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134화 (134/152)

134화. 사이클롭스

용병협회 50층, 이사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고 조셉 메를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사님, 베로노바 마리우스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시계를 확인하니 베로노바 마리우스와 헤어진 지 40분밖에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안으로 모시지." 

"그게... 화물 엘리베이터로 대형화물을 싣고 오셔서 이리로 옮기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조셉 메를린은 층고가 3미터가 넘는 복도를 가리키며 난색을 표했다. 

"가지." 

내가 조셉 메를린을 따라 도착한 곳은 75층 대 기갑전 훈련장이었다. 

층고가 15미터에 달하는 대 기갑전 훈련장엔 검은 커버를 씌운 화물과 그 옆에 대기 중인 베로노바 마리우스 그리고 그의 수행원으로 보이는 남자들 셋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기다리셨소." 

베로노바 마리우스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수행원들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세 사람이 나서서 검은 커버를 벗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지름 1.5미터 정도로 보이는 금색 고리였다. 

이마에 붙은 금색 고리가 기간트의 머리 위를 비스듬히 가로막고 있었다. 

하지만 영상에서 봤던 금색 고리 위에서 빛나던 노란 화염 한 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순간 검은 커버가 완전히 벗겨졌다. 

그와 동시에 전체적으로 검은 갑옷 위로 가슴과 허리띠, 팔꿈치 아래의 양팔 등이 황동색으로 장식된 기간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가? 이 녀석이 바로... 마리우스 2세네." 

베로노바 마리우스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기간트의 기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들을 둘이나 시의원으로 만들고도 남을 공헌도를 받고 파는 건데도, 막상 내게 넘기려니 아쉬운 모양이었다. 

"공헌도를 보내드리면 되겠습니까?" 

"크흠! 그래. 작별은 짧을수록 좋다지?" 

어느새 붉게 충혈된 눈과 조금 잠긴 목소리로 되묻는 베로노바 마리우스의 모습을 보니 이 기간트와 정이 많이 든 것 같았다. 

'공헌도 모두 베로노바 마리우스의 공헌도 계좌로 이체해.' 

< 2등 시민 베로노바 마리우스의 공헌도 계좌로 4억 7,597만 4,195 점의 공헌도를 이체하시겠습니까? > 

'이체해.' 

< 4억 7,597만 4,195 점을 이체했습니다. > 

< 남은 공헌도는 0 점입니다. > 

난 시스템 메세지를 재차 확인한 후 베로노바 마리우스에게 말했다. 

"공헌도 모두 이체했습니다. 확인해보시죠." 

"그러지." 

베로노바 마리우스는 곧바로 손목시계를 조작했다. 

그러자 수행인 두 사람이 그의 앞으로 다가와 그의 손목시계를 엿봤다. 

"아버지, 어떻게 됐습니까?" 

"정말 4억 7천만 점이 이체됐습니까?" 

60대 초반 그리고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두 수행인은 알고보니 베로노바 마리우스의 아들들이었던 것이다. 

"확인... 했다." 

"아버지, 바로 이체해주십시오." 

"그래요.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두 사람은 당장 제 몫의 공헌도를 나눠받고 싶은 모양이었다. 

"초상능력도 변변찮은 녀석들이 지금 이 애비를 걱정하는 게냐?" 

하지만 베로노바 마리우스가 언제 눈을 붉혔냐는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자, 두 아들이 동시에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는 아들 둘을 눈빛만으로 제압하더니, 날 돌아봤다. 

"좋은 거래였습니다." 

"그래..." 

베로노바 마리우스는 그렇게 말끝을 흐리며 자신의 아들들과 비서를 바라봤다. 

그러자, 세 사람이 그의 뜻을 알아차렸는지 훈련장을 나섰다. 

뭔가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니, 나를 수행해온 조셉 메를린도 그들을 따라 훈련장 밖으로 나갔다. 

"자네가 직접 사용하긴 어렵겠지만... 마리우스 2세의 제 성능을 이끌어내려면 탑승자로 등록할 때, 강력한 열을 내뿜어야한다네." 

"기간트에 탑승한 채로 열을 내뿜어야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베로노바 마리우스의 말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기간트에 탑승한 채, 열을 내뿜으면 내 손으로 값비싼 기간트를 망가트리는 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랬다간 탑승자가 화상을 입는 것도 문제지만... 콕핏 안이 엉망으로 불타버릴 텐데요?" 

"마리우스 2세는 탑승자가 뿜어내는 열을 가공하도록 만들어진 기체네. 탑승석이 불탈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소리야." 

베로노바 마리우스는 이미 기간트 값을 받은 후였다. 

내게 뭔가를 더 해줘야할 이유가 없는데 기간트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비법을 알려준다? 

'공개입찰에선 꽤나 꼬장꼬장하게 굴더니... 예상보다 친절한 노인이군.' 

솔직히 팔미라 시에 떨어진 후, 많은 망명귀족을 만나보진 못했다. 

하지만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내게 장교 자리를 제안했던 골렘나이트 막스 벡허 중령 다음 가는 친절이었다. 

"이런 정보까지는 안 알려주셔도 상관없었을텐데, 감사합니다." 

"난 마리우스 2세의 피를 가장 진하게 이은 후손이네. 그리고 이 기간트는 앞으로도 그 영광된 이름으로 불리겠지. 마리우스 2세가 제가 가진 힘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면 우리 집안의 치욕이야."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말하는 베로노바 마리우스의 꼿꼿한 자세에서 귀족의 기품이 느껴졌다. 

'마리우스 2세라... 꽤 지체높은 귀족이었나보군.' 

그게 아니라면 후손인 베로노바 마리우스가 이렇게까지 자부심을 갖을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리우스 2세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네." 

베로노바 마리우스는 내 대답을 듣고나서야 마음이 놓이는지 내 손을 한번 꼭 쥐어보이곤 훈련장을 나섰다. 

*** 

베로노바 마리우스까지 대 기갑전 훈련장에서 나갔다. 

그제야 난 기간트 마리우스 2세를 제대로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난 방심하지 않고 외부시선부터 차단했다. 

"훈련장 감시카메라 꺼." 

- 모든 카메라를 껐습니다. 

- 외부통신 기능도 차단하시겠습니까? 

내가 명령하자, 대 기갑전 훈련장을 관리하는 훈련보조시스템이 물었다. 

"그래." 

- 아서 이사님의 권한으로 대 기갑전 훈련장을 완전폐쇄했습니다. 

그 순간 출입구와 유리창 방향에서 위이이잉! 하는 소음과 함께 방화격벽이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난 모든 격벽이 내려와 외부와 단절된 것을 확인한 후에야 왼손 약지에 베로노바 마리우스가 준 인장반지를 끼웠다. 

"마리우스 2세, 네 소유권을 주장한다." 

그리곤 인장반지의 인장부분을 기간트의 기체에 가져다 댔다. 

그 순간이었다. 

키 7.5미터의 로봇이 땅을 짚지도 않고 일어났다. 

그건 마치 하늘 위에서 마리오네트와 연결된 실을 들어올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난 그 기이한 기동방법에 놀랄 틈도 없었다. 

그 순간 내 눈앞에 베로노바 마리우스가 준 소유증서를 펼치는 영상이 재생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간트 마리우스 2세에서 안내음이 터져나왔다. 

- 인장링구 오 카쿠닌했습니다. 

- 마리우스 왕가노 소유증서 오 테이지 시태 쿠다사이.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그건 낯설지만 익숙한 경험이었다. 

마치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섞어놓은 듯한 안내음은 스톨즈의 소환주문이나 조셉 메를린이 코소브 생명과학연구소에서 했던 말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 사용자님의 언어기억에서 해당 언어와 관련된 언어를 발견했습니다. > 

< [한국어]와 [일본어]에 관한 언어기억을 사용해 해당 언어를 저장 및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 

"그러는 게 낫겠군." 

그 순간 마리우스 2세의 안내음이 내 눈앞에서 한글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 인장반지를 확인했습니다. 

- 마리우스 왕가의 소유증서를 제시하십시오. 

난 번역된 메세지와 영상을 따라 소유증서 두루마리를 펼쳐보였다. 

그 순간 마리우스 2세가 머리에 쓴 고리에서 노란빛이 번쩍였다. 

- 마리우스 왕가의 정통성을 정당하게 승계하셨음을 확인했습니다. 

< 해당 기간트가 사용자님의 소유권을 인정했습니다. > 

< 구형 통신입출력체계를 발견했습니다. > 

"그럼 통역 프로그램부터 공유해." 

< 관련 언어기억과 통역체계에 관한 정보 일체를 송신했습니다. > 

그 순간 기간트의 입에서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 사이클롭스에 탑승하시어 왕의 자격을 증명하시겠습니까? 

그건 내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마리우스 그룹이 원래... 왕족이었나?" 

- 마리우스 그룹에 대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 마리우스 왕가의 인장반지와 사이클롭스 프로젝트를 계승하신... 

"내 이름은 아서다." 

- 아서 마리우스님이야말로 마리우스 평야의 정당한 주인이시며 마리우스 왕가의 정통이십니다. 

기간트는 제 멋대로 내게 마리우스라는 성을 붙여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를 마리우스 평야의 주인이라며 추켜세웠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수백 년 이상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못한 로봇이랬지? 마리우스 왕가가 망했다는 것도 아직 모르고 있나보군.' 

난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전후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마리우스 왕가가 망하지 않았다면? 

'왕가의 인장반지가 내 손에까지 들어올 일은 없었겠지.' 

베로노바 마리우스가 내게 공헌도 몇점의 대가로 왕실의 보물을 넘긴 것만봐도 그가 이 인장반지에 대한 가치를 모르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리 몰락한 가문이라도 자신들의 가문이 한 때, 왕국을 세웠고 당시에 사용했던 인장반지가 있다면 어떨까? 

과연 그런 가문의 보물을 남에게 팔까? 

'가난한 가문이면 몰라도... 팔미라 시에서 삼대가문 다음으로 부유한 마리우스 그룹이라면, 대대손손 물려주며 자랑삼았겠지. 그들은 정말 이 인장반지가 어떤 의미인지 몰랐던 거야.' 

난 그제야 이 기간트가 300년 넘게 주인을 찾지 못했다는 라몬 베넷의 말이 생각났다. 

300년이면 기간트와 인간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말이 바뀌었다고해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인장반지의 역사적 가치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 사이클롭스에 탑승하시어 왕의 자격을 증명하시겠습니까? 

"이 기간트 이름이 마리우스 2세가 아니라 사이클롭스였나?" 

- 마리우스 2세는 선대 국왕폐하의 이름입니다. 

- 본 기체는 골렘 크로노스를 모방하여 만든 마리우스 왕국의 결전병기 사이클롭스입니다. 

"크로노스?" 

-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세상이 크로노스의 이름도 잊어버렸나보군요? 

"유명한 기체였나보군?" 

- 인류최강의 골렘 중 하나였습니다. 

- 좀비로드와의 전투에서 패배하기 전까지는 인류최강의 결전병기로 불렸습니다. 

"골렘이 좀비로드와 싸웠다고?" 

난 기간트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 떨어진 후, 내게 좀비로드라는 존재에 대해 이렇게 자세한 얘기를 해준 건 이 기간트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게 언제 있었던 일이지?" 

- 시스템과 역사정보를 교류합니다. 

- 교차검증 결과, 773년 전에 벌어졌던 전투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건 놀라운 대답이었다. 

좀비로드라는 놈이 무려 700년 전에도 인류최강 병기를 무찌를만큼 강했었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좀비로드에 관한 정보를 있는대로 시스템에게 인계해!" 

- 관련정보를 취득하시려면 사이클롭스에 탑승하시어 왕의 자격을 증명하셔야합니다. 

- 좀비로드에 관한 정보취득인가 등급은... 공작위입니다. 

"그 왕의 자격이란 거, 설마 탑승석에서 열을 내뿜어야한다는 그 과정을 얘기하는 건가?" 

- 그렇습니다. 

- 마리우스 왕가에선 얼마나 더 강력한 열을 내뿜을 수 있는가로 혈통의 진함을 증명해왔습니다. 

- 왕의 자격시험에 도전하시겠습니까? 

사실 그건 선택지가 없는 문제였다. 

250조 크레딧 대신 기간트 사이클롭스를 샀으니, 가능한 한 좋은 성능을 뽑아내야했다. 

그리고 좀처럼 구하기 어려웠던 좀비로드에 관한 정보까지 얻을 수 있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 도전하지." 

- 사이클롭스 프로젝트, 연성절차에 들어갑니다. 

그 순간, 황동색으로 장식된 기간트의 가슴이 양옆으로 열렸다. 

기간트에 직접 타보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동안 기간트에 관한 얘기는 귀가 닳도록 들어왔다. 

나뿐만 아니라 팔미라에 사는 모든 용병과 사이보그들은 기간트와 골렘에 관한 정보에 목 말라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환경 속에서 기간트나 골렘에는 전이마법이 탑재되어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눈빛을 번뜩이는 것만으로도 기간트워리어를 탑승시키는 기간트. 

하지만 이 기간트 사이클롭스는 내가 들었던 것과는 너무 많은 점이 달랐다. 

'수백년 전에 만든 모델이라서 그런가... 내가 알던 기간트보다 크고 원시적이야." 

지금까지 내가 본 팔미라 시의 기간트들은 키가 6미터였다. 

하지만 기간트 사이클롭스는 그보다 1.5미터나 더 큰 7.5미터에 달했다. 

그리고 전이마법진 대신 가슴을 좌우로 여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건 기간트라기보단... 내가 만든 워슈트와 가까운 방식이었다. 

'뭔가... 너무 구식이군.' 

옛 왕가의 보물을 얻었다는 생각에 들떴던 기분이, 기간트의 탑승방법을 본 순간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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