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긴급구조사인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은 내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자신의 기간트 키메라에 탑승했다.
시장을 태운 기간트 키메라가 똬리튼 뱀꼬리를 튕기자 쿠왕! 하는 폭발음과 함께 10미터 이상 점프했다.
그때 기간트 키메라의 등 뒤로 날개가 펼쳐졌다.
그 순간 날개에서 후우우왕! 하는 엔진음과 함께 푸른 빛 부스터가 터져나왔다.
기간트 키메라가 시청 방향으로 사라진 건 눈 깜짝할 사이에 불과했다.
난 곧장 메카닉 네크로맨서의 무덤에 크라켄 사체 29구부터 입고시켰다.
"의뢰를 완수하셔놓고 굳이 로렌 시와 맞설 이유가 있습니까?"
마틴 쇼네어 경찰청장은 크라켄의 핏물만 남은 웅덩이를 바라보며 내게 물었다.
"난 정당한 대가를 원할 뿐입니다."
난 마틴 쇼네어를 뒤로하고 기간트 사이클롭스에 탑승했다.
그때 뒤에서 경찰청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돌아보니 마틴 쇼네어 경찰청장은 기간트 프랑켄슈타인에 탑승한 채, 앞장을 섰다.
동이 터올 무렵이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로렌 시의 시민 대부분이 몰려나온 것 같았다.
동부장벽에서 중앙에 위치한 시청으로 가는 중앙대로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
문제는 내가 로렌 시에 입성할 땐, 꽃잎을 뿌려주던 시민들이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내가 탄 사이클롭스를 올려다보며 수군대고 있다는 점이었다.
시민들의 웅성임이 점차 커질 때쯤, 기간트 프랑켄슈타인이 원형건물 앞에 멈춰섰다.
기간트 프랑켄슈타인의 눈이 푸른 빛으로 번쩍였다.
그 순간 기간트 프랑켄슈타인 앞에 마틴 쇼네어 경찰청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였다.
콜로세움 형태를 본 뜬 현대적인 빌딩에서 정장차림의 남성 6명이 달려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유리, 무슨 일인가?"
마틴 쇼네어 경찰청장은 짧은 곱슬머리의 백인남성에게 물었다.
"니카라 시장님께서 이 시간부로 마틴 쇼네어의 경찰청장직을 직무정지시키셨습니다. 쇼네어 씨, 기간트 프랑켄슈타인의 인장반지를 반납하시고 자택에서 추후 처분에 대기하시기 바랍니다."
키는 크지 않지만 몸이 돌덩어리처럼 단단해보이는 유리라는 남자가 말했다.
그는 마틴 쇼네어 경찰청장 입장에선 충격적일 행정처분을 전하면서도 목소리나 표정에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매형이 내게 그럴 리가 없어!"
마틴 쇼네어는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내저어보였다.
그때 왼손검지에 낀 은색반지를 더듬는 마틴 쇼네어의 모습이 보였다.
그건 기간트 프랑켄슈타인에 탑승할지 말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쇼네어 씨, 정보자원들을 운용할 때 쓰라고 배정된 특수작전비를 당신이 빼돌렸다는 증거가 나왔습니다."
"트, 특수작전비?"
"당신이 시장님의 인척이 아니었으면, 한밤 중에 왼손이 잘린 채로 정보원에 납치됐을 겁니다."
내가 정보원이란 단어를 들은 순간이었다.
마틴 쇼네어는 바늘에 찔린 사람처럼 멈칫했다.
그 모습을 본 유리라고 불린 남자가 내게 말했다.
"아서님, 마틴 쇼네어의 도주를 막아주시면 1천억 크레딧을 추가로 지급하겠다는 시장님의 전언이 있으셨습니다."
"됐네. 매형의 뜻에 따르지."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마틴 쇼네어가 은색 인장반지를 뽑아 유리에게 던져버렸다.
"비서실 직원들이 댁까지 안전하게 모실 겁니다."
정장차림의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마틴 쇼네어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시청광장에서 모습을 감췄다.
"시장님께선 아서 님을 시장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유리라는 백인남자가 내게 고개 숙이며 시청 방향의 길을 열어줬다.
'급하게 자리를 피하더니... 경찰청장을 쫓아내기 위함이었나?'
내가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의 속셈을 엿보려는데 유리가 시청 정문으로 향하는 길을 앞장섰다.
우린 시청으로 들어가자마자, 시청 직원이 잡아놓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의 시장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 순간, 오래된 책 냄새가 내 코끝을 자극했다.
주변을 돌아봤다.
하지만 벽면을 장식한 건 오래된 배틀슈트와 장식용 돌덩어리뿐이었다.
'저쪽인가?'
비스듬히 열린 시장실 문틈을 통해 종이 썩는 냄새가 밀려나오고 있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타이트한 오피스룩의 갈색머리 여비서가 시장실 문을 열며, 내게 말했다.
유리라는 남자는 시장실 밖에서 내게 고개를 숙일 뿐, 시장실로 따라들어오지는 않았다.
시장실엔 검은 책상 뒤에 앉아 허공을 터치하는 시장이 보였다.
그보다 내 눈길을 끈 건 시장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이었다.
5미터 높이의 책장을 가득 채운 오래된 책들.
< 여러 언어가 뒤섞인 문자를 발견했습니다. >
< 세월의 여파로 제목을 구분하기 어려운 고서적을 발견했습니다. >
'해석하고 복원해서 보여줄 수 있겠나?'
< 가능합니다. >
시스템이 대답한 순간 벽면을 가득 채운 고서적들의 제목이 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 에사바드 해의 지리적 이점 >
< 해저도시 캅루드의 탄생 >
< 해저도시 살다르의 역사 >
< 크망 가문의 흥망성쇄 >
< 울리타 레어의 전설과 실...
그건 바다와 육지의 중간지점에서 무역항으로서 중심을 잡아야하는 로렌 시와 시장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제목들이었다.
"고대어에도 관심이 있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돌아보니 흥미로운 눈으로 날 바라보는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이 보였다.
"끝없이 공부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했을 겁니다."
난 사실 고대어를 공부해본 적도 없었다.
모두 지난 내 언어기억을 넘겨받은 시스템이 해석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에게 시스템과 내 언어기억에 대해 설명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또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이젠 거짓말이 숨쉬듯 자연스럽군.'
난 딱히 준비하지도 않은 거짓말을 자연스럽게 내뱉는 내 모습에 스스로 놀라고 말았다.
"우리 로렌 시에는 아서님처럼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고닦는 경찰청장이 필요합니다."
그는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본론을 꺼내들었다.
"저는 흑연 크라켄과 크라켄의 사체 가격을 협상하는 자리인 줄 알았습니다만...?"
"대금은 앞서 아서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지급해드리겠습니다. 우리 로렌 시는 홀로 설 수 없는 항구도시입니다. 기간트워리어를 박대했다는 소문이 돌면 앞으로 누가 크라켄 토벌전에 참가하려고 들겠습니까?"
그는 어느새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10분 전엔 흑연 크라켄의 사체를 내게 빼앗겼다는 생각에 얼굴을 굳혔던 사람이 바로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이었다.
하지만 고작 10분 사이에 자신의 처남을 경찰청장직에서 내쫓고 오히려 내게 경찰청장직을 제안하고 있었다.
'냉정한 건가? 아니면... 몇분만에 감정이 널뛰는 사이코페스인가?'
내가 속으로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의 행동을 가늠하려할 때였다.
그가 허공을 터치했다.
그러자 시장실 문이 열리고 유리라는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고풍스러운 검은 나무상자를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에게 건네고 시장실을 나갔다.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은 접객용 테이블에 검은 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기간트 프랑켄슈타인의 인장반지와 보증서입니다."
그는 상자를 열어 그 안에 담긴 은색 인장반지와 스크롤 형태의 보증서를 내게 보여줬다.
"제겐 이미 마리우스 2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시장님 말 한 마디에 잘려나가는 경찰청장 자리엔 관심이 없습니다."
"승낙하실지 거절하실지는 제 조건을 들어보신 후에 결정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은 맞은편 좌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절해도 크라켄 현상금은 지급해주시는 겁니까?"
"원하면 지금 당장 송금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난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의 확답을 듣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기간트 프랑켄슈타인은 로렌 시 경찰청 소속입니다. 아서님이 경찰청장직을 수락하시면, 원하는 부하에게 기간트 프랑켄슈타인의 인장반지를 맡길 수 있습니다. 또한 경찰청장은 1년에 60조 크레딧이란 거금을 운용할 자격이 있습니다. 아서 님이 경찰청장이 되시면..."
아드리안 시장은 로렌 시 경찰청장이 운용할 수 있는 자금과 인적자원의 규모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작은 왕국에서 재상의 자리에 자리에 오를 것인가?
아니면 더 큰 판에서 날개를 펼쳐볼 것인가?
한국에서 살던 나였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재상의 자리를 택했을 것이다.
안정적인 일자리.
그건 과거의 내겐 엄청난 매력이었으니까.
하지만 사이보그로 다시 태어난 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난 베로노바 마리우스보다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어.'
그렇기에 로렌 시에서 멈추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내 머릿속엔 기간트 프랑켄슈타인의 기간트워리어 임명권이 주어진다는 말이 떠나질 않았다.
'제니퍼나 데스윙에게 프랑켄슈타인을 맡기면 내가 부릴 수 있는 전력이 두 배가 될지도 모르겠군.'
문제는 내가 팔미라 시에 벌려놓은 사업들이었다.
암셀학파.
샤를연구소의 신체복원사업.
용병협회의 이사직까지.
내가 기간트 프랑켄슈타인을 얻겠다고 로렌 시로 보금자리를 옮긴다면 모두 버려야할 사업들이기도 했다.
샤를연구소는 어차피 블랙마켓에 자리잡았으니,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용병협회의 이사 자리는 팔미라 시에서 활동할 때만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암셀학파는 달랐다.
'소드테일 변이종의 사체와 흑연 크라켄의 사체를 확보한 지금 더 뛰어난 사령술 주문을 얻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야.'
난 내 발전에 밑거름이 될만한 주문이 필요했다.
에픽 등급 언데드 아머드 데스나이트 게릭슨에게 어울리는 몸을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네크로맨서 학회와의 끈이 되어줄 암셀학파만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제니퍼, 로렌 시에 자리잡은 네크로맨서 학파는 몇이나 되지?'
-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아예 없다고?'
- 팔미라 시는 네크로맨서 학파가 로렌 시에 자리잡는 걸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제니퍼의 정신파를 듣고, 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기간트 프랑켄슈타인이 탐이나긴하지만... 게릭슨이나 흑연 크라켄급은 아니지.'
하지만 난 바보같이 내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진 않았다.
"고민할 시간은 어느 정도 주실 수 있습니까?"
"한달이면 충분하시겠습니까?"
"충분합니다."
내가 대답하자, 아드리안 니카라 시장이 작은 한숨과 함께 기간트 프랑켄슈타인의 인장반지가 담긴 상자를 닫았다.
"부디 로렌 시의 발전가능성을 고려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드리안 시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
7시간 후.
B-14 구역의 기간트관리처.
- 실력 있는 분이시리라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처리하실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사이보그 주무관 구스 안드레가 의외라는듯이 말했다.
그러자 그의 검은 유리질 얼굴에서 푸른 빛 알갱이들이 발생했다 사라졌다.
"처리된 겁니까?"
- 네, 일당과 의뢰대금 총 6천억 크레딧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바로 다음 의뢰를 수주하시겠습니까?
"아뇨, 피곤해서 며칠 쉬어야겠습니다."
사실 드레이크 헤츨링 하트가 한 차례 성장한 후, 피곤함 따윈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하루 24시간 온몸에 활력이 넘쳐서 곤란할 정도였다.
하지만 네크로맨서 학회가 열흘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라 덥석 다른 의뢰를 맡는 건 곤란했다.
그 전에 준비할 일이 산더미였기 때문이다.
- 많은 초보 기간트워리어들이 자신의 컨디션 관리에 실패해서 큰 위험에 노출되곤 합니다. 아서님은 확실히 그런 애송이들과는 다르시군요?
그건 전에 만났던 사이보그 주무관 구스 안드레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친근한 아부였다.
"내게 부탁할 일이라도 있습니까?"
난 사이보그 주무관에게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시스템이 했다.
< 개인채널을 통해 통신요청이 들어왔습니다. >
< [구스 안드레]의 통신요청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
'허가한다.'
내가 속으로 허락하자마자 사이보그 주무관이 스피커로 대답했다.
- 더 많은 의뢰를 완수하셔서 높은 계급에 오르시길 바랍니다. 그건 아서님과 팔미라 시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길입니다.
구스 안드레는 그렇게 말하곤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러자 전광판 앞에서 대기 중이던 두 사람이 다가왔다.
램버트 그룹의 엘런 램버트와 오귀스트 가문의 집사 카로락이었다.
그때, 시스템이 내 좌측 시야에 메세지를 띄웠다.
< 구스 안드레 : 아서님은 팔미라 사이보그들의 희망입니다. 절대 쓰러지시면 안됩니다. >
그건 사이보그 주무관 구스 안드레가 보낸 메세지였다.
내가 돌아보려하자 다시 메세지가 올라왔다.
< 구스 안드레 : 저와 접촉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면 안됩니다. >
'왜 이렇게 비밀스럽게 접근한 겁니까?'
내가 생각하자 시스템이 내 생각을 메세지로 변환해서 구스 안드레에게 보냈다.
< 구스 안드레 : 팔미라 시 상류층 중 사이보그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하길 바라는 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
'단지 내가 성공한 사이보그이기때문에 접근하셨다?'
< 구스 안드레 : 우리 사이보그들은 팔미라의 부품으로 살아가는 것 외엔 아무런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서님은 하층민들이나 시술받는 의체를 가지고 기간트워리어가 되신 겁니다. >
F 구역과 D 구역에 사는 팔미라 시의 하층민들은 몸을 기계화해서 스스로를 강화했다.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좀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수는 많지만 힘이 없는 사이보그들이 나란 규격외의 존재를 보고 희망을 갖는다?
'신데렐라 스토리를 듣고 접근했다...'
선의를 가지고 접근했다는 말은 솔직히 선뜻 믿음이 가질 않았다.
그때였다.
< 구스 안드레 : 시간이 없으니 긴급구조사인만 알려드리겠습니다. >
사이보그 주무관 구스 안드레의 메세지가 올라왔다.
그리고 곧이어 옆으로 눕혀진 8자 문양이 올라왔다.
< 구스 안드레 : 우리는 상류층이 될 수 없지만, 팔미라 어디에든 존재합니다. 팔미라의 어느 골목에서든 이 문양을 그려두시면 사이보그들이 당신을 피신시켜줄 겁니다. >
사이보그 주무관의 믿기 어려운 메세지가 올라온 순간이었다.
"첫번째 의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이런 속도시라면 늦어도 한달 안에는 실버 계급으로 승급하시겠습니다?"
오귀스트 가문의 집사 카로락과 엘런 램버트가 내 앞에 서며 축하인사를 전해왔다.
엘런 램버트는 유력한 망명귀족의 후예였다.
그리고 카로락 집사는 초상능력을 각성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인물이었다.
'자기들과는 관련도 없는 의뢰를 마치고 왔을 뿐인데, 망명귀족들이 앞다투어 축하해주는군.'
노는 물이 바뀌었다는 걸 실감한 순간 사이보그 주무관이 보내던 메세지가 끊어졌다는 걸 느꼈다.
그건 마치 초상능력자들에게 우리가 나눈 대화가 들킬까 두려운 것 같은 반응이었다.
'초상능력자들은 전파통신도 감지할 수 있는 건가?'
< 기간트 사이클롭스의 데이터까지 검색해봤습니다. >
< 하지만 관련 정보를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
사이클롭스 프로젝트가 탄생한 수백년 전엔 그런 능력이 없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 시간이면 새로운 초상능력이 탄생하거나 감청장비가 개발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두 가지 경우의 수에 모두 대비할 방법을 찾아봐야겠군.'
난 속으로 사이보그 주무관의 속셈을 가늠하며 카로락 집사와 악수를 나눴다.
"감사합니다."
"저희 램버트 그룹이 발굴 중인 디베치 미궁은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아서 님께서 실버 계급에만 도달하시면 언제든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엘런 램버트는 곧장 본론부터 꺼내들었다.
"아서 님께선 첫 의뢰를 이틀만에 끝내실만큼 유능한 분이시니, 눈앞의 푼돈에 연연하시기보단 토지할양 같은 큰 꿈을 품으시리라 믿습니다."
엘런 램버트에게 선수를 빼앗긴 카로락 집사가 믿음이 가득한 눈으로 내게 말했다.
"새벽에 수중전을 벌였더니 피곤하군요. 실버 계급이 되면 신중하게 고려해보겠습니다."
난 파리떼처럼 엉겨붙으려는 두 사람을 떼어낸 후 에어로트럭으로 향했다.
'실버 계급에 오르기도 전에 이렇게 섭외하려고 달려드는 걸 보면, 실제로 계급이 오른 후엔 더 귀찮아질지도 모르겠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카로락 집사와 엘런 램버트는 초상능력자인 다른 기간트워리어와 날 차별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이 나를 망명귀족 대하듯 하는데, 나와 암셀학파와의 관계가 드러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직 내가 네크로맨서라는 사실을 드러내기엔 일러.'
난 가능하면 내 정체를 최대한 숨기고 싶었다.
그래야 삼대가문이 네크로맨서 학파를 견제하듯 날 견제하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계획을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에어로트럭의 뒷문이 열리고 세사르가 내려 날 안으로 인도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난 에어로트럭에 탑승한 후, 세사르가 따라타며 문을 닫는 걸 확인한 후에 물었다.
"강화시술 예정자는 몇 명이나 모아뒀습니까?"
"조금 전에 5천 명 돌파했습니다."
"바로 암셀학파로 갑시다."
"쉬지않고 바로 시술하실 생각이십니까?"
세사르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날 주목하기 전에 서둘러야겠습니다. 2단계 강화시술자 모집을 앞당길 수 있겠습니까?"
"네크로맨서 학회 이전까지는 완료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호너, 출발하지."
내가 명령하자, 운전석에 앉아있던 호너 데이비슨이 대답했다.
"출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