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기간트 마리우스 2세
컨소시엄들의 호가경쟁을 지켜보기만하던 리드 오드와이어가 한번에 15조 크레딧이나 높인 가격을 불러버렸다.
오드와이어 그룹은 재계서열 3위의 대기업이었다.
그 순간 팽팽했던 긴장의 끈이 툭! 하고 끊겨버렸다.
밀러와 루비치, 카윈, 램버트 등 10대 기업 중 하위권을 차지한 기업들은 어렵게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하지만 오드와이어 그룹이 돈지랄을 하자, 한순간에 기가 죽어버린 것이다.
***
톡, 톡! 하고 검지손톱으로 테이블만 두드리던 라몬 베넷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리곤 기세 좋게 15조 크레딧을 높여부른 리드 오드와이어가 아니라 그 옆에 앉은 베로노바 마리우스를 향해 물었다.
"영감님, 방금 보내드린 정보면 메를린 그룹과 베넷 그룹이 이번 사태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걸 아셨을 겁니다."
라몬 베넷은 나와 조셉 메를린은 번갈아보며 베로노바 마리우스에게 말했다.
그건 마치 이 대회의장에 베로노바 마리우스가 아니면 자신을 상대할 수 있는 적수는 없다는 듯한 오만한 태도였다.
심지어 그 상대가 베넷 그룹과 단 한 단계밖에 차이나지 않는 재계서열 3위의 오드와이어 그룹이라도 그의 눈에는 차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런 오만한 태도를 보고도 아무런 항의도 하지못하는 리드 오드와이어의 모습에 있었다.
그건 라몬 베넷이 그만큼 오만할만 한 실력를 갖췄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 순간 베로노바 마리우스 영감은 가볍게 코웃음치며 대답했다.
"흥!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그 모습을 본 라몬 베넷이 은테 안경을 벗어들었다.
그리곤 안경알을 닦으며 말했다.
"영감님께서 겁을 주시니, 어쩔 수 없군요. 아서 이사님, 데이터를 보내겠습니다."
안경알이 잘 닦겼는지 확인한 라몬 베넷은 은테 안경을 쓰며 코받침 부분을 툭 건드렸다.
그 순간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왔다.
< 베넷 리스크의 최고경영자가 제안서를 보내왔습니다. >
< 확인하시겠습니까? >
'보안 상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다운로드하도록.'
< 워머신 전용 제트팩 [팔콘] 계획에 관한 제안서를 다운로드했습니다. >
그 순간 내 좌측 시야에 익숙한 장벽방어군의 워머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곤 처음보는 형태의 장갑이 그 위로 덧씌워지는 영상이 재생됐다.
그 장갑은 워머신의 비행을 돕는 일종의 제트팩이었다.
< [팔콘 프로젝트]는 장벽방어군이 발주하고 베넷에어 사에서 개발한 워머신 비행기능 향상 프로젝트입니다. >
'중장거리 포격을 퍼붓는 아이언스톰 대신 근접전을 주로 치루는 워머신에게 비행기능을 탑재하려고 했다?'
그건 언뜻 보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화력면에서 비교하면 워머신은 아이언스톰에 비할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 공개된 개발목적에 따르면 [팔콘 프로젝트]는 팔미라 시에서 멀리 떨어진 외부전쟁을 돕기위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
< 외부전쟁에선 탄약보급이 어렵고, 아이언스톰이 워머신보다 무겁다는 이유 때문에 상대적으로 화력이 좋은 아이언스톰이 탈락했습니다. >
< 더 가볍고 장시간 전투가 가능한 워머신의 저공비행능력을 향상시키는 것, 그것이 [팔콘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서 이사님의 워슈트에 우리가 만든 팔콘 제트팩을 장착하면 시속 800킬로미터 이상의 비행이 가능해질 겁니다."
"라몬 씨, 그건 장벽방어군에서 발주한 사업 아닙니까? 베넷 그룹에서 마음대로 외부로 유출해도 되는 겁니까?"
그때 리드 오드와이어가 라몬 베넷에게 따지듯 물었다.
"개발은 완료됐지만, 가격문제로 도입엔 실패했습니다. 아서 이사님이 이번에 획득하신 공헌도를 모두 넘기신다면 팔콘 제트팩의 설계도와 시제품 6기 그리고 사용면허를 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라몬 베넷은 눈 하나 깜빡이지않고 대답했다.
'시스템, 워머신의 무게는 얼마지?'
< 비무장 상태의 워머신의 중량은 4.5톤입니다. >
'워머신과 팔콘 제트팩의 설계도를 띄워봐.'
< 사용자님의 지시에 따라 라몬 베넷이 제공한 워머신과 팔콘 제트팩의 설계도 일부를 로드합니다. >
그 순간 내 시야로 워머신과 제트팩의 설계도가 띄워졌다.
그건 가장 중요한 내부설계도와 재원 따위는 포함되지 않은 설계도 일부에 불과했다.
오직 팔콘 제트팩이 어떻게 장착되는지만 보여주기 위해 일부분만 제공한 것 같았다.
내가 워슈트를 떠올린 순간 워머신 옆에 상대적으로 작은 워슈트의 설계도도 펼쳐졌다.
워슈트는 키가 3미터에 불과한데, 워머신은 4미터에 달했다.
설계도 상으로 비교해도 워머신에 맞춰서 제작된 팔콘 제트팩을 곧바로 워슈트에 장착하기는 어려워보였다.
'워슈트와 비교하면 성능은 어느 정도지?
< 제트팩 시험가동 영상과 연구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입니다. >
그 순간 팔콘 제트팩을 장착한 워머신이 비행하는 영상이 내 좌측 시야에 펼쳐졌다.
< 울트라소닉 소드와 방패 등 근접전을 대비한 무기만 장착한 워머신이 [팔콘 제트팩]을 장착하자, 시속 800킬로미터로 15분 이상 기동했습니다. >
< 현재 워슈트의 최고 비행속도는 시속 340킬로미터인 점을 감안하면 2.3배 이상 빠른 비행속도입니다. >
'문제는 라몬 베넷을 완전히 신뢰하긴 어렵다는 점이겠군.'
< 양자암호통신망 검색 결과, [팔콘 프로젝트]에 관한 정보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
'군용으로 개발했으니, 그에 관한 자료가 공용 전산망에 등록되지 않은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만약 라몬 베넷이 보내준 팔콘 프로젝트에 관한 자료가 모두 사실이라면?
'뼈-37로 개조한 워슈트의 무게가 1톤이니까... 장착할수만 있으면 워머신보다 빠르고 오래 비행할 수 있겠어.'
그건 확실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가격이었다.
'워슈트의 비행기능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팔콘 제트팩의 가치가 250조 크레딧보다 큰가?'
내가 잠시 고민한 순간이었다.
"장벽방어군이 문제 삼으려면 얼마든지 문제가 될 수 있겠어."
베로노바 마리우스가 라몬 베넷을 향해 스쳐지나가듯 말했다.
마치 이번 거래를 자신의 말 한 마디로 엎어버릴수도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영감님, 문제 삼지 않게하면 될 일입니다. 제가 그 정도 능력도 없겠습니까?"
하지만 라몬 베넷은 강렬한 눈빛으로 베로노바 마리우스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쉽게 물러나지 않겠다는 라몬 베넷의 태도를 본 베로노바 마리우스는 갑자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나도 늙었나보이. 자네처럼 패기만만한 젊은이가 달려드니, 화가 나기보다 겁부터 나는 걸 보면 말이야."
"과찬이십니다."
베로노바 마리우스가 약한 소리를 하자, 라몬 베넷이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선배님께서 양보해주셔서..."
"마리우스 2세를 내놓겠네."
베로노바 마리우스가 말한 순간, 라몬 베넷은 고개 숙인 채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설마 그 마리우스 2세를 말씀하신 건가?"
"3등 시민에게 기간트를 판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마, 마리우스 2세면... 마리우스 그룹의 자산이 아닐텐데?"
각 사냥기업의 경영자들이 웅성거리는 순간이었다.
베로노바 뒤에 서 있던 30대 남자비서가 허공을 터치했다.
- 아서 이사님, 기간트 마리우스 2세에 관한 영상정보 일체를 수신했습니다.
- 관련 영상을 재생해도 되겠습니까?
"재생해."
내가 대답한 순간 검은 갑옷을 입은 기간트의 모습이 홀로그램 영상으로 펼쳐졌다.
금색 고리를 투구처럼 쓴 독특한 모습이었다.
특이한 건 그 금색 고리 위로 노란 화염이 한 점에 모인 채 빛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기간트의 두 팔 또한 그 빛처럼 노란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노란화염에 휩싸인 양손 사이를 오고가는 황금빛 벼락은 아름다울 정도였다.
"크루얼 핸즈라는 기술이네."
베로노바 마리우스가 말한 순간이었다.
또 다른 기간트와 맞서 싸우는 기간트 마리우스 2세의 전투장면이 펼쳐졌다.
노랗게 달아오른 양손은 적 기체와 만날 때마다 노란 벼락을 뿜어냈다.
그리고 그때마다 적 기체가 용암처럼 녹아내렸다.
그렇게 한 기의 적 기체를 쓰러트릴 때마다 기간트 마리우스 2세가 쓴 금색 고리에 별 무늬가 하나씩 늘어났다.
"13성이다...!"
"적 기간트를 열세 기나 파괴시켰단 말인가?"
"골렘이 아니라 같은 기간트가 저런 전과를 쌓는 게 가능하단 말이야?"
그 영상을 본 각 사냥기업의 경영자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40년 전에 300조 크레딧에 사겠다는 사람도 있었네."
"제 공헌도를 드리면 저 기간트... 마리우스 2세를 제게 파시겠다는 뜻입니까?"
내가 묻자, 베로노바 마리우스가 품 속에서 30센치미터 길이의 막대기를 꺼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 중간에 묶인 붉은 비단실을 풀고 두루마리를 펼쳤다.
- 기간트명 : 마리우스 2세
- 최종 소유자 : 베로노바 마리우스
- 등록권한 : 소유권 및 사용면허 일체
"어떤가? 마리우스 2세 정도면 팔콘 프로젝트와 견줄만 하겠나?"
그는 왼손약지에서 검붉은 인장반지를 뽑아 두루마리 위에 올려놓으며 내게 물었다.
난 나도 모르게 일어나 그 인장반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머, 멈추시오!"
돌아보니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라몬 베넷이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베넷 그룹에선 기간트 마리우스 2세보다 더 좋은 제안을 하시겠다는 뜻입니까?"
"그, 그게 아니라... 그건 하자있는 물건입니다."
"하자?"
그건 결코 무시하고 넘길 수 없는 얘기였다.
"그게 무슨 소린가! 마리우스 2세는 우리가문 대대로 전해져내려오던 가보였어. 감히 그런 보물을 하자 있는 물건이라고 폄하해?"
베로노바 마리우스는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라몬 베넷에게 삿대질을 해댔다.
"그 기간트가 마리우스 2세라는 이름을 얻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크루얼 핸즈를 각성한 당신의 선조 마리우스 2세의 전용기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 아닙니까!"
라몬 베넷은 기다렸다는듯이 물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 베로노바 마리우스는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어버렸다.
"저 기체는 크루얼 핸즈라는 초상능력을 각성한 자에게 특화된 기체입니다. 아서 이사, 당신이 영감님처럼 손에서 불을 뿜어내는 재주가 없다면... 기간트 마리우스 2세의 제 힘을 사용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혈통을 통해 초상능력이 대물림되는 마리우스 집안에서도 그 초상능력을 되찾는데 무려 300년이나 걸렸습니다!"
라몬 베넷이 손에서 불을 뿜어내는 재주라고 얘기한 순간이었다.
한 가지 스킬이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멜트다운펀치라면... 크루얼 핸즈라는 초상능력을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 순간, 난 기간트 마리우스 2세에 강한 끌림을 느꼈다.
250조 크레딧은 큰 돈이었다.
하지만 기간트를 얻을 수 있다면?
'이건 사야돼!'
난 라몬 베넷을 무시하고 그로처 부단장에게 물었다.
"정말 이 인장반지와 두루마리만 있으면 제가 기간트를 소유할 수 있는 겁니까?"
"시정부에 정식으로 등록하고 등록세도 내야겠지만... 제가 알기로는 가능합니다."
그로처 부단장이 대답한 순간이었다.
"크루얼 핸즈도 노망이났군."
라몬 베넷 옆에 앉아있던 실반 워렌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대회의장 출구로 나가버렸다.
문제는 베로노바 마리우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보고 나가는 사람이 단지 실반 워렌뿐만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영감님,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10대 대기업의 대표 중 마지막까지 자리에 남아있던 라몬 베넷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자네 말대로 내 두 아들들은 크루얼 핸즈를 각성하지 못했네. 언제 태어날지 모르는 후계자를 위해 마리우스2세를 남겨놓느니, 아들들을 시의원 자리에 앉혀주는 게 더 현명한 선택 아니겠나?"
"삼대가문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라몬 베넷은 고개를 내저으며 물었다.
팔미라 시를 지배하는 삼대가문의 이름을 팔아서라도 이 거래를 무효로 만들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 말을 들은 베로노바 마리우스는 빙긋 웃더니 두루마리의 끝부분을 가리켰다.
수 많은 도장들 끝엔 양발에 칼과 책을 쥔 독수리문양의 도장이 찍혀있었다.
그건 도장치고는 꽤나 정교한 문양이었다.
"연합군 사령부가 인정한 소유권 증서를 팔미라 시가 부정할 수 있겠나?"
"흥!"
자신만만한 베로노바 마리우스의 대답을 들은 라몬 베넷은 훽! 소리가 나게 몸을 돌려 대회의장을 나가버렸다.
"좋은 거래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리우스 2세 기체를 양도하시면 공헌도 일체를 건네드리겠습니다."
"걱정말게. 1시간 안에 가져오지."
베로노바 마리우스는 주름진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내게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