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발소리를 감추는 게 꽤 능숙하네.”
이안은 혼잣말하듯 나직하게 내뱉었다.
웬만한 덩치는 가려질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엘다 나무 뒤.
그의 아는 척에 놀란 누군가가 걸음을 멈춰 세웠다.
석양의 역광 탓에 일그러진 윤곽 또한 제자리에 눌어붙었다.
“근데 상대를 완전히 속일 수 없다면, 숨통이 끊어지는 건 네가 될 거야, 레브 아르데슈.”
“…….”
정체가 밝혀져도 레브는 꼼짝하질 않았다.
아무래도 녀석에게서 눈을 떼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을 성싶었다.
이안은 바구니 쪽으로 고개를 튼 후, 통통한 물고기를 꺼냈다.
그 뒤 꼬챙이에 끼워 모닥불에 가져다 댔다.
“거기에 그대로 있어도 상관은 없는데…….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온 거 아냐?”
“…….”
“그러려면 가까이 오는 게 더 낫지 않나?”
“……보지도 않고 나인 거, 어떻게 알았어?”
연거푸 말을 걸자 다시금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그 소리에 집중하면서도 이안은 무심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레브 네가 가까워질수록, 청량한 바다 냄새가 진하게 났거든.”
“바다 냄새?”
“어. 루하흐 영지의 에드레이 나일, 그 바다 냄새가.”
어느새 지척까지 온 레브는 좀 많이 당황한 것 같았다.
‘페이라조 1성이 마력향을 감지한다고?’ 딱 그 표정이었다.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난 녀석의 얼굴은 참 많이도 앳되었다.
그의 기억과 달리.
레브가 자신의 몸을 훑으며 엄벙덤벙 중얼거렸다.
“마력향 감지는 상급인 카르디아만 쓸 수 있는 기술인데…….”
고로 페이라조 1성은 ‘마력향 감지’란 걸 할 수 없다.
거기다, 루하흐의 향은 루하흐만이 맡을 수 있다.
그 말인즉슨 이안은 그의 마력향을 감지할 수 없어야 한다.
의문을 지우지 못하고 레브가 가만히 서서 이안을 내려다보았다.
탐색의 시선이 정수리에 내리꽂혔다.
매서운 의심을 풀어 주는 것이 마땅하나.
‘설명하기 곤란한 부분이라 말해 줄 수가 없네.’
이안은 꼬챙이를 뒤집으며 ‘그깟 것, 1성이라도 알 수 있는 거지.’란 모르쇠로 일관했다.
녹스의 정체를 빼고는 이것에 대해 이해시킬 도리가 없었으니까.
사실 그가 상급이나 쓰는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녹스와 결속을 맺은 직후부터였다.
녀석의 기술 중 유일하게 공유된 기술.
그러면서 활용도가 높은 것.
이안은 제법 누그름한 투로 레브에게 말을 건넸다.
“계속 서 있을 거야? 올려다보려니 고개가 아픈데.”
“…….”
뭘 해도 레브는 요지부동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미심쩍단 시선을 거두지도 않았고.
‘경계심이 생각보다 더 심하네.’
그가 페이라조 3성인 트란 카스티야를 때려눕혔을 때부터였던가.
그때부터 녀석은 줄곧 이런 시선으로 그를 보았었다.
“……그럼 여기 앉아도 돼?”
“어. 편하게 앉아.”
레브는 조심스레 그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한데…… 어째 앉은 간격이 딱.’
팔을 뻗기만 해도 닿는 거리.
여차하면 상대의 사정권 안으로 파고들 수 있는 공격 범위 내.
‘허튼짓하면 모가지 따 버리겠다.’라는 뜻이 내포된 간격이었다.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이채를 띤 이안은 노릇하게 익은 물고기 구이를 레브에게 내밀었다.
“근데 밥은 먹었냐?”
“……뭐?”
“배고프면 예민해지고, 그러다 보면 조그만 것에도 신경이 곤두서고 그러잖아.”
“그런 상태일 때 오히려 감각은 더 날카로워져.”
“그럴 수도 있는데, 난 배 속이 든든해야 생각이 잘 돌아가더라.”
이안은 어서 받으라는 듯 꼬챙이를 살살 흔들었다.
“식으면 맛없어, 레브.”
경계심이 바싹이라, 부러 꼬챙이를 레브 가까이 붙이진 않았다.
물고기가 꽂힌 단순 막대기지만 무기로 인식할까 봐.
그런데도 원수를 만난 것인 양 레브는 꼬챙이만 노려보았다.
패기가 넘치다 못해…….
꼬르르륵.
“…….”
천둥이라도 내려친 양 레브의 배에서 배꼽시계가 우렁차게 울렸다.
다른 의미로 패기가 넘쳤다.
창피한지 얼굴이 벌게진 녀석 때문에 이안은 배꼽 떨리도록 웃어 젖혔다.
“아하하하하.”
“……웃지 마!”
“알았어, 알았어. 일단…… 크흐흠. 먹어. 독 안 넣었으니까.”
“내가 배고파서…… 먹는 거 아냐. 네가 하도 권하니까.”
“그래, 그래. 자아, 어서 드세요. 더 들고 있다간 팔 떨어지겠다.”
그가 너스레를 떨며 권하자 레브는 머뭇머뭇 꼬챙이를 받아들었다.
처음 한 입은 조심스럽더니…… 녀석은 어느 순간 걸신들린 것처럼 물고기를 먹어 치웠다.
예상보다 맛있는 데다 입맛에도 맞나 보다.
물고기를 뼈째 흡입하는 레브를 보며 이안은 흡족해했다.
일단 배불리 먹이는 게 목표였다.
배 속이 따뜻해지면, 덩달아 마음도 유해지니까.
그러면 무엇이든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터.
“많이 있으니까 천천히 먹어, 레브.”
이안은 부지런히 물고기를 구워 레브 앞으로 날랐다.
그 모양새를 녹스가 얼마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렇게 조용히 관망하다가 돌연, 콧방귀를 뀌며 이 상황을 총평했다.
[살찌워 잡아먹으려는 악덕 상인 같구나.]
악덕은 무슨!
그저 목적한 바를 위한 현명한 포석일 뿐이다.
* * *
한 시간여 후.
[저번에도 느꼈지만 말이다. 이 녀석…… 꽤 특이한 녀석이구나?]
녹스가 레브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며 툭 내뱉었다.
단정 짓는 말투로 보아 뭔가를 감지한 모양이다.
이안은 물고기를 구우며 여상하게 되물었다.
-뭐가?
[겉으로 드러난 건 명백하게 페이라조 1성이다. 한데…… 정령의 보호막이 걸려 있구나.]
-보호막?
[으음. 최상위 세이드계 정령이 쓰는 ‘페르나’란 보호막이구나.]
-아, 등급을 속일 수 있게 해 주는 그 보호막?
[페이라조 3성도 1성으로 보이게 할 수 있지. 하나 세이드, 그러니까 어둠 정령은 까탈스러운 녀석들이다. 그런 녀석들과 결속을 맺을 수 있는 자는 많지 않은데…….]
녹스는 흥미롭다는 듯 앞발로 턱을 괴었다.
[장로나 가주 정도? 점점 더 이 녀석의 정체가 궁금해지는구나. 보호막까지 씌운 걸 보면 분명 보호하려는 심산인데. 흐음.]
-그러니까 페이라조 3성인 레브 저 녀석을 누군가가 1성으로 둔갑시킨 거네?
이안이 눈가를 좁히며 되묻자, 녹스는 양 날개를 빠르게 비벼댔다.
어떤 감정적 동요가 생겼다는 의미였다.
[썩을 놈! 아까부터 왜 자꾸 내게 묻는 것이냐? 다 알고 있으면서!]
-하핫. 알고 있었어?
[에잉. 됐다! 느물대는 너한테 열 내 봐야 나만 손해지.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린 저 녀석이나 낚아라.]
녹스가 건성건성 손사래를 치며 앵돌아섰다.
그 순간에 맞춰.
“잘 먹었어.”
레브가 검댕 묻은 입가를 닦으며 말을 건네왔다.
상처 입은 짐승처럼 뾰족하던 처음보단 경계심이 제법 누그러져 있었다.
치밀한 전략? 전술?
다 필요 없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친해지는 데는 ‘맛있는 음식’이 최고였다.
이안은 제법 줄어든 물고기 바구니를 흘낏 본 뒤 손을 털었다.
“맛있었지?”
“으응.”
“그게 다, 내가 물고기를 끝내주게 구워서 그래.”
“너…… 많이 변한 것 같다?”
“내가?”
“예전엔 이렇게 능청스럽지 않았잖아.”
“아, 죽다 살아나서 그래.”
이안은 다소 가볍게 맞받아쳤다.
행동이 무겁지 않다고 속내까지 그러할까.
녀석을 배불리 먹이며 그는 본론에 돌입할 때를 노리고 있었다.
내내 레브가 그를 주시하고, 급기야 미행까지 감행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잖은가.
“레브 아르데슈.”
“응?”
“아니, 시온 ‘루하흐.’”
“……!!”
* * *
물을 다스리는 루하흐 ‘일족.’
그중 오직 ‘직계’에게만 허용된 ‘루하흐’란 성.
그것을 거론한다고 모두 녀석같이 반응할까.
레브의 동공에, 코에, 아니 얼굴 전체에 경련이 일었다.
당혹과 당황의 어느 사이.
제법 차분한 성정을 지녔는데도, 녀석은 불시의 공격에 대처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정곡을 찔렸으니.
거기다 아직 제 의도를 파악하지도 못했잖은가.
심경이 복잡한 녀석과 달리, 이안은 평온하게 레브의 상태를 살폈다.
속으론 루하흐란 성을 여러 번 곱씹어 보면서.
‘시온…… 루하흐.’
녀석이 본연의 성을 버리고 아르데슈가 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
레브의 사정을 차근히 말하자면 이렇다.
<현 루하흐 가주는 전대 가주가 급살을 맞자, 공석이 되어 버린 가주직에 어쩔 수 없이 앉았다.>
이것이 제국 전체가 아는 정설이다.
자고로 이런 설엔 필히 뒷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진실은, 현 가주가 전대 가주를 ‘독살’했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가주와 그의 가족들을 몰살했고, 그 비극 속에서 살아남은 게 막내아들인, 레브였다.
기묘한 건…… 이렇게 될 것을 알았을까.
전대 가주는 죽기 얼마 전, 레브에게 페르나란 보호막을 걸었다.
그런 뒤 충직한 가신에게 녀석을 맡겼다.
가주의 유지를 받든 가신은 목숨 걸고 레브를 빼돌렸고, 아르데슈란 가문에 입적시켰다.
“……후우.”
동요를 감추지 못하던 레브는 차츰 침착함을 되찾았다.
입가가 간혹 파르르 떨렸지만, 그것만 빼면 나름 차분했다.
“루하흐라니 참. 농담으로 넘기재도 너무 실없어서,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그럴 땐 일단.”
“대체 그 얼토당토않은 억측은 어디서…….”
“‘어디서’라…….”
이안은 말꼬리를 부러 길게 끌었다.
레브가 억누르고 있는 초조를 들쑤시려는 것이다.
녀석이 침착할수록 대화의 흐름을 가져올 수 없으니까.
역시나.
그가 의도한 대로 레브의 손이 자꾸 움찔움찔 튀었다.
꼬챙이를 잡은 오른손이 특히나.
여차하면 찌를 기세인 손을 직시하며 이안은 말을 덧붙였다.
“그간 레브 네가 보여 줬던 행동에서.”
“행동?”
“방계라면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를 알고 있었으니까. 예컨대, 헤르세의 환희 같은 거.”
“…….”
“그것에 대해 정확히 아는 건 직계뿐이잖아. 그리고 오늘, 날 찾아온 것만 봐도.”
“널 찾아온 거? 하, 겨우 그런 걸로?”
“겨우라니. 종일 내 뒤를 밟으며 감시할 정도로, 너에겐 중요한 일일 텐데.”
어떤 말을 어떤 시점에 적절히 터트리는 것.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였다. 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려면 말이다.
“루하흐라는 걸 숨겨야 하는 너로선.”
“……숨기다니, 참. 대체 무슨 말인지.”
“네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네 숙부, 그러니까 루하흐의 현 가주에게 들키면 안 되니까. 들키는 순간,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으니.”
“그래서 널 감시했다? 기가 막히네. 이안 너, 네가 하는 소리 완전 억지인 거 알지?”
하!
“가주에게 들키지 않는 것과 너를 감시한 것, 그 두 가지가 연계점이 있다고 생각해?”
“당연히.”
“근거는? 망상에도 근거는 있을 거 아냐?”
“레브 네가 지금 품고 있는 의심.”
“무슨 의심?”
“너 지금, 내가 ‘감시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잖아. 네 숙부가 보낸 감시자.”
“……하하핫. 이건 뭐 대꾸를 할래야.”
“그 감시자가 ‘이안 뷔트시겐’으로 변장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하고 있잖아.”
“그런 잘못된 단정으로 생사람 잡지 마.”
“그럼 하나하나 짚어서 설명해 볼까?”
“…….”
“1학기 때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내 실력이라든가, 갑자기 달라진 성격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전부, 레브 너한테는 불안 요소였을 거 아냐.”
“그건…….”
“그래서 여기까지 날 따라와 확인해 보려던 거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피부가 따끔거려 왔다.
레브에게서 제어하지 못한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타닥. 타다닥.
녀석의 격노를 연료 삼아, 장작이 타는 소리만 호숫가를 휘돌았다.
숨통을 조이는 적막.
그 속에서 이안은 손등을 긁는 레브를 찬찬히 뜯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