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1화 (1/214)

제1화

‘살아 있는…… 건가?’

이안은 흐릿한 눈꺼풀을 느리게 감았다가 떴다.

화마가 독살스러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하늘까지 치솟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면서.

그가 악착같이 지키려 했던 것들이 모조리 부서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남겨진 거라곤…….

시뻘건 재와 수북하게 쌓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시체 더미뿐이었다.

이런 처참한 상황에 그라고 무탈할까.

불에 지져진 눈에선 고름이 찐득하게 흘러내렸고, 뭉그러진 볼은 뼈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게다가 왼쪽 다리는 깊게 베여 종이짝처럼 힘없이 덜렁거렸다.

하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건, 뜯겨 나간 옆구리였다.

쉭쉭 바람 새는 소리에 맞춰 창자가 들쑥날쑥하길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서 있는 것이 용한 몰골이었다.

이런 몰골에도,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후회였다.

후회.

예언자로서 앞날을 알았음에도, 제 가문 하나 지키지 못했단 통한의 후회.

아니지.

이 모든 것의 시작점인 그의 나이 열다섯, 그때 아버지의 뜻을 제대로 헤아려 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

이안은 이를 부러트릴 듯 악다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 뜻이 무엇이었는지 대답해 줄 이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

바람 원소를 다루는 자들의 수장이자, 뷔트시겐 가의 가주.

히에로스 제국에서 가장 강한 정령사.

이런 수식이 붙는 분이라도 수천의 하이에나는 어쩌지 못했다.

그들에 의해 양팔과 양다리가 모두 잘려 버렸으니까.

꼬꾸라져도 하등 이상할 것 없는 상태.

그럼에도 아버지는 허벅지로 땅을 디딘 채 꼿꼿하게 서 있었다.

당장이라도 다시 일어날 것처럼.

<이안, 수장이란 군림하기보다 자신의 날개 안에 둔 자들을 지키는 자다. 그러니 최후까지 살아남아 그들을 지켜야 한다.>

아버지는 뷔트시겐의 수장다웠다.

심장을 불살라 마력핵까지 태우며 최후의 최후까지 응전했다.

대전쟁을 일으킨 하이에나들, 불 가문의 살리카를 저지하려고.

수장의 뜻을 헤아렸기 때문일까.

뷔트시겐 일족은 이 불지옥에서 그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안은 뻣뻣한 눈알을 굴려 아버지 앞에 버티고 있는 자를 보았다.

“칼브란.”

뷔트시겐 가의 총괄 집사이자 가주를 지키는 최후의 검.

녹아내린 그의 전신에는 벌집처럼 불화살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아버지를 향해 쏟아지는 수백의 화살을 전부 막아낸 탓이었다.

칼브란마저…… 죽었다.

뷔트시겐을 지키려던 자들 모두 몰살당했고…… 일족은 멸족했다.

제국에서 가장 강성했던 가문이.

바람을 지배하던 가문이…….

이제…… 바람은 멈추었다.

맹수의 아가리 같은 불길만이, 더할 나위 없이 청명한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염병할!’

속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치밀었고, 증오가 시커멓게 넘실거렸다.

“예언자, 이안 뷔트시겐.”

그를 잠식한 증오는 차분한 부름에 더욱 맹렬해졌다.

제 곁으로 거리낌 없이 다가오는 누군가.

뷔트시겐 가를 도륙 낸 원흉이자, 살리카 가주의 흉포한 사냥개.

“뷔트시겐 가의 반푼이 적자.”

“개새끼가 사람 말을 지껄이네.”

“하하. 개새끼? 그 소리를 하도 오랜만에 들어서인지 꽤 신선하네.”

날을 세우는 그가 재미있다는 양, 사냥개가 마구 웃어 젖혔다.

수십만의 목숨을 앗아 간 주제에 참 낙낙하게도 웃는다.

파괴적인 불꽃을 닮은 새빨간 머리칼과 동공을, 이안은 사납게 노려보았다.

“히에로스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예언자, 이안. 마력 한 줌 없으면서, 이 전란이 8년 동안 이어지게 만든 공신.”

“퉷! 그럼에도 네놈을 죽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다.”

“흐음. 그 한도 살아 있어야 풀지. 이건 어때? 나랑 손잡자. 너의 영민함을 갖고 싶거든.”

손을 잡자고?

찢어 죽이고 싶은 개잡놈이랑?

“미친놈이…… 쿨럭. 미친놈답게 지랄이 풍년이네.”

“하하핫! 역시 재밌어! 그래서 내가 널 살려 둔 거야. 너도 이미 알고 있을 테지만. 솔직히 내가 세운 계획을 미리 알아내 번번이 막는 너 때문에 얼마나 짜증 났었는데.”

“크크큭. 엿 좀 먹였다니 통쾌한데?”

“나도 그래. 이제 그 예언들이 다 내 것이라 생각하니 아주 유쾌하단 말이지.”

미친놈의 기본 소양인가?

당최 남의 말을 귓구녕 열고 듣질 않는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내뱉던 사냥개가 또다시 엉뚱한 소리를 지껄였다.

“아, 내가 내내 궁금한 게 있었는데 말이야. 이안아, 꼭 가르쳐 줘-.”

“궁금해하다 콱 뒈져 버려!”

“큭큭큭. 성깔하곤. 진짜 진지하게 묻는 건데, 넌 어떻게 마력 한 줌 없이 예언이 가능해?”

사냥개의 물음에도 이안은 입을 꾹 다물고 대꾸하지 않았다.

잠시 그러다가, 뭔가가 생각난 듯 느릿하게 말문을 열었다.

“라이라프스 살리카.”

“응, 듣고 있어. 어서 말해 봐.”

“그딴 싱거운 얘기 말고. 네놈이 좋아 죽는 예언 하나 해 줄까?”

“예언?”

이안은 눈을 빛내는 사냥개를 향해 입가를 비죽 올렸다.

놈의 웃는 낯짝이 찌그러지는 꼴을 보고 싶었다.

이대로 얌전히 죽어 주기엔 억울하지 않은가.

“살리카 가문의 마지막…… 가주여.”

“……마지막?”

“피로 앉은 권좌가 편할쏘냐.”

“…….”

“가시로 만든 침대에서 잠을 자고, 시체 더미 위에서 썩은 물을 마시니 생이 고달프겠구나. 라이라프스 살리카 너의 죽음조차 다른 이의 목적을 위해 쓰이니, 평안을 얻지 못하고…… 쿨럭, 쿨럭.”

단언하는 이안으로 인해 사냥개의 낯빛엔 실금이 갔다.

실금이 아니라 팍 구겨지는 꼴을 봐야 하는 건데!

이안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헐어 버린 목구멍에서 소리 대신 핏물 섞인 기침만 나왔으니까.

끝이…… 보였다.

원수 앞에서 의연해 보이고 싶었으나, 파드득 경련이 인 몸이 마구 떨려 왔다.

위태한 흔들림에 온몸에서 쏟아진 피가 발치로 고였다.

단숨에 발등이 잠길 정도로 웅덩이를 이룬 검붉은 피.

그것은 곧장 아버지에게로 이어졌다.

끊어질 듯 연결되는 검붉은 선을 이안은 하염없이 직시했다.

‘아버지, 진정 ‘바람’이 멈춘 것입니까?’

<이안, 바람은 멈추지 않는다.>

‘그렇습니까?’

<바람은 사막의 모래 알갱이에도, 망자가 사는 지옥에서도 끝없이 분다.>

“끝없이…….”

같은 말을 주문처럼 외우던 이안의 동공이 찰나 번득거렸다.

생기가 빠져나가고 있는 자리에 결연함이 스몄다.

“바람이 멈추었으면…… 크윽. 다시 불게 만들면 될 일.”

이안은 그나마 성한 왼쪽 눈으로 손을 가져갔다.

망설이지 않았다.

사냥개의 붉은 동공을 직시한 채 자신의 눈알을 으드득 뽑아냈다.

푸학!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며 보이는 모든 것들이 검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안은 핏줄이 불거질 만큼 손아귀에 힘을 준 뒤, 눈알을 가차 없이 터트렸다.

“나는…….”

터진 눈알에서 은색 빛이 발광하며 붉은색을 잡아먹었다.

무정하게 맑은 하늘마저도 가려 버렸다.

그리고 그 빛은 이안을 해일처럼 덮치며 침잠했다.

그의 마지막 말을 속삭이듯 반복하면서.

‘나는, 기필코 돌아올 것이다.’

* * *

“……님, 이안 도련님.”

“…….”

“괜찮으십니까?”

“……으음.”

누군가가 어깨를 흔드는 감각에 이안은 꿈에서 벗어났다.

끌어당겨지듯 깨어나는 정신.

“비명을 지르며 눈을 ‘또’ 쥐어뜯으셔서…… 부득불 깨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끈거리는 두통을 달고서 이안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흐린 망막에 잡힌 모든 것이 어렴풋했다.

다만, 침대맡에 서 있는 그림자만은 얼마쯤 선명했다.

주름 하나 없는, 단정한 차림새의 사십 줄의 남자.

왠지…… 낯익다.

“칼……브란?”

“예, 도련님.”

목소리도, 모습도 너무나 친숙한 존재, 가족이나 다름없는 집사장이었다.

기억보다 더 젊고 불에 녹지 않은 채인.

“진짜…… 흰머리가 없는 칼브란이네?”

“하하. 이 나이에 흰머리는 좀. 그래도 도련님께서 원하시면 흰머리 만드는 것쯤이야 어렵겠습니까.”

“유들유들한 혓바닥도 여전하고.”

멍한 몸을 일으키며 이안은 셔츠 단추를 풀어 헤쳤다.

땀에 푹 절은 셔츠가 물먹은 솜 같아서 답답했다.

그걸 알아챘는지, 칼브란이 새 셔츠를 건네며 넌지시 물었다.

“……또 악몽을 꾸신 겁니까?”

“…….”

“요즘 들어 부쩍 그러신 것 같습니다.”

“그러게. 요즘 들어…… 계속 그러네.”

정확히는 벌써 일주일째였다.

지난 생, 그것도 죽음의 순간을 꿈으로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

그 말인즉슨.

회귀한 지도 일주일째라는 것이다.

일주일이면 썩은 시체에서도 풀이 날 시간이었다.

한데도 악몽을 꾸고 일어날 때면 꿈의 연장인지, 현실인지 혼동이 되곤 했다.

뿐일까.

현실을 인지하게 되더라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그래선지 살아 있는 이들을 볼 때마다 멈칫멈칫하게 된다.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했는지 알기에.

이안은 전신에 불화살이 꽂힌 채 죽은 칼브란을 겹쳐 보듯, 현재의 칼브란을 응시했다.

자연스러운 시선의 마주침.

그 끝에 따라오는 건, 칼브란의 인자한 미소였다.

여느 때의 일상처럼.

평온한 그 모습이 고스란히 박혀 들자, 순간 이명이 고막을 할퀴듯 울렸다.

흡사 물속에 잠긴 것 같았다.

하여 멍멍한 그의 시선만 속절없이 길어져 갔다.

“혹,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십니까?”

“응?”

“생선 가게를 지나가는 고양이처럼 절 보셔서.”

“아. 어디 뚫린 곳도 없고, 몸도 안 녹았고, 말짱해서 그래.”

“…….”

“칼브란.”

“예.”

“아버지를 챙기는 것도 좋은데, 본인도 좀 챙겨.”

“저 말입니까?”

“어. 뭐가 됐든 무병장수해야지. 팔다리 다 붙은 채로.”

본디 염려에도 맥락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런데 앞뒤가 없이 팔다리 걱정을 하니 생뚱맞을 수밖에 없을 터.

칼브란의 미간이 무언가를 고심하는 듯 심각하게 구겨졌다.

아마 그의 당부와 악몽을 연관 지어 보는 중일 것이다.

애먼 소리를 그가 일주일째 하고 있었으니까.

고민하라고 내뱉은 말이 아닌데.

칼브란의 생각을 방해할 요량으로 이안은 보스락대며 일어섰다.

“별말 아니니까 깊게 생각하지 마.”

“……아.”

가볍게 웃어 보이는 이안을 칼브란은 빤히 쳐다보았다.

일주일째다.

도련님이 저런 낯으로 그를 보는 것이.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는 감정이 배인 모습.

그 모습이 자꾸만 명치에 걸려서 칼브란은 염통 한쪽이 서걱거렸다.

하지만 유능한 집사라면 이럴 때일수록 티를 내지 말아야 하는 법.

“흠흠. 땀에 흠뻑 젖은 도련님을 위해, 저는 목욕 준비를 하러 가야겠습니다.”

살짝 고개를 숙인 칼브란은 느릿느릿 욕실로 향했다.

서둘지 않는 걸음.

상념이 많은 뒤태가 고스란히 읽혔다.

이안은 잠시 그 뒤태를 보다가, 습관처럼 창가로 다가갔다.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들이치는 창밖 너머.

우아한 아치가 돋보이는 건물들이 수십 채 늘어져 있는 게, 선연하게 들어왔다.

뷔트시겐 가의 방계 혈족, 정령 기사단, 사용인이 기거하는 곳.

그곳의 등이 드문드문 켜지기 시작했다.

하루를 여는 신호이자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빛.

환한 생기에 이안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진짜…… 살아 있구나.”

시야를 덮던 재도, 사방에 널브러졌던 시체도 없었다.

악귀가 쓸고 간 처참한 광경 또한 사라진 채 멀끔했다.

이보다 더 명확하게 회귀했음을 보여 주는 게 있을까.

“후우. 이 풍경을 보니 실감이 난다.”

다시 한번 되새기려는 듯, 이안은 고개를 들어 뾰족한 첨탑의 꼭대기를 보았다.

바람을 물고 질주하는 금빛 늑대가 새겨진 깃발.

뷔트시겐의 문장이 그 위용을 뽐내며 나부끼고 있었다.

모든 것의 시작점인, ‘열다섯’으로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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