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이름이…… 녹스라 했던가?”
“그렇다. 이 몸이 황실을 지키는 그림자, 녹스다.”
제국의 수호자, 녹스.
황자와 결속된 정령은 오랜 세월 그렇게 불렸다.
제국을 침입한 적으로부터 제국민을 지켜 낸 게 그들이었으니까.
천년 넘는 역사 동안 줄곧 그랬다.
하여 제국민들은 광적으로 수호자를 추앙했다.
수도의 중앙 광장에 조각상을 세우고선 기도를 할 정도로 말이다.
‘수호자’란 말에 흥분한 녹스가 돼지코를 벌름거렸다.
“그래, 그거!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나나 되니까 하는 거지.”
“아…… 그래?”
“그렇다. 너도 들어 봤을 텐데. 날 찬양하는 노래들을.”
“아아아- 그 노래?”
이안은 대꾸하기 모호한 말들에 대강 추임새를 넣었다.
그의 반응은 눈에 뵈지도 않나 보다.
마냥 신이 난 녹스는 침까지 튀겨 가며 주절댔다.
“푸흘흘. 음유시인들의 표현력이 어찌나 탁월한지. 아주 딱이었다, 딱! 네가 봐도 나를 고대로, 묘사해 놨지 않았더냐?”
고대로, 묘사해 놓……지 않았다.
그럼 수호자에 대해 음유시인들이 어떻게 읊어 댔냐.
《아아, 히에로스 제국의 위대한 수호자여. 그대는 나의 두 눈을 멀게 합니다.
우아한 백발이 바람결에 흩날릴 때마다, 심히 나를 매혹시키지요.
만물을 꿰뚫어 보는 오색 눈동자는 어떻던가요. 지혜의 샘물이 되어 나를 잠식시킨답니다.
수호자여, 제국을 지키는 아름다운…….》
……아름다운?
우아? 매혹?
저 노랫말을 지었을 당시, 필시 음유시인들이 협박을 당했을 거다.
그게 아니면 똥간이 급했거나.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허황된 말을 휘갈겨 놓았을까.
역사서는 승자의 전유물이라더니, 딱 그거였다.
허세와 거짓부렁의 환장할 조합!
제국민의 한 명으로서 왠지……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들었다.
“하긴. 진실은 언제나 쓴 법이지.”
이안은 ‘현실’의 녹스를 한 번, 제단 앞에 세워진 수호자 조각상을 한 번, 연거푸 번갈아 보았다.
역시나 현실은 이상과 차이가 심했다.
“호오? 너도 내 위대함에 홀린 게로구나. 그런 멍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것이.”
“…….”
……자뻑도 심했다.
예상과 많이 달랐지만 이런들 저런들.
어차피 녀석과는 죽을 때까지 함께해야 할 ‘운명 공동체’였다.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인 이안은 천천히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녹스, 일단 기숙사로 돌아가자.”
* * *
‘평생을 함께할 결속자라.’
녹스는 동그란 식탁에 앉아, 맞은편에 있는 이안에게 눈길을 두었다.
‘페르다스의 결속.’
흔히 말하는 계약이란 걸 했다. 검은 머리칼을 가진, 열다섯 먹은 소년과.
뷔트시겐의 후계자라 했던가?
뷔트시겐이라면 가장 현명하고 강하다 일컬어지는 일족이다.
한데, 그런 가문에서 태어난 놈이 어째…….
햇빛을 아예 안 보는지 살갗이 밀가루 같은 게 허옜다.
체력 단련과는 담을 쌓고 산 듯한 몸.
흡사 평생 연구만 해 온 학자와 비슷하달까.
그 몸뚱어리를 보고 있자니, 녹스는 근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마력핵을 제대로 운용이나 할 수 있을지.
‘후우. 내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될 날이 올 줄이야.’
그라나토스의 알.
그러니까 그와 결속을 맺는 자는 여신의 권능 일부를 나눠 갖는다.
쉽게 말해, 즉각 4대 원소를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력이 바다처럼 넓어져 그 한계가 무한해진다.
이것이 당연한 수순일 진데…….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게 만드는 결속자라니.’
요리조리 뜯어본들 역시나.
뷔트시겐 이놈은 마력이 호수, 아니 연못, 아니지 이슬 한 방울 수준이었다.
더 정확히는 개미 똥구멍만 하다.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녹스는 불안이 쏠린 노란 발을 까닥거렸다.
이 문제뿐이면 다행이게?
더 중차대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녹스는 느긋하게 스테이크를 써는 이안을 다시금 매의 눈으로 직시했다.
마력핵에 자리한 네 가지 원소 중 바람만 돌고, 나머지 원소는 막혀 있었다.
대체 왤까?
당최 그 연유를 모르겠다.
‘하! 이 위대한 내가 모르는 게 있다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수호자에게 있어 ‘지식’은 ‘계승의 산유물’이기 때문이다.
무슨 뜻이냐 하면.
전대의 알이 축적한 지식은 다음 대 알로 전해진다.
그 지식은 또 다음 알로…… 이렇게 지식은 축적되어 쌓여 간다.
그런고로 저란 존재는 늘 그리 불렸다.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지혜의 샘물.》
‘하여 여태껏 풀지 못한 문제란 없었거늘. 허어어어.’
알 인생 50년.
처음 겪는 시련에 녹스는 어지럼증을 느꼈다.
머리통을 싸매고 ‘이 난제를 어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불쑥 스테이크 접시가 그 앞으로 들이밀어졌다.
쓸데없는 고민 따위 하지 말라는 것처럼.
“걱정도 먹으면서 해. 이 순록 고기, 되게 맛있거든.”
“…….”
녹스는 접시와 이안을 번갈아 보았다.
이안이 식기 전에 먹으라는 듯 다시금 눈짓을 보내왔다.
이 환장할 상황에도…… 음식을 챙겨 준다.
그건 곧, 저놈이 좋은 인간이란 뜻이었다.
어쨌든 상냥하다.
그리고 이제 봤더니 눈치도 빠릿빠릿한 인간이었다.
하나 이것들이 면죄부가 될 순 없었다.
나이프를 꽉 쥔 녹스는 자신의 몸뚱어리를 내려다보았다.
하찮다.
너무나 하찮아서 보고 있기가 민망했다.
“내 몸뚱이가 이 꼴 난 거 너 때문인 거 아니?”
“응. 알아.”
“알아? 진정 안다고?”
“어. 내 마력량이 미약해서 네가 그렇게 작은 거잖아.”
“아, 알고 있었구나……. 한데 알면서 고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뭘 하든 일단 배 속부터 든든히 채우자, 가 내 신조거든.”
“허허. 배짱 한 번 두둑한 놈일세. 그래도 문제부터 해결해야 음식이 더 꿀맛이지 않겠느냐?”
“그러면 좋겠지만, 어차피 너도 해결 방법 없잖아.”
“……그, 그렇…….”
그래, 없다.
당장은 없긴 하다.
그런데 정곡을 찔리니 당장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용솟음쳤다.
풀 길 없는 속내를 이기지 못하고 녹스는 꼬리로 애꿎은 탁자만 후려쳤다.
의도는 화의 표출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짧은 꼬리가 화근이었다.
마냥 찰박찰박 귀여운 소리만 났으니까.
그 울림에 이안의 입술 끝이 위로 말려 올라갔다.
망할 놈!
‘후우……. 네놈 덕에 구한 목숨이니, 내 오늘만 봐준다.’
이안이 구한 목숨.
이 기가 막힌 진실에 녹스는 불뚝 치미는 성질을 ‘일단은’ 죽였다.
본디 수호자는 황자와 같이 태어나고, 황자와 같이 죽는 운명을 타고난다.
이는 천년 간, 단 한 번도 깨지지 않던 법칙이었다.
한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만은 황자와의 공명이 끊어졌는데도 소멸하지 않았다.
무려 50년을 말이다.
그렇게 지루한 생을 이어 가다 일주일 전이었다.
난데없이 죽음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꺼져 가는 생을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니 어쨌겠는가.
참담했다.
위대하다 자부했기에 더 그랬다.
그러던 차, 그렇게 말라 가던 때, 이놈이 찾아왔다.
잔뜩 굶주린 승냥이의 눈빛을 하고서.
“……에잉.”
녹스는 얼굴을 잔뜩 구긴 채 만사태평인 이안을 쳐다보았다.
……이 마당에 후식까지 알뜰하게 챙겨 먹는다.
들소 떼가 밟고 지나가도 멀쩡할 저 정신력이란.
‘그래, 약해서 질질 짜는 놈보단 낫지.’
녹스는 어떻게든 불굴의 정신 승리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결심했다.
저 하찮은 놈을 고쳐서, 아름다운 자신의 본모습을 찾으리라고.
그 원대한 여정의 첫발을 위한 목표는 바로 ‘그거’였다.
이번 해가 가기 전에 저 녀석을 페이라조 3성으로 만들기!
“푸흘흘.”
계획이 만족스러워 녹스가 음흉한 웃음을 흘렸을 때였다.
“잘 지내 보자, 녹스.”
이안이 ‘반짝’이란 수식이 붙는 미소를 머금으며 손을 내밀었다.
해맑은 낯.
‘나는 성격이 무척 좋아요.’를 여실히 표출하고 있는 저 낯짝.
앞날의 순탄함을 상징하는 것 같아, 녹스는 노란 발을 까닥거렸다.
“그래. 이안 뷔트시겐, 잘 지내 보자꾸나.”
* * *
이안과 녹스가 우애를 다지던 그 시각, 뷔트시겐저 본관.
환한 달빛과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가 고요한 밤을 깨웠다.
잠들기 쉽지 않은 공기.
가주는 집무실에 앉아 하염없이 양피지를 내려다보았다.
《……마력핵이 없는 아이가 태어나거든 에루리안 아카데미로 보내라.
열다섯이 지나기 전까지. 다섯 개의 달이 지기 전까지.
하면 아이는 그곳에서 혼란을 잠재울 힘을 얻으리니. 바람이 멈추지 않고 영원히 흐르기 위해선…….》
대대로 가주에게만 전해지는 밀서의 한 구절이었다.
유독 묵과하기 힘든 단락을 가주는 나직하게 되뇌었다.
“그곳에서 힘을 얻는다, 라…….”
밀서는 비유와 두루뭉술의 집약체였다.
하여 모든 것이 명백하지 않고 불확실했다.
어느 것 하나 뚜렷하게 증명된 것이 없단 의미였다.
하지만 그는 이 밀서에 기대, 이안을 에루리안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르기에.
녀석을 모질게 떠밀긴 했지만, 기실 속으로는 마냥 애가 끓었었다.
이안의 처지로 인해, 아카데미 생활이 녹록지 않을 것이 자명했으니.
“……그런 곳에서 스스로를 지켜 내는 것 또한 힘을 얻는 과정일 터.”
가주는 복잡한 손길로 양피지를 슥 문질렀다.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엉켜 가던 찰나.
똑. 똑똑.
그의 상념을 가르며 누군가가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가도 되겠냐, 허락을 구하는 소리.
상대의 요청에 가주는 보고 있던 양피지에서 눈을 뗐다.
“칼브란이 벌써 돌아왔나 보군.”
문 두드림만으로도 그는 상대를 쉬이 알아챘다.
품위가 묻어나는 정중함, 그것이 지닌 독특한 리듬.
일종의 표식을 구사하는 건 칼브란 뿐이었다.
“들어오게.”
가주의 허락이 떨어졌음에도, 문은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열렸다.
십여 초?
“가주님, 다녀왔습니다.”
집무실로 들어선 칼브란이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일련의 행동을 지켜보며 가주는 그에게 통박을 놓았다.
“고지식한 인사 같으니.”
문 하나 여는 게 뭐라고 그것에조차 예의를 갖춘다.
하여간.
견습 집사였을 때나, 가주의 오른팔이란 소리를 듣는 지금이나, 지독히도 한결같다.
이제 조금쯤은 느슨해져도 될 것을.
“하하. 그 가주님의 그 수하 아니겠습니까. 다, 가주님을 보고 배운 것이지요.”
“내게 책임을 전가하는 겐가?”
“전가라니요. 이 칼브란, 그런 불충은 배운 적이 없습니다.”
“하여튼 능청은.”
가주는 유들유들한 칼브란의 낯에 고개를 내저었다.
못 말린단 표정이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흐름.
달라진 건 없으나, 가주의 얼굴 뒤에 걸린 수심을 칼브란은 기민하게 알아챘다.
“가주님, 제 발바닥이 불이 나서 닳아 없어질 것 같습니다.”
“으응?”
“가주님께서 밤잠 설쳐 가며 도련님 소식을 기다리실 걸 알기에, 충직한 가신으로서 이 칼브란, 꽁지 빠지도록 달려올 수밖에 없었지요.”
“하하하. 노고가 아주 많았네. 그래, 녀석은 어떻던가?”
“도련님께선 늠름하게 에루리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칼브란의 짤막한 보고를 들은 가주는 가까이 오라며 손을 까딱거렸다.
더 자세히 말해 보란 몸짓.
그의 명에 따라 가주의 지척까지 다가간 칼브란이 덧붙였다.
“그리고 뭔가를 기대하는 표정이셨습니다.”
“기대한다, 라…….”
하긴.
“녀석이 전에 없이 단호했지.”
가주는 깃펜을 내려놓고 책상을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아게라에서 보여 주던 모습도 그랬고, 어제 대화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오랜 시간 풍파에 다듬어진 노인 같았다.
<소중한 것을 지켜 낼 힘과 사람을 얻고자 합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찌나 확고부동하던지.
숫제 노회한 장로들을 마주하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웃고 있어도 침잠한 그 낯이, 명치에 걸려선 내도록 아른거렸다.
“며칠 사이에 부쩍…… 커 버린 것 같군.”
“심란하신 겁니까?”
“그저…… 이제야 실감이 나는 모양이네.”
녀석은 스스로 껍질을 깨고 변하려 하고 있었다.
늘 보호해야 하는 아이인 줄 알았는데, 어엿하게 제 몫을 준비하고 있었다.
“……에루리안으로 가겠다 한 것이, 힘과 사람을 얻기 위한 것이라더군.”
가주는 재차 책상을 두드리며 이안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세상에서 가장 얻기 힘든 것이 그 두 가지이다.
천하를 발밑에 둘 오연한 힘.
누구나 탐내는 것이지만 그걸 갖는 자는 몇 없다.
……크흠. 잘난 척 좀 하자면 그 몇몇에 그도 포함된다.
하지만.
‘그것을 얻기까지, 그리고 얻고 나서도 편안한 적은 없었지.’
가주는 손등을 가로지르는 흉터를 내려다보았다.
이 상처는 믿었던 가신이 그를 배신했을 때 생긴 것이었다.
천하를 쥔들.
힘을 유지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피를 손에 묻힐 수밖에 없다.
그 천근의 무게를 이안이 견딜 수 있을까?
‘생이 던져 주는 날것의 무게감은 양날의 검과 같을진대.’
가라앉은 그의 눈길은 흉터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양날의 검.
그래도 어떻게 힘을 가졌다 치자.
힘이 있다고 사람이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냐?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