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135화 (135/152)

135화. 자칭 결전병기

내가 앞에 서자, 기간트가 살짝 오른쪽 무릎을 굽혀줬다. 

그 덕분에 기간트의 발등을 박차고 무릎을 딛고 가슴까지 뛰어오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가 기간트의 가슴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날 반긴 건 가죽 시트가 깔린 편안한 탑승석이 아니었다. 

좌석과 벽면은 모두 뱀 비늘 무늬의 구릿빛 금속재질로 뒤덮여있었다. 

찜찜한 마음을 품고 탑승석에 앉은 순간이었다. 

촤르르륵! 하는 소음과 함께 탑승석이 내 몸의 크기에 맞게 형태를 변형하기 시작했다. 

내가 내 손가락 크기에 맞춰진 양손장갑을 더듬었을 땐, 이미 콕핏 입구가 닫힌 후였다. 

- 아서 마리우스 님께서 얼마나 강력한 열을 뿜어내시느냐에 따라 마리우스 왕가에서의 작위가 정해집니다. 

"내 직전 탑승자는 어디까지 올라갔었나?" 

- 베로노바 마리우스 님은 남작 위에 오르셨습니다. 

그건 수십 년 동안 13기의 적 기간트를 격파한 크루얼 핸즈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작위였다. 

"남작이면 제일 낮은 작위잖아? 그럼 마리우스 2세는 어떤 작위를 받았지?" 

- 마리우스 2세께서는... 자작 위에 오르셨습니다. 

그건 충격적이었다. 

기간트 사이클롭스의 말에 따르면 마리우스 2세는 마리우스 왕가의 왕이었기 때문이다. 

"현직 왕에게도 자작 위만 내줬다는 건... 네가 꽤 깐깐하게 구는 녀석이란 뜻이구나?" 

- 사이클롭스 프로젝트에선 대상의 신분이나 직위, 명성이 아니라 그가 지닌 화염의 강도만으로 평가합니다. 

- 세상을 불태울만큼 강한 불길을 일으키십시오. 

- 그럼 좀비로드에 관한 정보와 본 기체에 숨겨진 강력한 기능을 해금할 수 있습니다. 

"흐읍!" 

난 가슴 가득 숨을 들이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순간 시스템 메세지가 내 눈을 어지럽혔다. 

< 배틀슈트를 착용하신 상태로 유니크 등급 스킬 [적염브레스]를 사용하실 경우, 내부화염으로 인해 기간트워리어급 배틀슈트가 파괴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배틀슈트 긴급해제!' 

내가 속으로 명령한 순간이었다. 

내 배틀슈트가 손목, 팔꿈치, 어깨, 가슴, 헬멧 순으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난 여러 조각으로 분해된 배틀슈트 조각들이 내 몸을 타고 흘러내리며 쩔그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난 가까스로 숨을 참으며 양손을 세게 움켜쥐었다. 

< 유니크 등급 스킬 [멜트스케일 펀치]를 사용하셨습니다. > 

난 양손 끝에서 시작된 붉은 비늘이 내 몸을 뒤덮어가는 걸 느끼며 참고 있던 숨을 내뱉었다. 

- 화라라락! 

내 입에서 뿜어져나온 붉은 화염줄기가 구릿빛 벽면에 맞고 튕겨나왔다. 

붉은 화염줄기가 내 얼굴을 때린 순간이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시달리다가 온탕에 들어갔을 때처럼 포근하고 시원한 느낌이 얼굴부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시스템 메세지는 그리 포근한 성격이 아니었다. 

< 유니크 등급 스킬 [적염브레스]의 화염이 5천 도를 돌파했습니다. > 

난 거기서 멈추지않았다. 

적염브레스와 멜트스케일 펀치에 심장에 모인 마력을 쉬지않고 밀어넣었다. 

< 유니크 등급 스킬 [적염브레스]의 화염이 8천 도를 돌파했습니다. > 

< 유니크 등급 스킬 [멜트스케일 펀치]의 표면온도가 7천 도를 돌파했습니다. > 

두 스킬은 엎치락뒤치락하며 빠르게 온도를 높여갔다. 

< [드레이크 하트]의 마력잔량이 37%까지 떨어졌습니다. > 

< [마력창고]에서 추출한 마력으로 [드레이크 하트]의 마력을 보충합니다. > 

< [드레이크 하트]의 마력잔량이 89%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 

< 유니크 등급 스킬 [적염브레스]의 화염이 1만 도를 돌파했습니다! > 

< 유니크 등급 스킬 [멜트스케일 펀치]의 표면온도가 9,800도를 돌파했습니다! > 

< 경고! 해제한 배틀슈트의 내부회로가 타들어갑니다. > 

< 경고! [적염브레스]와 [멜트스케일 펀치]를 멈추지 않으실 경우, 15초 안에 해제하신 배틀슈트의 내부마법진을 이룬 진은이 모두 증발할 예정입니다. > 

시스템이 빠르게 메세지를 띄워올렸다. 

하지만 배틀슈트는 내 적염브레스에 점차 망가져가도 그 화염에 직격당한 내 얼굴은 멀쩡했다. 

그런 이유때문에 시스템은 경고 메세지는 띄워도 위험 메세지는 띄우지 않았다. 

그 순간 기간트 사이클롭스의 목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 아서 마리우스 님이 발생시킨 화염으로 인해 사이클롭스 내부온도가 6천 도를 돌파했습니다. 

- 마리우스 왕가가 부여한 권위로 아서 마리우스님께 남작 위를 수여합니다. 

- 라이트닝 핸즈 1단계 기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 라이트닝 핸즈는 아서 마리우스 님이 생산한 열을 20만 암페어의 전류로 바꿔 적을 공격합니다. 

- 순간적으로 적을 3만 도에 달하는 번개로 지져버릴 수 있는 기능입니다. 

- 이 위력은 1 라이트닝에 해당합니다. 

그 순간 내 왼쪽 시야에 기간트 사이클롭스의 양손이 노란화염에 휩싸이는 영상이 펼쳐졌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화염에 물든 양손 사이를 오고가는 황금빛 벼락줄기가 보였다.

베로노바 마리우스에게 크루얼 핸즈라는 이명을 붙여준 바로 그 기술이었다. 

드디어 꿈 꾸던 기체를 얻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날뛸 때였다. 

- 사이클롭스 내부온도가 8천도를 돌파했습니다. 

- 마리우스 왕가가 부여한 권위로 아서 마리우스님께 자작 위를 수여합니다. 

- 라이트닝 핸즈 2단계 기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 라이트닝 핸즈의 열전증폭효과가 상승했습니다. 

- 아서 마리우스 님이 생산한 열을 40만 암페어의 전류로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 순간적으로 6만 도에 달하는 번개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 이는 2 라이트닝에 해당하는 위력입니다. 

끝도 없이 퍼붓는 적염브레스와 멜트스케일 펀치로 사이클롭스의 내부온도가 치솟았다. 

- 사이클롭스 내부온도가 1만 도를 돌파했습니다. 

- 마리우스 왕가가 부여한 권위로 아서 마리우스님께 백작 위를 수여합니다. 

- 라이트닝 핸즈 3단계 기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 라이트닝 핸즈의 위력이 4 라이트닝으로 폭증했습니다. 

- 순간적으로 12만 도에 달하는 번개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기간트 사이클롭스가 제 멋대로 내게 백작 작위를 수여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잔뜩 흥분한 기간트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다. 

- 강력한 열 축적으로 거신 사이클롭스의 심장이 박동합니다. 

- 거신 사이클롭스의 자아가 깨어났습니다! 

- 거신 사이클롭스 연성에 성공했습니다! 

- 이름을 하사하여 거신을 복종시키소서! 

그건 인공지능이 아니라 감정을 지닌 인간처럼 잔뜩 흥분한 목소리였다. 

"누구한테 이름을 내리라는 거야?" 

[ 끝없는 열화의 주인이여...! ] 

그 순간 소리가 아닌 무언가가 내 머리를 때렸다. 

그건 정신파와 비슷했다. 

문제는 그 크기였다. 

언데드들이 내게 쏘아보내는 정신파는 귓속말 수준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내 머리를 때린 정신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게 아닌가 걱정될만큼 큰 천둥이었다. 

'누구냐?' 

[ 당신이... 나를 깨운... 게... 아닌가? ] 

세상을 뒤흔드는 듯한 정신파가 다시 울린 순간이었다. 

다급한 기간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거신 사이클롭스의 자아를 제압하려면 이름을 내리셔야합니다! 

- 스스로 이름을 얻은 거신은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 이름을 내려 왕의 권위를 세우시옵소서! 

"오늘부터 너를 사이클롭스라고 부르겠다." 

내가 마지못해 사이클롭스라는 이름을 내린 순간이었다. 

[ 사이...클롭스...! ] 

천둥같은 정신파를 통해 거신 사이클롭스와 내 정신이 이어졌다. 

그건 마치 정신파로 이어진 내 언데드들의 정신과 감각을 공유할 때와 비슷한 경험이었다. 

그 순간 난 정신파로 이어진 거신 사이클롭스의 기억과 그가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 따위의 감정까지 느낄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거신 사이클롭스에게는 내 목소리를 듣기 이전의 기억 자체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두려움에 떨던 거신 사이클롭스 또한 내 감정과 기억에 물드는 게 느껴졌다. 

그가 내 기억과 감정 덕분에 안정을 되찾은 순간이었다. 

갑자기 내 머릿 속에 세번째 시야가 트였다. 

그건 거신 사이클롭스의 시야였다. 

'대 기갑전 훈련장이군.' 

7.5미터 높이에서 훈련장을 내려다보는 시야. 

그건 기간트가 머리에 쓴 금색 고리 중앙에서 시작됐다. 

노랗게 빛나는 한 점의 빛. 

그게 바로 거신 사이클롭스의 눈이었던 것이다. 

[ 이, 이게... 내 몸인가? ] 

사이클롭스의 정신파가 전해진 순간이었다. 

내가 탄 기간트가 무릎 꿇고 바닥을 움켜쥐는 게 느껴졌다. 

그건 대 기갑전 훈련장의 바닥 골조였다. 

옅은 콘크리트 먼지 냄새. 

기간트의 강인한 손 안에서 힘 없이 바스라지는 콘크리트와 철근 조각들. 

강력한 악력에 의해 타들어가는 철근콘크리트의 역한 탄 냄새까지. 

그건 기간트를 통해 느끼는 감각이었다. 

난 철근과 콘크리트 가루로 더러워진 기간트의 손이 거슬렸다. 

그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간트가 손을 털었다. 

그건 정확히 내가 생각한 움직임이었다. 

내 제어하지 않았을 때, 거신 사이클롭스의 자아는 바닥을 움켜쥐며 제 멋대로 기간트의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내가 움직이려고 하자, 거신 사이클롭스의 자아는 뒤로 물러나 내 조종을 도왔다. 

'이런 식으로... 기간트를 조종할 수 있는 거군?' 

내가 팔을 휘젓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기간트의 양팔이 내가 상상한대로 휘둘러졌다. 

그와 동시에 퍼벙! 하는 소리와 함께 기간트의 양팔 주변의 공기가 터져나갔다. 

거센 공기가 기간트의 팔과 가슴 갑옷을 스치고 지나가는 감각은 마치 사람의 감각기관처럼 생생했다. 

'이 정도면... 내 몸과 다를 바가 없겠는데?' 

이 기간트가 처음부터 이런 선명한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된 게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기능들이었다. 

나는 아직 탑승한 로봇의 촉각을 느끼는 스킬은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간트가 자아를 갖는 것도 모자라서... 인간 못지 않은 오감을 느낀다?' 

동부사막에서 마운틴 퀸의 분신인 모래거인을 때려부수던 기간트를 본 후부터 난 줄곳 기간트에 온 관심이 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기간트에 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사이클롭스가 현재 처한 상황이 일반적인 것인지, 아니면 너무 옛날 모델이기때문에 겪는 혼란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 자리엔 그 궁금증을 풀어줄 존재가 있었다. 

"기간트? 아니, 넌 전투보조시스템 같은 존재인가?" 

- 전 사이클롭스 연성 프로젝트의 매니저입니다. 

- 거신 사이클롭스의 자아가 깨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탑승자의 기체조작을 돕는 역할도 맡고 있습니다. 

- 아서 마리우스님은 최초로 본 기체의 자아인 거신 사이클롭스와 일체화 되셨습니다. 

- 거신 사이클롭스 연성에 성공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넌 변변한 이름도 없다는 얘기군?" 

- 그렇습니다. 

"그럼 매니저라고 부르지. 지금 이 기간트를 제어하는 건 네가 거신 사이클롭스라고 부르는 존재인가?" 

- 맞습니다. 

"난 이 기간트가 단지 오래된 기체라고만 들었다. 기간트가 자아를 갖고 이렇게 선명한 감각까지 갖는 게 일반적인 일인가?" 

- 기간트에 관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시스템, 우리가 가진 기간트에 관한 정보를 모두 넘겨. 골렘에 관한 것들도." 

< 통합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기간트와 골렘에 관한 정보를 송신했습니다. > 

- 방금 전달받은 정보와 베로노바 마리우스와 겪은 경험을 토대로 정보를 취합합니다. 

- 제가 만들어진 509년 전엔 기간트나 타이탄급 골렘과 같은 세밀한 분류가 없었습니다. 

- 이 시대의 기간트라는 탑승형 로봇은 자아를 갖지 못한 기체로 판명되었습니다. 

- 이 경우 자율적인 사고가 어렵기 때문에 마법사용이 획일적이고 실력을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그 말은... 사이클롭스가 골렘이란 뜻인가?" 

- 사이클롭스는 마리우스 왕국이 생산한 최고의 결전병기입니다. 

- 사이클롭스는 골렘 크로노스처럼 전투와 업그레이드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병기입니다. 

- 이 시대의 분류로 따지면 기간트가 아니라 골렘에 가깝다는 결론입니다. 

골렘 그리고 결전병기. 

듣기만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단어들이었다. 

문제는 그런 단어를 언급한 게 누구인가였다. 

마리우스 왕국은 이미 한참 전에 망한 나라였다. 

그런 나라의 결전병기가 대단했다면? 

'나라가 망할 일이 없었겠지.' 

더 안타까운 건 그 후손인 마리우스 그룹조차 자신들의 조상이 물려준 인장반지와 사이클롭스에 신경도 쓰지 않는 상황에 있었다. 

그게 바로 내가 사이클롭스 연성 프로젝트의 매니저를 못 믿는 이유였다. 

'타이탄급 골렘에는 못 비벼보겠지만... 베로노바 마리우스보다 두 단계나 높은 백작위를 수여받았으니 더 뛰어난 기능을 쓸 수 있겠지.' 

지금 이 순간 내가 명확하게 얻었다고 확신하는 건, 내가 직접 3단계까지 해금시킨 라이트닝 핸즈라는 기능뿐이었다. 

< [코르넬 반물질 코어]의 마력잔량이 10.7%까지 떨어졌습니다. > 

그때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왔다. 

난 그 메세지를 읽고 멜트스케일 펀치와 적염브레스로 향하는 마력을 끊었다. 

"빨리 이 기간트를 내 이름으로 등록하고 장벽 밖으로 나가서 라이트닝 핸즈라는 기능이 얼마나 강할지 시험해보고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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