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132화 (132/152)

132화. 250조 크레딧

"공헌도 전체를 200조 크레딧에 사겠습니다." 

오른손을 든 남자는 베로노바 마리우스 옆옆 자리에 앉은 4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 캘러핸 다이나믹스 (재계서열 5위) 

- 신임 대표 다니 캘러핸 

내가 그를 보자, 그의 얼굴 위로 홀로그램이 띄워졌다. 

그는 이틀 전에 분란을 일으킨 우고 캘러핸이 잘리고 그 대신 부임한 신임 캘러핸 다이나믹스의 대표였다. 

"200조 크레딧이면... 우리가 좀비인자 매입청에서 받은 현상금의 두 배 수준 아닙니까?" 

"우리 캘러핸 그룹은 일전에 아서 이사님께 결례를 범한 점을 사과하는 의미에서 처음부터 진정성 있는 가격을 제시한 겁니다." 

내가 묻자, 조셉 메를린이 대답하기도 전에 다니 캘러핸이 일어나더니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용병협회 이사실로 형식적인 소명자료만 제출한 캘러핸 그룹은 내가 내통혐의를 제기하는 걸 돈으로 막을 생각인 것 같았다. 

그는 우고 캘러핸만큼이나 키가 컸다. 

하지만 미식축구선수 같이 터질듯한 근육질이었던 우고 캘러핸과는 달리 몸집이 얍실해서 복서 같은 체형이었다. 

문제는 200조 크레딧이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대회의장이 침묵으로 물들었다는 점이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높은 가격을 부르면, 우린 다 알아서 빠지라는 말인가?" 

다니 캘러핸의 응찰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윌리엄 밀러였다. 

10대 대기업 중 말석을 차지한 밀러 그룹이 생각하기에도 200조 크레딧이란 돈은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200조 크레딧이면 캘러핸 그룹 1년 순이익의 30% 이상일텐데, 당장 그만한 현금이 준비되어 있긴 해?" 

턱부터 코 아래까지 갈색수염이 덥수룩한 30대 초반의 남자가 다니 캘러핸의 맞은 편에서 그를 보며 물었다. 

- 레이튼 시스템스 

- 로베르트 레이튼 대표 

내가 그의 머리 위에 뜬 명패를 본 순간이었다. 

"재계서열 서열 6위 레이튼 그룹 파블로 회장의 조카입니다." 

조셉 메를린이 입을 가린 채, 설명했다. 

하지만 로베르트 레이튼 대표의 질문을 받은 다니 캘러핸은 그에게 대답조차하지 않고 피식 웃어보였다. 

캘러핸 그룹은 재계서열 5위로 레이튼 그룹과 고작 한 단계밖에 차이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니 캘러핸이 로베르트 레이튼을 대하는 태도는 상종할 가치도 못 느낀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 모습을 본 램버트 암과 카윈 디펜스의 대표들이 불만을 쏟아냈다. 

"캘러핸은 올해 공헌도 수급에 문제 없지 않아? 왜 저렇게 무리하는 거야?" 

"이번 기회에 우리를 짓밟고 시의원 의석 두 자리를 더 차지하시겠다?" 

두 사람은 레이튼 그룹의 뒤를 이어 10대 대기업 중 7,8위에 이름을 올린 기업 소속이었다. 

"재계서열 7위 램버트 그룹은 1년에 공헌도 수집에만 420조 크레딧, 8위인 카윈 그룹은 384조 크레딧을 사용합니다." 

그때 그로처 부단장이 옆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그가 알려준 램버트와 카윈 그룹의 자금운용 수준은 내 기대 이상이었다. 

"저번 사막정화 작전 때 카윈 디펜스가 꽤 손해를 봤다고 들었습니다. 카윈 그룹의 공헌도 수집에도 악영향이 있었겠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램버트 그룹도 카윈 그룹만큼이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그로처 부단장의 대답은 내 예상 밖이었다. 

"사막정화 작전 때, 램버트 그룹의 사냥기업이 참여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요?" 

국지전과 사막정화 작전 그리고 소드테일 범람까지 그 어떤 전투에서도 램버트 그룹의 사냥기업이 참여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로처 부단장에게 묻자, 그로처 부단장이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램버트 그룹의 회장이 아들을 둘이나 골렘나이트로 양성 중이랍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자금이 소모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램버트 그룹의 내밀한 사정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였다. 

"젠장, 200조 크레딧이면 가격 한번 못 불러보고 물러나게 생겼군!"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검은 머리의 남성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 루비치 가드 (재계서열 9위) 

- 필리프 루비치 대표 

그 순간 검은 머리 남성의 머리 위로 홀로그램이 띄워졌다. 

필리프 루비치는 이번 공개입찰에 참여한 사냥기업 대표 중 가장 어린 축에 속했다. 

그가 제멋대로 일어난 순간, 그 뒤에 서서 시립해있던 40대의 수행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난 그 모습을 보고 필리프 루비치 맞은편에 앉은 윌리엄 밀러 뒤를 바라보았다. 

거기엔 밀러 쉴더스의 인사팀장 핀 아들러가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는 제니퍼의 피의 하수인이었다. 

내가 핀 아들러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윌리엄 밀러의 귓가에 뭐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윌리엄 밀러가 자리에서 일어나 대회의장 좌우에 앉은 사냥기업의 대표들을 둘러봤다. 

그 순간 일곱 명의 경영자들이 윌리엄 밀러와 눈이 마주친 순간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윌리엄 밀러는 오른 손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밀러쉴더스를 포함한 8개 기업 컨소시엄의 대표로 입찰하겠습니다. 205조 크레딧!" 

- 코벨 그룹 (재계서열 19위) 

- 쾬 그룹 (재계서열 24위) 

- 프로일러 그룹 (재계서열 32위) 

- 엘베디 그룹 (재계서열 36위) 

그가 발언한 순간 밀러쉴더스와 연합한 7개 그룹명이 대회의장 중앙의 홀로그램창에 띄워졌다. 

그와 동시에 일곱 명의 사냥기업 대표들이 오른손을 들어 윌리엄 밀러의 주장이 사실임을 증명했다. 

"뭐? 위, 윌리엄. 컨소시엄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가?" 

그 모습을 본 라몬 베넷은 즉각 윌리엄 밀러에게 따져물었다. 

하지만 윌리엄 밀러가 대답하기도 전에 베로노바 마리우스 옆에 앉아있던 갈색 반곱슬머리의 남자가 오른손을 들며 말했다. 

"아서 이사님, 공헌도 공개입찰에서 여러 기업이 컨소시엄을 이루어서 입찰한 전례는 없었습니다. 이는 용병업계의 전통을 무시하시는 행동입니다." 

- 오드와이어 실드 (재계서열 3위) 

- 리드 오드와이어 대표 

30대 초반의 리드 오드와이어는 강경한 어조로 반발해왔다. 

재계서열이 낮은 기업들의 반란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재계서열이 낮은 기업들이 연합하지 않는다면, 마리우스와 베넷 둘의 작은 다툼으로 끝나겠지.' 

그래선 내가 큰 돈을 벌긴 어려웠다. 

둘이 다투다가 어느 선을 넘으면 마리우스와 베넷 둘 중 하나가 물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금력이 부족해서 상위권 기업들과 싸워볼 생각도 못하는 기업들이 연합할 기회를 준다면 어떻게 될까? 

< 루비치 가드 사의 필리프 루비치 대표가 얀 그룹, 조머 그룹과 컨소시엄 구성을 요청해왔습니다. > 

돌아보니, 당장 회의장을 박차고 나갈 것처럼 일어났던 필리프 루비치 대표가 바쁘게 허공을 터치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문제는 바쁘게 허공을 터치하며 다른 기업들과 연합을 조율하는 경영자가 필리프 루비치뿐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내가 공개입찰 전에 교감한 건 밀러쉴더스뿐이었다. 

하지만 밀러쉴더스가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입찰에 참가하는 모습을 본 다른 기업들이 뒤늦게 연합을 구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 이번 전투에 참여한 많은 용병들을 대신해서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겁니다. 용병들이 흘린 피값을 한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으면 한 기업이 값을 치루든 여러 기업이 컨소시엄을 이루고 돈을 모아서 값을 치루든 상관없습니다." 

"아서 이사! 용병업계에도 전통이 있습니다. 이건 전통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짓입니다!" 

내가 컨소시엄을 허용한 순간, 리드 오드와이어 맞은편에 앉은 실반 워렌 대표가 테이블을 두드리며 내게 소리쳤다. 

그는 좀비인자 매입청 청장인 워렌 청장의 조카였다. 

베로노바 마리우스와 눈빛을 교환하는 걸 보니, 마리우스 그룹과 한편을 먹기로 미리 얘기가 끝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손을 내저어 입찰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제가 어제 재미있는 자료를 찾아냈습니다." 

내가 허공을 터치한 순간이었다. 

- 377년도 공헌도 랭킹 

- 1위 : 시장 알브레히트 오귀스트 ( 77억 8,596만 점 ) 

- 100위 : 시의원 로저 루비치 ( 2억 4,437만 점 ) 

- 101위 : 시의원 아도니스 밀러 ( 2억 1,592만 점 ) 

팔미라 시에서 집계한 작년 공헌도 랭킹이 전면 홀로그램창에 띄워졌다. 

"오늘 제가 판매할 공헌도 4억 7천만 점이면 작년 기준 두 명의 시의원을 만들 수 있는 점수더군요. 시의원 의석 두 자리에 관심이 없으신 분은 대회의장을 나가셔도 좋습니다." 

난 대회의장 출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출구를 향해 걸어나간 사람은 없었다. 

그때 내 좌측 시야에 용병협회장 라이언 빈슨의 얼굴이 나타났다. 

- 시장과 시의원을 뽑는 선거가 3개월밖에 안남았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지금이라면 자네 공헌도를 가장 높은 값에 팔 수 있을 걸세. 

'덕분에 이 난장판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군요.' 

내가 생각한 순간, 용병협회장의 얼굴 아래에 내가 생각한 글자가 메세지로 보내졌다. 

시스템이 내 생각을 읽고 나 대신 용병협회장에게 보내준 것이다. 

- 근래에 용병들이 많이 죽어서 재계서열이 낮은 그룹들은 공헌도 수집에 어려움이 많았을 게야. 애가 닳았을테니, 뭉칠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으려고 들 거네.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은 이 정도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용병협회장 라이언 빈슨이 눈을 깜빡이자, 통신이 종료됐다. 

'이 아수라장에서 얼마나 뜯어낼 수 있을지는... 이제 저들의 욕심이 얼마나 큰 지에 달렸다.' 

*** 

대회의장은 이미 바닥에서 올라온 새까만 유리격벽으로 구획이 나뉘어 있었다. 

각자 구성한 컨소시엄들의 내부 회의 내용이 상대 입찰자에게 알려지는 걸 막기 위한 장치였다. 

오직 이 공개입찰의 주인인 아서 이사와 재계서열 1,2위 자리만 격벽이 투명하게 변한 채였다. 

그때, 재계서열 9위인 루비치 그룹의 좌석을 가린 검은 유리격벽이 투명하게 변했다. 

그리고 오른손을 든 루비치 가드 사의 대표 필리프 루비치가 외쳤다. 

- 루비치 컨소시엄 230조 크레딧! 

- 용병협회 안전결제 에스크로 계좌에 '루비치 컨소시엄' 명의로 10조 크레딧이 추가로 입금되었습니다. 

- 루비치 컨소시엄의 총 입금금액은 230조 크레딧입니다. 

용병협회의 경매보조 시스템의 안내음이 대회의실을 울린 순간이었다. 

필리프 루비치가 윌리엄 밀러가 앉은 자리를 보더니, 비릿하게 웃어보였다. 

윌리엄 밀러는 곧장 자신의 유리격벽 상태부터 확인했다. 

그를 가린 유리격벽은 분명 검게 변한 보안상태였다. 

절대 필리프 루비치가 자신을 볼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향해 웃어보인 건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저, 저 자식이!' 

윌리엄 밀러는 곧장 왼손 앞의 검은 원을 터치했다. 

그러자 검은 유리격벽이 투명하게 변했다. 

그와 동시에 홀로그램 창에 회색으로 표시되었던 마이크에 불이 들어왔다. 

"밀러 컨소시엄 235조 크레딧!" 

윌리엄 밀러가 5조 크레딧이나 올려서 응찰한 순간이었다. 

- 윌리엄! 그 이상 응찰하면, 우리 코벨 그룹은 빠지겠습니다. 

윌리엄 밀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돌아봤다. 

재계서열 19위 자리에 앉은 단발머리를 뒤로 묶은 40대 초반의 백인남성은 한 치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윌리엄 밀러를 마주 노려보고 있었다. 

윌리엄 밀러는 곧장 유리격벽 위에 펼쳐진 홀로그램 창을 조작해 기밀통신기능을 활성화시켰다. 

"커맨더 급 배틀슈트 설계도를 받기로 해놓고 겨우 23조 크레딧으로 앓는 소리하는 겁니까?" 

- 당신이 1조 크레딧을 높일 때마다 우리 코벨 그룹이 1,300억 크레딧을 추가로 부담하고 있습니다. 한번에 5조 크레딧을 올리면 어떻게 합니까? 

"호가단위가 5조 크레딧인데, 내가 갑자기 호가단위를 낮추면 저들이 내가 돈이 부족하다는 걸 알아차릴 거 아닙니까?" 

- 그룹 본사에서 더는 지불할 수 없다는 통보를 해왔습니다. 이제 그만 멈춰주십시오! 

"겨우 몇천억 크레딧으로 생색내지마시오. 당신들이 받은 건 커맨더급 배틀슈트야! 

- MA-100C 모델은 다비드 스티글리츠에게 맞도록 주문제작한 배틀슈트입니다. 당장 출시할수도 없는 모델을 가지고 23조 크레딧이면 충분한 값을 치뤘다고 생각합니다. 

"코벨 테크는 솔져급 배틀슈트 제작에도 실패했잖소? 커맨더 급 배틀슈트의 설계도를 보면 분명 획기적으로 관련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겁니다." 

- 윌리엄, 우린 밀러 그룹이 아닙니다. 23조 크레딧도 우리 그룹의 명운을 건 베팅이었소. 그 이상은 지원해드릴 수 없습니다. 

- 윌리엄 밀러 씨, 저... 저희 쾬 그룹도 이 이상은 지원해드릴 수 없습니다. 

코벨 그룹이 한발을 빼자 컨소시엄에 참여한 기업들이 앞다투어 발을 빼기 시작했다. 

하지만 윌리엄 밀러는 그들을 억지로 잡을 수가 없었다. 

이건 그들이 현금을 추가로 입금해주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미 기술지원과 각종 이권분배 등으로 밀러 그룹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패를 사용해버렸다는 점이었다. 

그때였다. 

"250조 크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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