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20화 (20/214)

제20화

온실에 있을 때만 해도 날이 좋았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마자 먹장구름이 꼈다.

바람마저 물비린내가 나는 것이 아무래도 비가 올 모양이다.

“겨울이라 그런지 유독 밤처럼 어둡네.”

“그치, 이안? 무슨 날씨가 어후야. 으스스하다, 으스스해.”

호들갑 떠는 목소리 쪽으로 이안은 고개를 틀었다.

정면에서 그를 보고 있는 레몬색 머리카락, ‘발리올’ 아니, ‘올리브’였다.

동글동글한 생김에 아직 젖살이 통통한 소년.

레브와 가장 친한 아이.

올리브가 처진 눈꼬리를 실룩거리며 쾌활하게 말했다.

“이안, 오늘 많이 배웠어. 정말 고맙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

“진짜? 그럼, 저기…… 밤늦게 물어보고 싶은 게 생기면…….”

“그땐 방으로 찾아와.”

“정말로?”

“어. 친구끼리 낯가릴 게 뭐 있다고.”

이안의 선선한 대꾸에 올리브는 양발을 마구 굴렸다.

과제에서 ‘B’를 받은 것보다 더한 쾌거였다.

이안의 방에 놀러 간다면 전교생을 통틀어 최초가 될 테니까.

기쁨에 겨운 발 굴림에 장단을 맞추려는 모양인지.

푸르릉.

외뿔에 눈이 네 개인 말, 올빼미처럼 생긴 ‘러니언’이 콧김을 연신 뿜어 댔다.

다소 특이하게 생긴 이 말은 순간 이동 전용마였다.

단시간, 압축되어 출력되는 마력을 견딜 수 있게 개량된 말.

러니언이 끄는 녹색 육륜 마차가 기숙사 앞마당에 속속 들어섰다.

투레질하는 러니언들을 흘끗 본 올리브가 이안에게 슬쩍 물었다.

“주말이라 다들 집에 가기 바쁘다. 이안 넌 언제 출발할 거야?”

“아, 난 안 가.”

“안 가?”

“어.”

“난 또. 너도 워프 게이트에 나왔길래 집에 갈 줄 알았다야.”

에이, 아쉽네.

“같은 마차를 타려고 했는데…….”

올리브의 중얼거림은 아쉬움만큼이나 여운이 무척 길었다.

그렇다고 집에 가지 않는 이유를 꼬치꼬치 묻지는 않았다.

나름의 사정이 있을 테니까.

아쉬움을 갈무리하며 올리브는 마차에 느리적 올라탔다.

“이안, 난 먼저 간다. 주말 잘 지내.”

“어. 너도 잘 다녀와.”

“푸흡. 너랑 이런 대화를 나눌 날이 올 줄은……. 어쨌든 이틀 후에 보자!”

올리브는 손을 크게 흔들고선 멀어져 갔다.

친밀한 손짓.

단 며칠 사이의 변화를 이안은 새삼스레 체감했다.

그리고 이에 쐐기를 박으려는 듯.

C반 아이들 대개가 그에게 인사를 하며 워프 게이트를 통과했다.

이로 인해 기숙사 앞마당은 한동안 왁자지껄했다.

그러다 하나둘씩 그 수가 줄어들었고 어느덧 마지막 마차가 떠났다.

텅 빈 기숙사 앞마당.

“흐음.”

이안은 눈썹 머리를 내리며 워프 게이트와 기숙사를 번갈아 보았다.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의미 없는 것 같기도 한 고갯짓.

연거푸 같은 행동을 반복한 후였다.

이안은 다소 느른하게 그라나토스 어딘가로 눈길을 두었다.

“녹스, 이제 우리도 슬슬 가 볼까?”

“어딜 말이냐?”

“맛있는 거 먹으러.”

“맛있는 거?”

“어. 오늘은 별식으로 모시겠습니다, 스승님.”

이안은 손을 가슴팍에 대고 익살스럽게 허리를 굽혔다.

그런 뒤 따라오란 손짓을 하곤, 그라나토스로 걸음을 옮겼다.

너무도 당당한 보폭.

그것의 그림자를 쫓으며 녹스는 의문을 표했다.

“한데 이안, 맛있는 거 먹겠다더니 왜 숲으로 가는 것이냐?”

“아아, 낚아야 할 게 있거든. 그래서 겸사겸사.”

* * *

“이 정도면 되려나?”

이안은 눈을 가늘게 뜨곤 물빛 투명한 호수를 응시했다.

수면 아래 드리워진, 바람으로 짜 만든 그물.

엉성했던 처음과 달리 그물은 날실과 씨실이 제법 정교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그런데도 이안은 이음새를 물 샐 틈없이 좁혀 나갔다.

“녹스, 쪼금만 기다려 봐.”

“그렇게 말하곤 이 호숫가로 와서 세 시간째, 날 굶기고 있다.”

굶긴.

녹스는 어두침침한 볕을 쬐며 사과를 우적우적 먹고 있었다.

벌써 한 바구니를 동내는 중이다.

“거의 다 됐어. 이거, 구워 먹으면 진짜 맛있거든.”

“흥. 겨우 물고기 구이 때문에 날 이리 굶기는 것이냐?”

“‘겨우’라니. 나중에 후회할걸?”

“물고기는 물고기일 뿐이거늘.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글쎄. 내가 잡으려는 게 미식가들이 환장하는 놈인데도?”

“미식가들이?”

“어. 물비린내 나는 어두운 날씨에만 잡히는 ‘히오나스’란 물고긴데.”

“…….”

“맛이 아아주 그만이야. 살코기를 씹을수록 고소한 버터의 풍미가 느껴지거든.”

“오호, 버터의 풍미라.”

“이제 좀 땡겨?”

“흠흠. 뭐 정히 네가 원한다면…….”

말꼬리를 흐린 녹스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새침했다.

‘네 성의를 봐서 내가 조금은 맛을 봐주마.’ 이런 식이랄까.

결국 허락할 거, 꼭 한 번은 튕기고 본다.

피식 웃은 이안은 호수에 드리운 바람 그물을 조금씩 조여 나갔다.

정교하게, 그리고 빠른 속도로, 그러면서도 살살.

물이 출렁이면 히오나스가 진흙 바닥으로 숨어 버린다.

원체 예민한 놈이니까.

이안은 수면의 잔잔함을 유지하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몰두한 그의 양 눈썹이 붙을 것처럼 가까워졌다.

아마도, ‘열심’을 의인화한다면 저런 모양새일 터.

“수련을 병행하고 있단 걸 알기에 뭐라 하고 싶지 않다만…….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어 버렸다!”

“…….”

이젠 대꾸도 없다.

“저, 저, 수련 중독증!”

녹스는 짤막한 불꼬리를 불퉁하게 흔들었다.

그라나토스로 향할 때부터 이렇게 될 줄 짐작은 했었다.

나뭇잎 하나만 쥐어도 수련부터 하고 보는 놈이거늘.

솔직히 저 그물만 해도 그렇다.

애초 저렇게까지 촘촘할 필요도 없었다.

히오나스는 어른 팔뚝만 한 크기였으니까.

그런데도 구멍 간격을 넓혔다가 좁혔다가 아주 지랄을…….

‘크흠.’

하늘 같은 스승을 쫄쫄 굶긴 채, 제자 놈이 그물 짜기에‘만’ 몰두했다.

숫제 누가 옆에 있는 것도 잊어버린 것 같다.

그렇게 또, 없는 놈 취급당한 지 30여 분.

기다림에 지친 녹스는 앙증맞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아르릉거렸다.

이대로 뒀다간 다음 날이 될 때까지 저러고 있을 성싶다.

전적이 어디 한두 번이어야지.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한소리 하려던 찰나.

“오오!”

촤아악, 시원한 물소리가 호수를 가름과 동시에.

팔딱팔딱.

히오나스의 금색 꼬리가 싱싱한 생명력을 뿜어내며 튀어 올랐다.

“진짜 많이 잡혔다!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겠는데?”

치아를 드러내며 환히 웃는 이안.

녀석을 지그시 보는 녹스의 눈매가 갸름해졌다.

사냥에 성공했으니 잘했다고 맞장구쳐 줘야 하나.

‘도저히 좋은 말이 나오질 않는군.’

그렇다고 녀석의 수련이 성에 차지 않아 그런 건 아니다.

이안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으니까.

바람 그물을 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형상 변환을 좀 하네?’라는 수준을 넘어 이미, 자유자재였다.

한데도…….

녀석은 무언가에 쫓기듯 자기를 몰아붙이며 수련을 강행했다.

잠도 잘 자지 않고, 쉬지도 않고, 매초, 매 순간을 쪼개 가며.

어느 정도냐 하면.

녀석은 책을 넘기는 소소한 일조차 바람을 이용했다.

이용할 뿐만 아니라 연구를 병행했다.

어느 강도로 넘겨야 종이가 구겨지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가는지.

종이가 구겨질 땐, 그 구김의 정도와 바람의 양이 얼마였는지.

모든 걸 철저히 계산했다.

그런 후엔 또, 구김이 항상 같도록 똑같은 행동을 반복해서 했다.

진짜 독종이었다.

‘이러니, 성장 속도가 남들보다 빠를 수밖에.’

오죽하면 페이라조 1성인 마력량에 비해, 통제력이나 정밀도, 구현 능력이 벌써 B반 녀석들과 엇비슷할까.

마력핵이 생긴 지 겨우 한 달 넘은 놈이.

‘충분히 잘 해내고 있는데……, 이토록 조급해하는 연유가 무엇일까?’

녹스는 물고기의 내장을 제거하는 이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녀석의 손에는 여지없이 바람 칼날이 쥐어져 있었다.

고작 생선 손질 하나 하는 것일 뿐인데, 칼날은 또 왜 저리 날카로운지.

바위도 감자처럼 썰 수 있을 정도였다.

곧 전쟁터라도 나갈 것 같은 기색이잖는가.

‘츠읏.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거늘.’

녹스는 준엄한 얼굴을 하곤, 타박 아닌 타박을 늘어놓았다.

“이안, 널 학대하듯 몰아붙이지 말고 조금 천천히 하거라.”

“어어.”

건성건성.

“에휴.”

자식이나 제자나 공통점은 딱 하나였다.

말을 징그럽게 안 듣는다는 것.

“내 분명히 너에게 말했다. 그러다 자칫 크게 다칠 수도 있다고.”

녹스는 불꼬리를 늘려 이안의 손등을 스치듯 찰싹 때렸다.

조금의 질책과 많은 염려가 담긴 훈육.

고집은 있어도 말귀는 기똥차게 알아먹는 녀석이었다.

그래선지 이안의 마력 운용이 점차 둔해져 갔다.

* * *

잔소리와 음식의 만족도는 비례했다.

“꺼윽. 배부르다.”

이안은 볼록 튀어나온 배를 연신 문질렀다.

직접 잡은 물고기라 그런지 유난하게 맛있었다.

넉넉한 위장을 품은 채 하늘을 보니 줄무늬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평화롭다.

눈을 끔벅거린 이안은 녹스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발라당 누워 있는 모양새가, 녀석 역시 포만감이 큰 것 같았다.

입가에 검댕을 묻히고선 배를 두드리고 있는 걸 보면.

까다로운 손님을 만족시킨 요리사 이안은 으스댔다.

“어때? 지금까지 이런 맛, 본 적 없지?”

“잘난 척하긴. 아직 이르다. 그럭저럭 입맛을 맞췄을 뿐이니.”

“내 것까지 뺏어 먹은 위대한 녹스 님은 어디 가셨나?”

“크흐흠.”

민망한지 녹스는 헛기침을 거하게 해댔다.

“그나저나 이안 너, 집에서 구박받는 거 아니지?”

“나? 아닌데.”

“귀하게 자란 도련님치곤 바깥 생활에 능숙한 것처럼 보여서 말이다.”

“아아. 뭣 때문에 그렇게 보였을까?”

이안의 물음에 녹스가 뭔가를 턱 끝으로 가리켰다.

그걸 따라가 보니, 녀석의 머리 위로 하얀색 꽃이 흐드러져 있었다.

“네놈이 셀리논을 능숙하게 써서 그런다.”

“저게 왜?”

“이 꽃의 가루가 소금 대용이지 않더냐.”

“아, 아카데미 기초 수업에서 배우잖아. 제국에서 나는 식물과 효과에 관한 것들은.”

“설사 그렇다 해도, 뭔가를 막 배운 자들은 능숙하지 못하다. 정확히는 응용할 주변머리를 갖지 못하는 거지. 그게…….”

“경험의 차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지?”

“응. 넌 이미 몸으로 체화하고 습득한 사람 같다.”

녹스의 단정적인 말투에 대꾸하는 대신 이안은 그냥 웃었다.

그러고는 꼬챙이를 쥔 손으로 턱을 괴고 젖은 땅바닥을 응시했다.

경험이라면 차고 넘친다.

바깥 생활?

예언자 시절엔 1년 중 거의 9달은 노숙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절로 개고생이 덤으로 딸려 왔다.

폭풍우 치는 여름날엔 모포가 축축해서 늘 습진으로 고생했다.

혹한이 찾아오면 추위를 피해 구덩이를 팠지만, 그때마다 온갖 벌레가 몸을 기어 다녔다.

열악한 환경이었음은 말해 무엇하랴.

그렇게 늘 위험을 달고 사는 몸이다 보니, 약초 같은 건 필수로 외우고 다녔다.

같은 맥락으로 먹거리도 마찬가지였다.

사냥감을 그냥 익히면 비린내가 심했다.

어떤 건 역함을 참을 수 없어서 구토감이 일기도 했다.

해서 비린내를 가리려다 보니, 향신료 대용인 식물들도 많이 알게 됐다.

구구절절 말이 길어졌는데 결론은…….

‘어떻게든 죽지 않고 살아 보려는 발악이었지.’

이안은 셀리논을 툭툭 꺾으며 지나가듯 말을 흘렸다.

“경험도 개고생은 하는 거 아냐. 남는 건 비 올 때마다 쑤시는 삭신뿐이거든.”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관절 타령은.”

“하하. 그냥 그렇다는 거야.”

또 웃음으로 때운다.

뭔가를 숨기려고 할 때마다 녀석이 쓰는 수법.

이럴 땐, 물고 늘어져 봐야 소용없다.

녹스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대화를 일단락 지었다.

그런 뒤 바구니에 잔뜩 남은 물고기를 들여다보았다.

이걸 먹일 사람이 있댔는데…….

[그나저나 물고기만 잡으러 이 호수에 온 것은 아니지 않았든?]

“응?”

[반드시 이 ‘히오나스’ 호수에서 낚아야 하는 게 있다고, 네가 그리 말하지 않았더냐.]

“아아, 그거?”

이안은 건들건들 목을 좌우로 꺾었다.

그러다 삽시간에 안면을 포식자처럼 바꾸었다.

‘이미 그 녀석이 미끼를 문 것 같은데?’

저벅.

그의 말소리에 묻어 눈을 밟는 발자국이 점차 가까워졌다.

기척을 죽인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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