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125화 (125/152)

125화. 구라

10분 후, 섬멸작전군 진지. 

140만 마리가 넘는 소드테일 무리가 두 차례나 덮쳤다. 

문제는 스파이더 장갑로봇은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모해서 말 그대로 성벽의 역할밖에 못한다는 점이었다. 

이제 30대도 남지 않는 슈퍼샷 전차도 탄약이 부족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현재 80만 마리에 달하는 소드테일을 막아내는 건 성벽 밖에서 고군분투하는 합성워리어들과 그 뒤를 받쳐주는 80여 기의 워슈트들이었다. 

- 콰과과과!!! 

파도처럼 밀려오는 소드테일들은 5미터에 달하는 데스오러에 닿는 순간 힘 없이 잘려나갔다. 

데스오러에 걸리는 게 2레벨 소드테일의 칼꼬리든 3레벨 소드테일의 칼꼬리든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그건 순수 마그니움으로 만든 워슈트의 전용병기 울트라소닉 소드 못지 않은 위력이었다. 

그때였다. 

한칼에 여섯 마리의 1레벨 소드테일을 베어낸 합성워리어 넘버 00215호가 다시 반대편으로 달려가며 데스오러를 휘두르려할 때였다. 

방금 데스오러에 목이 잘린 1레벨 소드테일의 목 절단면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나왔다. 

죽음의 기운이었다. 

그 죽음의 기운은 합성워리어 넘버 00215호가 휘두르는 데스오러를 향해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목이 잘려나간 소드테일의 몸에서 희뿌연 영혼이 빨려나오더니 그 죽음의 기운을 따라 데스오러로 빨려들어갔다. 

- 찌직! 

- 찌이익! 

소드테일의 영혼들은 죽음의 기운에 저항하려고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결국엔 한 마리도 도망치지 못하고 데스오러에 흡수되고 말았다. 

- 1레벨 소드테일 2,673마리 처치! 

- 죽음의 기운과 영혼 흡수! 

- 데스오러가 성장하지 않습니다. 

- 아바타가 성장하지 않습니다. 

합성워리어 넘버 00215호가 군체정신 스킬로 이룬 언데드 정신체에게 성장정보를 보고한 순간이었다. 

- 합성워리어 넘버 00098호가 파괴되었습니다. 

언데드 정신체가 모든 합성워리어들에게 정신파를 보냈다. 

그 순간, 초록빛 데스오러가 374기의 합성워리어들에게 흡수됐다. 

변화는 바로 그 순간 시작되었다. 

아서가 에너지 드레인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주변에 널린 소드테일의 시체들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타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데스오러에 목이 잘렸을 땐, 목 절단면에서 몇 줄기 죽음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이번엔 죽음의 기운이 얼마나 거세게 치솟는지 콰콰콰콰콰콰! 하고 굉음이 울려댈 정도였다. 

- 아군으로부터 흡수한 데스오러가 합성워리어 강화 임계점에 도달했습니다. 

- 한 단계 더 강화됩니다. 

그 순간 합성워리어 넘버 00215호의 아바타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본래 1미터 정도의 크기라서 몸 밖으로는 아바타의 형상이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합성워리어 넘버 00098호의 데스오러를 흡수한 순간이었다. 

아바타에서 발생한 엄청난 흡입력이 죽음의 기운과 영혼을 흡수하며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수천 마리의 소드테일을 학살하는 동안에도 조금도 성장하지 않던 데스오러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5미터 길이에서 정체되었던 데스오러는 8미터까지 그 길이를 키운 후에야 성장을 멈췄다. 

그때, 합성워리어 넘버 00215호의 몸에 검은 갑옷이 입혀졌다. 

그건 몸집을 키운 아바타였다. 

화신체에 불과한 아바타가 어느새 본신인 합성워리어 넘버 00215보다 커져버린 것이다. 

그 순간 합성워리어 넘버 00215호의 눈에서 한층 강렬해진 초록빛 안광이 번뜩였다. 

*** 

- 콰과과과!!! 

전장 전체가 소드테일 썰려나가는 소리때문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그건 합성워리어들이 만들어낸 소음이었다. 

합성워리어의 수가 줄어들수록 그들이 다루는 데스오라의 길이는 길어졌다. 

지금에 이르러선 길이가 무려 8미터에 달하는 데스오러를 휘두르고 있었다. 

한 기의 합성워리어가 좌우 20미터 거리로 밀려들어오는 소드테일을 막아내자 무려 8킬로미터에 달하는 방어선이 형성되어버렸다. 

- 자, 작전사령관님, 저 안드로이드들이... 점점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때 성벽에서 슈퍼샷 전차를 지휘하던 베르톨트 대위가 전술 통신망을 통해 질문했다. 

합성워리어들의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하지만 난 합성워리어가 언데드란 걸 밝힐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 대화는 전술 통신망을 이용하는 136 기갑중대의 병사들과 섬멸작전군에 속한 수만 명의 용병들까지 듣고 있었기 때문에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내가 네크로맨서라는 사실이 팔미라 시 전체에 퍼질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마력로 오버히트 기술입니다." 

난 어쩔 수 없이 오버히트란 엉뚱한 기술을 지어낼 수밖에 없었다. 

- 오버히트... 처음 들어봅니다. 

"원소폭발은 들어보셨습니까?" 

- 당연히 들어봤습니다. 

"오버히트는 마력로를 일부러 과열시켜서 원소폭발 직전단계로 끌어올리는 기술입니다." 

- 어... 그럼 엄청 위험한 상태 아닙니까? 원소폭발을 일으킨 자는 어느 도시에서든 최고형에 처해집니다! 

베르톨트 대위는 원소폭발이란 단어에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마치 그런 중죄를 짓는 데 자신까지 엮일까봐 두렵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초소형마력로는 아무리 과열시켜도 원소폭발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신 엄청난 출력을 얻을 수 있죠." 

- 아! 제가 마력로에 대해선 문외한이라 그런 기술이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봤습니다. 

"그러셨을 겁니다. 한번 사용하면 마력로와 로봇 모두를 잃을 수밖에 없는 기술이거든요. 지금 저 로봇들의 몸이 검게 부풀어오른 것만봐도 알 수 있죠." 

난 검은 아바타가 몸 밖으로 형상을 드러낸 합성워리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마력로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면 폭발하기 직전이라 검게 부풀어올랐다고 믿을 법한 모습이었다. 

- 아, 그렇다면 장벽방어군에 납품하시기는 어렵겠군요? 

"한번의 전투로 10억 크레딧씩 날아가는 기술이라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더군요." 

- 안드로이드 한 기에 10억 크레딧이라... 외면받을만 한 기술입니다. 

난 납득한 듯한 베르톨트 대위의 반응을 듣고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 저... 작전사령관님? 

그런데 그때, 스파이더 장갑로봇들의 총 지휘를 맡은 베도스 중위의 목소리가 들렸다. 

"말씀하세요." 

- 저 안드로이드들이 사용하는 무기 말입니다. 

"네." 

난 태연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초록빛을 뿜어대는 8미터 길이의 데스오러를 보니 간담이 서늘해졌다. 

만약 데스오러를 납품해달라고하면 피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난 다급히 데스오러에 어떤 거짓말을 곁들여야 이들을 속여넘길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때 베도스 중위가 물었다. 

- 저것도 작전사령관님께서 만드신 신무기입니까? 

나는 다급한 마음에 곧바로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연구자의 인내!' 

< 메카닉 직업의 유니크 등급 스킬 [연구자의 인내]를 사용하셨씁니다. > 

그 순간 내가 이 세상에 떨어져 습득한 모든 공학정보들이 내 눈앞에 빠르게 펼쳐졌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이 상황을 돌파할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난 메카닉의 지식을 활용한 교묘한 거짓말을 포기했다. 

그 대신 밑도 끝도 없는 구라를 풀 수 밖에 없었다. 

"저건 제가 만든 게 아니라 무역상에게서 구입한 무기입니다." 

- 점점 길이가 길어지는 것도 신기하지만... 무엇보다 저 위력이 놀랍습니다. 

나는 당황한만큼 더 당당하게 말했다. 

"그 무역상의 설명에 따르면 단분자 커터라는 무기입니다." 

- 단분자 커터? 처음 들어봅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꼭 사고 싶습니다. 그 무역상의 연락처를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단분자 커터는 나도 SF 소설에서 읽은 무기였다. 

당연히 그런 무기를 파는 무역상의 연락처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더 속이 타들어갔다. 

하지만 목소리를 떨지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대답했다. 

"저도 동부사막에서 우연히 만난 무역상이라 따로 연락처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내가 되지도 않는 변명을 하는데, 전술 통신망에 신음소리가 전해졌다. 

내겐 천만 다행이었다. 

- 크윽! 

돌아보니 땅에서 치솟은 3레벨 소드테일에게 공격당해 워슈트 한 기가 땅바닥에 처박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건 게릭슨이 탄 워슈트 5호기였다. 

"앗! 게릭슨!" 

내가 과장된 목소리로 게릭슨을 부른 순간이었다. 

넘어진 워슈트 5호기를 향해 달려드는 3레벨 소드테일 옆으로 검은 잔상이 스쳐지나갔다. 

그때, 꽈광! 하는 소음과 함께 3레벨 소드테일 옆에서 하얗게 공기가 터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폭발이 지나간 자리엔 3레벨 소드테일의 머리와 30여 개의 칼꼬리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 합성워리어 넘버 00215호가 순간가속 능력을 사용했습니다. > 

내가 시스템 메세지를 읽는데, 볼썽사나운 꼴로 바닥을 나뒹굴었던 게릭슨의 워슈트 5호기가 내게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 주군, 저도 합성워리어로 만들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게릭슨, 합성마법진은 위험하다." 

이번에 합성워리어로 만든 3,027기의 워리어들은 모두 에라트 용병연합 출신이었다. 

동부사막에서 사망한 용병들이란 뜻이다. 

그들은 생전에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워리어로 일으킨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언데드들이었다. 

합성워리어로 일으켜 세운 언데드들이 붕괴되는 모습을 봐도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 뿐이었다. 

하지만 게릭슨은 달랐다. 

"내가 처음 일으킨 워리어를 허무하게 잃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미 저들이 충분한 역할을 해줬으니, 너까지 위험을 무릎쓸 필요는 없다." 

- 전 벽에 가로막혔습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전 아무 쓸모없는 워리어로 남을 것입니다. 

"흠..." 

게릭슨은 성장이 느린 자신의 모습에 답답한 모양이었다. 

- 아치스도 소울리퍼가 되기위해 목숨을 걸었잖습니까? 저도 아치스처럼 위험을 감수할 수 있습니다. 

게릭슨의 정신파엔 굳은 각오가 서려있었다. 

내가 거둬들인 최초의 아머드 스켈레톤은 유틀란트 시에서 일으킨 19기였다. 

하지만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로 따진다면 게릭슨이 최초였다. 

그 다음에 받아들인 데스윙과 제니퍼는 태생부터 다르니 게릭슨과 비교할 순 없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받아들인 아치스는 3단계 강화시술자인 게릭슨보다 못한 사이보그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치스는 이미 1천 기의 망령군을 이끄는 수장이 되었다. 

게다가 장애물을 마음대로 통과하고 그림자에 숨어 적들을 염탐하는 아치스의 능력은 내게 큰 보탬이 되고 있었다. 

동기는 빠르게 자기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자신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수 많은 워리어 중 하나일뿐이었다. 

문제는 그 워리어 자리조차 새로 들어온 합성워리어들에게 뒤쳐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게릭슨은 그 상황이 견디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합성워리어를 만든 건 나지만, 지금까지 나온 결과들은 내 예상 밖이야. 그래도 도전할텐가?" 

- 도전하겠습니다! 

게릭슨이 대답한 순간, 난 주문을 외웠다. 

"데스오러형 양방향 합성마법진!" 

그 순간 붉은 마력입자가 나타나 게릭슨과 게릭슨이 입은 배틀슈트 그리고 그가 탄 워슈트 5호기에까지 합성마법진을 그려넣었다. 

기간트워리어급 배틀슈트뿐만 아니라 워슈트까지 하나의 합성 마법진으로 묶어준 것이다. 

그건 내가 게릭슨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허무하게 죽지는 마라!' 

*** 

그 시각, 1군단 상황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홀로그램 모니터엔 거대한 인간형 괴물이 수천 개의 칼꼬리를 휘두르는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놈이 팔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수십 대의 전쟁병기가 찢어발겨졌다. 

그리곤 주변을 나뒹구는 스파이더 장갑로봇과 슈퍼샷 전차 따위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놈은 십여 초만에 팔 속으로 흡입한 스파이더 장갑로봇을 갈갈이 찢은 채로 토해냈다. 

그 안에 탑승한 병사들을 빼먹고 기계만 뱉어낸 것이다. 

"벼, 변이종이다!" 

"스파이더 장갑로봇의 골격은 순수 마그니움 아니었나?" 

"아무리 변이종이라고 해도... 순수 마그니움 소재를 종잇장처럼 찢어버릴 수 있다고?" 

그 모습을 본 장교들은 혼란에 빠져버렸다. 

그때, 상황실 스피커가 울렸다. 

- 영상을 분석한 결과입니다. 

- 해당 변이종은 지난 11분 동안 병사와 소드테일을 포식했습니다. 

- 그 과정에서 처음 10미터 크기였던 변이종이 20미터 수준으로 성장했습니다. 

오큘러스 시스템의 설명이 끝나자 상황실은 정적에 잠겼다. 

하지만 그 정적은 아주 짧았다. 

"주, 중령님. 어떻게 합니까?" 

"저런 변이종이라면 현재 방어전에 투입한 10대의 기간트를 모두 보내도 잡는다고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변이종이라니... 당장 팔미라 시 국방부에 알려야합니다!" 

당황한 장교들은 온갖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국방부? 카이머 소령, 자네 말이 맞네. 국방부에 보고하면 변이종은 잡을 수 있겠지." 

당직사령은 곱슬머리 카이머 소령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물었다. 

"그런데 국방부에서 변이종을 처리하면 이번 사태에 대해 국방부 감찰실이 조사하지 않겠나?" 

"국방부 소속 골렘나이트가 출동한다면 당연히 후속조치를 취할 겁니다." 

"그럼 1군단장님 대신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텐가?" 

당직사령이 묻자, 카이머 소령은 입만 뻥긋거릴뿐 어떤 대답도 내놓지 못했다. 

"왜? 1사단장님 대신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옷을 벗기로 해놓고, 갑자기 마음이 달라진 건가? 갑자기 1사단장님께 죄를 떠넘기고 싶어졌나?" 

당직사령 로리오 라브 중령은 카이머 소령의 군복 오른팔에 부착된 1사단 마크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아닙니다! 저를 쥐새끼로 몰지 마십시오!" 

"그럼 뭔가? 이제와서 국방부 라인을 타겠다고 말한 이유가?" 

"그, 그게... 저도 놀라서 말이 헛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대로 변이종을 방치했다간 우리뿐만 아니라 책임있는 지휘관들도 군사재판에 회부될 겁니다. 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 거 아니었습니까?" 

곱슬머리인 카이머 소령이 당황한 듯 다른 장교와 영관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정말 군사재판이 열린다면 1군단장을 포함한 각 부대의 사단장, 연대장들도 책임을 회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당장 배신자로 찍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선지 아무도 카이머 소령의 말에 호응해주지 않았다. 

그저 카이머 소령의 눈을 피할 뿐이었다. 

"헛소리였다고하니, 이번 한 번은 그냥 넘어가지. 다들, 언행에 주의하게." 

당직사령 로리오 라브 중령은 부하들의 입단속을 시킨 후, 급히 군번줄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다시는 전화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에게 통신을 연결할 수 밖에 없었다. 

"시의원실로 연결해." 

*** 

잠시 후, B-7 구역 시경찰청사 형사과장실 

금테 안경을 쓴 백인남성은 의자에 앉아 허공을 손가락으로 터치했다. 

그가 허공을 터치할 때마다 홀로그램창에 뜬 고급정장의 색과 디자인이 바뀌고 있었다. 

- 형사과장 니콜라스 데커 총경 

그는 팔미라 시에 4명뿐인 5단계 강화시술자 니콜라스 데커였다. 

니콜라스는 홀로그램 창에 회색과 남색 정장을 하나씩 펼쳐놓고는 인상을 굳혔다. 

"에리히는 너무 어린애 옷 같아서 내가 입으면 주책이란 소리를 들을테고... 하펜을 입으면 뒷방 늙은이로 보겠지." 

그는 두 브랜드의 고급정상을 펼쳐놓고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때 띠릭! 하는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 과장님, 미하엘 볼드윈 의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직접?" 

- 네. 어떻게 할까요? 

"들어오시라고해." 

담담한 목소리로 지시한 것과는 달리 니콜라스의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책상 위에 뜬 홀로그램 창을 밀어서 없애버린 니콜라스 데커는 책상 옆의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가 짧은 금발을 한번 쓸어넘겼을 때, 문이 열렸다. 

"시의원님께서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니콜라스는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동양인 남성을 보자 인사도 없이 용건부터 물었다. 

하지만 미하엘 볼드윈은 자리에 앉지도 않고 다짜고짜 본론부터 꺼내들었다. 

"지금 당장 출격해줘야겠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니콜라스는 시의원의 무례한 지시에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하지만 미하엘 볼드윈은 고작 총경에 불과한 니콜라스를 탓하지 못했다. 

그 대신 간곡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지금 서남부에서 변이종이 발생했어. 당장 프리지디를 끌고 가서 처리해주게." 

"프리지디... 제가 프리지디의 골렘나이트긴 합니다. 하지만 프리지디는 엄밀히 따지자면 시경찰 소유의 자산입니다. 필요하시면 정식으로 공문을 보내세요." 

니콜라스가 아주 사무적인 자세로 나오자, 미하엘 볼드윈이 결국 분통을 터트리고 말았다. 

"니콜라스! 자네를 이 자리까지 올려준 게 누군가? 날세! 그 은혜를 벌써 잊어버린 게야?" 

"10년만 버티면 치안총감까지 올려주시겠다고 공수표를 던지시고 나몰라라 하신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군요?" 

니콜라스는 시의원 미하엘 볼드윈에게 쌓인 게 많은 모양이었다. 

미하엘 볼드윈은 그 말을 듣고나서야, 한숨을 깊게 내쉬어 화를 가라앉혔다. 

그리곤 니콜라스 데커에게 다독이듯 말했다. 

"자네 출신을 생각하게. 팔미라 시 역사상 F구역 출신이 골렘나이트가 된 건 자네가 처음이었어." 

니콜라스는 골렘나이트란 말을 듣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전 골렘나이트면 귀족대접을 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게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니콜라스 데커 총경이 느긋하게 소파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 

하지만 미하엘 볼드윈 시의원은 이를 악물뿐 고함을 치지도, 그렇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도 못했다. 

"용병협회장이 그러더군요. 겨우 시경찰 밑이나 닦아주려고 데커 학파를 배신했냐고요."

"이번 일만 해결해주면... 올해 안에 경무관으로 승진시켜주겠네." 

니콜라스 데커 총경은 승진이란 말을 듣고나서야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곤 재차 확인하듯 미하엘 볼드윈 시의원과 눈을 맞추며 물었다. 

"올해 안이면 3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가능하시겠습니까?" 

"서남부 소드테일 범람사태만 진정시켜준다면!" 

"이번엔 그 약속, 꼭 지키셔야할 겁니다." 

니콜라스 데커는 확답을 듣고나서야 소파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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