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7화 (7/214)

제7화

사각. 사그작.

도톰하게 깔린 눈이 발바닥과 마찰하며 소리를 냈다.

흡사 짐승들이 얼음을 짓씹는 소리 같았다.

그 위에 덧대지는 건 해가 지며 거세진 눈발이었다.

더럽게 춥다.

겨울 초입부터 이러니 앞으로 얼마나 추워질는지.

“아, 그러고 보니…… 딱 이맘때였나?”

예전에 희한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마력핵이 생긴다는 약초가 있어 숲의 중앙까지 들어온 적 있는데, 그때 어떤 목소리를 들었었다.

<이안 뷔트시겐, 이쪽으로 오거라.>

명확하고 굳건한 의지가 담긴 부름.

그것에 홀려 북쪽으로 비칠비칠 걸어갔지만, 도중에 쓰러져 버렸다.

사인은 고열과 감기였다.

강추위에 코트도 입지 않고 숲을 헤맨 덕택이었다.

“돌이켜 보니…… 그 목소리가 오라고 한 곳도…….”

지금 그가 향하는 목적지와 동일했다.

이안은 숨을 쉴 때마다 나오는 하얀 입김의 궤적을 찬찬히 따라갔다.

그 끝에 펼쳐진 건 끝이 보이지 않는 숲이었다.

그라나토스.

에루리안을 에워싸고 있는 이 숲은 겨울에도 녹음이 선명했다.

제국 어느 곳보다 마력의 농도가 짙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희귀한 식물과 동물, 별의별 정령에다 환상종까지 다양하게 서식한다.

이런 환경으로 인해 되레 이 숲은 굉장히 위험했다.

자칫 발을 잘못 들였다간 모가지 날아가기 십상이다,

“그러니 비밀을 감추기엔 적당한 곳이지.”

“……저것 봐. 마력핵이 없는 인간이 왔어.”

왔어, 드디어 왔어!

작은 속삭임들이 메아리가 되어 숲 전체에 바람처럼 퍼져 갔다.

이것이 신호탄이었을까.

하얀 눈으로 덮여 흰 꽃이 핀 나무가, 바위가, 들풀이 살랑거렸다.

“50년 만이야. 말로의 탑의 주인이 왔어.”

“주인이야, 주인!”

천진한 아이 같기도 하고, 원숙한 노인 같기도 한 목소리들이 떠들어 댔다.

호기심 어린 지절거림과 시선.

비록 보이진 않아도 이안은 전신이 찌르르해서 느낄 수 있었다.

숲이 자신을 직시하고 있다는 것을.

“주인이라…….”

이안은 숲이 말하는 것을 고대로 따라 읊었다.

저들이 말하는 ‘주인’은 황자를 일컫는다.

황자…….

히에로스에선 당연하게도 평민조차 마력핵을 가지고 태어난다.

예외가 있다면 단 한 명.

황제의 직계 중에 다음 대 황제가 될 황자, 오직 그만이 아무것도 없이 태어난다.

그렇다고 황자가 저처럼 평생 핵 없이 사느냐?

그건 아니다.

황자는 이 숲에 오면 마력핵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핵을 얻음과 동시에 제국의 근간인 4대 원소를 곧바로 다룰 수 있게 된다.

이처럼 황자는 그와 질적으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그를 주인이라 착각하는 건, 그가 황자와 똑같은 체질이라서일 거다.

“저것 봐. 주인이 말로의 탑에 가까워지…… 어?”

“왜 그래? 왜 그러는 건데?”

“주인이 아니야.”

“뭐?”

“주인이 아니라고.”

“……엇, 정말이다. 주인은 항상 은발이었잖아.”

“저잔 검은색이야. 바람의 뷔트시겐.”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숲이 소란스러워졌다.

귀가 따가울 만큼 나뭇가지들이 비벼지고, 돌들이 달그락거렸다.

때때로 땅이 들썩이기까지 했다.

‘아까보다 더, 살갗이 따끔거리네.’

그들의 혼란을 못 본 척하며 이안은 계속 북쪽으로 나아갔다.

저들이 그를 공격하지 않는 건 암묵적인 맹약 같은 거였다.

마력핵이 없는 자는 공격하지 않는다는 맹약.

덕분에 그는 수월하게 숲을 가로지를 수 있었다.

방해물은 없었지만, 굳이 문제를 꼽자면 지나치게 숲이 넓다는 점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후우. 시간이 없는데.”

짧게 날숨을 내쉰 이안은 쉼 없이 눈을 뿌리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완연한 보름달이 5개가 걸려 있었다.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 푸른색, 그리고 은색.

오색의 달은 오연함을 내뿜으며 아래를 굽어보고 있었다.

어서 가라는 재촉처럼.

“늦지 말아야지.”

이퀴녹스에만 뜨는 5개의 달은 오늘을 기점으로 하루에 하나씩 사라진다.

앞으로 4일!

4일이 지나고 은색 달만 남게 되는 날.

황자가 마력핵을 얻었던 수단 또한 소멸하게 된다.

그 말인즉슨, 그가 마력핵을 얻을 유일한 수단이 ‘완전 소거’된다는 거였다.

‘서두르자.’

코트를 추스른 이안은 발길을 채근했다.

* * *

서너 시간쯤 걸었을까.

이안은 호흡을 정돈하며 최종 목적지를 앞에 두고 멈춰 섰다.

여기서부턴 금지 구역이다.

마력이 있는 자들은 절대 발을 내디뎌선 안 되는 곳.

“멋모르고 들어가면 바스라지기 때문이지.”

이안은 발치의 조약돌 하나를 집어 들고선 제 앞쪽으로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을 날아가던 돌은 얼마 안 가.

파사삭.

가루가 되어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역시 여기 결계는 무섭네.”

작은 돌일 뿐이지만 마력을 품고 있어 바로 반응한 것이다.

알고 있던 사실인데도 긴장이 되었다.

금화를 보면 욕심이 나고, 똥을 보면 피하게 되는 당연함처럼.

생침을 꿀꺽 삼킨 이안은 조심스럽게 한 발을 들이밀었다.

츠스스.

일순, 결계가 잡아먹을 듯 그에게 들러붙었다.

살갗을 찢고 혈관에 똬리를 틀 기세로 피부를 압박해 왔다.

마력핵이 없는 걸 확인하려는 거였다.

잠시 후 신원 확인을 끝마쳤는지, 이내 결계가 삽시간에 흩어졌다.

“……휴우. 괜찮을 걸 알고 있었는데도 살 떨리네.”

발의 무사안일을 확인한 후, 이안은 결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주한 말로의 탑.

어찌나 거대한지, 50m나 떨어져 있는데도 코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안은 하얀색 돌로 층층이 쌓인 탑을 향해 걸어갔다.

탑은 위로 갈수록 넓어지는 기형적인 형태였다.

“끝이 보이질 않는군.”

탑의 꼭대기가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찌부러질 것 같은 위압감.

억눌리지 않으려, 어깨를 곧게 편 이안은 석문 앞에 당차게 섰다.

“그런데…… 왜 수문장이 안 보이지?”

한시도 탑의 입구를 떠나지 않는다는 수문장.

덩치가 산 만 해서 눈에 확 띄어야 할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 건가?

이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고 사위가 조용했다.

“차라리 잘 됐지, 뭐.”

수문장의 시험을 통과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이참에 후딱 들어가자 싶어, 이안은 재빨리 석문을 응시했다.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진 문에는 잠금장치가 걸려 있었다.

5개의 태엽이 서로 맞물려 원을 이루는 형태.

이안은 태엽을 유심히 보다, 태엽 하나를 왼쪽으로 돌렸다.

끼릭, 끼리릭.

하나가 움직거리자 덩달아 다른 것들도 돌기 시작했다.

“흐음. 재밌네.”

태엽이 멈춘 즉시, 이안은 과감하게 검은색 태엽을 뽑아 버렸다.

그러고는 잠금장치의 오른쪽, 톱니 모양으로 홈이 파여 있는 곳에 그것을 끼워 넣었다.

“잠금을 푸는 거야 쉽지.”

어린아이도 풀 만큼 방식은 단순했다.

4대 가문이 상징하고 있는 색의 태엽을 찾아, 각 가문이 자리한 방위대로 꽂아 넣으면 그만이었으니까.

예를 들어, 뷔트시겐을 상징하는 검은색 태엽은, 동쪽 홈에 넣어야 한다.

같은 원리로 물의 루하흐인 푸른색은 서쪽.

불의 살리카인 빨간색은 남쪽.

대지의 발리올인 노란색은 북쪽.

그리고 황가의 은색은 중앙에 태엽을 꽂으면 된다.

그가 태엽의 배치를 끝낸 그 순간이었다.

쿠구궁, 굉음과 함께 석문이 진동하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50년 묵은 먼지였다.

“케엑!”

이안은 거한 기침을 내뱉으며 입을 틀어막았다.

옴팡 먼지를 뒤집어쓴 사이, 석문이 쩌억 아가리를 벌렸다.

환영한다는 듯이.

다소 어두운 내부로 오색의 달빛이 쫘악 밀려 들어갔다.

“……드디어 만나는 건가?”

이안은 머리칼에 잔뜩 앉은 먼지를 털며 탑 안으로 들어갔다.

* * *

저택 한 채 크기보다 더 널찍한 원형 형태의 내부.

아무것도 없어 휑한 공간엔 오로지 신상과 네모난 제단만 있었다.

그리고 제단 위에 덩그러니 놓인 마름모 형태의 알.

그것을 본 이안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저거면!

“마력핵을 얻을 수 있어!”

그의 말에 반응하듯, 알 주위를 감싸고 있는 뿌연 안개가 일렁거렸다.

이안은 격해지는 감정을 감추지 못한 채 제단 쪽으로 다가갔다.

그라나토스의 알이…… 눈앞에 있었다.

오색 빛을 찬연히 내뿜으며.

오랫동안 주인을 기다린 모양새치곤 굉장히 때깔이 고왔다.

무려 50년을 기다렸는데 말이다.

“50년.”

알이 이토록 오래 주인을 만나지 못했던 건…….

황자가 50년 전에 죽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태어난 지 100일 만에.

그의 죽음이 불행의 시작이었을까?

이후엔 마력핵이 없는 황자가 태어나지 않았다.

덧붙이자면 향후 15년간에도 조건에 맞는 황자는 태어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안이 서른이 되던 해, 그의 목숨이 끊기는 그때까지도 말이다.

“주인이 없으니…….”

가져도 되는 거였다.

이안은 준비해 온 손거울을 알 옆에 내려놓았다.

그러자마자 안으로 들이친 달빛이 거울을 반사하며 알에 내리꽂혔다.

화아아악!

섬광을 발한 알은 제단이 부서지겠다 싶을 정도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안은 넘어지지 않으려 양발에 바짝 힘을 주었다.

버티고 버티다, 발에 쥐가 났을 즈음.

빛의 칼날에 쩌적쩌적 금이 가던 알이 수십 개의 파편으로 부서졌다.

“……!”

동시에 달빛과 땅 울림이 사그라들었다.

이안은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파편 하나를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유달리 윤이 나는 오색 빛깔의 껍질.

이안은 그 파편을 망설임 없이 입 안에 넣은 뒤, 그것을 잘근잘근 씹었다.

오독. 오도독.

다소 딱딱한 식감이 혓바닥에 올올히 느껴지며 녹아들었다.

그럴 때마다 심장이 찌릿해졌다.

심장 한 편에 쨍한 둔통이 일어도, 이안은 개의치 않고 파편을 모조리 먹어 치웠다.

그렇게 마지막 조각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 순간.

“크윽!”

산 채로 불에 태워지는 것 같은 고통이 들이쳤다.

모든 살점이 익어 가는 통증을 견디고자 이안은 몸을 옹송그렸다.

갈기갈기 찢겨 분해돼 버릴 것 같아도 ‘이깟 거’라며 참을 수 있지만.

뚜둑. 뚜두둑!

사지가, 골격이 뒤틀리는 격통만큼은 버티기 어려웠다.

“크으으윽!”

한계치를 넘긴 아픔에 결국 이안은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의 몸을 집어삼키려 거대한 그림자가 손을 뻗어 왔다.

* * *

쿡쿡. 쿡. 쿠욱.

그의 등을 무언가가 자꾸 찔러 왔다.

그냥 넘겨 버리기 힘든 감각에 이안은 억지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어마어마한 격통이…….

“어? 격통이…….”

……아프지 않았다.

아픔 따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전신을 휘도는 활력에 몸이 가뿐했다.

무척 생소하나, 굉장히 기분 좋은 흐름.

“마력이……, 마력핵이 생겼어!”

놀라우리만치 혈맥이 생생하게 뛰고 있었다.

현실을 자각하자마자 이안은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좋아서, 감정이 주체가 되질 않았다.

어깨춤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해서 들뜬 입꼬리가 속절없이 한껏 치켜져 올라갔다.

그런데.

“너니? 진정 너야?”

그의 심상을 훼방 놓듯, 웬 그림자가 삐딱하게 말을 걸어왔다.

……아.

그제야 이안은 자신을 깨운 ‘누군가’가 있었다는 걸 상기했다.

본의 아니게 무시한 꼴이 되지 않았던가.

상대를 보려고 그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불퉁함을 칭칭 두르고 있는 검은 그림자.

‘이 녀석이…… 그건가? 황자에게만 있다는 수호자.’

예언서에 적혀 있길, 알을 먹으면 수호자가 생긴다고 했다.

4대 원소를 모두 다룰 줄 아는 정령이.

손짓 한 번에 산허리를 가르고.

내딛는 한 걸음에 해일을 불러와 바다를 만든다는 수호자.

“허어. 내 결속자가 정녕 너란 말이지. 진정 너!”

수호자가 뭔가 성에 안 찬다는 듯 연신 종알거렸다.

그러면서 제단을 자꾸 발로 찼다.

눈앞에서 줄곧 저러니, 이안은 마력핵이 생긴 ‘여운’을 더는 곱씹을 수가 없었다.

“후우.”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정령이 생긴 것까진 좋았는데…… 웬걸.

이렇게 땍땍거리는 녀석이 딸려 올 줄은 예상 못 했다.

더군다나 이런 생김새일 줄은!

“…….”

화풀이하듯 날개를 파닥대는 수호자에게서 이안은 눈을 떼지 못했다.

갓난아기 머리통만 한 크기에, 다소 해학적으로 생긴 얼굴.

뭐라 표현하기 힘든 형상이었다.

사잔가?

아니, 드래곤인가?

이도 저도 아닌 게…… 푸딩인가?

일단, 몸피가 둥글둥글하고 투명한 것이 청색 물 덩이 같았다.

누르면 투웅 하고 튕길 것 같달까.

겨드랑이 쪽에 달린 바람 날개는 또 어떻고.

투명한 건 같으나, 검은색이라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그리고 복슬복슬한 불의 꼬리.

쉬지 않고 실룩대는 꼬리는 굉장히 작달막했다.

‘흔들 것도 없구만.’

꼬리까지 살핀 이안은 도로 수호자의 얼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마는 훤칠하고 눈은 부리부리한 게 꽤 컸다.

생각보다 눈썹도 길다.

하지만 이 외모의 압권은 단연코 코였다.

벌레가 직통으로 들어갈 것 같은 납작 눌린 돼지코.

……못생겼다.

이안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으며 수호자에게 질문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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