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131화 (131/152)

131화. 뜻밖의 오해

'베로노바 마리우스?' 

< 양자암호통신망에서 해당 인물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시겠습니까? > 

내가 생각한 순간이었다. 

시스템이 옷깃에 다는 뱃지 형태의 양자암호통신단말을 내 시야에 띄워서 보여주며 물었다. 

그건 본래 용병협회 이사의 권한으로 위기 시에 통신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양자암호통신단말이었다. 

하지만 용병협회 이사로 취임하면서 만들어진 내 계좌에 방금 돈과 공헌도가 들어왔으니, 위기 상황이 아니라도 사용할 수가 있었다. 

'얼마지?' 

난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오자마자 가격부터 물었다. 

전에 세이지 크리스탈과 원소폭발 등에 관한 정보를 검색했을 때 90억 크레딧이 넘는 돈이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 [크루얼 핸즈] 베로노바 마리우스에 관한 정보는 3천억 크레딧에 제공되고 있습니다. > 

'크루얼 뭐? 일개 개인에 관한 정보가 3천억 크레딧이나 된다고?' 

- 베로노바 마리우스는 10대 그룹 중 1위인 마리우스 그룹의 직계혈족 중 한 명입니다. 

그때 제니퍼의 정신파가 들려왔다. 

'가장 3대 가문의 귀족에 가까운 자들이라 그들에 대한 정보도 값이 비싸다 그 말인가?' 

- 올해 97세인 베로노바 마리우스는 약 3년 전에 사냥기업인 마리우스 파트너스의 대표이사가 되었습니다. 

내가 묻자, 제니퍼는 베로노바 마리우스의 개인정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 하지만 그 전엔 훨씬 힘 있는 마리우스 그룹 계열사에서 활동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 관한 정보료가 비싸다면 현재 근무하는 마리우스 파트너스의 대표이사가 아니라 그 전에 근무했던 계열사들과 관련된 정보들 때문일 겁니다. 

그건 의외였다. 

양자암호통신망에 등록된 정보에 기업비밀도 포함되어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특이할만한 점은?' 

난 베로노바 마리우스에 대해 꽤나 자세히 아는 듯한 제니퍼에게 정신파로 물었다. 

베로노바 마리우스는 나이에 비해 20년 정도 젊어보였다. 

하지만 그래봐야 은퇴할 시기가 훌쩍 지나 중심 계열사에서 사냥기업까지 밀려난 97세 노인에 불과했다. 

그런 자에 관한 정보를 3천억 크레딧이나 주고 사긴 아까웠다. 

- 한 때, 기간트라이더로 이름을 날렸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장벽방어군 출신이란 뜻인가?' 

- 전쟁용병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전쟁용병?' 

- 기간트나 골렘을 가지고 전쟁에 참여하는 용병들을 전쟁용병이라고 부릅니다. 

'그 말은... 일반인이 개인적으로 기간트나 골렘을 소유할 수 있다는 얘기 같군?' 

- 소유권과 관련면허 등이 있어야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망명귀족 중 기간트나 골렘을 소유한 망명귀족과 그렇지 못한 망명귀족에 대한 처우는 명확히 다른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개인이 기간트나 골렘을 소유할 수 있다니... 그런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 

- 일반 용병들에겐 해당사항이 없는 얘기입니다. 기간트나 골렘을 가지고 망명할 수 있는 귀족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죠. 

내가 관련면허라는 것에 대해 물어보려할 때였다. 

노신사 베로노바 마리우스가 워렌 청장 앞을 지나치며 물었다. 

"아서 이사와 공헌도 거래를 하는 자리라면... 청장님보다는 제가 이 자리에 더 적합한 사람 아니겠습니까?" 

베로노바 마리우스는 그렇게 묻더니, 상석에 앉아버렸다. 

그건 명백히 좀비인자 매입청의 청장인 포드비스 워렌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워렌 그룹의 차남을 무시할 수 있다?' 

난 베로노바 마리우스에 대한 중요도를 재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포드비스 워렌은 10대 대기업 중 서열 4위인 워렌 그룹의 차남이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좀비인자 매입청이라는 정부기관의 장이기도 했다. 

그런데 마리우스 그룹의 사냥기업의 대표가 그런 포드비스 워렌을 대놓고 무시한다? 

그 사이엔 분명 내가 모르는 역학관계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때 미식축구선수처럼 건장한 회색눈의 장년인이 내게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캘러핸 다이나믹스의 대표 우고 캘러핸입니다." 

캘러핸 다이나믹스는 10대 그룹 중 5위인 캘러핸 그룹의 사냥기업이었다. 

일전에 용병협회장이 아서용병단의 전력을 평가할 때, 워슈트 같은 기갑전력까지 포함하면 캘러핸 다이나믹스와 견줄만하다며 날 치켜세워서 특히 기억에 남은 사냥기업이었다. 

"아서입니다. 캘러핸 다이나믹스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갑자기 쳐들어와서 놀라신 모양이군요?" 

회색눈의 우고 캘러핸은 내게 물으며 자연스럽게 물류창고 안을 둘러봤다. 

그는 자연스럽게 사업장을 구경하는 태도를 연기했다. 

하지만 난 그의 눈길에서 뭔가를 찾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설마 워슈트를 훔쳐보려고 온 건가?' 

그러나 우고 캘러핸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우리 계열사 중에 캘러핸 블레이드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제 사촌 형님이 관리하시는 회사인데..." 

"그런데요?" 

"그분이 글쎄... 아서 이사님이 캘러핸 블레이드 사의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하고있다지 뭡니까?" 

"무단 사용이라, 정확히 어떤 기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난 겉으로는 태연한 척 되물었다. 

하지만 속 마음은 그와는 달랐다. 

'캘러핸 그룹이 울트라소닉 소드 복제 문제를 꺼내든다고?' 

분명 난 캘러핸 블레이드에서 만든 울트라소닉 소드를 복제했다. 

하지만 내가 그 동안 당당하게 울트라소닉 소드를 사용해온 건, 절대 캘러핸 그룹이 내게 딴지를 걸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 예상을 깨고 우고 캘러핸이 울트라소닉 소드 문제를 들고 온 것이다. 

"제가 기술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무슨 울트라소닉 소드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무단으로 복제하셨다던데...?" 

"하, 하! 그래요?" 

우고 캘러핸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하는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 워슈트라는 로봇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가능하면 한번 구경해보고 싶군요." 

우고 캘러핸은 워슈트란 단어를 입에 담은 순간 유난히 눈을 빛냈다. 

그가 탐욕어린 눈빛을 번뜩이는 순간 난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울트라소닉 소드의 로열티를 뜯어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워슈트를 가져가고 싶어서 왔나보군.' 

별볼일 없는 내 용병단이 캘러핸 다이나믹스와 견주어지는 이유가 워슈트였다. 

그러니 그 욕심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약점을 노출해주는데, 못 본 척 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니까 제가 울트라소닉 소드의 초진동 기능을 훔쳐왔다? 그래서 그 부분을 따지려고 찾아오신 거군요?" 

난 어쩔 수 없이 그가 내민 먹이를 덥썩 물고 말았다. 

"그것도 한 가지 목적이라고 볼 수 있겠죠." 

"초진동 기능이 캘러핸 블레이드 사의 원천기술이다?" 

내가 마주 묻자, 우고 캘러핸이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제 입으로 기술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더니... 그런 수준으로 내게 초진동 기능의 로열티를 지불하라고 요구하려고 했다는 건가?' 

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팔미라 시에서 초진동 소드를 판매하는 기업은 많았다. 

하지만 캘러핸 그룹에 로열티를 지불하는 기업은 채 다섯 곳도 되지않았다. 

"그럼 캘러핸 그룹은 다른 기업의 원천기술을 사용할 때, 항상 정당한 대가를 치뤄왔겠군요?" 

"물론입니다! 감히 지금 캘러핸 그룹의 기술 독립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겁니까?" 

우고 캘러핸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당장 내 멱살이라도 쥘 기세로 물었다. 

난 그 모습을 보고 베로노바 마리우스와 워렌 청장과 차례로 눈을 마주쳤다. 

"하우징시스템, 방금 우고 캘러핸 씨와 나눈 대화는 모두 촬영했나?" 

- 우고 캘러핸 님이 들어오신 순간부터 지금까지 8개 방향에서 촬영한 영상정보를 저장했습니다. 

그 순간 각기 다른 여덟 방향에서 촬영한 홀로그램 영상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 정당한 대가를 치뤄왔겠군요? 

- 물론입니다! 

- 물론입니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그 모습을 본 우고 캘러핸은 당황한 표정으로 따져 물었다. 

하지만 난 그를 무시하고 워렌 청장과 베로노바 마리우스에게 말했다. 

"두분이 증인이십니다. 캘러핸 그룹은 아키텐 시와 내통해왔다고 자백했습니다." 

"뭐, 뭐라고?" 

"아서 이사, 그게 무슨 뜻이오?" 

내 말을 들은 우고 캘러핸뿐만 아니라 워렌 청장까지 깜짝 놀라 두어걸음 물러나며 내게 물었다. 

10대 대기업 중 서열 5위인 캘러핸 그룹이 적성도시인 아키텐과 내통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팔미라 시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큰 스캔들이었기 때문이다. 

"팔미라 시가 자랑하는 워머신의 모태는 아키텐 시의 참수로봇이고 울트라소닉 소드의 모태는 그 참수로봇의 전용무기인 초음파참수도입니다." 

내가 거기까지 말한 순간, 우고 캘러핸의 얼굴이 빠르게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워머신과 울트라소닉 소드의 모태가 아키텐의 참수로봇과 초음파참수도라는 건 너무 유명했기 때문이다. 

우고 캘러핸은 당황했는지 입을 뻐끔거릴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영상증거까지 확보했으니, 수사의뢰도 어렵지 않겠군요." 

"어... 음?" 

워렌 청장은 감히 이 사안에 대해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사실 이 건은 워렌 청장이 끼어들어야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적대도시와의 내통이라는 사안은 거대하고 지저분한 구정물이었다. 

일의 크기나 정치적 여파를 생각하면 워렌 그룹의 차남이자 정부기관장인 워렌 청장이 발을 담기 싫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내 눈을 피하는 워렌 청장을 보고 난 상석에 앉은 베로노마 마리우스에게 시선을 옮겼다. 

"크흠... 우고, 괜한 얘기를 꺼내서 분위기만 망쳐놨지 않나?" 

그는 멋쩍은듯 일어나더니 정장 손목을 걷어 시간을 확인하는 척 했다.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이 자리를 피하고 싶기는 그 또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이렇게 명성 높으신 증인이 두분이나 계시니, 용병협회 차원에서 이 내통사건을 정식으로 시정부에 고발해도 되겠지요?" 

난 두 사람에게 물으며 품 속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들었다. 

- 형사과장 

- 니콜라스 데커 총경 

그건 내게 호감을 갖고 있는 냉혈기사 니콜라스 데커의 명함이었다. 

"제가 마침 시경찰 본청에 아는 분이 있어서 수사의뢰는 데커 총경에게 맡기면 될 것 같군요." 

"아, 아서 이사님. 제 말을 그런 뜻이 아니었고..." 

내가 꺼내든 명함을 본 우고 캘러핸은 언제 내게 얼굴을 붉혔냐는듯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대며 내 손을 붙잡으려고 들었다. 

"어? 지금 제 입을 막으려고 직접 손을 쓰시려는 겁니까?" 

"아닙니다! 제 말과 행동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시려하지 마십시오!" 

우고 캘러핸은 화들짝 놀라 침까지 튀겨가며 자신을 하찮은 인물로 내던지기까지 했다. 

"우고 캘러핸 대표님께선 적절한 소명자료를 용병협회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공헌도 거래는 소명자료를 확인한 후, 용병협회에서 공개입찰로 진행하겠습니다. 이의있으신 분 계십니까?" 

나는 우고 캘러핸의 내통혐의를 구실로 공헌도 거래를 뒤로 미뤘다. 

'베로노바 마리우스가 웨렌 그룹의 차남을 정면에서 치받을 정도면... 판을 키울수록 더 좋은 조건을 받아볼 수 있겠어.' 

그건 내가 들고 있는 공헌도가 10대 그룹의 수위권을 다투는 기업들조차도 서로 이를 드러낼만큼 맛있는 먹이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묻자, 베로노바 마리우스뿐만 아니라 아직 자기소개도 못한 푸른 체크무늬 정장을 입은 남자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넷 리스크를 맡고 있는 라몬 베넷입니다." 

은테 안경을 쓴 50대 남자는 가볍게 내 손을 맞잡은 후 안타깝다는 듯 말을 이었다. 

"좋은 거래가 될 수 있었는데, 이 친구가 말 실수를 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엉망이 됐군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어떤 제안들을 가져오셨을지 궁금했는데, 들어보지도 못하다니... 저도 안타깝군요." 

이번에 날 찾아온 서열 1위 마리우스 그룹, 2위 베넷 그룹, 5위 캘러핸 그룹은 사전에 어느 정도 담합을 하고 온 것 같았다. 

우고 캘러핸이라는 멍청한 작자를 앞세워서 날 압박한 것만봐도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날 찾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얼치기 용병의 공헌도 값을 후려칠 생각이었겠지.' 

하지만 그들이 짠 판은 어그러졌다. 

'공개입찰에서도 그렇게 여유만만한 태도로 담합을 할 수 있을지... 한번 지켜보지.' 

내가 속마음을 숨기고 대답하자, 베로노바 마리우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곤 내게 고개를 한번 끄덕여보인 후 물류창고를 나가버렸다. 

그 뒤로 안절부절 못하는 우고 캘러핸과 차가운 인상의 라몬 베넷까지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 

"우리 워렌 그룹은 아서 이사한테 악감정 같은 건 없었습니다. 공개입찰에선 나 대신 내 조카가 나서겠지만, 좋은 거래가 됐으면 좋겠군요." 

"그러길 바랍니다." 

워렌 청장은 뭔가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며 물류창고를 나섰다. 

*** 

이틀 후, 용병협회 39층 대회의장. 

베로노바 마리우스의 비서 로드리고가 대회의장의 문을 열고, 베로노바 마리우스가 대회의장에 발을 들였다. 

그 순간 40여 명에 달하는 참석자들이 그와 눈을 마주치자,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문제는 상석에 앉아있다 일어나는 아서 이사 양옆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있었다. 

아서 이사의 좌측에 선 남자는 힘든 일이라곤 겪어본 적 없이 자란 것 같은 귀공자 스타일의 젊은이였다. 

어딘지 모르게 귀티 나는 외모에 푸른 눈이 눈에 익었다. 

하지만 그가 누구와 닮은 건지 베로노바 마리우스는 끝내 떠올리지 못했다. 

아서 이사의 오른쪽에 서 있는 옆머리를 짧게 치고 윗머리는 세운 중년남자의 모습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귀공자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기도 했다. 

"그로처 부단장? 용병협회장이 오른팔을 내줬어?" 

베로노바 마리우스는 외눈안경을 쓴 중년남자를 한눈에 알아봤다. 

"그를 일곱번째 이사로 임명한 것부터 의심스럽긴 했습니다만... 둘 사이에 긴밀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로드리고는 베로노바를 좌측 첫번째 자리로 안내하며 대답했다. 

베로노바 마리우스가 좌측 첫번째 자리에 선 순간이었다. 

맞은 편에 선 라몬 베넷이 가볍게 그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늙은이가 제일 늦었군." 

베로노바 마리우스는 전혀 미안하지 않은 말투로 아서 이사에게 말했다. 

"이제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앉으시죠." 

아서 이사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아서 이사는 그가 자리에 앉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자리에 앉았다. 

아서 이사까지 앉자, 라몬 베넷과 각 그룹의 사냥기업 경영자 40명이 차례로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각각 다른 회사의 경영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업이 속한 그룹의 서열에 따라 군인 못지 않은 위계를 선보이고 있었다. 

그때, 베로노바 마리우스와 윌리엄 밀러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윌리엄 밀러가 가볍게 일어나 고개를 숙여보였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자기 휘하 용병으로 부리던 아서가 용병협회의 일곱번째 이사가 되어 상석에 앉은 모습을 보고도 안색이 나쁘지 않아보였다. 

'속이 편한 건가 아니면... 다른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그가 의문을 품은 순간이었다. 

아서 이사 옆에 서 있던 20대 후반의 귀공자 스타일의 남자가 허공을 터치했다. 

그 순간 대회의장 중앙에 홀로그램 화면에 펼쳐졌다. 

- 공헌도 공개입찰 

- 공헌도 : 4억 7,597만 점 

- 입찰방식 : 경쟁매매 

"오늘 공개입찰할 물건은 공헌도 4억 7,597만 4,195 점입니다. 기본적으로 호가는 순수 마그니움 코인으로하며 필요에 따라 귀중품을 더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아서 이사를 대신해서 20대 후반의 귀공자가 입찰방식을 설명했다. 

'저 자는 누군데, 아서 이사 대신 발표를 하는 거지?' 

고개를 갸웃한 베로노바 마리우스는 곧바로 그에게 물었다. 

"내가 늦어서 지금 말씀하시는 분이 누군지 설명을 듣지 못했군요. 아서 이사님, 이 젊은이는 이사님과 어떤 관계십니까?" 

"제 일을 돕고 있는 조셉 메를린 씨입니다." 

아서 이사가 대답한 순간이었다. 

"메를린? 메를린 그룹 사람이라고?" 

"아서 이사가 메를린 그룹과 관계가 있었나?" 

"잠깐, 메를린 가문이면 얼마 전에 베넷 가문과 혼담이 오가지 않았나?" 

"뭐야! 베넷에서 벌써 손을 댔어?" 

각 사냥기업의 경영자들이 온갖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베로노바 마리우스는 베넷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비서인 로드리고를 돌아봤다. 

"사실인가?" 

"방금 확인한 결과... 메를린 가문의 넷째와 라몬 베넷 씨의 조카 마르타 베넷 양의 약혼식에 관한 얘기가 오갔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저, 저 자가 메를린 가문 사람인 건 확실하고?" 

"방금 확보한 음성정보를 토대로 성문분석까지 마쳤습니다. 확실합니다." 

"크흠!" 

베로노바 마리우스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맞은편에 앉은 라몬 베넷이 오른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영감님, 오해하실까봐 미리 말씀드립니다. 조, 조셉 메를린은 메를린 가문에서 내쳐진 자로... 사전에 우리와는 어떤 교감도 없었습니다." 

"그렇습니까?" 

*** 

베로노바 마리우스는 전에 없이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깍듯한 물음을 듣는 순간, 라몬 베넷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베넷 가문이 이렇게 단단히 준비를 해오셨다니... 나도 최선을 다해야겠군." 

"영감님!" 

라몬 베넷과 베로노바 마리우스가 삐걱대는 모습을 보고 난 조셉 메를린을 돌아봤다. 

하지만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담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내 말을 들은 조셉 메를린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크, 큭!" 

웃음소리를 듣고 돌아보니, 그로처 부단장이 라몬 베넷과 베로노바 마리우스의 불화를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사님, 이번 입찰에서 재미 좀 보시겠습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어보이며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