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헬파이어
< 해당 언데드가 에픽 등급 스킬 [열화지옥] 생성에 성공했습니다. >
< [열화지옥] 스킬은 적을 봉인할 수 있는 아공간입니다. >
< [열화지옥]에 갇힌 적은 육신과 영혼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불타며 고통받습니다. >
< 시전자는 적의 육신과 영혼이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 막대한 데스오러를 추출할 수 있습니다. >
< 시전자는 [열화지옥]에 갇힌 적이 굴복하면 언제든 적을 부하로 부리거나 적의 능력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
< 해당 언데드가 [열화지옥]의 부가스킬인 레전드 등급 스킬 [헬파이어]를 습득했습니다. >
< 해당 언데드가 레전드 등급 스킬 [타락한 팔라딘의 아바타]을 습득했습니다. >
< 해당 언데드가 레전드 등급 스킬 [데몬소드 마스터리]를 습득했습니다. >
< 해당 언데드가 레전드 등급 스킬 [꺾이지 않는 충성]을 습득했습니다. >
< 해당 언데드가 레전드 등급 스킬 [죽음의 호흡]를 습득했습니다. >
< 해당 언데드가 유니크 등급 스킬 [데스오러 마스터리]를 습득했습니다. >
< 해당 언데드가 유니크 등급 스킬 [워머신 마스터리]를 습득했습니다. >
< 해당 언데드가 유니크 등급 스킬 [악령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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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언데드가 커먼 등급의 스킬 [스켈레톤 소환] 주문을 습득했습니다. >
< 해당 언데드의 전투력이 유니크 등급을 넘어섰습니다. >
< 등급을 재판정합니다. >
< 커먼, 언커먼, 레어, 유니크, 레전드, 에픽... >
< 사용자님께서 창조한 언데드가 [에픽] 등급으로 측정되었습니다. >
< 에픽 등급 언데드 [아머드 데스나이트]를 만들어내셨습니다. >
< 네크로맨시 역사에 기록된 적 없는 언데드를 창조하셨습니다. >
< 경이로운 업적입니다! >
수십 개의 시스템 메세지가 빠르게 올라왔다.
시스템 메세지가 멈췄을 땐 이미 검은 달이 태양을 가린 후였다.
거기에 먹구름까지 끼니 낮이 한순간에 밤이 되어버렸다.
- 주군께서 저를 다시 살려내셨습니다.
9미터 크기의 검은 기사가 내게 오른쪽 무릎을 꿇으며 정신파를 보내왔다.
게릭슨의 정신파가 내게 전해진 순간이었다.
연이은 전투로 쌓였던 피로가 한순간에 가셔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변이종에 대한 두려움과 네크로맨서인 내 정체가 들킬지도 모른다는 걱정 또한 사라졌다.
그건 정상적인 감정변화가 아니었다.
'갑자기... 이게 뭐지?'
< 해당 언데드가 레전드 등급 스킬 [꺾이지 않는 충성]을 사용했습니다. >
< [꺾이지 않는 충성]은 해당 언데드와 그가 모시는 자의 정신을 굳건하게 합니다. >
< 언데드의 충성이 꺾이지 않는 한, 모든 정신공격에 대해 저항합니다. >
< 언데드의 충성이 꺾이지 않는 한, 영혼이 소멸하지 않습니다. >
그건 게릭슨이 새로 얻은 패시브 스킬인 것 같았다.
일반적인 스킬은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꺾이지 않는 충성은 시전자뿐만 아니라 시전자가 모시는 자의 마음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내가 게릭슨의 스킬을 흥미롭게 검토하려던 그때였다.
저 멀리서 꽝! 하는 충격음이 터져나왔다.
돌아보니 제니퍼의 워슈트 4호기가 튕겨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반토막 난 울트라소닉 소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 순간, 높은 하늘에서 수백 개의 칼꼬리가 제니퍼를 향해 빠르게 떨어져내렸다.
"데몬 에로우!"
그때, 게릭슨이 소드테일 변이종을 향해 오른손을 펼치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허공을 유영하던 수천 마리의 소드테일 영혼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 찌지지직!
- 찌직!
- 찍!
하지만 게릭슨이 소드테일 변이종을 향해 손을 털자, 수천 마리의 소드테일 영혼이 한순간에 화살로 변해 쏘아졌다.
눈 깜짝할 순간만에 제니퍼를 노렸던 칼꼬리 수백 개와 데몬에로우 수천 발이 충돌했다.
꽈과광! 하는 폭발음과 함께 제니퍼를 노렸던 변이종이 옆으로 휘청이는 모습이 보였다.
< 해당 언데드가 유니크 등급 스킬 [데몬에로우]를 사용했습니다. >
그 순간 똑바로 선 소드테일 변이종은 오로지 게릭슨만 노려보고 있었다.
게릭슨이 놈을 똑바로 올려다보자, 변이종이 높이 치켜들었던 칼꼬리를 신경질적으로 내리쳤다.
퍼버벙, 꽈광! 하고 변이종 주변의 땅이 터져나갔다.
***
해를 가린 달.
하늘의 뒤덮은 먹구름.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타들어가는 형제들의 시체.
숨을 쉴 때마다 어두운 녹색 연기를 뿜어내는 검은 갑옷.
- 데, 데스나이트? 팔미라가 언제부터 리치와 손을 잡은 거지? 아니... 아직까지 남아있는 리치가 있어...?
그때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 같이 뜻 모를 소리였다.
- 잡아먹는다! 강해진다!
흰털은 당황한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무엇이든 자신의 앞을 막으면 그저 한 모금의 육즙이 될 뿐이란 걸!
양팔과 양다리까지 칼꼬리로 분화하자, 무려 2만 개가 넘는 칼꼬리가 생겨났다.
각각 60미터 길이의 칼꼬리를 땅에 박아넣으며 달리자, 달리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 콰과과광!
빠르면 빠를수록 세상은 쉽게 부서져갔다.
공기와 땅 그리고 시체와 장갑차까지 흰털과 부딪힌 모든 것이 박살났다.
세상을 무너트리는 기분은 이루말할 수 없이 기뻤다.
흰털이 가속도가 붙은 채로 데스나이트와 부딪히려할 때였다.
섬뜩한 기운이 왼팔을 스쳤다.
흰털이 본능적으로 우측으로 몸을 날린 순간이었다.
검은 칼날이 그의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 크아아악!
왼쪽 눈을 잃은 흰털은 발악하며 데스나이트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베인 건 왼팔의 칼꼬리 몇십 개와 왼쪽 눈뿐이었다.
하지만 왼쪽 얼굴과 왼쪽 어깨까지 타들어가는 고통이 전해졌다.
흰털이 물러나서 본 건 10미터 길이의 검은 칼이었다.
그 칼날 전체에서 어둠이 일렁거렸다.
그때마다 왼쪽 얼굴과 어깨가 타들어가는 고통에 시달렸다.
그리고... 일렁이는 칼날과 공명하듯 시체들이 빠르게 타들어가며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그리고 그 검은 연기가 칼날에 엉겨붙었다.
그러자 칼날의 길이가 한뼘 길어졌다.
- 저건... 내가 아는 데스나이트가 아니다!
흰털은 전과 달리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달리지 못했다.
그가 한걸음 더 물러나는데 아버지가 말했다.
- 칼꼬리를 잘라내는 데몬소드라니, 데스로드의 군단장이 아니고서야 이런 일은 불가능한데?
흰털은 혼신의 힘을 다해 아버지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알아들을 수가 없는 얘기들뿐이었다.
***
데몬소드에 잘린 칼꼬리가 땅 바닥에 떨어졌다.
잘린 단면이 타들어갔다.
거기서 뿜어져 나온 죽음의 기운이 다시 데몬소드로 빨려들어왔다.
게릭슨은 생각했다.
'겁이 많은 놈이군.'
잘린 단면이 타들어간 건 땅바닥에 떨어진 칼꼬리뿐만이 아니었다.
20미터 가까이 남은 수십 개의 칼꼬리들.
그리고 놈의 왼쪽 눈.
모두 검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놈은 100미터 이상 거리를 벌렸다.
그때 변이종이 왼쪽으로 슬금슬금 돌기 시작했다.
게릭슨은 놈을 따라 왼쪽으로 돌면서 주군을 공격할 수 없도록 제 몸으로 변이종의 시야를 가렸다.
변이종의 하나 남은 눈이 번뜩였다.
그리곤 째빠르게 반대방향으로 돌며 접근해왔다.
왼쪽을 노리는 척하다 오른쪽을 공격한다.
그건 노련한 용병 출신인 게릭슨이 속아넘어가기엔 너무 뻔한 수작이었다.
"헬파이어!"
그 순간, 달려들려던 변이종 앞에서 검은 화염이 치솟았다.
하지만 그보다 변이종이 칼꼬리로 제 몸을 막는 게 빨랐다.
- 끼아아악!
칼꼬리에 지옥의 불길이 들러붙자, 놈이 비명을 내지르며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하지만 흙더미에 아무리 비벼도 헬파이어는 꺼지지 않았다.
결국 놈은 벌떡 일어나 불이 붙은 칼꼬리를 제 칼꼬리로 잘라내기 시작했다.
- 크드득! 크드득!
그건 잘려나가는 소리가 아니라 톱날로 칼꼬리를 갈아내는 듯한 소리였다.
- 마력은 얼마나 남았나?
그때 주군의 정신파가 들려왔다.
'34% 정도 남았습니다.'
- 마력 소모가 터무니없군.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 아니다. 승급하자마자 큰 힘을 사용했으니 힘에 부칠 수밖에...
게릭슨은 그 순간 등 뒤에서 거대한 마력의 움직임을 느꼈다.
"에너지 드레인!"
주군께서 주문을 외우신 순간이었다.
밤의 장막으로 뒤덮힌 반경 3킬로미터 내에 있던 시체들이 급속도로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건 밤의 장막 스킬보다도 더 빠르게 시체를 태워버렸다.
곧이어 등 뒤에서 엄청난 죽음의 기운이 쏟아져들어왔다.
"크흡!"
80만 마리의 소드테일의 시체를 태워 생산한 죽음의 마력이었다.
게릭슨이 엄청난 양의 죽음의 기운에 놀라 신음한 순간이었다.
눈을 빛낸 소드테일 변이종이 지그재그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헬파이어에 직격당해보니 두려운 모양이었다.
게릭슨은 주저하지 않고 놈을 향해 달려나갔다.
주군 근처에서 싸웠다간 본의 아니게 큰 죄를 지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그때였다.
100미터 거리도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변이종이 팔다리를 모두 칼꼬리로 바꾸더니 땅을 내리쳤다.
그 순간 엄청난 충격파가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흙먼지가 세상을 뒤덮었다.
하지만 게릭슨은 단숨에 1킬로미터 높이까지 점프한 소드테일을 볼 수 있었다.
개기일식 스킬로 만든 검은 달이 그의 눈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그 순간 정점에 도달한 소드테일 변이종이 몸을 뒤짚었다.
그리곤 하늘을 향해 오징어가 물을 뿜으며 추진력을 얻듯 수만 개의 칼꼬리를 휘저었다.
그러자 놈의 꽁무니 주변 공기가 터져나갔다.
그 순간 변이종이 하얗게 공기를 터트리며 땅을 향해 내리꽂기 시작했다.
문제는 놈이 향한 곳이 게릭슨의 머리 위가 아니라 주군의 머리 위였다는 점이었다.
'이 놈이!'
게릭슨은 이를 악물자, 아바타를 가득 채운 데스오러가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그가 데몬소드로 이동할 방향을 가리키고 데스오러를 쏟아부었다.
그러자 데몬소드가 빗살처럼 날아갔다.
게릭슨은 데몬소드에 매달려 눈깜짝할 사이에 주군의 머리 위로 이동했다.
"토막을 쳐주마!"
그가 11미터에 달하는 데몬소드를 휘두르는 순간이었다.
게릭슨의 코앞까지 떨어진 변이종의 칼꼬리가 팔방으로 퍼졌다.
그리곤 게릭슨이 아니라 주군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60미터에 달하는 칼꼬리의 길이가 문제였다.
"열화지옥!"
그 모습을 본 게릭슨이 이를 악물며 주문을 외웠다.
그 순간 주군의 바로 머리 위에 반경 3미터 크기의 포탈이 열렸다.
그 포탈 너머로 검붉은 불길이 보였다.
주군을 노리던 칼꼬리 수천 개가 열화지옥으로 들어간 순간이었다.
"닫아!"
게릭슨이 외치자, 눈깜짝할 사이에 열화지옥의 입구가 닫혀버렸다.
- 크아아악!
한순간에 수천 개의 칼꼬리가 잘려나간 변이종은 몸부림을 쳤다.
그러자 허공에서 놈의 몸이 반전하더니 하늘로 치솟았다.
"멍청한 자식! 내가 네 놈 속셈을 모를 줄 알았나?"
게릭슨은 기세 좋게 소리쳤다.
하지만 속마음은 그리 편하지가 않았다.
'열화지옥... 함부로 사용하면 안되겠어.'
80만 마리에 달하는 소드테일 시체로 만든 죽음의 기운이 열화지옥을 한번 시전하는 것만으로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마력으로 데몬소드를 유지하는 데도 버거움을 느꼈다.
하지만 변이종이 틈을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데몬소드까지 거둬들일 수는 없었다.
그럼 놈이 곧바로 게릭슨의 약점을 알아챌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순도 높은 죽음의 기운이 게릭슨의 종아리를 타고 올랐다.
'주군,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게릭슨은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주군이 보내준 죽음의 기운은 80만 구의 시체를 태워서 만든 죽음의 기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데몬소드를 유지하는 게 한결 나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 어차피 저 놈을 처리하지 못하면 우린 다 죽은 목숨이야.
'그래도 공간이동할 마력은 남겨두셔야합니다.'
- 그건 걱정할 것 없다.
그때 소드테일 변이종이 오징어처럼 허공을 유영하는 모습이 보였다.
놈은 열화지옥이란 함정에 걸려서 한번에 4천 개 이상의 칼꼬리를 잃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남은 눈을 번뜩이며 주군을 노리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누구를 죽여야 이 싸움이 끝나는지 아는 것 같았다.
하늘 위에서 점차 빠르게 유영하며 치고 내려올 틈을 노리던 변이종이었다.
놈이 다시 음속을 돌파하기 직전이었다.
하늘을 향해 2만 개에 가까운 칼꼬리를 휘저었다.
그러자 놈의 꽁무니 부근의 공기가 다시 터져나갔다.
'저 놈이?'
하지만 소드테일 변이종은 이번엔 게릭슨이나 그 뒤에 숨은 아서를 노리지 않았다.
워슈트들은 아서가 공격당할 것을 걱정해 그의 반경 50미터 부근에 자리잡고 엄호사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변이종은 그 워슈트들 중 정확히 4호기를 노렸다.
그건 제니퍼가 탄 워슈트였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도 게릭슨은 꼼짝하지 않았다.
'주군만 지키면 언데드는 얼마든지 살릴 수 있다.'
워슈트 4호기의 머리 바로 위까지 떨어져내린 변이종을 보며 게릭슨이 눈살을 찌푸린 순간이었다.
꽈광! 하는 충격파가 터져나왔다.
하얗게 공기가 터져나가고 검은 흙먼지가 치솟았다.
하지만 충격지점에서 150미터 정도 떨어져있던 게릭슨이 느낀 진동은 너무 약했다.
20미터가 넘는 괴물이 음속을 돌파한 속도로 추락했다.
그럼 땅에서 막대한 충격이 전해져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워슈트는 없었다.
- 속았다! 놈이 주인님을 노린...!
그때 제니퍼의 정신파와 함께 좌측에서 흙먼지를 뚫고 날아드는 변이종의 모습이 보였다.
놈은 정확하게 주군을 노리고 있었다.
게릭슨은 급히 데스오러를 운용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가 디딘 땅이 그의 힘을 못 이기고 퍼버벙! 하고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게릭슨이 마침내 변이종과 아서 사이의 일직선을 가로막았을 때였다.
변이종은 이미 충분히 접근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놈은 코앞에서 11미터 길이의 데몬소드를 내려치는 게릭슨 대신 아서를 향해 1만 7천 개에 달하는 칼꼬리를 찔렀다.
그 모습을 본 게릭슨이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지나쳐가는 칼꼬리들을 향해 데몬소드를 휘둘렀다.
데몬소드에 닿은 칼꼬리들이 차라라락! 하는 서늘한 소음과 함께 잘려나갔다.
바로 그때였다.
아서를 노리던 칼꼬리들이 돌아와 게릭슨을 찔렀다.
게릭슨을 노린 칼꼬리들은 까가가가강! 하는 거친 쇳소리와 함께 아바타에 맞고 튕겨나갔다.
바로 그 순간, 1만 개 남짓 남은 칼꼬리들이 게릭슨을 휘감아버렸다.
***
만 개가 넘는 칼꼬리가 9미터 크기의 검은 기사를 휘감아버렸다.
수 많은 칼꼬리에 감싸이자 검은 기사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칼꼬리들은 그 순간에도 이리저리 뒤엉키며 게릭슨의 아바타를 조여가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게릭슨의 아바타에서 끄드드득! 하고 뭔가 뒤틀리는 소음이 퍼져나왔다.
뱀이 사냥감을 감싸서 질식시키듯 칼꼬리로 게릭슨을 감싸 부숴버리려는 것 같았다.
에픽 등급 언데드로 승급한 게릭슨이 꼼짝도 못하는 걸 보니, 놈의 힘이 얼마나 강대한 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 주군, 아니... 주군을 지켜라!
게릭슨은 내게 무슨 말을 하려더니, 워슈트에 탄 언데드들에게 정신파를 보냈다.
그 순간 워슈트들은 이유도 묻지 않고 내게 달려들었다.
'게릭슨, 어쩌려는 거냐! 설마...?'
그들이 날 감싼 순간이었다.
"헬파이어!"
게릭슨이 주문을 외친 순간이었다.
그의 반물질 코어가 붕괴되는 걸 느꼈다.
마력이 부족한 게릭슨이 반물질 코어를 일부러 붕괴시킨 것이다.
< 해당 언데드가 레전드 등급 스킬 [헬파이어]를 시전했습니다. >
검붉은 불길은 순식간에 게릭슨과 변이종을 감쌌다.
설마했던 내 추측이 맞았다.
게릭슨은 자신이 패배하면 내가 위험해질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변이종이 지금까지 보여준 전투력을 생각하면 게릭슨이 틀렸다고 말할 순 없어.'
하지만 내가 최초로 만든 아머드 데스나이트가 나 대신 자폭을 택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 찌직! 끄아악!
그때 변이종이 인간과 쥐의 신음소리를 동시에 내지르며 칼꼬리를 풀어헤쳤다.
놈은 게릭슨을 두고 도망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게릭슨이 변이종의 몸을 끌어안았다.
같이 불타죽겠다는 작정인 것 같았다.
그 순간, 변이종이 미친듯이 제 몸을 털어대며 검은기사의 몸에 칼꼬리를 쑤셔넣었다.
처음엔 까가강! 하고 칼꼬리가 튕겨나오더니 이내 퍼벅! 퍽! 하고 게릭슨의 몸에 칼꼬리가 박혀들어가기 시작했다.
< 해당 언데드의 마력부족으로 레전드 등급 스킬 [타락한 팔라딘의 아바타]의 시전이 취소되었습니다. >
그 순간, 9미터 크기의 검은 기사는 사라졌다.
그 대신 워슈트와 함께 온몸이 꿰뚫린 게릭슨이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워슈트 5호기는 바닥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부서졌다.
그 덕분에 그 안에서 목과 허리가 분리된 게릭슨의 모습이 드러났다.
- 끄아아악!
난 찢어지는 듯한 소드테일 변이종의 비명소리를 듣고 돌아봤다.
검붉은 불꽃은 이미 변이종의 몸 전체로 옮겨붙은 모습이었다.
변이종은 땅을 헤짚고 그 안에 스스로 파묻혀보기도 하는 등 온갖 지랄발광을 해댔다.
하지만 헬파이어는 그 위에 끼얹은 흙까지 마그마로 만들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놈이 살아날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 주군을 모실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반물질 코어를 잃은 게릭슨은 자신이 부활할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난 그의 유언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 첫번째 아머드 데스나이트를 이대로 포기할 줄 알았나!"
나는 곧 죽을 것 같이 온몸을 뒤트는 변이종의 목을 따는 것보다 게릭슨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게릭슨을 잃을 수는 없어.'
난 게릭슨의 몸에 새겨진 합성마법진을 즉석에서 고치기 시작했다.
< [데스오라형 양방향 합성마법진]에 [강제소환] 마법식을 추가합니다. >
< [반물질 코어]를 잃은 언데드입니다. >
< 메카닉 네크로맨서의 무덤 1층 [소환실]로 이동시켜도 되살릴 수 없습니다. >
'육체를 희생해서라도 영혼만큼은 살린다!'
내가 마법식을 수정하자, 게릭슨의 몸이 초록빛 데스오러로 변하기 시작했다.
초록빛 데스오러는 내 몸을 통과해 메카닉 네크로맨서의 무덤으로 향했다.
내가 눈을 감고 집중하자, 소환실 한켠에 초록빛 데스오러가 모이는 모습이 보였다.
밝게 빛나던 데스오러가 번쩍인 순간이었다.
몸을 잃은 게릭슨의 영혼이 소환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 해당 언데드가 레전드 등급 스킬 [꺾이지 않는 충성]을 사용했습니다. >
< 사용자님에 대한 충성이 꺾이지 않았습니다. >
< 해당 언데드가 소멸에 저항했습니다. >
- 주군, 저보다 중요한 건... 놈의 사체입니다.
게릭슨은 소환실에서 정신을 차리자마자 내 걱정을 했다.
'그건 내가 알아서 챙길테니, 혼령탑에서 망령들이라도 잡아먹어라.'
- 명을 받들겠습니다!
난 게릭슨이 메카닉 네크로맨서의 무덤 2층인 혼령탑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눈을 떴다.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건 변이종이었다.
놈은 이미 온몸의 피부를 긁어낸 후였다.
보랏빛 근육이 고스란히 드러난 얼굴과 몸.
산처럼 쌓인 채, 타들어가고 있는 칼꼬리 잔해들.
놈은 제 손으로 헬파이어에 타들어가는 피부와 칼꼬리를 모두 잘라내고만 것이다.
'지독한 놈이군.'
소드테일 변이종이 헬파이어에서 벗어났을 땐, 칼꼬리가 2천여 개 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겐 막대한 위험이었다.
그때였다.
- 쑤와앙!
바덴 절벽 방향에서 거센 비행음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10미터 크기의 로봇이 바덴 절벽 방향에서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로봇에선 진한 마그니움 향기가 느껴졌다.
'순수 마그니움이군... 골렘인가?'
내가 올려다보는데, 하늘색 골렘에게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7사단 진지에 있다더니, 여기까지 이동한 것도 보고를 안해? 1군단 놈들도 엉망진창이군.
상공 200미터 높이에서 투덜거린 말이 지상까지 들리는 걸 보니, 메세지 전달 마법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