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포획
내 앞엔 감전사한 크라켄 29마리의 사체들이 널부러져있었다.
'이게 다 얼마어치지?'
< 로렌 시에선 크라켄 한 마리 당 1천억 크레딧의 현상금을 내걸었습니다. >
< 29마리를 전부 넘기시면 총 2조 9천억 크레딧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이번 의뢰대금이 4천억 크레딧인데... 의뢰대금보다 크라켄 현상금이 더 쏠쏠하겠군.'
난 설레는 마음으로 29구의 크라켄 사체들을 메카닉 네크로맨서의 무덤에 입고시켰다.
그리고 시스템에게 물었다.
'내가 수중동굴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지?'
< 4분 32초 경과했습니다. >
난 곧장 수중동굴 안쪽을 바라봤다.
그곳엔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펼쳐져있었다.
수중동굴 입구에 들어와 4분이 넘게 등을 보이며 싸웠다.
하지만 흑연 크라켄은 내 뒤를 치지 않았다.
그럼...
'이미 깊이 숨어들었거나, 부상이 심해서 날 치지 못하는 상황인가보군.'
그때 제니퍼의 정신파가 들려왔다.
- 배리어가 닫혀서 주인님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녀의 정신파에서 날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느껴졌다.
'워슈트는 수중전투를 위한 대비가 되어있지 않아. 아드리안 시장에게 크라켄 29마리에 대한 현상금이나 준비해놓고 기다리라고 해.'
- 명령 전달하겠습니다. 조심하세요.
난 제니퍼의 정신파를 뒤로하고 동굴 더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프로펠러가 작동하고 빠르게 안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자 수중동굴을 이루는 암석의 재질이 변했다.
수천 개의 크고 작은 구멍이 뚫린 암석동굴.
작게는 손가락 굵기부터 굵게는 지름이 3미터 이상되는 작은 동굴까지 다양한 크기의 동굴들이 뚫려있었다.
2분 정도 더 나아가자 수면이 드러났다.
난 고개를 내밀자마자 흑연 크라켄이 공격할 것을 대비해 양손부터 수면 위로 들어올렸다.
하지만 내가 수면 위로 몸을 드러낼 때까지 공격은 없었다.
그 대신 내 앞에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 드러났다.
그건 수중동굴과는 다른 인공적인 건물이었다.
- 전 세계 문어 생산량 1위!
- 현존하는 349종의 문어 유전자 모두 확보!
- 루비치 양식은 가장 뛰어난 유전자만 조합합니다.
- 아이들도 즐길 수 있는 안전한 식재료, 루비치 양식이 책임지겠습니다!
콘크리트 벽에 음각된 글자는 온전한 형태의 영어였다.
루비치 그룹은 본래 유전자조작한 문어를 생산하던 양식업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루비치 그룹의 모태가 양식업체였다는 것보다 충격적인 건 그들이 사용한 언어였다.
'500년 전에 존재했던 마리우스 왕국은 한본어를 사용했어. 온전한 영어를 사용한 건... 아스트라칸 정도였지.'
문제는 연구정령 샤를이 탄생한 아스트라칸 시는 2천년 전에 존재했던 지하도시라는 점이었다.
어쩌면 루비치 그룹이 2천년 전부터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 뇌리를 스쳤다.
그때 달짝지근하면서도 톡! 쏘는 향기가 내 신경을 건드렸다.
그건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좀비의 향기였다.
고개를 내려보니, 검붉은 혈액 자국이 수면에서 시작해서 콘크리트 구조물 입구까지 이어져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프로펠러 제거하고, 언제든 부스터 기능 작동할 수 있게 준비해.'
- 프로펠러 해제.
- 부스터 작동준비 완료!
프로젝트 매니저의 알림음을 듣는 순간, 난 이미 콘크리트 구조물 입구를 통과하고 있었다.
10미터 높이의 입구 위에는 한뼘 두께의 틈이 있었다.
본래 철문이라도 내려오도록 만들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젠 철문은 커녕, 콘크리트 구조물 조차 거미줄 같은 크고 작은 균열이 가 있었다.
'이거... 무너지진 않겠지?'
< 건축연도를 추측할 수 없는 구조물입니다. >
< 흑연 크라켄과 전투할 경우 붕괴할 위험이 있습니다. >
시스템은 내 불안한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놈이 어디 숨었는지만 확인하고 빠져나와야할지도 모르겠군.'
손가락 굵기의 균열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건물 안엔 여러 개의 텅 빈 대형수족관이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물이나 물고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던 중이었다.
촤르르르! 통로 저 멀리서 물이 흘러넘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물소리를 따라 걸을수록 물소리는 점차 커져갔다.
내가 3미터 높이의 문앞에 도달했을 때였다.
복도를 적신 시커먼 물이 기간트 사이클롭스의 발바닥을 적셨다.
난 조심스럽게 문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 안엔 두 개의 거대한 수족관이 있었다.
하나는 수영장처럼 바닥 아래에 깊게 파인 사각형의 수족관이었다.
그 안엔 회색 빛 물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사각형 수족관 너머엔 높이 5미터 지름 30미터짜리 상대적으로 작은 원통형 수족관이 보였다.
그 수족관에선 직경 1미터짜리 관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관을 통해 사각형 수족관으로 투명한 물이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회색물과 투명한 물이 뒤섞이는 모습이 보였다.
오랜시간 물이 떨어졌다면 두 수족관의 물색은 똑같아야 했다.
물을 공급받는 사각형 수족관의 물 색이 회색이라면 물을 어둡게 만들만한 새로운 요인이 더해졌다고 봐야했다.
'여기군.'
드디어 흑연 크라켄을 찾았다고 확신한 순간이었다.
원형수족관에서 뻗어나온 관에서 푸확!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1미터가 넘는 크기의 보랏빛 문어들이 관을 통해 사각형 수족관으로 연이어 떨어지고 있었다.
'루비치 양식에서 만든 문어 생산시설이 아직도 작동하는 건가?'
적어도 수백 년, 어쩌면 2천 년이 됐을지도 모를 문어 생산시설이 아직까지 작동한다는 건 놀라웠다.
내가 루비치 양식의 생산설비를 흥미롭게 바라본 순간이었다.
관에서 떨어진 1미터 크기의 문어들은 사각형 수족관 사방으로 흩어지려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수면 아래에서 거대한 검은 다리가 나타나 수족관 사방으로 흩어지려는 작은 문어들을 움켜쥐기 시작했다.
빠르게 작은 문어들을 움켜쥐는 거대한 다리의 모습은 짝짓기하는 뱀 두 마리가 서로 뒤엉키는 것처럼 격렬하게 움직였다.
뱀들의 짝짓기 모습과 다른 점은 크기뿐이었다.
그 거대한 검은 문어 다리의 굵기가 굵은 곳은 5미터 이상이고 길이는 최소 30미터는 될 법했기때문이다.
그때 묘한 변화가 내 눈에 거슬렸다.
'왜 저 검은 문어 다리가 요동치는 자리의 물이 더 어두워지는 것 같지?'
< 해당 수면의 밝기가 10초 전에 비해 50% 이상 어두워졌습니다. >
그때 내 좌측 시야로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왔다.
시스템은 내 좌측 시야의 수면에 붉은 테두리선을 그려 특정 영역을 표시해줬다.
그러자 거대한 검은 문어 다리가 난리를 치는 구역과 그밖의 구역이 얼마나 어둡기의 차이가 나는지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붉은 테두리선 안의 물은 누군가 먹물을 떨어트리기라도 한 것처럼 검은 빛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내가 시스템이 띄워준 정보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거대한 다리를 피해 수십 마리의 작은 문어들이 사각형 수족관을 벗어났다.
그러자 수면 위로 거대한 다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대부분 검지만, 일부분은 보랏빛을 띤 문어 다리였다.
바닥을 쓰는 거대한 문어 다리의 빨판에 작은 문어들이 닿은 순간이었다.
뿌득!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문어들이 거대한 문어 다리의 빨판 속으로 빨려들어가버렸다.
'입이 아니라 빨판으로도 잡아먹을 수 있는 건가?'
< 일부 흡혈문어는 빨판을 통해 피를 빨아먹습니다. >
< 루비치 양식이 유전자 조작을 통해 크라켄을 만들어낸 거라면 흡혈문어의 유전자도 사용했을 수 있습니다. >
시스템이 메세지를 띄웠을 때였다.
두 마리의 작은 문어가 나를 향해 바쁘게 다리를 놀렸다.
'크라켄하고 다른 건... 다리가 8개뿐이란 점하고 크기가 작다는 것 뿐이로군.'
두 마리 작은 문어는 기간트 사이클롭스의 다리 사이를 지나 문을 향해 달렸다.
그 순간 내 앞에 굵고 검은 크라켄의 다리가 바닥을 쓸어왔다.
난 곧장 그 다리를 향해 두 손을 펼치며 외쳤다.
"라이트닝 핸즈!"
노란 번개가 내 양손에서 번뜩인 순간이었다.
꽈르르릉! 하는 천둥소리와 함께 건물이 통째로 우르르! 하고 흔들렸다.
그때 순간적으로 축 쳐진 크라켄의 다리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기절한 건가?'
난 놈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왔는지 내 영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곧장 초대형수족관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 50미터 깊이의 초대형 수족관 내부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물 속은 사이클롭스의 눈으로 빛을 비췄는데도 어두웠다.
하지만 사각형의 초대형 수족관 구석에 웅크린 크라켄의 모습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놈의 몸 주변 어디에서도 방금 빠져나온 영혼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크라켄이 웅크린 구석에서 검은 물감이 번지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군.'
놈은 여러 개의 다리로 스스로를 감싸안아 정확히 다리가 몇 개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수중동굴 입구에서 상대한 크라켄들보다 다리가 훨씬 굵다는 건 확인할 수 있었다.
'부상 때문에 특이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가?'
내가 다가가자, 놈을 감싼 다리들이 부르르 떨리더니 갑자기 펼쳐졌다.
그 순간 여섯 개의 길고 짧은 크라켄의 다리들이 여섯 방향으로 펼쳐졌다.
'특이능력도 사용하지 못하는 걸 보면... 부상이 꽤 심각한 모양이군.'
난 놈이 날 포위하려는 줄 알고 곧바로 양손부터 놈을 향해 펼쳤다.
그때였다.
- STOP!
크라켄의 여섯 개의 다리가 물 속에서 굽어지더니 영어 알파벳을 이루었다.
"뭐야? 이 자식 영어를 알아?"
- 음성을 상대에게 전달하시겠습니까?
그때 프로젝트 매니저가 내게 물었다.
'아니, 그건 되살린 후에 물어봐도 될 것 같군.'
의뢰를 완수하려면 어차피 놈을 죽여야했다.
이번 사냥의 기여도를 따진다면 흑연 크라켄의 사체는 내 몫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서둘러서 죽이고 나중에 언데드로 일으킨 후에 궁금증을 해결하는 게 훨씬 깔끔할 것 같았다.
'언데드는 내게 거짓말을 할 수 없지.'
난 그렇게 생각하며 외쳤다.
"라이트닝 핸즈!"
내 양손에서 노란 번개가 번쩍이자, 감전된 흑연 크라켄이 움찔하는 모습이 보였다.
놈은 곧장 수면 위로 고개를 쳐들었다.
그와 동시에 여섯 개의 다리가 펼쳐졌다 오무려졌다.
그러자 다리 사이에 위치한 놈의 입에서 거센 물줄기가 초대형수족관 바닥을 향해 뿜어졌다.
그 순간 뿜어진 물줄기의 반작용으로 놈이 수족관 수면을 향해 치솟아올랐다.
그건 마치 물로켓 같은 모습이었다.
놈의 머리가 수면에 닿은 순간 난 다시 외쳤다.
"라이트닝 핸즈!"
내 양손에서 노란 번개가 번뜩이고 물거품이 치솟았을 때였다.
여섯 개의 다리를 늘어트린 크라켄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내 우측 영안으로 놈의 몸에서 빠져나오는 거대한 영혼이 보였다.
난 곧장 초대형수족관 바닥을 박차고 올라 놈의 몸에 손을 댔다.
'입고!'
흑연 크라켄의 몸이 사라진 순간 속으로 명령했다.
'혼령탑 가동!'
그러자 시스템이 메세지를 띄웠다.
< [혼령탑]의 [영혼수확 마법진]을 가동합니다. >
그 순간 기간트 사이클롭스이 손에서 뻗어나간 검은 연기가 올가미가 되어 희뿌연 흑연 크라켄의 영혼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