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마르코스 브라운
< 해골마스크만 쓴 3급 네크로맨서는 사용자님을 제외하고 636인입니다. >
< 현재 학회장에 입장한 4급 네크로맨서는 15인입니다. >
우리가 가장 뒷줄에 남은 두 자리에 앉자, 4급 네크로맨서 다섯이 들어와 넷은 자리에 앉고 한명은 단상 위에 올랐다.
단상 위에 선 4급 네크로맨서는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아르투르 학파를 이은 사이먼입니다. 제 99회 팔미라 네크로맨서 학회에 초대된 네크로맨서는 총 669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 4명은 삼대가문의 끄나풀로 밝혀져 학회 차원에서 제거했습니다."
사이먼 아르투르라고 스스로 소개한 4급 네크로맨서는 그렇게 말하며 네크로맨서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 순간 학회장에 사사사삭! 하는 부산한 바람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듣고 돌아보니, 내 우측에 앉은 네크로맨서들이 바쁘게 수화로 대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3급 네크로맨서들은 발언권이 없어서 수화로 대화를 대신한다더니... 정말 사실이었군.'
그들은 모두 3단계 랭커를 9명 이상 배출하고 C 구역으로 진출한 네크로맨서 학파의 학파장과 후계자들이었다.
그에 반해 D 구역에서 활개를 치던 암셀학파는 날 만나기 전엔 단 한 명의 랭커도 배출하지 못했었다.
그 말은...
'여기에 모인 3급 네크로맨서 중 누구든 D 구역에 강화시술소를 차렸으면 암셀학파를 씹어먹었을 거란 뜻이지.'
하지만 네크로맨서 학회에선 말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 하급 네크로맨서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그때 시스템이 내 좌측 시야에 메세지를 띄웠다.
< 엘리엇 암셀이 제공한 책 [언데드 수화통역]에 등록된 수화입니다. >
< 임시저장한 관련정보를 다운로드하시겠습니까? >
'다운로드해.'
내가 명령한 순간이었다.
언데드 수화통역이란 책에 담긴 모든 내용이 내 머리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정신파를 깨우치지 못한 언데드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든 대화법이군.'
내가 스켈레톤과 소통하는 손짓을 마스터한 순간이었다.
내 오른쪽에 앉은 엘리엇 암셀이 양손의 검지를 마주쳤다.
- 네크로맨서들 중에 또 배신자가 나온 모양입니다.
'배신자?'
내가 수화로 묻자, 엘리엇 암셀 역시 능숙하게 수화로 대답했다.
- 대부분은 귀족들에게 강화시술에 관한 정보를 팔아넘긴 놈들입니다.
엘리엇 암셀의 수화를 읽는데, 그 너머에서 스승과 제자로 보이는 해골마스크 둘이 수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 배신자는 아마 통로를 무너트려서 제거했을 거다.
- 저, 저희가 지나온 그 통로 말씀이십니까?
- 그렇다.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효과는 확실하지.
스승의 수화를 본 해골마스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은 그의 허벅지를 두번 두드리더니 눈을 부릅뜨고 수화했다.
- 오스카, 귀족들은 네가 가진 강화시술에 관한 정보만 원한다.
- 아, 알고 있습니다.
- 귀족들은 네게 돈을 줄뿐 네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다. 많은 배신자들이 그걸 간과했다가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 저도 화이트스컬의 표적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 잘 생각했다. 그게 우리 오스카 학파를 위한 길이야!
내 오른쪽에 앉은 19명 중 엘리엇 암셀을 제외한 대부분이 비슷한 수화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그때 단상 쪽에서 짝짝! 하고 박수소리가 들렸다.
"4대 학파장님께서 도착하셨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환영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육백 명이 넘는 3급 네크로맨서들이 한몸이라도 된 것처럼 벌떡 일어났다.
제일 좌측 끝에 앉은 난 그들을 따라 일어났다.
그때 내 왼쪽 통로를 통해 단상 옆의 장막이 걷히는 모습이 보였다.
걷어진 장막 사이로 검은 로브를 쓴 4급 네크로맨서가 나와 고개를 숙이며 단상 방향을 향해 왼손을 펼치는 모습이 보였다.
"팔미라 시를 대표하는 5급 네크로맨서이시자, 4대 기사를 배출하신 브라운 학파의 마르코스 브라운 학파장님이십니다."
그 순간 짝짝짝! 하고 귀가 따가울 정도의 박수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신기하게도 박수소리를 뚫고 다그닥! 다그닥! 하는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이건... 일반적인 소리가 아니군.'
그저 평범한 말발굽이라면 두꺼운 양탄자 위를 걷는데, 말발굽 소리가 들릴 순 없었다.
게다가 수백 명이 치는 박수소리까지 더해졌다.
그럼 말발굽 소리는 나에게까지 전해지지않고 박수소리에 묻혀서 사라져야했다.
하지만 말발굽 소리는 아주 선명하게 내 귓가를 때렸다.
그 순간 뭔가가 나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기이한 중압감은 말발굽 소리가 들릴 때마다 점차 강해졌다.
그때 내 옆에 서 있던 엘리엇 암셀이 끙! 하는 신음소리를 내더니 의자에 털썩! 하고 주저앉아버렸다.
문제는 그렇게 주저앉은 사람이 엘리엇 암셀뿐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수십 명의 3급 네크로맨서들이 연이어 주저앉은 순간이었다.
"휴...!"
주저앉은 엘리엇 암셀은 그제야 살겠다는 듯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건 중압감에서 벗어난 안도의 한숨이었다.
- 유령마 페가수스의 유령발굽입니다. 참고 버틸수록 강한 중압감에 시달리는 저주라고 들었는데... 사실이군요.
엘리엇 암셀은 한숨을 내쉬자마자 내게 손짓해보였다.
그는 내 의자를 양손으로 가리키며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하지만 난 기이한 말발굽 소리가 신경쓰여서라도 앉을 수가 없었다.
돌아보니 이미 반이 넘는 3급 네크로맨서들이 주저앉은 상황이었다.
그 순간 다그닥! 하는 말발굽 소리가 내 귓가에 다시 한번 맴돌았다.
'말발굽 소리가 매번 하나도 흐트러짐 없이 매번 똑같은 건 이상하군.'
두꺼운 양탄자 위를 딛는데도 들릴만큼 큰 말발굽 소리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말은 계속 나아가고 그럼 딛는 자리도 달라지는데 소리가 매번 똑같을 수는 없었다.
그건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힘과 속도로 디뎌도 낼 수 없는 소리였다.
'시스템, 이 말발굽 소리를 시각화해줄 수 있겠나?'
< 지정된 음파를 시각화합니다. >
시스템이 메세지를 띄운 순간이었다.
다시 다그닥! 하는 말발굽 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내 왼쪽 시야에 단상 앞에서 발생한 붉은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붉은 파동은 벽과 바닥, 천장과 네크로맨서들과 충돌했다.
그 붉은 파동이 충돌한 곳에서 소리가 튕겨나오며 새로운 파동을 이루었다.
그게 바로 한순간에 수십, 수백 개의 파동이 발생한 이유였다.
그렇게 튕겨나온 작은 파동들은 허공에서 파동을 주고받으며 이지러졌다.
그 짧은 순간이었다.
정신없이 뒤섞인 파동들이 하나의 형태를 갖췄다.
'저건... 마법진이잖아!'
난잡하게 어우러진 파동들은 허공에서 하나의 마법진을 이루고 있었다.
< 새로운 마법진 형성 방식을 발견했습니다. >
< 유니크 등급 스킬 [음파형 마법진 형성]을 습득하셨습니다. >
< 유니크 등급 스킬 [대규모 억압강제주문]을 습득하셨습니다. >
시스템은 정확히 소리의 파동 형태가 마법진을 형성하는 방식과 그렇게 이루어진 마법진을 내 시야에 띄워줬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입으로 주문을 외우지 않아도 마법을 시전할 수 있겠군.'
그때 누군가 내 허벅치를 툭! 건드렸다.
우측을 돌아보니 엘리엇 암셀이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 주변을 살폈다.
그 순간 학회장에서 서 있는 건 4급 네크로맨서와 나뿐이었다.
엘리엇 암셀은 모두 주저앉은 3급 네크로맨서들과 나를 번갈아봤다.
다른 네크로맨서들이 우리가 나누는 수화를 훔쳐볼까봐 걱정되는 표정이었다.
난 그제야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와 동시에 난 끙! 하고 힘겨운 신음소리부터 냈다.
그리곤 다리를 부르르 떨며 주저앉는 연기를 했다.
'내가 브라운 학파에 기대한 건 스켈레톤 자이언트 소환주문 정도였는데... 큰 선물을 받았군.'
단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할 수 있는 브라운 학파장의 대규모 억압강제 주문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그때였다.
3급 네크로맨서들이 모두 자리에 앉아준 덕분에 단상 계단 앞에서 멈춰선 거대한 흑마와 그 위에 탄 네크로맨서가 보였다.
해골마스크를 쓰고 검은 로브를 입은 네크로맨서는 1.5미터 길이의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 지팡이 머리엔 어른 주먹 두 개를 합쳐놓은 크기의 황금해골이 장식되어있었다.
그때 페가수스라고 불린 유령마를 탄 마르코스 브라운이 단상 위에 올랐다.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서 난 유령마의 발굽 부분을 제대로 살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유령마가 계단을 오른 순간이었다.
발목 아래로는 검은 연기에 휩싸인 유령마 페가수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위에 탄 마르코스 브라운이 황금해골지팡이를 한손으로 치켜들자, 유령마가 조심스럽게 주저앉았다.
마르코스 브라운의 발이 땅에 한층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유령마 페가수스가 한순간에 검은 연기로 변하더니 이내 사방으로 흩어져버렸다.
"팔미라 시를 대표하는 5급 네크로맨서이시자..."
그때 사회자인 사이먼 아르투르가 남은 세 명의 4대학파장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데커 학파의 학파장 밀로스 데커는 몸 주변을 호위하듯 공전하는 해골을 가지고 입장했다.
프리드리히 학파의 학파장 네멕 프리드리히는 하얀 뼈로 만든 왕관을 쓰고 입장했다.
마지막으로 입장한 무어 학파의 레이첼 무어는 짧은 금발의 백인남성을 대동한 채로 입장했다.
그는 공간기사라고 불리는 미카엘 레오였다.
'배틀슈트를 입은 모습은 처음 보는군.'
그는 가슴이 앞으로 뾰쪽하게 튀어나온 붉은색 배틀슈트를 입고 헬멧만 해제한 상태였다.
미카엘 레오는 레이첼 무어의 상체를 다 가릴만큼 거대한 책을 들고 있었다.
레이첼 무어가 단상에 올라 마지막으로 착석했다.
그러자 거대한 책을 든 공간기사 미카엘 레오는 그녀 뒤에 조용히 섰다.
'미카엘 레오? 저 자는 네크로맨서도 아닌데, 학회에 참가할 수 있는 겁니까?'
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엘리엇 암셀에게 수화로 물었다.
- 공간기사와 초토기사는 네크로맨서 학회에 참석할 자격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조차 삼가길래 무척 폐쇄적인 집회인 줄 알았는데, 제가 착각했나봅니다?'
- 제가 4대학파의 학파장이라면 1년에도 몇명씩 배반하는 다른 학파의 3급 네크로맨서보다 제 학파에서 배출한 5단계 강화시술자를 믿고 싶을 겁니다.
그때, 사회자인 사이먼 아르투르가 4대 학파장이 앉은 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곤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제 99회 팔미라 네크로맨서 학회의 발표 주제는 총 세 가지입니다. 첫번째 주제의 발표자는 프리드리히 학파의 후계자이자 4급 네크로맨서 밀란 모로즈입니다."
사이먼 아르투르가 소개한 순간이었다.
제일 앞줄에 앉아있던 4급 네크로맨서 한 명이 일어나더니 4대 학파장과 3급 네크로맨서들을 향해 두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단상 위에 올라 사이먼 아르투르 반대편에 서서 마이크를 들었다.
"저는 레벨 4, 좀비넘버 IA409675의 좀비인자를 활용해 3단계 강화시술자의 골밀도를 평균 26% 이상 개선할 수..."
첫번째 발표자인 밀란 모로즈가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하려할 때였다.
쿵! 하는 소리가 단상 위에 울렸다.
그건 브라운 학파의 학파장인 마르코스 브라운이 해골지팡이로 단상을 내려친 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밀란 모로즈의 발표가 멈췄다.
"브라운 학파장님, 따로 분부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마르코스 브라운에게 묻는 밀란 모로즈의 말투는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자네가 아니라... 저 뒤, 암셀학파의 스톨즈!"
마르코스 브라운은 검지손가락으로 정확히 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 순간 학회장에 모인 모든 네크로맨서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어느 도시에서 오신 손님인지는 모르겠으나, 팔미라의 사령술을 배우고자 한다면 네크로맨서의 예법에 따라 학파와 이름을 밝히시오!"
그때 마르코스 브라운이 정중하지만 친절하지는 않은 말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