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맨티스
2시간 후, C-9 구역 출입사무소.
거대한 여덟 개의 돌기둥과 석재계단.
그건 고대 그리스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이었다.
문제는 고대 그리스의 그것과는 달리 돌기둥의 높이가 적어도 100미터 이상으로 보인다는 점만 다를 뿐이었다.
"이사님, 형사과장님이 보내주신다는 안내자가 저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내가 출입사무소의 화려한 입구를 올려다보며 놀라는데, 조셉 메를린이 반대편 석재계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엔 독특한 형태의 배틀슈트를 입은 일단의 무리가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사마귀 대가리처럼 역삼각형 모양인 헬멧과 뭉툭해보일만큼 큰 견갑 그리고 팔꿈치에서 손날방향에 달린 짧은 포신까지.
어느 하나 용병들이 좋아하는 배틀슈트 양식은 아니었다.
< 용병협회 임원 전용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한 결과입니다. >
< 시경찰 전용 배틀슈트 [맨티스]입니다. >
시스템은 곧바로 상대의 배틀슈트를 붉은선으로 표시해서 보여주며 메세지를 띄웠다.
< 오드와이어 일렉트릭의 핵심상품인 [디스차지웹]을 발견했습니다. >
그 순간 팔꿈치에서 손날 방향에 장착한 소구경포의 외곽선이 붉은선으로 반짝였다.
< 특수제압무기 [디스차지웹]은 일종의 거미줄로 대상자가 반발할수록 세게 조여 상대를 제압하는 무기입니다. >
< 용병협회가 확보한 시경찰 전투기록을 검색한 결과입니다. >
< [디스차지웹]만으로 마그니움 63% 수준의 캡틴급 배틀슈트를 제압한 사례를 발견했습니다. >
< 일반적으로 마그니움 50% 미만인 솔져급 이하 배틀슈트의 경우 [디스차지웹]의 조이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외부장갑이 부서진 다수의 기록을 찾아냈습니다. >
시스템이 내 시야에 관련 장비를 표시하고 설명할 때마다, 한번씩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매력적인 장비들이었다.
'테리가 들어가고 싶어한다기에 어떤 조직인지 궁금했는데... 장비 성능만큼은 일반 용병들보다 월등하군.'
애초에 용병들은 마그니움 50% 이상의 배틀슈트를 제압하기 위해 무장하지 않는다.
그런 고급장비는 사냥기업에서도 팀장급들이나 입을 수 있는 고가의 장비들이기때문이다.
용병들의 주요입무는 저레벨의 좀비를 사냥하는 것이지, 요인암살이 아니니 당연히 장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속으로 시경찰의 무장이 제법이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쪽이 아서 이사님 맞습니까?"
시경찰 전용 배틀슈트인 맨티스 다섯 기를 이끌고 온 자가 내게 물었다.
하지만 그는 헬멧도 해제하지 않은 상태였다.
"네. 데커 과장님이 보내주신다는 분들이시죠?"
내가 묻는 순간이었다.
쩌적! 하는 기묘한 소음과 함께 사마귀 대가리 같은 시경찰의 헬멧이 위 아래로 갈라졌다.
그리곤 위아래로 벌어진 사마귀 입 안에서 갈색머리의 30대 중반 백인남성이 얼굴을 드러냈다.
"가스파르 경사입니다. 냉혈기사님 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내 손을 맞잡는 순간 환하게 웃으며 굽실거리는 걸 보니, 넉살이 좋은 사람 같았다.
"다른 계획이 없으시면 곧바로 출입수속부터 안내해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그러시죠."
가스파르 경사는 곧바로 앞장서서 출입사무소로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선 순간, 출입사무소의 직원과 용무를 보러온 손님들의 시선이 맨티스로 향했다.
가스파르 경사와 그의 부하들은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은 곧장, 줄을 선 사람들을 지나쳐 출입사무소 직원에게 향했다.
"기간트워리어 아서님께서 B-14 구역의 기간트관리처에 방문하실 계획입니다. 빠른 수속 부탁드립니다."
그리곤 다른 손님을 상대하던 직원에게 말했다.
"기, 기간트워리어시면... 굳이 출입사무소에 들리실 필요가 없으실텐데요?"
기간트워리어라는 말에 당황한 금발머리 여직원은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이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란 걸 깨달았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가스파르 경사에게 물었다.
"아서님께선 3등 시민이십니다. 이번에 기간트를 매입하셨으니, 임시 출입허가증을 받아서 기간트관리처에 기간트를 등록하셔야합니다. 여기."
그 순간 금발머리 여직원 앞에 푸른빛의 홀로그램 창이 펼쳐졌다.
내가 선 방향에선 푸른빛만 비춰질뿐 여직원이 어떤 화면을 보고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난 궁금해할 필요도 없었다.
- 시경찰 본청 형사과 소속 가스파르 경사님의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 니콜라스 데커 총경이 발송한 공문을 수신했습니다.
- 3등 시민 아서, 시경찰의 기간트워리어 호송작전입니다.
홀로그램 창이 은은하게 울리며 안내음을 토해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3등 시민이 어떻게 기간트를 산다는 거지?"
안내음을 들은 출입사무소의 손님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기간트를 산다는 행위는 C 구역에서 B 구역으로 출입할 수 있는 임시허가증을 받으려는 그들에게도 생소한 개념인 것 같았다.
"아니... 기간트를 사고 팔기도 해요? 그, 그건 얼마쯤 하죠? 할부도 됩니까?"
"멍청한 소리, 망명귀족인가보지."
"그, 그렇지? 망명귀족정도 되니까 기간트를 사고 팔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그 모든 혼란은 망명귀족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잠재워지는 듯 했다.
3등 시민들에겐 불가능한 일도 다른 도시의 지배자였던 망명귀족에겐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경우를 많이 본 모양이었다.
"어느 도시 출신일까?"
"기간트관리처에 등록하러가는 거 보면 전쟁용병으로 활동하려는 거겠지?"
"잠깐, 아서... 아서면 그, 용병협회의 신임 이사 이름 아니야?"
"용병협회면... 망명귀족일리가 없잖아!"
내 이름을 듣고 신분을 알아차린 검은머리 중년남자가 의문을 제기하자, 출입사무소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
그때였다.
"아서 이사님, 임시 출입허가증이 발급되었습니다. 편안한 여행되기실 바랍니다."
가스파르 경사의 말을 듣고도 못 믿던 금발머리 여직원이 환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 B구역 임시 출입허가증을 발급받았습니다. >
< 출입가능 인원 : 3등 시민 아서 >
< 출입가능 기간 : 3일 >
< 방문 목적 : 기간트 취득 등록 >
< 미리 신고된 거리로만 이동하셔야합니다. >
시스템은 곧바로 방금 전달받은 정보를 지도상에 표시해서 내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때, 가스파르 경사가 다가와 물었다.
"차량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기간트는 어디에 대 놓으셨습니까?"
"주차장에 대형로봇전용 수송트럭을 대놨습니다."
그건 용병협회에서 내 기간트를 운송할 수 있도록 급히 빌려다준 특장트럭이었다.
내가 대답하자, 그는 주차장을 향해 앞장섰다.
시경찰 전용 배틀슈트 맨티스 6기가 내 앞에 서자, 벌떼처럼 몰려들었던 출입사무소의 손님들이 모세를 만난 홍해처럼 갈라졌다.
'데커 총경... 제법 쓸만한 인맥이군.'
***
B-14 구역의 기간트관리처.
기간트관리처 건물은 화려한 초고층빌딩이 즐비한 B-14구역에서도 눈에 띄는 구조였다.
1킬로미터 높이로 올라간 B-14 구역의 초고층빌딩들과 머리를 나란히 하는 하얀 돔.
난 멀리서 기간트관리처를 보자마자 원자력발전소인 줄 알았다.
직접 방문해본 적은 없어도 책과 영상매체를 통해 자주 접한 콘크리트 돔과 비슷한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시야에 다 담을 수도 없을만큼 거대한 건축물에 다가갈수록 압도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때, 대형로봇전용 수송트럭 지붕 위에서 우리를 호위하던 시경찰 전용 배틀슈트 맨티스 6기가 뛰어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 아서 이사님, 저희는 정부기간시설 출입자격 문제때문에 여기서 기다려야될 것 같습니다.
그와 동시에 가스파르 경사의 통신이 전해졌다.
"빨리 수속을 마치고 나오겠습니다."
우린 맨티스 6기를 도롯가에 남겨놓고 기간트관리처의 입구를 통과했다.
그때였다.
붉은 기간트들이 내 대형로봇전용 수송트럭을 향해 다가왔다.
- 정지, 짐칸을 열고 방문목적을 밝혀라!
쿵, 쿵! 하고 둔중한 발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기간트들은 내가 처음 보는 모델들이었다.
"크기만 따지면 거의 사이클롭스랑 비슷하겠는데?"
내가 말한 순간이었다.
시스템이 내 왼쪽 시야에 가상의 사이클롭스를 띄워서 붉은 기간트와 크기를 직접 비교해줬다.
< 머리 높이까지만 비교하면 4군단 소속 기간트워리어 헬무트 대위가 운용한 기간트와 같습니다. >
< 어깨 위에 장착한 다연장로켓의 높이가 1.2미터 수준으로 파악되었습니다. >
그때 붉은 기간트의 독특한 무장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오른팔엔 손 대신 거의 기간트의 허리만큼이나 굵은 캐논이 장착되어 있었다.
그리고 왼팔엔 손날방향에 직경이 20센치는 되어보이는 거대한 포가 장착되어있었다.
도대체 무슨 무기인 줄은 몰라도 화력만큼은 기대되는 외형이었다.
< 해당 무기에 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습니다. >
< 양자암호통신망 검색 결과, 해당 기간트에 관련된 정보의 가격은 4,500억 크레딧이란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
< 해당 가격을 지불하고 미상의 기간트에 관한 정보 일체를 다운로드하시겠습니까? >
'다운로드하지마!'
난 돈 무서운 줄 모르는 시스템을 급히 막아세웠다.
내가 당장 기간트관리처를 공격해야하는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쓸데없이 4,500억 크레딧을 정보료로 지불하는 짓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그때였다.
붉은 기간트가 오른팔에 장착한 거대한 캐논으로 정확히 운전석에 앉은 조셉 메를린을 조준했다.
- 방문목적!
"기간트 등록하러 왔습니다."
우리가 타고 온 대형로봇전용 수송트럭은 일반차량이었다.
붉은 기간트가 트럭 주변에서 위협사격만해도 유리창이 박살날만큼 방비가 안된 차량이란 뜻이다.
그런데 조준사격을 한다?
하마터면 내 부하 중 유일한 2등 시민인 조셉 메를린을 잃을 뻔한 것이다.
"지, 짐칸 개방하겠습니다!"
조셉 메를린이 운전석에서 말했다.
그러자 대형로봇전용 수송트럭 뒤에서 위잉! 하는 소음과 함께 짐칸의 양옆 벽이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 베로노바 마리우스 소유였던 낡은 기종이군.
조셉 메를린을 겨눴던 붉은 기간트에서 은근히 깔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 붉은 기간트의 탑승자는 한눈에 사이클롭스의 전 주인을 기억해냈다.
그 말은, 베로노바 마리우스가 사이클롭스를 운용해 13기의 기간트를 격파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사이클롭스를 낡은 기종이라고 표현했다.
'질시인가?'
내가 붉은 기간트워리어의 생각을 짐작한 순간이었다.
- 취등록세 납부는 지하 1층입니다. 조엘, 안내해드려!
그 순간 붉은 기간트 한 기가 우리 대형로봇전용 수송트럭 앞으로 다가와 앞장섰다.
조엘이라고 불린 붉은 기간트는 우리를 거대한 돔 앞으로 안내했다.
문제는 그가 멈추지 않고 돔의 벽을 향해 들어가버렸다는 점이었다.
"환영마법인가? 마법진이... 느껴지지 않는군?"
내가 말하자, 옆에 앉은 조셉 메를린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마법진이 느껴지지 않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조셉 메를린의 말을 들은 난 흠칫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내가 남의 마법을 보거나, 느끼는 족족 훔쳐왔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지. 따라가지."
난 최대한 태연한 태도로 말을 돌렸다.
"네, 진입하겠습니다."
내가 말을 돌리자, 조셉 메를린은 더는 내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탄 대형로봇전용 수송트럭이 돔을 지나는 순간이었다.
우웅! 하고 주변의 마력이 묘하게 일렁이는 걸 느꼈다.
그건 방금 전까지 느끼지 못했다는 걸 믿을 수 없을만큼 선명한 마법진의 존재였다.
난 그 찰나의 순간만에 감쪽 같이 숨겨져있던 마법식을 사진 찍은 것처럼 기억해버렸다.
< 레어 등급 스킬 [환영마법식]을 습득하셨습니다. >
그 순간 시스템이 내 시야에 환영마법식을 펼쳐서 시각적으로 보여줬다.
'이 마법식엔 시각과 청각을 속이는 기능밖에 없어. 어떻게 내 감각에서 마법진의 존재 자체를 숨긴 거지?'
내가 고민하는 동안, 대형로봇전용 수송트럭은 점점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 기간트관리처의 보안마법체계에 관한 정보가 없습니다. >
시스템도 이렇다할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내가 느끼지 못했으면... 마법으로 숨긴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남은 건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힘들뿐이었다.
'초상능력이나 특이능력... 어쩌면 신성력이나 주술의 일종일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그런 종류의 힘은 제대로 연구해본 적이 없어서 도대체 어떤 힘의 영향을 받았는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막막함을 느낀 순간, 우리 앞에 거대한 격납고가 펼쳐졌다.
20미터 높이의 거치대가 좌우로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거치대들엔 각양각색의 무장을 갖춘 기간트 백수십여 대가 거치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