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137화 (137/152)

137화 . 세금관리인

천수백 명의 엔지니어들이 거치된 기간트를 점검하고 정비하느라 사방에서 불꽃과 쇳가루가 튀었다. 

- 취등록세 납부처는 이쪽입니다. 

붉은 기간트가 안내한 곳은 거대한 홀로그램 전광판 앞이었다. 

- 디베치 미궁 발굴 

- 전쟁주체 : 램버트 그룹 

- 목표 : 미궁 완전발굴 

- 참전가능조건 : 기간트 1기 이상 

- 작전 시 대우 : 중위 대우(협의가능) 

- 일당 : 1천억 크레딧 (작전능력 및 명성에 따라 협의가능) 

- 장비 및 탄약 지원여부 : 프리징 레이저 외 다수의 에너지무기. (미궁 내에서 기관포 사용금지) 

- 정비 지원조건 : 지휘부의 명령에 따른 작전수행과정에서 발생한 파손일 경우, 수리비 전액 지원. 

- 전리품 배분기준 : 어스웜 처치 및 미궁개척 정도에 따라 배분. (첨부한 배분기준표 참조) 

높이 30미터 너비 50미터에 달하는 전광판에는 수 많은 전쟁수행의뢰가 펼쳐져있었다.

'하루 일당이 1천억 크레딧이면... 움직이는 사냥기업 수준이군.' 

내가 전쟁수행의뢰에 관한 관련자료를 읽으려할 때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램버트 그룹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고급스러운 체크무늬 정장을 입은 30대 중반의 백인남성이 내게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 램버트 그룹 

- 전략기획실 

- 엘런 램버트 과장 

그가 조심스럽게 건넨 명함을 본 난 속으로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엘런 램버트? 램버트 그룹의 오너일가가 왜 내게 접근한 거지?' 

갑작스러운 램버트 그룹의 접근에 내가 고개를 갸웃한 순간이었다. 

"디베치 미궁 발굴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아서 결례를 범했습니다. 기회를 주신다면 저희 램버트 그룹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귀하께 어떤 혜택을 드릴 수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드리고 싶습니다." 

듣고보니 그는 내가 일거리를 찾는 기간트워리어인 줄 알고 접근한 모양이었다. 

그때 뒤에서 우리를 안내해준 조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 주무관님, 기간트 취등록세 납부하시러 오셨답니다. 

그 순간 전광판 앞에 서있던 짙은 남색정장이 몸을 돌렸다. 

내게 얼굴을 보인 자는 얼굴 대신 검은 유리알 같은 헬멧을 쓴 사이보그였다. 

그 모습을 본 엘런 램버트는 당황하지도 않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급한 용무 먼저 보시고 오시죠. 디베치 미궁 발굴에 관심이 생기시면 언제든 연락부탁드립니다." 

그는 램버트 그룹의 오너일가임에도 내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디베치 미궁... 오너일가까지 나서서 기간트워리어를 끌어들이려는 걸 보니, 기간트가 부족한 모양이군.' 

내가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데, 검은 헬멧을 쓴 사이보그가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 마리우스 2세를 인수하신 분이십니까? 

주무관이라고 불린 자였다. 

그때 그의 검은 유리질 머리에서 푸른 빛 알갱이들이 발생했다가 사라졌다. 

난 SF 영화 속에 등장하는 로봇들처럼 사람 얼굴 형상이라도 나타날 줄 알았다. 

하지만 주무관의 머리엔 의미를 알 수 없는 푸른 빛 알갱이들만 질서없이 발생하고 사라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 기간트 취득 및 등록절차의 담당자 구스 안드레입니다. 

구스 안드레가 내게 가볍게 고개숙인 순간이었다. 

그의 안면부에서 발생한 푸른 빛 알갱이들이 그의 이마와 정수리를 따라 이동하며 하나둘 빛을 잃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쓸데없이 돈 낭비를 해놨군.' 

머리 전체에 디스플레이를 장착하고 의미도 없는 푸른 빛 알갱이가 목소리에 따라 움직이게 만든 것. 

구스 안드레는 내가 보기에 겉멋만 든 패션 사이보그였다. 

전투에 있어선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할 업그레이드 방식이라 영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내가 속으로 쓸데없는 곳에 돈을 낭비한 사이보그의 행태에 못마땅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 기간트 양도계약서를 제출해주시면 등록절차를 진행해드리겠습니다. 

'계약서 전달해드려.' 

< 기간트 마리우스 2세의 양도양수 계약서를 기간트관리처 취등록세 주무관 구스 안드레에게 송출했습니다. > 

내가 속으로 명령하자, 시스템이 곧바로 관련 정보를 주무관에게 전달했다. 

- 매매가격 : 공헌도 4억 7,597만 점. 

그 순간 주무관의 머리 디스플레이에 계약서에 명시된 정보들이 출력되기 시작했다. 

- 공헌도 이체내역까지 확인했습니다. 

- 기간트 마리우스 2세를 3등 시민 아서님의 소유 기간트로 등록하시겠습니까? 

- 주의, 해당 기간트를 소유 기간트로 등록하실 경우 취등록세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계약서를 전달받은 다음부터 주무관이 자신의 머리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머리 디스플레이에 자신의 말을 메세지 형태로 표시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취등록세는 얼마나 내야합니까?" 

- 기간트 취등록세는 매매가격의 10%이므로... 25조 크레딧입니다. 

"네? 얼마라고요?" 

25조 크레딧이면, 이번 소드테일 범람을 겪기 전엔 만져보지도 못했던 거금이었다. 

하지만 사이보그 주무관은 그만한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뜯어내려고 했다. 

- 기간트를 정식으로 등록하실 경우, 소유권이 인정됩니다. 

- 이때 발생하는 취등록세 또한 세금입니다. 

- 25조 크레딧을 취등록세로 납부하실 경우, 올해 납세자 랭킹 1만 위 안에 이름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 그럼 내년에 선거권을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 세금을 내고 시의원과 시장을 직접 선출하십시오. 

- 당신이 바로 팔미라 시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주무관 구스 안드레는 선거권자가 되라며 날 선동했다. 

하지만 팔미라 시의 정치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던 내게 25조 크레딧은 선거권보다 소중했다. 

"그... 안드로이드를 등록할 땐, 1년에 안드로이드 1기 당 1천 크레딧만 내면 된다고 했었는데 기간트는 왜 이렇게 많이 뜯어가는 겁니까?" 

- 기간트는 1년에 한번이 아니라 등록할 때 한번만 내시면 됩니다. 

앉은 자리에서 25조 크레딧을 뜯기게 생겼다는 생각에 속에 열불이 치솟은 순간이었다.

- 기간트를 등록하실 경우, 기간트관리처에서 각종 기간트 관련 의뢰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 많은 망명귀족분들께서 이곳에서 의뢰를 받고 전쟁용병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주무관 구스 안드레는 그렇게 말하며 자기 뒤의 전광판을 가리켜보였다. 

마치 기간트 등록만 하면 돈 벌 곳은 넘쳐난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리고 그의 손끝에 걸린 한 가지 의뢰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 드라기바 성 탈환전쟁 

- 정비 지원조건 : 수리비 지원불가. 

- 전리품 배분기준 : 탈환전 기여도에 따라 탈환 후 드라기바 성의 토지할양. 

그 중 한 단어가 내 눈을 사로잡아버렸다. 

"토지할양? 드라기바 성이란 곳을 탈환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그 성의 땅을 떼어준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내게 대답한 사람은 사이보그 주무관 구스 안드레가 아니었다. 

대답이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방향에선 갈색 보카시 정장에 고급스러운 금장시계를 찬 50대 초반의 남성이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오귀스트 가문의 39번째 집사 지그문트 카로락입니다." 

"아서입니다." 

"기간트를 인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방금 사이보그 주무관과 하는 대화를 엿들은 건지, 아니면 미리 기간트 매매 소식을 접한 건지는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한 가지였다. 

'이쪽도 내가 기간트워리어로 참전하길 원하나보군.' 

삼대가문의 집사라면 어디서든 이름을 날릴 수 있는 망명귀족이란 뜻이었다. 

그런 자가 3등 시민에 불과한 내게 이토록 정중하게 구는 건 기간트가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오귀스트 가문이 주도하는 전쟁에 참여하시면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토지할양은 그중 가장 달콤한 과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좀비들에게 망한 도시면 이미 초토화되어 있을텐데... 그런 땅을 받는 게 큰 돈이 됩니까?" 

"재계서열 7위인 램버트 그룹이 어떻게 그 자리에 오른지 아십니까?" 

지그문트 카로락 집사는 멀리서 나를 지켜보는 엘런 램버트를 보며 내게 물었다. 

"토지할양과 관계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80년 전 얘기입니다. 그때는 램버트 그룹은 재계서열 100위 권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건 나도 처음 듣는 얘기였다. 

"스타라자 탈환전에서 공을 세운 슬리벤 램버트는 당시 스타라자 시의 토지 7%를 할양받았습니다. 재계서열 103위였던 램버트 그룹이 재계서열 10위까지 치고 올라오는데 몇년이나 걸렸을 것 같습니까?" 

"몇년 걸렸습니까?" 

"4년입니다." 

"네?" 

"당시 램버트 그룹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해 스타라자 시 재건사업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이 지금의 재계 서열 7위의 대기업을 만들었습니다." 

지그문트 카로락 집사는 그렇게 말하며 전광판에 비춰진 드라기바 성 탈환전쟁의 전리품 배분기준을 가리켰다. 

- 탈환전 기여도에 따라 탈환 후 드라기바 성의 토지할양. 

"이 탈환전쟁의 주체는 오귀스트 가문입니다. 조금만 알아보시면 아서님도 아시게 될 겁니다. 오귀스트 가문이 선포한 전쟁은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탈환전에 참여하시고 토지를 받아가십시오." 

그건 패배할 걱정하지말고 참전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내 가슴을 흔들어놓았다. 

'난 자아를 깨운 기간트와 부하들이 있어.' 

여러가지 이유로 팔미라 시에서 드러내놓고 내 세력을 자랑하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아래엔 강력한 언데드들과 수천 명 단위의 베테랑 용병단 그리고 워슈트 백여 기가 있었다. 

거기에 이번에 벌어들인 107조 크레딧이라는 막대한 현금과 3단계 랭커 정도는 언제든 찍어낼 수 있는 강화시술능력까지 갖췄다. 

'이 정도면 100대 기업이었던 80년 전의 램버트 그룹과 비교해볼만 하지 않을까?' 

램버트 그룹이 스타라자 시 탈환전에서 세운 공만큼만 공을 세우면? 

내가 일으킬 회사도 언젠간 10대 그룹의 자리에 이름을 올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뛰었다. 

"확실히... 흥미롭군요." 

내가 지그문트 카로락 집사에게 대답한 순간이었다. 

- 망명귀족분들은 항상 그 방법을 노리시더군요. 

그때, 더 없이 담담한 사이보그 공무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내 흥분에 찬물을 끼얹는 소리였다. 

'항상 그 방법을 노렸다?' 

그건 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나 외에도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아주 많았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 스타라자 시 탈환전으로 램버트 그룹이 성장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난 70년 동안 팔미라 시의 10대 대기업 순위는 한번도 바뀐적이 없었습니다. 

그 말은 지난 70년 동안 도시탈환전에 도전한 수 많은 망명귀족들이 모두 실패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것도 무려 70년 동안이나! 

"주무관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아서님이 오해하시잖습니까?" 

그때 오귀스트 가문의 집사 지그문트 카로락이 사이보그 주무관에게 따지고 들었다. 

- 오해요? 

사이보그 주무관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투로 되물었다. 

"지난 70년 동안 10대 대기업의 순위는 변하지 않았지만, 재계서열 10위 밖으로 나가면 얘기가 다릅니다. 그리고 그 동안 눈에 띄게 성장한 기업들은 모두 도시탈환전에 발을 담군 기업들이었습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그 순간 사이보그 주무관의 머리에 파란 빛 알갱이가 어지럽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당황하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 아서님, 전쟁용병으로 성공해서 대기업을 이루시려면 그에 앞서 취등록세부터 납부하셔야합니다. 

지그문트 카로락 집사와의 말싸움에서 진 사이보그 공무원은 엉뚱하게도 내게 손을 내밀었다. 

당장 25조 크레딧이라는 어마어마한 세금을 내놓으라는 뜻이었다. 

"안타깝지만 팔미라 시에선 전쟁수행의뢰는 법적으로 기간트관리처에서만 중계할 수 있습니다." 

그때 지그문트 카로락 집사가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며 내게 말했다. 

그 자신도 사이보그 주무관이 싫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는 듯한 태도였다. 

- 팔미라 시에서 취등록세를 내지 않으시면 전쟁용병으로 활동하실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이보그 주무관은 그 자리에서 못을 박듯이 말했다. 

결국 큰 판에서 제대로 한번 놀아보려면 선택지는 하나뿐이란 뜻이었다. 

"25조 크레딧, 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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