 밀려들어오는 소드테일의 숫자는 전체 소드테일의 수에 비하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제 11 사냥교화사령부가 놈들의 뒤를 치려면 우리가 최소한 2시간은 버텨줘야겠군.'
< 소드테일 대집단이 지뢰지대에 도달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2분 41초입니다. >
작전지도에는 성벽 밖 반경 3킬로미터까지 깔아둔 지뢰들이 푸른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지뢰지대를 향해 붉은 점들이 다가오는 모습도 표시됐다.
"1,2레벨 소드테일은 용병과 안드로이드들이 상대한다."
- 명령 확인했습니다.
내가 명령한 순간 휴고 가르시아가 전술 통신망을 통해 대답했다.
"베르톨트 중대장님은 하늘로 날아오는 3레벨 소드테일만 요격해주시죠."
- 명령 확인했습니다.
베르톨트 대위의 보고를 듣는 순간이었다.
드드두두두두두! 하고 갑자기 땅의 진동이 거칠어졌다.
< 소드테일이 행군속도를 높였습니다. >
< 현재 속도 시속 140 킬로미터입니다. >
< 3킬로미터 떨어진 지뢰지대에 도달하기까지 약 2분 남았습니다. >
나는 작전지도 위로 올라오는 시스템 메세지를 확인했다.
그와 동시에 우측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적 소드테일 대집단의 확대영상을 봤다.
- 주인님! 묘한 녀석들을 찾아냈습니다!
그때 아치스의 정신파가 들려왔다.
'묘한 녀석들?'
- 다른 쥐새끼들보다 꼬리가 굵은 놈들입니다.
그 순간 아치스가 하나의 영상을 정신파로 쏘아보냈다.
그건 땅바닥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시야였다.
또 누군가의 그림자에 숨어서 소드테일들을 염탐한 모양이었다.
수백, 수천 마리의 소드테일이 그 시야 위를 지나갔다.
대부분의 소드테일은 성인남성 손목 굵기의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꼬리숫자가 늘어나면서 칼꼬리의 뿌리부분의 굵기는 굵어졌다.
반면에 칼꼬리 하나하나의 굵기는 얇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아치스가 보낸 정신파에 기괴한 칼꼬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어른 허벅지 굵기만 한 칼꼬리였다.
일반적으로 소드테일의 칼꼬리는 실제 시궁쥐의 꼬리를 확대해놓은 것처럼 생겼다.
하지만 허벅지 굵기만 한 소드테일의 꼬리는 마치 수건을 쥐어짠 것처럼 뒤틀려있었다.
마치 여러 줄기의 꼬리를 억지로 꼬아놓아서 하나의 칼꼬리처럼 보이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3레벨 소드테일이다!'
난 그 모습을 보고나서야 왜 1레벨 소드테일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2레벨 소드테일과 비행이 가능한 3레벨 소드테일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지 눈치채고 말았다.
그건 슈퍼샷 전차의 50mm 기관포처럼 비행하는 괴물을 요격할 수 있는 대공포들을 피하기 위한 전략 같았다.
아무 생각없이 미친듯이 달려들던 첫번째 전투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좀비가 어떻게 인간을 상대로 기만전까지 펼치는 거지?'
문제는 1레벨 소드테일처럼 모습을 변장한 게 단 한 마리의 별종이 아니란 점이었다.
수만 마리의 2레벨 소드테일도 1레벨 소드테일인 척, 꼬리를 하나로 뭉친 채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이놈들이 지성이 있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 이들을 지휘하는 상위개체가 있는 건지. 한번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난 팔에 일어나는 소름을 애써 무시하며 전술 통신망에 명령했다.
"첫번째 점액지뢰가 터지면 용병들은 조준사격해라!"
- 명령, 확인했습니다.
- 소드테일이 지뢰지대에 도착하기 전엔 포격하지 않는다!
내가 명령하자 휴고와 세사르가 용병단장들에게 재차 명령을 전달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작전지도가 붉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 위험! 3레벨 소드테일이 날아올랐습니다. >
< 순간속도 시속 300 킬로미터 돌파! >
< 순간속도 시속 700 킬로미터 돌파! >
< 위험! 1,554마리의 3레벨 소드테일이 관측됐습니다! >
4레벨 좀비인 디스트로이어와 같은 위험등급 판정을 받은 괴물이 무려 1,500마리 넘게 등장한 것이다.
"이, 이게... 무슨 일이지?"
난 동부사막에서 수십만 마리에 달하는 좀비집단만 7번 연속 격파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도 모든 무리가 4레벨 좀비 디스트로이어를 보유하진 못했었다.
크라노야 섬멸작전에 참여하고 첫번째 전투에서 70만 마리가 넘는 소드테일들과 싸울 때, 아홉 마리나되는 3레벨 소드테일을 보고 조금 당황한 것도 사실이었다.
동부사막이었다면 위험등급 4의 괴물은 50만 마리 규모의 좀비집단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괴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서남부의 소드테일들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위험등급 4의 괴물이 천 마리 단위로 나타나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때 시스템 메세지가 빠르게 올라왔다.
< 경고! 3레벨 소드테일의 비행속도가 시속 1천 킬로미터를 돌파했습니다. >
< 경고! 마하 0.8을 상회하는 속도로 비행하고 있습니다. >
'우리 성벽으로 오는 건 몇 마리야? 설마 저게 다 우리한테 오는 건 아니지?'
< 명확하지 않습니다. >
< [바덴 절벽] 방향으로 날아오는 3레벨 소드테일은 총 395마리입니다. >
< 성벽과의 거리는 약 9킬로미터입니다. >
< 예상 도착시간은 33초입니다. >
그 순간에도 7사단과 22연대의 진지가 있는 좌우 먼 곳에서 두두두둥! 하는 둔탁한 포성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들 또한 우리 못지 않게 다급한 상황에 처한 것 같았다.
그때 시스템 메세지가 빠르게 올라왔다.
< 3레벨 소드테일 87마리가 아군 병력을 향해 날아오고 있습니다. >
< 경고! 지뢰지대 상공에 도달하기까지 3초 남았습니다. >
< 위험! 아군 성벽 상공에 도달하기까지 14초 남았습니다. >
"슈퍼샷 전차, 대공 요격을 허가한다!"
내가 명령한 순간이었다.
뒤에서 꽈과과광! 하고 천둥 같은 포성이 연이어 터졌다.
슈퍼샷 전차에 각각 3문 씩 탑재된 50mm 기관포가 초당 10발씩 포탄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워슈트 내부 디스플레이를 통해 우리를 향해 날아오던 3레벨 소드테일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회피기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3레벨 소드테일들이 백여 발의 50mm 탄환을 간발의 차이로 피해낸 순간이었다.
갑자기 디스플레이가 번쩍! 하더니 검은 화면으로 변해버렸다.
'이게 무슨 일이지?'
< 영상을 촬영하던 정찰드론이 파괴되었습니다. >
그 순간 디스플레이에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 영상이 초고속 카메라 영상처럼 느리게 재생되었다.
수백 발의 50mm 탄환 중 반 이상이 3레벨 소드테일을 지나친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 탄환들 사이로 번갯불이 번쩍였다.
그 직후, 파자자작! 하는 굉음과 함께 수십 줄기의 벼락이 탄환과 탄환 사이를 오고갔다.
그러자 벼락그물에 닿은 소드테일들이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감전당한 채, 자유낙하하는 3레벨 소드테일들.
슈퍼샷 전차는 놈들을 정확히 노리고 다시 포격을 시작했다.
내 옆에서 워슈트가 떨릴만큼 큰 포성이 울렸다.
그 순간 무려 58마리의 소드테일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50mm 탄환에 맞아 박살나버렸다.
'아무리 포격 전문 전차라지만... 겨우 몇 초만에 소드테일 58마리를 죽여?'
난 119기의 워슈트를 지휘해서 어렵게 3레벨 소드테일을 잡았었다.
그것도 겨우 9마리를 잡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플라즈마 파워드 건의 에너지 소모는 내 예상보다 컸었다.
그리고 근접전에 나선 워슈트들은 장갑까지 파손됐었다.
하지만 슈퍼샷 전차가 포격 몇번에 손쉽게 수십 마리의 3레벨 소드테일을 잡는 걸 보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부러웠다.
내가 정신차렸을 땐, 내가 탄 워슈트의 오른손이 슈퍼샷 전차를 향하고 있었다.
그 순간 워슈트의 오른손과 슈퍼샷 전차 사이에 츠팟! 하고 정전기가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