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11화 (11/214)

제11화

【C반 리아트리.】

갈색 나무 팻말이 걸린 문을 여니, 텅 빈 교실이 그를 맞이했다.

이안은 창가로 다가가 숨을 들이켰다.

단숨에 아침 이슬에 젖은 풀 냄새가 그의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청량하기 그지없는 생생함.

그것에 묻어, 아이들의 복작거림도 같이 밀려 들어왔다.

아직은 앳된 아이들의 소리.

평화로운 풍경을 이안은 말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벌써 2학기가 시작됐네.”

“그렇구나. 복작복작한 것이 어제와 참말 다르다.”

녹스는 느적느적 창밖의 풍경을 관망했다.

다들 실력이 고만고만했다.

도마뱀, 토끼, 새, 슬라임 같은 자그마한 정령들만 달고 다니는 것이.

일일이 아이들의 재량을 가늠하다가, 이번엔 너른 교실로 고개를 돌렸다.

자고로 ‘배움’이라 함은 환경적인 요소도 중요하다.

스승, 함께 수학하는 동문들, 배움을 구할 수 있는 주변부 등등.

한데 하나뿐인 제자가 배정된 반이 ‘C’였다.

A반 글록시아, B반 라플레아, 이것들을 건너뛰고 C.

A반 아이들이 가장 우수하다는데!

뭐 본디 마력핵이 없는 녀석이었으니, 이 문제는 일단 건너뛰고.

“이안,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다.”

“뭔데?”

“넌, 마력핵도 생겼으면서 왜 계속 에루리안에 남아 있느냐?”

“아……. 얘기하자면 긴데, 이곳에서 얻어야 할 사람이 있거든.”

“사람?”

“어. 나중을 위해서 반드시 내 편을 만들어야 하는…….”

이안이 대답을 끝맺기도 전이었다.

교실 밖, 복도를 울리는 말소리가 그의 대꾸를 덮어 버렸다.

“아, 맞다. 레브 너도 소문 들었지?”

“무슨 소문?”

“이안 말이야. 방학도 되기 전에 도망치듯 집으로 갔잖아. 그게 이유가 있더라고.”

“아, 그거. 제국 전체가 떠들썩한 일이라 모를 수 없지.”

“와아, 진짜 대단하지 않냐? 그렇게 뷔트시겐 가주가 미친 사람처럼 방법을 찾더니, 결국 정령서를 얻어 마력핵을 심었다잖아.”

“그러게. 그분의 아주 오래된 염원이 이뤄졌네.”

녀석들의 말을 들어 보니, 의도적으로 낸 소문이 잘 퍼지고 있다는 게 명확해졌다.

“어쨌든 이안 걔는 마력핵도 생겼겠다, 지금쯤 중앙 아카데미에 있겠지?”

“그렇겠지. 굳이 에루리안에 다닐 필요가…….”

대꾸하던 레브는 교실 문을 열어젖히다가 멈칫했다.

창가에 서 있는 이안과 눈이 정통으로 마주쳤기 때문이다.

“야, 레브. 왜 얼치고 있냐? 서서 주무세요? 걔가 중앙으로 가서 배가 아프…….”

레브 뒤에 있던 남학생이 녀석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러고는 밀치듯 안으로 들어오다 이안을 보곤 그대로 굳어 버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할 때 나오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고장 난 태엽처럼 굴길 수십 초.

노란색 머리와 레브는 멋쩍은 표정으로 교실 끝자리에 앉았다.

이안과 최대한 멀찍이 떨어진 자리였다.

둘은 정면만 응시한 채, 이안 쪽으론 눈알도 굴리지 않았다.

서먹함이 바다처럼 흐르길 또 수십 분.

이 와중에 홀로 태연한 이안은 턱을 괴고 레브를 물끄러미 보았다.

-저 녀석이야.

[응? 저 녀석?]

이안의 주어 없는 말에 녹스가 ‘정신 공명’으로 되물었다.

소리가 귀를 통하지 않고 뇌로 직접 내리꽂혔다.

-내가 반드시 얻어야 할 녀석이 저 푸른색 머리라고. 레브 아르데슈.

[오호, 물을 다스리는 루하흐구나.]

-어. 것도 다중 치유술을 보유한.

[다중 치유우? 설마, 루하흐의 직계만 가지고 있다는 그 ‘고유 기술’을 저 방계가 가지고 있단 말이냐?]

-어. 맞아.

이안은 탐색하듯, 레브의 푸른색 머리카락을 질기게 응시했다.

물에 몇 번이나 희석한 듯한 희끄무레한 바다색.

마력이 약한 방계들에게서 보이는 머리 색깔이었다.

이는 곧 치유력이 약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바꿔 말하면.

직계에 가까울수록 머리카락 색이 진해지고, 마력도 강해진다.

[고작, 페이라조 1성인 녀석이 다중 치유라……. 호오?]

호기심이 생겼는지 녹스가 레브를 유심히 살폈다.

날랜 날갯짓이 만든 잔상.

희뿌연 잔상은 이안을 어느 틈에 과거로 이끌었다.

‘수십’의 부상자를 한꺼번에 치유하는 유일한 치료사.

그 누구도 감히 범접 못 할 천재.

그런 녀석이 하필 살리카 편이라 전쟁이 고달팠었다.

레브의 존재만으로도 승기가 언제나 살리카 쪽으로 기울었으니까.

‘알란이 죽은 오르니오 전투 때에도 저 녀석이 살린 살리카들이…….’

참담했던 당시의 상황이 떠올라 이안은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 모습을 보곤 녹스가 그의 손등을 쿡쿡 찔러 왔다.

자신을 좀 보라는 듯이.

[한데 말이다, 이안. 이 시점에 할 소리는 아니다만.]

-응?

[내가 지켜본 바론, 쟤들이 널 꽤 어려워하는구나?]

녹스는 단박에 아이들의 분위기를 간파했다.

눈치 하난 끝내준다.

이안은 ‘녀석들 나름의 이유’가 있다며 무심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내가 직계라서 그래.

[아, 그렇겠네. 직계에게 억눌려 사는 것이 방계이니.]

-자연스러운 반응인 거지.

[그렇대도 이상하다. 이안 너의 넉살이면 애들하고 친할 줄 알았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어. 마주친 적이 별로 없어서. 내가 이론 수업만 듣는 통에.

아카데미의 수업은 대개 실기 위주다.

실기가 10시간이라 치면 이론은 1시간뿐이다.

실기 수업을 받을 필요가 없었던 그는 늘 도서관에 처박혀 있었다.

그러니 아이들과 친해질 기회도, 여건도 되지 않았다.

더 까놓고 말해 보자면, 그땐 말을 붙이려는 의지가 한 톨도 없었다.

직계, 방계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사람들 자체가 싫었던 때였다.

마력핵 없는 모습이 초라해서.

물론 몇몇 아이들이 꾸준히 말을 걸어오긴 했었다.

하지만 항상 단답으로 일관했다.

더는 아는 척하지 말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낸 것이다.

‘따져 보니…… 굉장히 재수 없게 보였겠는데?’

이안이 과거를 더듬는 동안, 학생들이 속속 교실에 도착했다.

그때마다 하나 같이 다!

이안을 발견하곤 똑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색하다’, ‘근데 쟨 마력핵도 생겼는데 왜 아직도 여깄지?’ 이런 얼굴을 했다.

날것 그대로의 반응.

투명한 솔직함에 이안이 피식 웃고 있을 때였다.

“안녕, 귀염둥이들!”

시뻘건 머리칼에 안경을 쓴 여자가 발랄하게 인사를 건네왔다.

* * *

그녀의 등장만으로 어색한 강의실의 분위기가 다소 살아났다.

활기찬 기색을 몰고 온 그녀.

곱슬곱슬한 머리칼을 가진 여자에게 이안은 시선을 두었다.

‘클로에 살리카.’

C반의 담당 교수이자, 식물학을 가르치는 교수.

한때는 화염의 마녀라고 불리며 촉망받는 천재였다.

거기다 직계라서 모두가 장로가 될 거라고 단언했던 인물.

하지만 결과는 보다시피 변방 아카데미의 교수를 하고 있다.

살리카 장로들에게 밉보인 탓이었다.

클로에 교수는 거침없이 들어와 맨 앞줄의 책상을 거세게 내리쳤다.

콰앙, 굉음의 반동만큼 자리의 주인인 남학생이 펄쩍 뛰어올랐다.

저래서 앞자리는 다들 기피한다.

“방학은 잘 보냈나?”

“예.”

“뭐 하고 보냈을까?”

“그냥……, 직계들 뒤치다꺼리했죠.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꿍얼대는 학생들을 클로에 교수가 스윽 훑었다.

C반은 정령사로서의 자질이 낮은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졸업 직전까지 B나 A반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재능이 한 톨도 없는 방계.

이는 평생 직계들 수발이나 해야 하는 신세라는 뜻이었다.

너무나 명확한 진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클로에 교수는 되레 목청을 높였다.

“내가 항상 너희들에게 하는 말이 있었을 텐데. 그게 뭐지?”

“‘싸움에 진 개꼴은 하지 마라. 패배감에 절어 있으면 실력이 안 는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절대!”

우렁찬 목청만큼 교수의 표정은 매우 의욕적이었다.

학생들을 아끼기로 유명한 분답게 열정 또한 넘쳐났다.

“그리고 마침, 2학기가 시작되었다. 너희들도 2학년이 될 땐 B반으로 올라가야지 않겠니?”

“…….”

“그러려면, 이번 학기에 가장 중요한 일정은 하나다.”

클로에 교수가 허공에 룬 문자를 몇 개 썼다.

그러자 문자가 배열된 공간을 가르며 열다섯쯤으로 보이는 소녀가 튀어나왔다.

녹색 머리칼과 녹색 눈, 그리고 나뭇잎 같은 귀와 꼬리.

‘식물계 정령’인 소녀는 교수가 제일 아끼는 정령이었다.

폴짝거리는 정령에게 그녀가 제법 다정히 물었다.

“그 일정이라는 게 뭐지?”

“정령과 결속을 맺는 거야.”

“그렇지. 너희들은 2학기가 끝나기 전에 첫 정령을 얻어야 한다.”

어르는 듯 차갑게 클로에 교수는 말을 이어 나갔다.

“냉정하게 말해, 너희들은 많이 늦었다.”

“…….”

“보통은 10살에 정령과 결속을 맺고 페이라조 2성이 되는데.”

“그리고 열다섯쯤이 되면 중급인 에르그가 될 시험을 봐.”

정령이 클로에 교수의 말을 받으며,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애교가 많은 녀석이었다.

다정하게 정령의 머리를 쓰다듬는 교수를 지나쳐, 이안은 교실을 휘 둘러보았다.

이전의 밝은 기색은 사라지고, 다들 의기소침해 있었다.

‘전부, 페이라조 1성에서 변화가 없으니.’

1성은, 그냥 마력핵을 지닌 채 태어나기만 해도 붙는 등급이다.

정령사라고 칭하기에는 민망한 단계.

C반은 열다섯이 되도록 1성을 벗어나지 못한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 C반의 목표이자, 교수님의 염원인 페이라조 2성.

2성은 정령과 결속을 맺어야만 오르는 단계이다.

마력량, 교감력, 그리고 정령에 대한 지배력도 어느 정도 갖춘 단계.

‘이때에서야 정령사라고 불리지.’

공식적으로 정령사 협회에 등록되는 시기이다.

마지막으로, A반 전체가 속한 페이라조 3성.

하급의 끝인 3성은, 마력량에 따라 두 번째 정령과도 결속을 맺을 수 있다.

물론 천재들의 경우엔 얻는 정령의 수가 더 많다.

실력과 자질의 차이가 명백하게 갈리는 시기.

이 단계가 되면 어엿한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교실에 적막함만 가득 휘돌자 클로에 교수가 어조를 높였다.

“중급 정령사인 에르그가 되는 거, 중요하지. 그런데…….”

그녀는 또다시 책상을 연거푸 내리쳤다.

“그런 단계도 정령을 얻어야 가능하지 않겠니?”

“클로에 말이 맞아. 나 같은 정령도 없으면서 우울해하긴. 낙제생만 있는 C반! 에루리안에서 정령이 없는 건 너희들뿐이야!”

교수의 말을 정령이 바로 맞받아쳤다.

본디 때리는 놈보다 거드는 놈이 더 밉다.

그래서 아이들의 째림은 전부 정령을 향했다.

“날 째려본다고 정령이 생겨? 노력 좀 해!”

“메이즈!”

“쳇!”

클로에 교수가 그만하라며 이름을 부르자, 뾰로통해진 정령이 팩 돌아섰다.

그러고도 끝내 메이즈는 구시렁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노력해 보기도 전에 낙담부터 하다니. 근성도, 독기도 없어서 맨날 클로에 속만 썩이고.”

정령의 말을 듣고 있자니 이안은 어쩐지 씁쓸해졌다.

글쎄.

노력한다고 될까?

뼈를 갈아 노력한다 치자.

그렇다 해도 이 아이들 가운데 에르그가 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국이 천년 넘게 이어지는 동안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설혹 에르그가 된다 해도 난관은 무수했다.

더욱이 가문에서 주요 직책을 맡는다?

방계, 거기다 에루리안 출신에겐 애초에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평가 절하하는 게 아니라 그게 바로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분위기가 요 모양 요 꼴인 거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클로에 교수가 헛기침했다.

“자, 이쯤하고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해 볼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