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151화 (151/152)

151화. 화이트스컬

10일 후, C-6 구역 핵심산업 연구단지 내의 빈시연구소. 

지하주차장으로 진입하자마자 차콜색 제복을 입은 경비원이 우리가 탄 에어로리무진을 막아섰다. 

검은 선글라스를 쓴 경비원은 운전석 창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운전자가 차창문을 내리자, 경비원이 말했다. 

"신분증 제시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조수석에 앉은 엘리엇 암셀이 신분증을 건넸다. 

"확인했습니다. 명단조회결과, 암셀학파에선 학파장님 외 1인의 참석이 허가되었습니다. 참석인원만 하차해주시겠습니까?" 

경비원의 말을 들은 엘리엇 암셀이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바라봤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엘리엇 암셀이 대답했다. 

"그러죠." 

조수석에서 내리는 엘리엇 암셀을 보고 뒷문을 열고 내렸다. 

하지만 지하주차장에 차량은 우리가 몰고 온 에어로리무진 한 대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내가 갸웃한 순간이었다. 

경비원이 두 개의 해골마스크를 나와 엘리엇 암셀에게 건네며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마스크를 착용해주셔야합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엘리엇 암셀은 고개를 끄덕여보인 후 해골마스크를 썼다. 

그건 아무런 기능도 없이 할로윈 파티 때나 쓸법한 장난감이었다. 

그때 경비원에게서 달달한 좀비향이 뿜어져나왔다. 

< 좀비의 악취와 유사도 15.9% > 

< 3단계 강화시술자입니다. > 

그건 3단계 강화시술자치고는 꽤 진한 향기였다. 

'배틀슈트도 입히지 않아서 일반인인 줄 알았는데, 빈시학파에서 키우는 인물인가?' 

어쩌면 3단계 랭커일지로 모를 인물을 보고 흥미가 일어난 순간이었다. 

"따라오시죠." 

경비원은 엘리엇 암셀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우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가 안내한 곳은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경비원은 버튼을 위, 아래, 아래, 아래, 위 순서로 눌렀다. 

그러자 엘리베이터문 왼쪽의 벽면이 그긍! 하는 소리를 내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엘리엇 암셀과 함께 의문의 통로 앞에 서자 경비원이 두 개의 손전등을 건네며 말했다. 

"제가 모실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통로를 따라 이동하시면 목적지에 도착하실 수 있을 겁니다." 

"고맙네." 

엘리엇 암셀은 의심도 없이 손전등만 받아들고 어두운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그의 뒤를 따라 통로에 들어서자, 그그긍! 하는 조금은 거친 소음과 함께 통로입구가 다시 닫혀버렸다. 

"이런 곳으로 모셔서 죄송합니다." 

엘리엇 암셀은 마감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거친 통로를 보며 죄송스럽다는 듯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건설업체에서 만든 것 같지는 않군요." 

난 울퉁불퉁한 바닥과 거기에 모인 물웅덩이를 보며 말했다. 

"빈시학파에서 신뢰할 수 있는 강화인간들만 동원해서 만들었을 겁니다. 외부인원을 끌어들이면 비밀이 탄로날 수 있을테니까요." 

엘리엇 암셀은 그렇게 말하며 통로 안쪽을 흘깃거렸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습니까?" 

"정해진 시간 안에 통로를 통과하지 못하면 학회 주최측에서 통로를 폭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서두릅시다." 

난 엘리엇 암셀의 말을 듣고나서야 네크로맨서 학회가 이번 모임을 얼마나 공 들여서 준비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은 철골 구조물로 보강하긴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흙더미가 나뒹굴어다니는 어설픈 지하통로였다. 

"작은 노력만으로도 붕괴시킬 수 있겠군요?" 

"아무래도 팔미라 시의 삼대가문은 네크로맨서들의 집회를 반기지 않다보니, 방어적인 태도일 수밖에 없다고 들었습니다." 

엘리엇 암셀의 설명을 듣는데, 저 멀리 통로의 끝이 보였다. 

"장막입니다." 

엘리엇 암셀은 이미 이 통로에 대해 설명을 들은 모양이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어두운 천막을 좌우로 걷어냈다. 

그러자 좁은 공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 허리 높이의 싸구려 플라스틱 테이블 너머엔 해골마스크를 쓰고 검은 로브까지 걸친 네크로맨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원확인을 위해 학파장님께선 잠시 마스크를 벗어주시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엘리엇 암셀이 해골마스크를 벗자, 문지기 네크로맨서가 말했다. 

"암셀학파장님, 학회 첫 방문을 축하드립니다." 

"초대해주셔서 영광입니다." 

그 모습을 본 엘리엇 암셀은 깍듯하게 고개 숙이며 대답했다. 

고작 문지기에 불과한 네크로맨서에게 이렇게까지 깍듯할 필요가 있나 의문이 든 순간이었다. 

"스톨즈, 검은 로브를 입은 네크로맨서는 4급 네크로맨서뿐이다. 인사드리거라." 

엘리엇 암셀은 근엄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난 그의 말을 듣고나서야 4급 네크로맨서라는 자를 유심히 바라봤다. 

그 순간 그의 목젖 옆에 응축된 사령마력이 내 감각에 포착되었다. 

'확실히... 엘리엇 암셀의 꼬리뼈에 응축한 사령마력보다는 많은 양이군.' 

< 엘리엇 암셀의 사령마력보다 74% 많은 사령마력을 감지했습니다. > 

'마력로의 출력 형식으로 환산하면 얼마지?' 

< 113 스프린터파워(SP)입니다. > 

난 시스템 메세지를 읽고 속으로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4급 네크로맨서라는 자가 가진 마력량이라는 게 고작 보급형 배틀슈트에 장착되는 초소형마력로의 출력과 비슷한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엘리엇 암셀이 눈을 찡긋거리며 4급 네크로맨서 쪽을 가리켰다. 

난 암셀학파의 후계자인 스톨즈를 대신해서 참석했다. 

그러니 엘리엇 암셀의 지시대로 4급 네크로맨서에게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인사하자, 4급 네크로맨서는 자신 앞에 펼쳐둔 테이블에 참새 사체 두 구를 내려놓았다. 

"사체가 작아서 스켈레톤 소환에 많은 사령마력을 소모하진 않을 겁니다." 

"신원을 확인하셨는데, 스켈레톤 소환까지 사용해야하는 겁니까?" 

나와 눈이 마주친 엘리엇 암셀은 4급 네크로맨서에게 물었다. 

"귀족들은 우리 학회가 공유하는 최신 강화시술정보를 빼내려고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만약 저들이 3단계 더 나아가 4단계 강화시술에 성공하기라도 한다면 팔미라 시에 네크로맨서들이 설 자리가 남아있겠습니까?" 

4급 네크로맨서는 귀족들이 거느린 강화시술 연구소들의 발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3대 귀족이 운용할 수 있는 자금과 시체자원은 네크로맨서 학회가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긴하지.' 

당장 나부터가 기간트워리어로 활동하며 기간트 두 대를 압도하는 흑연 크라켄의 사체를 손쉽게 손에 넣은 상황이었다. 

만약 타이탄급 골렘을 운용하는 삼대가문이 적극적으로 시체자원을 확보하려한다면 얼마나 귀중한 사체까지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엄청난 돈과 시체자원 그리고 끊임없는 투자가 어우러진다고 생각하니 네크로맨서들이 위기감을 느낄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인데, 어떻게 지금까지 강화시술에 대한 정보를 모두 빼앗기지않고 버텼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군.' 

내가 속으로 생각한 순간 엘리엇 암셀이 참새 사체를 향해 두 손을 내밀었다. 

"네 소울의 마스터가 메레이수루! 웨이크업, 와타시 노 시체여!" 

그 순간 시스템이 내 좌측 시야에 메세지를 띄워올리기 시작했다. 

< 세 가지 언어가 뒤섞인 주문입니다. > 

< 사용자님의 언어기억에 따라 주문을 해석합니다. > 

< 네 영혼의 주인이 명한다. 일어나라 나의 시체여. > 

그건 한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영어를 뒤섞은 끔찍한 주문이었다. 

'암셀학파에 전해져내려오는 주문은 왜 모두 이 모양인가?' 

그건 스톨즈가 사용했던 언데드 소환 주문과 버금가는 혼종이었다. 

그 순간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참새 사체 한 구가 꿈틀대더니 그 깃털과 살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저런 엉터리 주문을 완성시켰어?' 

난 듣기만해도 어지러운 주문형태였다. 

하지만 엘리엇 암셀은 그 주문을 고작 한번 외우는 것만으로 스켈레톤 소환 주문을 완성시켜버린 것이다. 

'사령술을 제대로 가르친다면... 실력이 빠르게 성장할지도 모르겠어.' 

내가 엘리엇 암셀을 가치를 재평가하는 순간이었다. 

죽음의 기운에 휩싸였던 참새의 뼈가 두 발로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본 4급 네크로맨서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학회가 끝나기 전엔 왼쪽어깨에 올려두시고, 학회를 마친 후엔 오른쪽 어깨로 옮기셔야 쓸데없는 오해를 받는 일이 없으실 겁니다." 

엘리엇 암셀은 그의 말을 듣고 테이블 위에 왼손을 올렸다. 

그러자 참새 스켈레톤이 손등을 타고 올라와 그의 왼쪽 어깨 위에 자리잡았다. 

부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좌우를 살피는 참새 스켈레톤의 몸짓은 마치 자신이 매나 독수리 같은 맹금이라도 된 듯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4급 네크로맨서는 나를 보더니 하나 남은 참새 스켈레톤을 손바닥으로 가리켰다. 

시전어만 외웠다가 4급 네크로맨서의 주목을 끌 수 있다고 판단한 난, 방금 전에 엘리엇 암셀이 알려준 주문과 시전어를 모두 외웠다. 

*** 

엘리엇 암셀의 제자는 한 구 남은 참새 사체를 내려다보더니 신중하게 주문을 외웠다. 

- 네 영혼의 주인이 명한다. 일어나라 나의 시체여, 레이즈 스켈레톤! 

그 순간 참새의 깃털 사이로 음울한 기운이 뭉글뭉글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엘리엇 암셀이 스켈레톤 소환 주문을 사용했을 때와는 달리, 참새의 깃털은 타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잠시 후 참새의 두 눈이 있던 자리에 모인 죽음의 기운이 어느 순간 녹광을 번뜩였다. 

그 모습을 본 4급 네크로멘서 숀 발데마르는 흠칫 떨고 말았다. 

'저건... 고위급 언데드를 연성할 때나 발생한다는 녹광명현현상?' 

그때 엘리엇 암셀이 숀 발데마르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스톨즈, 스켈레톤 소환 주문 연습에 힘써야겠구나. 아직 깃털이 남아있지 않니?" 

"돌아가는대로 더 연습하겠습니다." 

스톨즈라고 불린 자는 엘리엇 암셀에게 깍듯하게 고개숙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4급 네크로맨서 숀 발데마르는 두 사람의 연기에 속지 않았다. 

'듀라한급 언데드를 연성할 때나 발생하는 녹광명현현상이 우연히 나타났을리는 없어.' 

그가 확신한 순간이었다. 

"그래도 살은 다 타들어갔습니다만... 학회 입장에 문제가 되겠습니까?" 

스톨즈라는 자는 참새 스켈레톤의 깃털을 들춰 뼈만 남은 깃털 안의 모습을 보여주며 물었다. 

"사령술 시전을 확인했으니, 문제없습니다. 바로 입장하시죠." 

숀 발데마르의 대답을 들은 스톨즈는 왼쪽 어깨 위에 참새 스켈레톤을 올리며 반대편 천막을 걷었다. 

두 사람이 통과한 후 천막이 닫히자, 숀 발데마르는 테이블 위에 얇은 종이를 펼치고 급히 펜을 움직였다. 

- 암셀학파에서 외부 네크로맨서를 대동, 5급 이상으로 추정... 

그는 빠르게 글을 쓴 후 종이를 돌돌 말아 자신의 참새 스켈레톤 발목에 묶었다. 

"학회가 시작하기 전에 스승님께 전해야한다." 

숀 발데마르가 검지손가락 위에 선 참새 스켈레톤을 향해 말한 후, 후~ 하고 입바람을 불었다. 

그 순간 참새 스켈레톤의 뼈가 검은 연기로 변해 흩어져버렸다. 

4급 네크로맨서 숀 발데마르가 서너 번 호흡했을 때였다. 

파바바박! 하는 파열음과 함께 그의 맞은 편 벽면에서 흙더미가 튀었다. 

흙먼지가 쏟아지고 드러난 건 하나의 문장뿐이었다. 

- 화이트스컬, 전원 소집하도록! 

*** 

우리가 도착한 곳은 거대한 동공이었다. 

바닥엔 두꺼운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벽과 천장엔 자줏빛 휘장을 펼쳐 겉으로 보기엔 지하의 음습한 동굴이라는 걸 알 수 없게 꾸며놓았다. 

단상과 그 앞에 펼쳐놓은 수백 개의 의자 대부분은 이미 주인이 자리잡고 있었다. 

남은 자리는 맨 앞줄의 아홉 좌석과 맨 뒷줄의 두 좌석뿐이었다. 

엘리엇 암셀은 맨 앞줄에 앉은 검은 로브 차림의 4급 네크로맨서들을 보고는 가볍게 목례하곤 맨 뒷줄로 향했다. 

'3급 네크로맨서는... 600명이 넘는데, 4급 네크로맨서는 20명 남짓인 건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