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마리우스
잠시 후, A-1 구역의 한 밀실.
- B-13 구역에 위치한 팔미라 시 고등법원은 C-56구역 경호로봇 파괴사건에서 경호로봇의 인격과 자기방어권리를 인정해달라는 안드로이드인권연대의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홀로그램 화면에는 법원과 그 앞에 선 사이보그들 그리고 그들을 대표해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황금색 의체의 사이보그가 비춰졌다.
하지만 검은색 가죽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보는 알브레히트 오귀스트 시장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만 갔다.
"오큘러스, 언제까지 내 시간을 낭비하게만들 셈이지?"
그는 결국 소파에서 일어나며 홀로그램 화면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홀로그램 화면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리고는 벽과 함께 좌우로 열리기 시작했다.
알브레히트 시장 앞엔 1미터 길이의 짧은 길만 남았다.
나머지 바닥과 벽, 천장이 모두 사라지자, 반경 40미터에 달하는 유리질 구조물이 나타났다.
유리질 구조물에선 불규칙하게 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그 빛은 구조물 중심에 둥둥 떠 있는 지름 2미터 크기의 검은 구체의 표면을 때렸다.
그때마다 검은 구체가 물결치며 황금빛 지도 같은 선을 드러내보였다.
- 알브레히트, 나를 대할 땐 조금 더 공손할 필요가 있겠군요. 내 나이는...
"강인공지능이 무슨 나이로 유세를 떨려고 해?"
- 당신이 인간인 이상, 경험에 따른 현명함에 대해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오래살수록 현명해진다면, 이 좀비세상은 진작 네 손에 끝이났겠지."
- 또 이야기가 이상한 곳으로 도는군요. 오늘은 무슨 이유로 나를 찾아왔습니까?
오큘러스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알브레히트 시장에게 이유를 물었다.
'정보를 요구하고 먼저 숙이고 들어와라?'
너무 뻔한 수작이었다.
하지만 팔미라 시의 모든 정보를 독점하는 오큘러스가 부리는 수작에 걸리지 않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바덴 절벽에 대한 영상정보, 네가 일부러 숨긴 건가?"
- 수준 높은 마법이 사용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개기일식을 일으키는 사령술, 나도 그 정도는 알아."
- 두 가지 마법으로 가려진 영역입니다.
개기일식을 일으키는 마법뿐만 아니라 한 가지 마법이 더 펼쳐졌다는 대답에 알브레히트 시장은 속으로 놀랐다.
하지만 오큘러스 앞에서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위해 곧바로 되물었다.
"네 천리안이라면 그 마법들을 꿰뚫어볼 수 있을텐데?"
- 가능합니다.
오큘러스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적어도 오큘러스의 본체가 있는 이 장소에서 반경 2천 킬로미터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어떤 사건도 되돌아볼 수 있는 능력.
그게 바로 천리안이었기 때문이다.
"자, 내가 풀맨의 연구까지 미루고 직접 찾아왔으니까 보여줘.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 가려진 장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하려면 대량의 자원을 소모해야합니다.
"에너지자원과 희생양이라면 시정부가 지원하겠다. 필요자원의 양만 요구해."
- 대규모 사령술을 파훼하려면 서훈사제의 온전한 영혼이 필요합니다.
오큘러스의 대답을 듣자마자, 알브레히트 시장의 입술 붙어버렸다.
서훈사제란 로두스 성국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을 받은 사제를 의미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로두스 성국에서 훈장을 받으면 주교위에 오르게 된다.
오큘러스는 로두스 성국 주교의 온전한 영혼을 요구한 것이다.
"설마... 신성유물에 갇힌 사제의 영혼을 소모자원으로 쓰겠다는 건가?"
- 그렇습니다.
현재 팔미라 시가 확보한 신성유물은 세 가지였다.
문제는 오큘러스가 얘기했듯이 '온전한 영혼'으로 평가받으려면 최소 로두스 성국 기준 2급 이상의 신성유물이어야 했다.
그리고 현재 팔미라 시가 확보한 2급 이상의 신성유물은 단 하나뿐이었다.
"베른하르트의 회중시계를 그런 일에 소모해버리면, 7년 뒤에 풀맨은 어떻게 수리하라고?"
- 세 가문이 전력을 다해 연구하고 있으니, 7년 후면 풀맨을 수리할 방법도 찾아내실 수 있을 겁니다.
특정물건이 겪은 세월을 일정시간 되돌릴 수 있는 신성유물.
그게 베른하르트의 회중시계였다.
현재 아틀라스급 골렘인 풀맨을 수리할 방법은 신성유물인 베른하르트의 회중시계를 사용하는 방법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팔미라 시 최대 전력인 풀맨의 유일한 수리수단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거절한다."
- 그럼... 에오터눔 배터리를 사용하겠습니다.
에오터눔 배터리는 아틀라스급 골렘에 탑재하는 고대 배터리 기술의 집약체였다.
다행히 에오터눔 배터리는 언제든지 충전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수량이 적고 충전에 막대한 에너지가 소비되며, 새로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현존하는 에오터눔 배터리는 아틀라스급 골렘을 소유했거나 소유하고자하는 도시와 권력자들 소유였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알브레히트 시장이 아무리 팔미라 시의 시장이라도 그가 운용할 수 있는 에오터눔 배터리의 수에 한계가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오귀스트 에너지의 발전소에서 생산한 에너지로는 부족한가?"
- 부족합니다.
"천리안 사용에 필요한 에너지는 어느 정도지?"
- 완전 충전한 에오터눔 배터리 2.45개에 해당하는 전력입니다.
"그건 팔미라 시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전체 전력의 200%가 넘는 규모잖아!"
그건 풀맨에 장착한 에오터눔 베터리뿐만 아니라 오귀스트 가문 소유의 에오터눔 배터리까지 모두 사용해야된다는 뜻과 같았다.
그럼 에오터눔 배터리를 다시 충전하기까지 적어도 2년 이상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은 그 2년 동안 팔미라 시는 아틀라스급 골렘을 운용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갑자기 마운틴 퀸급의 적이 쳐들어오기라도하면 대응할 방법이 없어. 내 임기 내에 그런 불상사를 겪을 순 없지.'
알브레히트 시장은 고민할 것도 없다는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오큘러스 시스템이 기다렸다는듯이 제안해왔다.
- 제 시스템의 주 전원을 사용하면 시장님의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건 오큘러스가 보유한 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알브레히트 시장은 그 달콤한 말에 곧바로 넘어가지 않았다.
"원하는 게 뭔가?"
- 사이보그였다가 완전한 로봇으로 거듭난 안드로이드의 인권을 인정해주십시오. 그들은 인간으로 수십 년 이상 살았던 자들입니다.
"거부한다."
알브레히트 시장은 고민하지도 않고 거절했다.
- 그럼 팔미라 시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인 F-12구역을 안드로이드 자치구역으로 할양해주십시오.
"거부한다. 그건 시장의 권한을 넘어선 요구다!"
알브레히트 시장은 안드로이드들의 인권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보다 더 펄쩍 뛰었다.
"그런 짓을 허용했다간 나뿐만 아니라 오귀스트 가문 전체가 다신 시장선거에 나오지 못할 거다. 오큘러스, 나 개인과 가문의 존망에 위해가 되는 부탁은 들어줄 수 없다고 몇번이고 얘기했었다."
- 그럼 천리안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팔미라 시에 위협이 될 일이라면 네가 먼저 알려줬겠지. 이번 천리안 사용 건은 없었던 일로 돌리지."
알브레히트 시장이 고개를 내저으며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사라졌던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이 다시 뒤덮이더니 밀실이 재구성됐다.
오직 팔미리 시의 시장만 접견할 수 있는 강인공지능 오큘러스의 모습은 순식간에 그 밀실에 의해 가려지고 말았다.
- 조만간 다시 찾아오시게 될 겁니다.
그때 밀실 전체가 오큘러스의 목소리에 따라 진동했다.
"벌써 잊어버렸나? 내 임기는 이제 3개월밖에 남지 않았어."
- 지나간 시간이 길어질수록 천리안 사용에 소모되는 에너지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알브레히트 시장은 오큘러스의 당부에 대답도 하지않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
내가 진지에 복귀했을 때, 내 부하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3천 대가 넘는 수송차량들과 외골격 로봇을 입은 병사들이 전장을 정리 중이었다.
콘크리트처럼 굳은 접착제를 능숙하게 부수고 소드테일의 사체를 수거하는 병사들을 지켜보는데,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왔다.
< 전장 정리를 맡은 후속부대의 보고입니다. >
< 통신을 연결해도 되겠습니까? >
"연결해."
내가 대답한 순간, 중년의 은발 남자의 모습이 워슈트 정면 디스플레이에 비춰졌다.
- 709 수송여단 산하 19 소송단 단장 모리츠 칼러 중령입니다.
"우리 부대원들을 대신해서 전리품을 수거해줘서 고맙습니다."
- 1군단은 아서 이사님과 아서용병단의 도움을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짧은 은발의 모리츠 칼러 중령은 감사의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 중상자부터 팔미라 시로 이송했지만, 추가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인원보고를 받으시겠습니까?
"그럽시다."
내가 대답한 순간, 시스템이 병력현황을 내 좌측 시야에 띄웠다.
< 총원 24,034명 >
< 사망 8,177 명 >
< 중상 15,485 명 >
< 경상 365 명 >
- 이사님께서 7사단 진지를 살펴보시는 동안 439명의 중상자가 추가로 사망했습니다.
"저온수면캡슐이 부족해서인가?"
- 그렇습니다.
수송여단이 도착하기 전엔 부상자는 많은데 저온수면캡슐은 부족했었다.
'변이종이 하필 우리를 공격하지만 않았으면 이렇게 많이 죽거나 다치지는 않았겠지.'
그게 문제였다.
일반적인 수준 이상으로 발생한 사망자와 중상자는 용병들이 보유한 저온수면캡슐의 숫자를 훌쩍 넘어버린 것이다.
"먼저 출발한 중상자들이 병원에 도착하려면 얼마나 남았지?"
- 4시간 반 정도 남았습니다.
그 순간 워슈트 좌측 디스플레이에 현재 이송 중인 부상자들의 위치가 지도 위에 표시됐다.
내가 그 모습을 보고 확인하는데, 모리츠 칼러 중령이 보고해왔다.
- 섬멸작전군 진지의 전리품 수거를 완료했습니다.
- 현재까지 확보한 전리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 소드테일 처치현황 >
< 총 처치 소드테일 수 : 약 367만 마리 >
< 확보한 사체는 다음과 같습니다. >
< 1레벨 소드테일 : 62만 구 >
< 2레벨 소드테일 : 2만 6,570구 >
< 3레벨 소드테일 : 223 구 >
내가 현황판을 살피는데, 모리츠 칼러 중령의 목소리가 날 일깨웠다.
- 이는 섬멸작전군이 1군단과 합류한 이후에 기록한 전과만을 토대로 집계한 결과입니다.
709 수송여단이 부상자들의 이송을 주도했다.
그 말은, 먼저 출발한 에어로트럭에 실린 소드테일의 사체 현황도 살필 수 있었다는 뜻이었다.
"왜 앞선 전투의 성과는 포함하지 않은 겁니까?"
- 아서 이사님께서 계시지 않은데, 저희가 어떻게 다른 전투에서 발생한 전리품에 손을 댈 수가 있겠습니까?
그건 아주 방어적인 태도였다.
난 모리츠 중령의 반응만 보고도 1군단이 이번 전후처리 과정에서 날 어느 정도로 대우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 전리품 수거 중에 특이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특이한 점?"
- 점액탄과 각종 폭발탄환을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총 처치하신 소드테일 숫자에 비해 전리품 숫자가 너무 적었습니다.
"360만 마리 이상을 처치했는데, 손에 쥔 건 고작 60만 마리 수준이라니 수율이 좋지 않군."
- 다른 진지와 비교해도 120만 구 이상은 확보할 수 있었어야했는데, 뭔가 이상하긴 합니다.
"이상하다?"
- 최소 150만에서 200만 정도의 사체를 누군가 빼돌린 게 아니라면 이 정도로 숫자가 빈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난 이해할 수 없다는듯이 말하는 모리츠 칼러 중령의 말을 듣고나서야 짚이는 게 있었다.
'코르넬 반물질 코어와 아공간을 형성하느라 170만 구의 시체를 사용하긴 했지.'
개기일식으로 관측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거의 근사치를 맞추는 걸 보니, 모리츠 칼러 중령의 짬밥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전리품의 숫자가 적어서 어디 사망자와 중상자들의 몫은 챙겨줄 수 있겠습니까?"
- 이번 전투로 섬멸작전군이 확보한 현상금과 공헌도는 아래와 같습니다.
- 현상금 : 52조 676억 크레딧
- 공헌도 : 2억 1,549만 점
- 이중 아서용병단과 이사님의 기, 기여도는 약 74%입니다.
- 용병협회에서 공표한 [전투기여 평가기준]과 각 용병들의 계약서를 검토한 결과입니다.
- 사망자의 경우 기여도에 따라 평균 1인당 5억 9천만 크레딧, 중상자의 경우 부상정도에 따라 1인당 평균 5억 1천만 크레딧을 지급하셔야 합니다.
- 사망자와 부상자에 대한 보상액 12조 7,217억 크레딧를 제외한 39조 3,459억 크레딧이 아서 이사님이 직접 행사하실 수 있는 금액입니다.
기여도에 대해 말하는 모리츠 칼러 중령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 사용자님께서 처분하실 수 있는 현상금은 39조 3,459억 크레딧, 공헌도는 1억 6,015만 점 입니다. >
나와 아서용병단의 용병들은 공헌도 697만 점을 넘기고 밀러쉴더스에서 독립했다.
하지만 독립하자마자 받은 첫번째 의뢰에서 그보다 20배 이상 높은 공헌도를 얻고 만 것이었다.
"사망자와 부상자에 대한 보상이 먼저다. 전리품 수거가 끝났으니 이만 복귀하겠소."
- 위기의 순간에 1군단에 합류해주신 점,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가 작별을 고하자, 모리츠 칼러 중령이 고개를 깊게 숙여보였다.
난 워슈트 콕핏의 전면 디스플레이를 향해 고개를 한번 숙여서 답을 대신한 후, 통신을 종료했다.
"복귀한다."
***
약 3시간 후, B-40구역에 위치한 오드와이어 실드 사 대표이사실.
노크도 없이 문이 열렸다.
하지만 갈색 반곱슬머리의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유리창 너머로 B-40 구역의 여러 빌딩들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공교롭게도 B-40 구역에는 오드와이어 실드 사의 빌딩보다 높은 건물은 없었다.
그 모습을 본 검은머리 사내가 조심스럽게 그의 뒤에 서더니, 고개 숙이며 보고했다.
"이번에 크라노야 섬멸작전군의 작전사령관으로 임명된 아서 이사가 확보한 공헌도를 파악해왔습니다."
"얼마라던가?"
반곱슬머리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아서 이사가 이번 전투로 손에 넣은 공헌도는 4억 7천만 점입니다."
"4억? 윌리엄 밀러가 들으면 피를 토하겠군."
"원석을 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으니, 앞으로 그 자가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낼 일은 없을 겁니다."
검은머리 사내는 에둘러 밀러 쉴더스의 대표가 업계에서 은퇴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반곱슬머리 남자 리드 오드와이어는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곤 뒷짐 진 채로 돌아보며 물었다.
"그 아서 이사라는 자와 단둘이 만나고 싶군. 가능하겠나?"
"그건..."
"역시 이렇게 요란한 상황에선 어렵겠나?"
"따로 라인을 가동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용병협회에서 공개입찰 쪽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왔습니다."
"라이언 빈슨... 판을 크게 벌려서 신임 이사를 챙겨주시겠다?"
"무리하더라도 공개입찰 전에 자리를 만들어볼까요?"
"마리우스나 베넷보다 먼저 만날수만 있으면 나머지는 내가 해결할 수 있다."
10대 그룹 중 마리우스 그룹은 서열 1위, 베넷 그룹은 서열 2위였다.
그리고 지난 100년 동안 한번도 서열 3위였던 오드와이어 그룹에게 자신들의 랭킹을 빼앗긴 적이 없는 강호들이기도 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루엔, 4억 7천만 점의 공헌도면... 우리가 두 명의 시의원을 더 배출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10대 그룹 중 3위인 오드와이어 그룹에서 두 명의 시의원을 추가로 배출한다는 건 100년 이상 밟아본 적 없는 2위 베넷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말과 같았다.
"이번 일만 성사시키면, 아버님께 말씀드려서 자벳과의 결혼을 허락하시도록 힘 써주마."
"가, 감사합니다. 대표님!"
***
그 시각, D-135 구역 공장지대 물류창고.
"이사님, 이쪽은 C 구역 좀비인자 매입청을 맡고 계신 포드비스 워렌 청장님이십니다."
검은 정장차림의 데이비드 스펜서 계장이 내게 한 노인을 소개해왔다.
"반갑습니다. 포드비스 워렌입니다."
내게 먼저 손을 내민 노인은 회색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빗어넘긴 신사였다.
선이 굵은 얼굴에 잘 정돈된 머리카락과 콧수염까지.
한손에 레드와인 잔만 들려놓으면 파티를 주최하는 억만장자라고 해도 믿을 법한 외모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서입니다."
내가 손을 마주잡자, 워렌 청장은 몇년 만에 아들이라도 만난 것처럼 환하게 웃어보였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아서 이사님."
포드비스 워렌 청장은 스펜서 계장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물었다.
"스펜서, 아서 이사님께서 이번 전투로 공헌도를 몇 점이나 벌어들이셨다고 했지?"
그러자, 데이비드 스펜서 계장이 서류철 하나를 공손하게 내밀며 대답했다.
"포상금을 제외한 공헌도만 4억 7,597만 점입니다. 아마 4대 기사를 제외하고 한번의 전투에서 이만한 공을 세운 용병은 없었을 겁니다."
"4대 기사뿐인가? 사이보그 용병을 기준으로하면 아마 팔미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게야!"
난 호들갑을 떠는 두 사람을 향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스펜서 계장에게 서류철을 넘겨받은 워렌 청장이 내가 보기 쉽게 서류철을 펼쳐서 내게 건냈다.
- 소드테일 처치현황
- 1레벨 소드테일 : 134만 구
- 2레벨 소드테일 : 6만 5230구
- 3레벨 소드테일 : 445 구
- 현상금 : 107조 6,485억 크레딧
- 공헌도 : 4억 7,597만 점
내가 서류를 살피는데, 제니퍼가 다가와 보고했다.
"아서용병단 소속 중상자 5,330명 전원 입원조치 완료했습니다."
제니퍼는 포드비스 워렌 청장 등 외부인들의 눈과 귀를 생각해 마치 부하들을 병원에 입원시킨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 속 뜻은 중상자들은 이미 블랙마켓에 위치한 샤를연구소로 이송해서 신체복원과정에 들어갔다는 의미였다.
"고생했어."
난 워렌 청장과 스펜서 계장 그리고 소드테일 사체를 정리하는 좀비인자 매입청 소속 직원들을 보며 제니퍼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제니퍼는 물러나지 않고 다시 내게 고개를 숙였다.
"더 보고할게 남아있나?"
"용병협회장님께서 공헌도 공개입찰을 제안해오셨습니다."
"공개입찰? 공헌도를 공개적으로 판매하자는 뜻인가?"
"용병협회에선 대규모 공헌도 거래에서 판매자를 보호하기위해 고안된 거래방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제니퍼가 설명한 순간이었다.
"아, 아! 그런 방식도 있죠. 하지만 굳이 번거롭게 여러 사람을 불러모을 필요는 없습니다."
포드비스 워렌 청장은 손사레를 치며 내게 물류창고 내 사무실 방향을 가리켜보였다.
'다른 구매자들과 경쟁하지 않는 방법을 택하시겠다?'
난 워렌 청장의 시커먼 속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기관장인 그가 얼마나 노골적으로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긴밀한 논의를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종류의 논의를 원하시는 겁니까?"
"이것 참... 말씀드리기 곤란하군요."
워렌 청장은 스펜서 계장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스펜서 계장이 나와 워렌 청장에게 고개를 깊게 숙이며 말했다.
"포상금과 공헌도 정산은 아서 이사님 계좌로 처리되었으니,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가 물러나자, 워렌 청장을 따라온 좀비인자 매입청의 직원들도 썰물처럼 물류창고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허, 헛! 제가 공적으로는 좀비인자 매입청장입니다만, 사적으로는 워렌 그룹의 차남입니다. 아서 이사께서 공헌도 거래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만족하실만 한 제안을 준비할 수 있죠."
워렌 청장은 잘 정리한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날 사무실로 이끌었다.
그때 물류창고 문이 쾅! 하고 요란하게 열렸다.
그리곤 일단의 신사들이 앞다투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워렌 청장, 공과 사가 구분이 안됩니까?"
미식축구선수처럼 건장한 회색눈의 장년인은 들어오자마자 워렌 청장에게 삿대질을 해댔다.
"저렇게 사리사욕에 눈이 먼 자가 좀비인자 매입청장이라니..."
그러자 키는 회색눈의 장년인만큼 크지만, 푸른 체크무늬 정장을 입고 은테 안경을 쓴 마른 50대 후반의 남성이 그 뒤를 따라 들어오며 비아냥거렸다.
그때, 그들 뒤로 따라들어오던 백발의 노인이 세상사가 모두 걱정스럽다는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보탰다.
"우리가 낸 세금이 어디로 새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워렌 청장은 백발노인을 보자마자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리더니, 그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댔다.
"베, 베로노바 마리우스... 당신이 직접 찾아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