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28화 (28/214)

제28화

“오늘 수업은 C반만을 위한 것이 되겠군요.”

스톨레 교수가 깡마른 손가락을 하나 폈다.

단조로운 손짓과 어조.

차분한 행동에서 보여주다시피 성격만큼은 화려한 차림과 정반대였다.

“다들, 열의가 넘치는 걸 보면 짐작하고 있는 듯하군요. 오늘 여러분에게 주어질 과제가 무엇인지.”

스톨레 교수는 늘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썼다.

거리감을 유지하려는 방편.

객관적인 시각으로 제자들을 지켜보고자 함이었다.

“예에! ‘정령과 결속 맺기’잖아요.”

“후훗. 그렇습니다. 그걸 위해 여러분은 식물학 수업에서 교감하는 법을 익힌 것이지요.”

“…….”

“그건 즉, 결속을 맺을 충분한 예행연습이 되었다는 의미기도 하고요.”

스톨레 교수는 다소 건조한 어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럼 실전에 앞서 묻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얻을 첫 번째 정령의 속성은 어떤 것이지요?”

“기본 속성입니다.”

바람 가문은 바람 정령을.

물 가문은 물 정령을.

이처럼 자신의 원소에 한정해서 첫 정령을 얻는다.

“그렇기에 대지의 발리올이 결코 바람 정령을 얻을 순 없는 것이지요. 이는 첫 번째 결속 이후로도 마찬가지입니다. 4대 가문의 원소는 오롯이 그들만의 것이란 의미입니다.”

“예.”

“하지만 ‘두 번째’부턴, 기본 속성을 제외한 모든 정령과의 결속이 가능해집니다. 올리브, 예시를 한번 들어 볼까요?”

“어둠인 셰이드계, 빛인 니트라스계, 전격계나 식물계 등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날을 꿈꾸는 학생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초롱초롱했다.

열의 넘치는 이들을 보며 스톨레 교수는 미소를 머금었다.

“자, 그럼 긴말할 필요 없이, 결속을 맺을 때 쓰는 술식을 배워 보도록 하죠.”

교수는 신중하게 한 글자씩 내뱉었다.

“피스티스엘피스(πίστηελπίδα)”

“피스티스엘피스.”

“나는 희망이 될 것이며, 신의를 지킬 것입니다.”

교수는 다음 술식을 읊었다.

“비르타모스(ζωήθανατος)”

“비르타모스.”

“믿음을 기반으로 정령사가 되었으니.”

“우누위모타로스(ūnusvīζωήtaτέλmorsος)”

“우누위모타로스.”

“하나로 이어진 생과 사를 가벼이 여기지 않겠습니다.”

말을 끝낸 스톨레 교수는 경청하는 학생들을 훑었다.

앳된 얼굴들은 순수했다.

이제 막 알을 깬 병아리들이라 아직은 저 구절의 무거움이 와닿지 않을 것이다.

교수는 안대의 끝자락에 수놓아진 거북이를 문질렀다.

정령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자 지침.

이에 대해 당장은 몰라도 항상 곱씹어 보길 바랐다.

“하나로 이어진 생과 사. 이는 결속으로 말미암아 본디 ‘무한한’ 정령의 생을 ‘유한’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그러니 여러분들이 진정한 정령사가 되려면 정령에 대한 책임, 타인의 목숨, 그것의 무게를 생각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

“그것을 잊지 말라는 의미로 결속을 맺을 때마다 저 고어들을 읊는다는 것 또한.”

“예.”

스톨레 교수는 생각에 잠긴 학생들을 하나하나 응시했다.

아이들의 반응을 찬찬히 살핀 뒤.

“결속 맺기를 앞둔 여러분에게 너무 무거운 얘기만 늘어놓았군요.”

“…….”

“지금은 첫 정령에 대한 기대와 들뜸만 있어도 될 때이니.”

사아악.

교수는 분위기를 전환하려 안대에 수놓인 거북이를 잘랐다.

그게 신호였던 모양이다.

흩날리는 안대 조각이 무지갯빛 파장을 띠더니, 이내 연무장 전체가 너른 초원으로 변했다.

바람 냄새, 풀 냄새, 하늘의 태양과 흘러가는 구름까지.

오감이 받아들이는 정보가 마치 실제 같았다.

허공으로 팔을 뻗은 이안은 살갗에 닿는 온화함에 놀라 움찔했다.

-……환영술. 무지개 정령이 가진 기술인데.

[저자, 실력이 뛰어나구나. 상급인 카르디아 1성 중에서도 월등하다 할 만큼.]

-그렇지. 에테르계의 심상을 물질계에 이만큼 정교하게 구현하는 정령사가 어디 흔한가.

한 마디로 실력이 ‘미쳤다’는 거다.

그냥이 아니라 진짜 제대로!

그러니 C반 대다수가 휘둥그레져서 둘러보기 바쁠 수밖에.

번화한 대도시에 막 상경한 촌놈들 같았다.

반면, 스톨레 교수의 얼굴은 지극히 무미건조했다.

과시도, 잘난 척도, 그렇다고 한 톨의 뿌듯함도 없었다.

“놀랄 필요 없답니다. 여러분들도 곧, 충분히 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

“정령이란 영혼의 동반자가 생긴다면 말이죠.”

스톨레 교수는 오른팔을 뒤로 당긴 뒤 힘껏 바닥을 향해 내질렀다

마력의 분출.

그러자 그의 팔에 장착된 건틀릿에서 파직파직 정전기가 뿜어져 나왔다.

용을 형상화한 화려한 건틀릿.

저곳에, 발리올들은 정령을 깃들게 해서 전투에 활용한다.

콰콰쾃.

정령의 기술이 일시에 분출되자 연무장 바닥 전체에 금이 갔다.

쩍쩍 갈라진 틈바구니로 튀어 오르는 번개.

그것들이 비산하며 환술을 단박에 깨트려 버렸다.

‘……발리올의 기본인 대지에 환술계에 전격계 정령까지 벌써 셋.’

등줄기가 쭈뼛한 이안은 마른침을 연거푸 삼켰다.

아무리 입 안을 적셔도 갈증 난 양 혓바닥이 말라 왔다.

열망.

다른 누구도 아닌, 스톨레 교수의 실력을 뛰어넘고 싶단 열망이 일었다.

걷잡을 수 없는 들불처럼 아주 거세게.

전쟁터를 누빈 그의 뒤를 쫓았던 어떤 날처럼 거세게.

‘…….’

이 날것의 충동을 충족시키려면 달리 방도가 있겠는가.

죽자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페이라조를 넘어, 까마득한 카르디아까지 도달하려면.

스톨레 교수처럼 정령을 자유자재로 운용하는 정령사가 되려면 말이다.

* * *

“과제 기한이 일주일이라니. 너무한 것 아닙니까, 스톨레 교수님?”

클로에 교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조는 이래도 손님 대접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

스톨레 교수 앞에 내려 둔 뜨끈한 차.

찻잔을 쥐며 소파에 앉아 있던 그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화려해서 도리어 독버섯 같은 미소를 말이다.

“인간은 말입니다. 쫓길 때 한계를 쉬이 넘곤 하지요.”

“한계요? 중앙 아카데미에 다니는 수재들조차, 과제를 받은 뒤 일주일 안에 정령을 얻지 못하는데. 이 무슨 쉰소리를!”

“하하핫. 단 한 사람 있지 않습니까.”

“누구 말입니까?”

“다섯 살에 바람 정령을 얻은 뷔트시겐 가주님 말입니다.”

“하! 그분은 원체 뛰어나신 분이라 논외입니다. 까놓고 말해, 뛰어난 학생들의 기준으로 봐도 최소 보름은 걸리는 일이라는 걸, 스톨레 교수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일주일’로 정한 것이지요.”

“예?”

클로에는 잘못 들었나 싶어 반문했다.

필시 얼빠진 표정일 텐데, 스톨레는 그저 차만 들이켰다.

더할 나위 없이 상큼한 낯짝이었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인간은 쫓길 때 한계를 쉬이 넘는다고.”

“한계니, 뭐니. 대체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계신 겁니까, 스톨레 교수님.”

“후훗. 그저 궁금할 따름입니다.”

스톨레는 의뭉스러운 말을 남기고 입을 봉했다.

그의 저의를 꿰뚫어 보려는 클로에의 눈빛이 매서웠다.

스톨레 바르푸니.

그를 알고 지낸 지도 어느덧 10년이 되어 간다.

10년.

강산도 변할 긴 시간인데, 그는 박제된 듯 한 톨도 변하지 않았다.

여간해선 속내를 내보이지 않는 자이니.

“흠. 그래요. 좋습니다. 그 개인적인 호기심이 뭔지 제가 맞혀 볼까요?”

“…….”

“과제 기한으로 보건대, 이 과제, 이안을 염두에 둔 것 아닙니까?”

“참 눈치가 빠르십니다, 클로에 교수님.”

“차암 의뭉스럽습니다, 스톨레 교수님.”

“한데 저는 그런 클로에 교수님이 싫지가 않아요. 그게 교수님만의 매력이라서.”

무표정과 능글맞음의 공존.

알기 어려운 그의 낯짝을 클로에는 뚫어지게 보았다.

“정말 요상하단 말이죠.”

“무엇이 말입니까.”

“편애를 끔찍이 싫어하는 스톨레 교수님이 웬일로, 편파적이라서 말입니다.”

“솔직히 시인하죠. 편파적, 맞습니다.”

“혹, 제 짐작이지만 이안의 성장이 빠르기 때문입니까?”

“예. 볼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마력량이 늘고 있더군요. 벌써 페이라조 1성의 고리를 절반 넘게 채우다니.”

“…….”

“해서 자질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뷔트시겐 가주님이 세운 기록을 과제 기한으로 줘서 말입니까?”

“예.”

“가늠을 끝낸 다음엔 어찌할 요량이십니까.”

“스승으로서 가르침의 방향을 정해야겠지요. 스승으로서.”

이미 마음을 정한 자의 어투였다.

클로에는 스톨레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스승.’

이것의 역할을 누군가는 너무도 가벼이 여긴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역할이 이 ‘스승’이란 빌어먹을 명칭이다.

제자에게 가장 무거운 산이요, 가장 넓은 바다가 되어야 하니까.

클로에는 마음을 벼리듯 허리를 곧추세웠다.

“좋습니다. 스톨레 교수님 혼자만 멋진 역할을 하게 둘 순 없죠.”

“제가 좀 멋져 보였나 봅니다.”

“멋져 보이긴. 개뿔.”

“후훗.”

“만약 말입니다. 이안이 그분을 뛰어넘는 결과를 보인다면…….”

“그렇다면 변해야지 않겠습니다. 저나 클로에 교수님이나.”

“좋습니다.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적절한 방향성에 대해 논의해 보도록 하죠.”

합이 척척 잘 맞았다.

성격과 성향은 다를지라도 신념은 비슷했기에.

두 교수는 찻잔을 술잔처럼 부딪히며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다.

한창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가던 그때.

“……!!”

낯선 파동이 느껴져 두 교수는 동시에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에루리안에선 감지할 수 없는 강대한 파동.

대기를 술렁이게 하는 마력의 흐름에 그들의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 * *

“너희들은 어디로 갈 거야?”

연무장을 나오며 올리브가 물었다.

자기가 질문해 놓고는, 답도 자기가 제일 먼저 했다.

“난 대지 정령이 많은 동쪽 구역으로 갈 건데.”

“난 남쪽. 거기가 물의 정령이 많거든.”

빠르게 답을 한 레브는 이안의 곁에 바투 붙었다.

“이안 넌?”

“난 북쪼…….”

“설마 북쪽 구역?”

레브의 되물음에 싱글거리던 올리브가 법석을 떨어댔다.

“북쪽 구역이라고? 거긴 금지 구역이잖아. 교수님들이 위험하니까 절대 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는 곳인데 거길 간다고?”

“이안, 되도록 다른 곳에서 정령을 찾아보는 건 어때?”

“이야, 친구가 되니까 대우가 달라지네.”

이안은 슬쩍 레브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건가? 오, 감동인데.”

“됐다. 그냥 아무 데나 가세요.”

“큭큭. 진즉 들러붙을 걸 그랬다. 오늘은 너 따라서 남쪽으로 가 볼까.”

여태껏 장난스럽던 이안의 얼굴이 삽시간에 무표정으로 변했다.

주변의 바람이 소란하게 술렁였기 때문.

그의 안색이 단박에 바뀌자, 레브 또한 무슨 일인가 싶어 긴장했다.

“왜 그래?”

“아, 유난히 바람이 시끄러워서.”

이안은 소란의 원인을 파악하고자 청각의 기감을 끌어 올렸다.

최대치까지 열어젖힌 후엔 저 먼 곳에 있는 바람의 속삭임에 집중했다.

‘훈련을 받은…… 절도 있는 날갯짓.’

푸득. 푸드득.

묵직한 날갯짓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동 경로로 보아 목적지는 에루리안.

‘설마’ 싶은 이안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중앙에 걸린 태양과 눈송이.

그 사이를 비집고 아스라한 거리에서 희끄무레한 뭔가가 잡혔다.

‘……저거.’

자신이 본 게 맞나 싶어 눈가를 좁힌 찰나.

청백색 거대한 새들이 창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도합 서른하나.

다섯 줄로 열 맞춰 도열한 새들의 목에는 천이 매어져 있었다.

검은 천에 수놓아진 문장.

그건 새를 탄 자들의 검은색 흉갑에 새겨진 문장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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