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어? 뷔트시겐의 특수부대인 히루푸스 아냐?”
무슨 일에든 깜짝깜짝 잘 놀라는 올리브가 새되게 외쳤다.
히루푸스.
오직 뷔트시겐 일족의 수장만이 움직일 수 있는 군대.
발이 세 개인 새를 조종하는 공중전의 달인.
전쟁이 나지 않으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그들.
이들의 등장에 레브의 얼굴이 걱정으로 물들었다.
“이안, 뷔트시겐에 무슨 일 생겼어?”
“아……. 아무래도 그것 때문인 것 같은데?”
“응? ……그거?”
레브의 커진 동공 따라 주변의 웅성거림이 몸집을 부풀렸다.
이미 본관 앞은 시장통이 따로 없었다.
히루푸스를 보며 호들갑 떠는 학생들로 인해.
거기다 교수들까지 나와서 이 분위기에 가세했으니 말해 뭣 하랴.
좀체 수선거림이 가시지 않던 그 순간.
“도련님, 이안 도련님!”
절절한 외침과 함께 누군가가 히루푸스의 맨 뒷줄에서 튀어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등장하자 이안은 눈을 홉떴다.
“……칼브란?”
“예, 도련님! 접니다, 저! 도련님이 오매불망, 제일 보고 싶다 하셨던!”
그런 말은 서신에 적은 적이 없는데?
칼브란이 눈가를 둥글게 접으며 새의 목에 걸린 고삐를 잡아당겼다.
이동하란 신호에 말귀를 알아먹은 새가 지상으로 돌진했다.
실로 사나운 움직임이었다.
포식자의 기세라 금방이라도 먹이를 낚아챌 것 같았다.
하지만 길들인 새는 매우 유순하게 땅바닥으로 안착했다.
* * *
“대체 무슨 일이래?”
“이안을 데려가려고 왔나?”
“야, 이 무식한 새끼야. 자기 집 도련님을 데려가는데 뭘 저렇게까지 해?”
“아님 누굴 죽이러 온 건가?”
“누굴? 야, 무식한 소리 좀 작작 해라. 누굴 죽이러 온 거면 저렇게 정복까지 쫙 빼입고 왔겠냐?”
“그런가?”
“저 봐봐. 새한테 금장까지 칭칭 두른 거. 저건 대단한 식을 치를 때나 하는 거거든.”
“그래?”
“말하자면 가주의 즉위식 같은?”
“근데 그런 히루푸스가 저러고 왜 여길 왔냐?”
한 소년의 촐싹거리는 의구심을 타고 히루푸스가 하강했다.
일사불란하면서 절도가 넘쳤다.
다섯 줄로 도열한 그들은 이안에게 묵례를 해 보였다.
말 없는 예의와 서늘한 기색.
묵묵히 서 있는 그들을 두고 칼브란이 제게 성큼 다가왔다.
온몸으론 ‘아이고, 우리 도련님!’을 외치고 싶단 기세가 역력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이 곧 뷔트시겐의 얼굴이지 않던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칼브란은 중후한 표정으로 나직하게 물었다.
“흠흠. 도련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칼브란 덕분에 불편한 거 하나 없었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학기 직전, 급히 준비하느라 물품들이 미흡했을 터인데.”
이안은 뿌듯해하는 칼브란과 히루푸스를 번갈아 보았다.
복색을 보아하니 레브 영입 때문에 온 듯한데…….
그래도 그렇지 영입식에 히루푸스라니.
“설마 총괄 집사가 직접 올 줄은 몰랐네. 것도 히루푸스를 대동하고.”
“아. 가주님께서 특별히 신경 쓰라 분부하셨습니다. 그러니 누가 와야겠습니까. 유능한 집사인 저 칼브란이 와야겠지요.”
“근데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왔네.”
빨라도 지나치게 빨랐다.
이런 반응 속도는 서신을 받자마자 뜯지도 않고 달려온 것과 진배없었다.
이안의 머릿속을 훤히 아는 것처럼 칼브란이 즉답했다.
“도련님께서 요청하신 일이니 당연한 것을요.”
“우리 유능한 집사께서 준비하느라 고생 꽤나 했겠는데?”
“고생은요. 도련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전혀 고되지 않았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음. 일단 식부터 시작할까? 바쁜 히루푸스를 붙잡고 계속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을 순 없으니.”
“아, 그러겠습니다. 한정 없이 도련님을 세워 둘 순 없지요.”
“잘 부탁해, 칼브란.”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레브를 앞으로 슬쩍 밀었다.
떠밀린 레브가 눈을 끔뻑거리다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란 동작.
녀석의 인사에 화답하려 칼브란이 가슴팍에 오른손을 얹고 허리를 살짝 숙였다.
격식을 차린 뒤, 칼브란은 히루푸스를 향해 묵직하게 명을 내렸다.
위엄있는 음색은 목청껏 외치지 않아도 탄탄했다.
“지금부터 소키에타스를 거행한다.”
“뷔트시겐에 영광을!”
서른의 기사단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줄 맞춰 섰다.
그들은 오른손에 들린 바람 검을 가슴팍에 딱 붙였다.
이후론 한 치의 미동도 보이지 않는 히루푸스.
그들 사이를 가르며 기사 하나가 검은색 융단을 깔았다.
스물 후반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
기합이 잔뜩 든 기사는 뷔트시겐 문장이 수놓아진 융단의 끝에 섰다.
그러더니 무릎을 꿇고 바닥에 복잡한 술식을 써 내려갔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
술식은 삽시간에 완성되었고, 빛이 일렁이던 자리엔 동상이 나타났다.
‘뷔트시겐의 초대 가주와 그의 동반자였던 금빛 늑대 정령.’
마치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이 동상은 뷔트시겐의 상징 중 하나다.
맹약이 있을 때마다 사용하니까.
일족의 명예와 영광을 걸고 반드시 지키겠다는 뜻으로.
“βουsemperλήlibere(언제나 자유롭게 살아가라. 그대의 의지대로.)”
초대 가주의 형상이 부드럽게 말하며 레브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물끄러미 보는 레브의 동공이 잘게 떨렸다.
그러자 가주가 안심하라는 것처럼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안도 흡족함에 눈꼬리를 접었다.
본래 소키에타스 제도는 시끌벅적하다.
보여 주기식이라서다.
‘얘 이제 내 편이니까 건들면 전쟁이야.’
유치하지만 이런 과시가 없으면 영입한 자나, 소속을 옮긴 자나 힘들어진다.
특히 소속을 옮긴 자가.
[멸시와 핍박, 부당함을 당하지 않게 하려고 요란을 떨지만, 이번은 특히나 과하게 준비했구나.]
녹스는 호기심을 내보이며 기사단을 관찰했다.
물론 이안 옆에 딱 붙은 채였고, 기척도 최대한 감춘 뒤였다.
저들이라면 자신의 존재를 알아챌지도 모르니까.
카르디아 1성이 제일 약한 등급이니 말해 무엇하랴.
인간어를 구사하는 괴물들인 데다 실전 경험까지 넘치니 조심해야만 했다.
그렇게 녹스가 조심성을 발휘하고 있는 사이.
“흠흠.”
좌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양 칼브란이 헛기침했다.
이에 맞춰 착. 차악-
기사단이 일제히 검을 들어 올려 X자로 교차했다.
검날이 노글노글한 정오의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마치 축복을 내리듯이.
그 시점에 맞춰 칼브란이 레브의 이름을 불렀다.
“레브 아르데슈, 그대와 뷔트시겐의 명예를 걸고 신의의 맹약을 시작하겠습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칼브란의 위엄 깃든 음색을 똑똑히 들었다.
“레브?”
“야, A반에 레브라고 있어?”
“그런 애는 없는데.”
“없다고? 그럼 B반 앤가?”
“우리 반에도 그런 애는…….”
“아르데슈는 C반인데.”
“……?!”
“C반? C반 애를 왜 뷔트시겐 가에서 영입해?”
모두의 시선이 푸른 머리, 아니, 레브에게로 꽂혔다.
“…….”
시선이나 수군거림은 들리지 않는 양, 레브는 정면만 응시했다.
보이는 거라곤 온통 검은색뿐이었다.
기사단의 검은 머리카락, 눈동자, 흉갑과 바닥의 융단까지도.
뷔트시겐의 상징색.
밤을 연상시키는 것들을 보고 있노라니…….
뷔트시겐이 되기 위한 첫 단추를 꼈다는 게 확연하게 실감이 되었다.
잠시 루하흐를 버려야 한다는 것 또한.
그 사실이 폐부를 찔러 오자 내장이 따갑게 설컹거렸다.
서글픈 일이었지만 이 고통의 반대말은 기회였다.
‘그자에게 칼을 겨눌 기회.’
레브는 주먹을 말아 쥐며 이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푸르고 단단한 눈이 저를 직시하고 있었다.
확신을 주려는 듯 동공을 날카롭게 벼린 채로.
“후우.”
레브는 깊은 날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대로 머무르다 고이고, 그렇게 썩고 싶지 않았다.
이안이 그러하듯.
그렇기에 레브는 경직된 다리를 재촉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과거에 작별을 고하는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무겁게.
* * *
“감히 주제넘게 한 말씀 올리자면, 심지가 굳으신 분 같았습니다.”
칼브란은 이안이 머무는 방 이곳저곳을 살폈다.
입은 다른 사람 얘기를 해도 눈은 방의 상태를 점검하기 여념 없었다.
최고급 천인 비쿠냐로 짠 하얀 시트.
드워프의 과학적 설계로 허리가 아프지 않은 침대.
최고급 엘다 나무로 만든 옷장과 책상.
발열석이 골고루 박힌 바닥과 사면의 벽.
모든 것이 도련님이 불편하지 않게, 흠 없이 잘 굴러가고 있었다.
비록 방은 뷔트시겐의 화장실보다 좁지만.
‘흐음. 이만하면 얼추 도련님께서 임시 거처로 쓰시기엔.’
칼브란은 성에 찬 듯 고개를 까닥거렸다.
깐깐한 총괄 집사의 검열을 무사히 통과한 셈.
만족스러워하는 그에게 이안은 앉으란 뜻으로 의자를 내밀었다.
“레브 말이야?”
“예. 고생을 많이 해서 움츠러들긴 했지만, 깡은 세셨습니다. 도련님 친우분답게.”
“전쟁통에 팔 한쪽이 덜렁거렸을 때도 비명을 참던 녀석이니까.”
“그때…… 혼자 살아남으셨으니 아무래도.”
“그런 상처조차 독기로 채우는 녀석이지.”
“도련님의 말씀을 들어 보니, 그분이 퍽 마음에 드시는 것 같습니다.”
“말이 잘 통해.”
“그런 벗을 만나기는 쉽지 않지요. 감축드립니다, 도련님.”
칼브란은 외알 안경을 더딘 손길로 추켜올렸다.
실상 도련님을 뵈면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
“도련님 얼굴을 직접 뵙고 감축드리고 싶었지요. 마력핵이 생기신 것 말입니다.”
“두 달 내내 걸핏하면 편지에 축하한다 써 놓곤.”
“아니지요. 얼굴을 보고 말하는 것과 보지 않는 것의 차이는 천지 차이인 것을요.”
말랑말랑한 칼브란을 보며 이안은 치아를 드러내고 웃었다.
역시, 편하다.
날카롭던 신경줄이 다소 느슨해졌다.
바싹 세우고 있던 등이 허물어지고 있는데, 칼브란이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오는 검은빛.
빛은 유려하게 일렁이며 이안의 가슴팍으로 스며들었다.
뭘 또 ‘마력향 감지’까지.
“……도련님의 향이…….”
칼브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평소 시선 처리조차 신경 쓰던 그와 사뭇 달랐다.
무례란 걸 알면서도 이안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연신 훑었다.
특히 가슴팍을 보는 시간이 길었다.
그 눈빛에 배인 놀라움과 감격을 읽으며 이안은 입꼬리를 올렸다.
“내 마력향이 어떤데?”
“한겨울의 바람 냄새가 납니다. 그것도 매우 진하게.”
“아버지와 정반대네. 아버진 한여름의 향이 나는데.”
“그렇지만 묘하게 닮았습니다. 정확히 뭐라 표현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아버지와 닮았다니까 좋다.”
“저도 그렇습니다. 도련님과 잘 어울리는 그 향이 저도 참 좋습니다.”
“푸흡.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콧물을 그렇게 줄줄 흘리다니.”
“크응. 이건, 콧물이 아니라 눈물입니다. 도련님께서 잘못 보신 것이지요.”
“코에서 잘못 나온 눈물이 입으로 다 들어가는데?”
이안은 손수건으로 콧물을 닦아 주었다.
세심한 손길을 선보이는 이안을 칼브란은 지그시 보았다.
그동안 신경 쓰실 게 많으셨던 모양이다.
좀 전까진,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던 날카로운 기색이 가시처럼 튀어나오더니…….
지금은 조금이나마 누그러진 상태였다.
기회다 싶어 칼브란은 애써 누르고 있던 것에 대해 슬그머니 운을 뗐다.
“도련님, 제가 한 말씀 더 올려도 될까요?”
“뭔데? 편하게 말해.”
“실은 가주님께서 눈두덩이 짓무르도록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찌나 주말마다 워프 게이트 앞을 떠나지 못하시는지.”
“……아.”
“등급 측정일이 지나면 결과야 어찌 나오든 한번 들러 주십사…….”
말을 하다 말고 칼브란은 창가 쪽을 주시했다.
도련님을 만난 순간부터 계속 뭔가가 신경을 긁었다.
카르디아 3성의 감각을 자극하는 무엇.
그게 뭔지 모르겠기에 칼브란은 갸름하게 눈가를 좁혔다.
‘……설마.’
눈이 정통으로 마주치자 녹스는 몸을 옹송그렸다.
기척 감추기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수호자란 황자, 나아가서는 황제를 지키는 존재.
하여 카르디아의 기감조차 속이는 기척 감추기는 기본 중에 기본이었다.
한데 눈이 마주쳤다고?
그럴 리가.
숨조차 참은 녹스는 샤샤삭 침대로 몸을 옮겼다.
혹 시선이 따라올까 했더니…….
여전히 칼브란이란 자는 창가를 보고 있었다.
우연……이었던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