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따악!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강의실 곳곳에 수십 개의 불씨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것들은 곧장 학생들에게로 향했다.
맹렬한 기세에 움찔한 녀석들은 몸을 한껏 뒤로 젖혔다.
겁먹음을 놀리듯, 빙글 돌던 불씨는 이내 책상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작은 화분으로 변했다.
화분?
자신 앞에 놓인 것을 보며 아이들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갯짓엔 이게 뭔가 싶은 의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반면 이안은 화분에 심어진 작은 새싹을 유심히 관찰했다.
물기 어린 흙도 살살 파 보고.
‘잎이 너무 어려서 특징이랄 것도 없네.’
꽃대가 오렌지색이라는 것만 빼면 여느 식물과 똑같았다.
이안과 아이들의 상반된 반응을 지켜보다, 클로에 교수는 이안에게 물었다.
“이안, 정령사가 정령을 얻는 데 있어 제일 중요한 게 뭐지?”
“교감력입니다.”
“맞다, 교감력. 교감력이란 경계심을 허물어 정령의 마음을 얻는 능력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교감력이 높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지?”
“상급 정령도 쉽게 얻을 수 있으며, 정령에 대한 지배력이 강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 지배력이 강하다는 건?”
“정령사가 정령이 가진 ‘특수 기술’까지도 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결속력도 강해져 정령과 먼 거리까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임무를 행함에 있어서 유리한 조건이 된다.
정령과 양동 작전을 펼칠 수 있고, 간단한 임무라면 정령 홀로 보낼 수도 있다.
이안은 차분히 답하며 흡족해하는 클로에 교수를 응시했다.
그녀는 문제가 쉽든 어렵든 언제나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마력이 없다고 무시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존중과 같은 거였다.
그래서 이안은 클로에 교수의 식물학 수업이 좋았다.
동그란 안경을 추켜올린 클로에 교수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교감력은 정령사에게 있어 제1순위의 능력치다. 여신의 면상을 후려쳐서라도 갈취해야 하는.”
“하하하.”
“너희들이 이번 학기에 반드시 정령을 얻으려면 교감력을 높여야겠지? 그것을 위해 준비한, 이번 식물학 수업의 첫 과제다.”
클로에 교수가 장난기 가득한 손길로 화분을 가리켰다.
그러자 새싹 위로 어떤 글자가 싸악 피어올랐다.
《아침 이슬 정령의 아침 이슬 얻어 오기.》
화려한 시각 효과에 이안은 입꼬리를 올렸다.
클로에 교수의 수업 방식은 항상 이랬다.
시선을 잡아끌어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한 뒤 설명을 덧붙여 나갔다.
지루한 이론에 집중력이 흐려지지 않도록 말이다.
클로에 교수가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안, 교감력을 말하면서 왜 내가 이 과제를 냈을까?”
교수의 질문에 덩달아 학생들의 시선도 이안에게로 몰렸다.
이론만은 빠삭하니 이번에도 답을 알 거라는 단정.
녀석들의 속내가 생생히 와닿자 이안의 미소가 진해졌다.
“제국 내에 존재하는 모든 정령 중에 이 정령이 가장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워낙 낯가림이 심해서, 아침 이슬 정령과는 교감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렇지. 그놈과 말만 터도, 웬만한 정령은 꼬실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
“그러니까 열심히 도전해 봐라. 너희들이 이슬을 얻기만 한다면, 페이라조 2성은 물론 에르그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의 대화에 아이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난색으로 물들었다.
“너무 어려울 것 같아요, 교수님. 너무 어려워요오.”
녀석들의 투정에, 클로에 교수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격려를 보냈다.
실상 이 과제는 에루리안을 다닌 그 누구도 성공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이번 역시도 결과가 다르지 않을 테지만, 과제를 낸 취지가 있었다.
아이들이 쉽게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우기를.
정해진 한계선을 부수고 성취하는 기쁨을 얻기를.
“아, 이 어려운 과제를 주면서 단서 하나쯤은 줘야겠지?”
클로에 교수는 어린잎을 살포시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이 화분이 단서다. 화분에 난 새싹이 뭔지 알면, 그라나토스에 있는 정령을 금세 찾을 수 있을 거다.”
“…….”
“물론 찾는다고 다가 아니지만, 일단은 정령을 만나야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지 않겠니?”
단, 기한은 2주다.
* * *
수업이 끝난 느지막한 오후.
교실을 나서는 이안에게 딱 붙어선 녹스가 물었다.
[이안, 바로 과제 하러 갈 것이냐?]
-어. 빨리 끝내고 수련에 집중해야지.
이안은 고민거리가 못 된다는 듯 즉답했다.
이것저것을 병행하기보다 한 가지에 몰두하는 게 성미에 맞았다.
하여 후딱 해치울 작정을 하고선 걸음을 재게 옮겼다.
어느새 그라나토스의 초입.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학생들이 뭔가를 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정령과 대화를 나누거나, 식물을 관찰하며 영상석에 담거나.
분주한 그들을 스치며 이안은 숲 안쪽으로 향했다.
녹음이 완연히 짙어졌을 무렵.
“C반이면 C반스러워야지! 호숫가에서 수련? 하! 지랄을 해요, 지랄을.”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시비조가 앞에서 날아들었다.
이 대목에서, 이안은 단박에 어떤 상황인지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에루리안이란 좁은 우물에서 왕 노릇 중인 것들.
‘A반’이 또 C반 녀석들을 괴롭히는 모양이다.
“꼴에 페이라조 3성이라고.”
1성이나 3성이나 어차피 하급이라 전부, 싸잡아 ‘되다 만’ 정령사라고 불리건만.
어중간한 A반 것들은 자신이 우월하다고 여기며 1성을 괴롭힌다.
하여튼 꼴값이지.
비소를 머금은 이안은 시야를 방해하는 엘다 나무를 빠르게 돌았다.
그 즉시였다.
“!!”
살을 태우는 냄새가 이안의 폐부를 훅 찔러 왔다.
너무나 익숙한, 불과 얼마 전을 떠올리게 하는 악몽의 냄새.
구역질이 나와 그는 입을 틀어막았다.
“염병할, 살리카!”
이안은 독이 오른 눈빛을 한 채로 정면을 노려보았다.
역시나!
주홍색 머리 넷이 누군가를 에워싼 채, 창백한 살갗을 ‘태우고’ 있었다.
지글지글.
여린 살은 무력하게 변색되며 타들어 갔다.
시커먼 살덩이를 본 살리카들은 킬킬거리며 불을 꺼트렸다.
그런 뒤엔 새살이 올라올 때까지 끈덕지게 기다렸다.
“오올. 촌구석 방계라도 루하흐라고 치유력은 끝내주네에에.”
금세, 진물과 벌건 새살이 엉켜 들자, 살리카들이 그 자리의 살을 ‘또’ 지졌다.
화형인 양 반복되는 괴롭힘은 지독히도 악랄했다.
그가 죽었던, 비참했던 그날처럼.
“야, 꽉 좀 눌러라. 버둥거리지 못하게. 저거, 팔딱댈 때마다 생선 비린내 난다.”
“킥킥. 루하흐잖아. 생선 팔아먹고 사는 거지 새끼!”
“노릇하게 구우면 냄새가 덜 나려나?”
줄곧 킬킬대던 살리카가 루하흐의 머리통을 콱 짓밟았다.
박 깨지는 것 같은 둔탁한 소리가 났건만.
입을 악다문 루하흐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푸른색 머리카락이 한순간에 피범벅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저대로 내버려 뒀다간 큰일 날 성싶었다.
이안은 느긋함을 벗고 걸음을 재촉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제야 드러난 얼굴.
‘어? ……저 녀석?’
‘레브’였다.
그가 제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루하흐.
다중 치유술의 귀재라도 아직은 ‘새싹’이라 보호해야 하는 녀석.
‘빌어먹을!’
이건 뭐, 싹이 여물기도 전에 웬 잡것들 때문에 시들게 생겼다.
그렇게 둘 순 없지!
이안은 흉흉한 기세로 살리카와의 거리를 단숨에 좁혀 나갔다.
비죽 올라간 입귀만큼 손의 움직임이 날카로워졌다.
바람을 부리는 시전자의 마음에 감응한 걸까.
살리카 주변에 흐르던 바람이 매섭게 휘둘러졌다.
후우웅.
허공을 가르는 손짓에 고막을 찢는 소리가 벼락처럼 울렸고.
“크아아악!”
살리카들이 돌풍에 떠밀려 공중에 띄워졌다가 호수로 내동댕이쳐졌다.
꽁꽁 얼어 빙하가 된 바닥에.
으드득, 뼈가 부러지면서 살리카 셋은 고대로 기절해 버렸다.
한 놈만 빼고.
놈은 불의 보호막으로 거센 바람에 저항했다.
“X발! 어떤 개새끼야! 어떤 개새끼가 겁도 없이 감히!”
호수에 잠긴 다리를 빼며 살리카가 고함을 쳐댔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엔 살의가 물씬 풍겼다.
범인을 찾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맹렬한 압박.
핏줄 터진 살리카의 두 눈은 혈안이 되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훑어봐도 시야각에 잡히는 건 둘뿐이었다.
핏물을 닦고 있는 레브와 삐딱하게 서 있는 이안.
“설마……?”
살리카는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터트렸다.
“허. 이거, C-반 다니는 뷔트시겐 도련님 아냐? 실력이 차암 X같으신.”
대차게 비죽거린 살리카는 젖은 다리를 탈탈 털었다.
하찮아서 상대할 가치도 못 느끼겠다는 식의 몸짓.
이쪽은 아예 신경을 끄고선, 살리카가 자신의 다리에 불길을 일으켰다.
살얼음이 낀 바지를 단숨에 녹이는 열기.
다리가 뽀송뽀송해지자 불길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5살 아이 크기의 붉은색 망아지로.
이안의 시선이 정령에게로 꽂히자, 살리카는 더욱 여유로워졌다.
“능력도, 정령도 없으신 도련님이 오지랖이 참 넓으셔. 대체 왜 이러시나?”
“내 새싹을 지키……. 크흠. 내가 자비심이 넘쳐서, 누가 당하는 꼴은 또 못 보거든.”
“하! 자비심? 그런 것도 능력이 있을 때나 하는 얘기지. 주제를 모르면 다쳐요, 도련님.”
건들대는 살리카의 낯짝을 이안은 건성건성 쳐다보았다.
싹이 난 시퍼런 감자처럼 생겨선.
생긴 대로 지껄이는 녀석을 두고 이안은 귀를 후비적 팠다.
“말 한번 더럽게 많네.”
“하! 물정 모르는 도련님한테 내가 교훈 하나 줘야겠는데?”
“교훈?”
“싸움을 ‘먼저’ 걸었으면, 그에 상응하는 X같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교훈 주시겠다는 A반 도련님은 주둥이로 싸우는 게 특기신가?”
“잇!”
이안의 도발에 눈을 희번덕거린 살리카가 정령과 함께 달려들었다.
* * *
푸르릉.
살리카의 손짓에 불의 정령이 앞발을 번갈아 굴렸다.
그러자 2m 크기의 주홍색 말발굽이 생겨났다.
이안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
말발굽을 피해, 이안은 제가 서 있는 곳의 바람 선과 저 먼 곳의 선을 연결했다.
연결한 후엔 선을 접어서 뒤로 당겼다.
간발의 차로 그가 불 정령의 기술을 피한 순간.
콰광. 콰아아악.
말발굽이 폭발하며 흙덩어리가 비산했다.
‘불의 고리.’
지정한 범위를 폭발로 날려 버리며 압살하는 기술이다.
발굽 모양으로 파인 흙바닥에 이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불쾌감이 스멀스멀 치솟았다.
이 기술.
‘살리카의 사냥개’가 자주 쓰던 기술이었다.
<폭발이야말로 불의 정령사의 예술적 정점이라 할 수 있지. 안 그래, 이안?>
미친놈이 뷔트시겐을 도륙 낼 때 쓰던 것.
하여 그에게는 익숙하면서도 기분 엿 같아지는 기술이었다.
‘공포를 심어 줄 만큼 압도적이었지, 놈의 불의 고리는.’
반경 100m에다 연속으로 5번을 시전해 대니 그럴 수밖에.
‘그 미친놈에 비하면 이놈은 비벼 볼 만하네.’
그리 생각한 찰나.
재차 불의 고리가 폭발하더니, 놈이 쏜 불덩이가 그의 팔을 스쳤다.
불길에 탄 코트를 흘끗 본 이안은 건조하게 팔을 털었다.
전투를 시작한 이상, 어느 순간이든 냉정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를 깔보면 안 된다.
하급이라 되다 만 정령사라고 불린들.
실제 페이라조 1성과 3성의 차이 자체는 어마어마했다.
손가락이 하나 있는 것과 다섯 개 전부 있는 것의 차이 정도?
“크하핫. 잘난 척하던 도련님 어디 가셨나? 주둥이로 싸우는 건 뷔트시겐 도련님 같은데.”
살리카가 승기를 거머쥔 양 비웃음을 토해 냈다.
녀석은 불의 고리로 용암화가 되어 버린 땅 위에 서 있었다.
저 위에선 오롯이 살리카만이 안전하다.
불의 가호를 받지 못한 자들은 그냥 뼈째로 녹아 버린다.
“불똥에 튀겨지는 감자 주제에.”
“뭣?”
“아니이. 귀한 몸뚱이 간수 잘하시라고.”
“X같은 놈이. 혼쭐나 봐야, 그 주둥이를 함부로 못 놀리지!”
히죽거린 살리카가 가차 없이 용암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시뻘건 액체가 떨어지는 자리마다 용암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점점 그를 옥죄어 오는 용암지대.
전투가 길어질수록 불리해지는 건 그였다.
그러니, 당하지 않으려면 단시간 안에 결판을 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