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로렌 시의 기여도
그의 말대로 일반적인 크라켄 사체는 적으면 28개에서 많으면 37개까지 다양한 숫자의 팔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125완이면 팔이 125개인 크라켄도 있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크라켄은 회복력이 좋은 괴물입니다. 싸우고 상처입은 다리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드물게 새로운 다리가 자라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회복을 반복하면 다리 숫자가 점차 늘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설명한 티모시 패튼 차장은 흑연 크라켄의 사체를 손으로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신기하게도 크라켄은 더 많은 다리를 가진 크라켄일수록 더 강력한 마력기관을 갖습니다. 흑연 크라켄의 다리가 100개가 넘었기 때문에 저희 루비치 그룹은 17조 크레딧이란 거금을 제시했던 겁니다. 하지만..."
"티모시! 1시간 전에 이 놈이 보인 위용을 잊어버린 겐가? 다리 수는 적어도 이 놈이 품은 마력은 엄청날 거야!"
마틴 쇼네어 경찰청장은 당장 패튼 차장의 멱살이라도 쥘 것처럼 소리쳤다.
하지만 티모시 패튼 차장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 대신 흑연 크라켄의 몸에서 방금 잘려나간 듯한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크라켄은 다리가 잘려나간 순간부터 눈이 품은 마력량이 급격히 줄어듭니다."
난 티모시 패튼 차장의 말을 듣고 조용히 흑연 크라켄의 옆으로 다가가 손을 얹었다.
그 순간 내가 생산한 죽음의 기운이 흑연 크라켄의 몸 속으로 침투했다.
그 순간, 좀비화된 흑연 크라켄의 인체구성과 정신구조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좀비화 되면서 재생 능력을 잃었군.'
크라켄 특유의 뛰어난 재생능력은 좀비화되면서 잃었다.
그때 내가 생산한 죽음의 기운이 흑연 크라켄의 머리에 위치한 뇌에 도달했다.
그 순간 흑연 크라켄의 뇌에 남은 잔존기억 몇 가지가 내 뇌리를 스쳤다.
3번의 진화.
다른 좀비들은 진화를 거칠 때마다 온몸이 레벨에 맞게 성장한다.
하지만 흑연 크라켄은 오직 두 눈만 성장했다.
수 많은 싸움으로 잃은 다리를 회복하는 대신, 마력기관인 두 눈만 진화한 셈이었다.
그 결과 고작 3레벨에 불과한데도 홀로 로렌 시를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던 잔존기억이 힘을 잃고 사라졌다.
그때 내 관심을 끈 건 단연코 흑연 크라켄의 두 눈이었다.
흑연 크라켄의 두 눈에선 잔존기억에 남아있던 것 만큼이나 강력한 마력이 느껴졌다.
각각의 눈이 품은 마력은 내 마력창고에 숨겨둔 코르넬 반물질 코어보다 조금 모자란 수준이었다.
'시스템, 흑연 크라켄의 눈이 품은 마력량을 수치화해줄 수 있겠어?'
< 각각의 눈이 품은 마략량은 71,509 스프린터파워(SP)와 72,162 스프린터파워(SP)입니다. >
그건 다리가 30개인 크라켄의 눈이 품은 마력량과 비교하면 12배에 가까운 양이었다.
내가 거기까지 파악한 순간이었다.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패튼 차장, 흑연 크라켄 몸값으로 얼마를 쳐주겠다는 말이오?"
"본래 6완 크라켄 수준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나... 본사와 로렌 시가 긴밀한 관계임을 감안하여 6천억 크레딧을 제시하는 바입니다."
티모시 패튼 차장은 일반적인 크라켄 현상금의 6배를 내걸었다.
그건 흑연 크라켄의 사체를 보기 전에 루비치 그룹이 제시했던 17조 크레딧에 비하면 28분의 1수준이었다.
그 말을 들은 아드리안 시장과 마틴 쇼네어 경찰청장의 얼굴은 썩어들어갔다.
흑연계열의 특이능력이 아주 희소하고 상대하기 어려우니, 연구가치가 높다.
루비치 그룹은 그 연구가치를 완전히 무시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루비치 그룹과는 조금 달랐다.
'흑연 크라켄의 눈이 품은 마력량만 따져도 일반 크라켄 몸값의 12배는 쳐줘야 해.'
하지만 흑연 크라켄의 사체가 품은 마력량이 일반 크라켄의 12배라는 사실은 나만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흑연 크라켄은 기간트 2대를 포함한 도시를 속수무책으로 가지고 놀았던 좀비화된 크라켄이었다.
난 그런 귀한 언데드 재료를 루비치 그룹이 고작 6천 크레딧에 손에 넣는 모습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패튼 차장님이 반대하시지 않는다면 제가 흑연 크라켄의 사체를 7천억 크레딧에 사고 싶습니다."
"네?"
내가 끼어들자, 티모시 패튼 차장이 벙찐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처음 맡은 의뢰의 기념품으로 갖고 싶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티모시 패튼 차장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루비치 그룹에선 6천억 크레딧도 아깝다고 생각한 모양이군.'
난 티모시 패튼 차장의 반응을 보고 루비치 그룹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루비치 그룹은 로렌 시와의 원만한 관계유지를 위해 6천억 크레딧이라는 비용을 지불할 생각이지, 실제로 흑연 크라켄 사체의 가치는 그보다 훨씬 낮다고 평가한 모양이었다.
그때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이 우리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패튼 차장, 일반 크라켄 가격도 흥정할 생각입니까?"
"아, 아닙니다. 29구 모두 정상가에 매입하겠습니다."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은 패튼 차장의 확답을 들은 후에 나를 보며 말했다.
"흑연 크라켄을 좋은 가격에 인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값을 치루려는 것뿐입니다."
내 대답을 들은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의 입가에 훈훈한 미소가 감돌았다.
"29구의 크라켄 현상금은 사체 인도조건으로 지불해드릴 수 있습니다. 혹시 다른 판매처가 있으십니까?"
은근한 목소리로 묻는 걸 보니, 크라켄 사체를 로렌 시가 매입한 후 다시 루비치 그룹에 넘기면서도 이득을 남기는 모양이었다.
"아뇨, 처음부터 로렌 시에 넘길 계획이었습니다. 의뢰 도중에 받은 현상금인데 이것도 의뢰금에 합산되는 겁니까?"
크라켄 사체는 한 구에 1천억 크레딧의 현상금이 걸려있었다.
만약 29구의 사체 현상금이 모두 의뢰대금으로 합산된다면?
현상금만 따져도 2조 9천억 크레딧을 버는 셈이었다.
내가 노리는 건 실버 승급 기준이 1 크리스탈이란 점이었다.
현상금만 의뢰대금으로 인정되면, 1 크리스탈은 1조 크레딧을 의미하기 때문에 다음 의뢰를 받을 필요도 없이 승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이 미안함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어보였다.
"제가 알기론 맡으신 의뢰 외 수익은 의뢰대금으로 계산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가 패튼 차장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그러자 패튼 차장도 시장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일반 크라켄 사체 29구의 현상금 2조 9천억 크레딧에 오늘 새벽 3시에 출동하셨으니 이틀치 일당을 쳐드리겠습니다."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은 인심 좋게 내 의뢰대금까지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틀치 일당 2천억 크레딧에 의뢰대금 4천억 크레딧 거기에 2조 9천억 크레딧을 더하면... 3조 5천억 크레딧입니다. 계좌번호를 확인해주시겠습니까?"
그 순간 내 좌측 시야로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왔다.
< 로렌 시 시정부에서 계좌번호 확인요청이 들어왔습니다. >
< 입금예정 금액은 3조 5천억 크레딧입니다. >
< 입금확인 버튼을 누르실 경우, 3조 5천억 크레딧이 입금됩니다. >
난 시스템 메세지를 읽고 입금확인 버튼을 누르는 대신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에게 물었다.
"한 가지가 빠진 것 같군요?"
"아, 흑연 크라켄 대금은 입금 받으신 후에 보내주셔도 됩니다."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은 마치 29마리의 크라켄 현상금과 이틀치 일당만 내 몫인 것처럼 말했다.
내가 혼자 잡아온 흑연 크라켄은 당연히 로렌 시 소유니까 내 몫으로 계산할 필요가 없다는듯한 태도였다.
'아무리 이게 내 첫번째 의뢰라고해도 그렇지... 아주 애송이로 보고 벗겨먹으려고 하는군.'
속에선 화가 치밀었다.
사실 로렌 시는 흑연 크라켄을 처치하기위해 모든 기갑부대와 기간트 두 기까지 투입했다.
하지만 흑연 크라켄에게는 아무런 데미지도 주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시간을 끌며 흑연 크라켄이 알아서 물러나주기를 기도하는 수준이었다.
'쥐뿔도 한 건 없으면서 얼렁뚱땅 내 몫을 가로채려 드시겠다?'
파렴치한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 너머로 수천 명 단위로 모인 로렌 시 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로렌 시에 입성했을 때.
그리고 흑연 크라켄을 쫓아냈을 때.
마지막으로 내가 흑연 크라켄의 사체를 공터에 내려놓았을 때.
로렌 시 시민들은 내게 환호했다.
다들 나를 구세주보듯했다.
하지만 로렌 시 시장이 내 뒤통수를 치는 이때, 내 편을 드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보니 오히려 더 오기가 솟았다.
'내가 이대로 흑연 크라켄을 뺏기면 사람이 아니다.'
난 속으로 마음은 굳게 먹고 표정부터 관리했다.
"하하하! 시장님, 계산이 뭔가 잘못됐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뻔뻔하게 내게 되물었다.
난 그 모습을 보고, 대화 상대를 바꿔야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여긴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의 앞마당이라 날 도와줄만한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그때 나와 눈이 마주친 패튼 차장이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았다.
제발 자신에게 말 걸지 말아달라는듯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패튼 차장님, 보. 상.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보, 보상이요? 어, 어떤 보상을 말씀하시는 건지...?"
그 순간 두 눈을 동그랗게 뜬 티모시 패튼 차장이 두손을 자기도 모르게 명치 어림으로 올리며 물었다.
'용병연금.'
난 조용히 입모양만 보여줬다.
용병협회에서 내게 무례한 보상으로 용병연금에 100억 크레딧을 기부하겠다고 했다가 혼쭐이 난 사람이 바로 패튼 차장이었다.
그는 그 이상의 비용은 상부에 문의해보겠다는 말만 남기고 아무런 대답을 가져오지 못했다.
난 패튼 차장의 약한 고리를 잡아당긴 것이다.
그가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루비치 그룹은 100억 크레딧이 아니라 그 열 배에 달하는 1천억 크레딧을 용병연금에 기부해야할 것이다.
루비치 그룹 입장에선 1천억 크레딧은 큰 돈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티모티 패튼 개인이 1천억 크레딧을 날렸다면 어떻게 될까?
'루비치 그룹에 그의 자리는 남아있지 않겠지.'
일개 회사원이 회사에 1천억 크레딧이라는 거액의 손해를 끼친다면, 남은 건 해고와 손해배상 소송뿐이었다.
물론 이 일을 조용히 처리해야하는 루비치 그룹이었으니, 손해배상 소송까지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재계서열 9위인 루비치에 큰 손해를 끼치고 잘린 티모시 패튼이 좋은 직장에 갈 확율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할 확률보다 낮을 것이다.
"패튼 차장님, 제가 혼자 잡은 29마리의 크라켄 사냥을 제외하고 오직 흑연 크라켄 사냥에서의 제 기여도를 공정하게 평가해주시겠습니까?"
"어...?"
내가 묻자, 티모시 패튼 차장이 당황한 표정으로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과 마틴 쇼네어 경찰청장의 표정을 살폈다.
루비치 그룹과 로렌 시의 연대관계를 생각한다면 패튼 차장은 내가 아니라 시장 편을 들어줘야했다.
하지만 패튼 차장은 자신의 커리어에 연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루비치 그룹의 오너일가가 아니라 일개 직장인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뭐, 제 기여도를 공정하게 평가하지 못할 문제라도 있습니까?"
난 식음땀까지 흘리며 불안해하는 패튼 차장에게 물었다.
"아, 아닙니다. 아서님의 기여도는..."
티모시 패튼 차장은 급히 자신의 손목시계를 터치했다.
그리곤 허공을 연이어 터치하는 걸 보니, 흑연 크라켄과의 전투에서 내 기여도를 계산하는 모양이었다.
티모시 패튼 차장이 계산을 끝낼 때까지는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세분께 보내드렸습니다."
그가 말한 순간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왔다.
< 루비치 그룹의 티모시 패튼 차장이 기여도 계산결과를 보내왔습니다. >
< 이는 연합군 산하 대기갑사령부가 정한 [전투기여 평가기준]에 따른 계산결과입니다. >
< [흑연 크라켄 사냥]에서 아서 님의 기여도는 약 95%입니다. >
< 흑연 크라켄의 사체를 7천억 크레딧으로 평가할 경우, 로렌 시의 몫은 350억 크레딧입니다. >
난 시스템 메세지를 확인한 후,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에게 말했다.
"3조 5천억 크레딧에 흑연 크라켄 값이 7천억 크레딧이고 제 몫이 95%니까... 6,650억 크레딧이네요. 4조 1,650억 크레딧 송금해주십쇼."
"계, 계산이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아참! 제가 흑연 크라켄을 산다고 했던 걸 깜빡했습니다. 그럼 흑연 크라켄 값은 빼야겠군요? 3조 5천억 크레딧만 송금해주십쇼. 흑연 크라켄 사체 중 5%만 로렌 시 소유니까, 7천억 크레딧 중 5%에 해당하는 350억 크레딧 송금해드리겠습니다."
난 그렇게 말하며 흑연 크라켄 사체에 손을 얹었다.
'입고!'
그 순간 소리도 없이 흑연 크라켄의 사체가 사라져버렸다.
"아공간을 소유하셨군요?"
"기간트워리어는 아공간을 소유하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내가 당당하게 되묻자,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이 대답했다.
"조 단위의 거래를 이렇게 노상에서 하는 건 실례겠군요. 자세한 조율은 시장실에서 하시죠."
그는 시청 방향을 왼손으로 가리키더니, 내 대답도 듣지 않고 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