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저 새끼들이!’
불의 창을 바람으로 쳐낸 이안은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피이이.
작은 새의 지저귐이 허공에 울리자, 녹스의 날개가 길어졌다.
‘바람의 손길.’
날개는 손이 되어 티무스의 머리통을 억세게 움켜쥐었다.
“크어억!”
부지불식간의 휘어 챔에 티무스가 사지를 허우적대며 버둥거렸다.
벗어나려 애쓰는 놈에게 이안은 낮게 뇌까렸다.
“너, 트란 그 자식한테 C반 괴롭히지 말란 경고 못 들었냐?”
“이, 이아아안!”
고막을 긁는 고함이 듣기 싫은지, 녹스가 티무스를 집어던져 버렸다.
쥐 파먹은 옥수수가 날아감과 동시에.
파아아앗.
이안은 바람 화살을 만들어 살리카들에게로 쏘았다.
과녁은 응당 살리카들의 오른 다리.
눈에는 눈, 다리에는 다리였다.
올리브의 다리를 망가트리려 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터.
지난 생, 올리브의 상태가 어땠던가.
난도질당한 허벅지는 뼈가 완전히 바스러져 버렸다.
무릎 아래부턴 짐승이 잡아 뜯은 것처럼 잘려 나갔었고.
뿐일까.
뜯겨 나간 다리는 재생 불가능하게 불에 타 버렸다.
웬만한 치유술로는 붙일 수도 없게.
‘그나마 성한 건 왼쪽 발목이었는데, 완전히 돌아가 있었지.’
“끄아아앗!”
바람 화살이 무릎을 뚫고 지나가자 살리카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관통상이라 무릎 정중앙에 바람구멍이 생겼다.
뼈와 살이 엉킨 절단면.
거기서부터 찐득하고 흥건한 피가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을 망가트릴 작정을 했다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지.”
이안은 살리카들의 무릎을 콱콱 밟으며 뼈를 으깨 버렸다.
“살, 살려줘!”
침을 질질 흘리며 살리카들이 비굴하게 빌었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만 강한 버러지 같은 것들!
이안은 무감하게 그들의 발목을 천천히 꺾어 버렸다.
“으아아아아악!”
비릿한 피 냄새를 타고 혼미해지는 와중에도 끝없이 밀려오는 격통.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몰아치자 살리카들은 바닥을 뒹굴었다.
사지를 비틀다 눈깔을 까뒤집으며 정신을 놓아 버린 와중.
“이 쓰블름아아아앗!”
무리의 대장이었던 티무스만은 충혈된 눈을 치켜떴다.
허공을 보는 듯, 이안을 보는 듯.
혼탁한 동공으로 어딘가를 보며 놈은 제 손목을 물어뜯었다.
정확히는 도마뱀 문양이 새겨진 가장자리의 살점을.
차촤촤촥.
기묘한 소리와 함께 이안의 등 뒤로 불의 정령이 나타났다.
코브라 형태를 띤 정령.
정령이 실체를 드러내자마자, 티무스의 손에 들린 창이 정령에게로 이동되었다.
‘불의 모투스.’
결속 맺은 정령과 무기를 교환할 수 있는 기술이다.
정령은 불의 창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수직으로 그어지는 창의 궤적을 이안은 바람의 선을 접어 피했다.
회피와 동시에.
콰지직, 녹스의 날개가 불의 정령을 으깨 버렸다.
“큭큭. 너, 맘에 든다. 그 정도 독기는 있어야지.”
히죽인 이안은 오른손에 바람을 휘감으며 티무스에게 다가갔다.
눈에 잡힐 것처럼 선명한 증오.
놈의 주홍색 눈깔이 진심으로 마음에 들었다.
확 파 버리고 싶을 만큼.
그래서 이안은 특별히 신경 써 살뜰하게 쓰다듬을 작심을 했다.
한 방이 아니라 깔짝깔짝.
그러기 위해 일단 비수를 바늘처럼 얇게 만들었다.
그 후, 손가락만 한 비수 여러 개를 놈의 발목에 연달아 꽂았다.
“크으윽!”
단단한 뼈를 으깨며 힘줄이 터지는 소리가 찐득하게 퍼졌다.
티무스의 숨이 넘어갈 것 같자 이안은 코트에서 치유 물약을 꺼냈다.
혹여 숲에서 다쳤을 때를 대비한 상비약.
늘 가지고 다니는 물약을 놈의 발목에 콸콸 부었다.
발목의 상처가 낫자 이안은 도로 비수를 놈에게 던졌다.
“어때? 포식자가 아니라 약자가 돼 본 소감은?”
양껏 비소를 날리며 이안은 다시 치유 물약을 부었다.
“기분 X 같지? 엿 같지?”
“…….”
“묻는데 대꾸를 안 하네. 나 누구랑 얘기하는 거래.”
도로 발목을 잘근잘근 부러뜨리고 치유하고.
부러뜨리고 치유하고.
두어 번을 반복하다 이안은 비수 꽂힌 발을 콰악 눌렀다.
끝나지 않는 고통에 숨을 헐떡이는 티무스의 눈빛은 흐리멍덩했다.
독기가 완전히 빠져 버린 상태.
“네 자체로 경고가 될 거야. A반 것들에게.”
“끄어어어억!”
아등바등 버티던 티무스마저 게거품 물며 기절해 버렸다.
놈을 비롯해 볼품없이 뻗어 버린 여섯.
그들을 이안은 찬기 어린 시선으로 훑으며 혀를 찼다.
전쟁통이었으면 싹 모가지를 잘라 버렸을 텐데…….
일방적으로 숨통을 끊어버리면 살인이 될 수 있었다.
지금은 평화로운 시기니까.
정해진 규칙을 어길 순 없어 이안은 티무스의 발목을 더욱 거칠게 밟았다.
콰득, 뼈가 바스라지는 소리가 섬찟하게 났다.
등줄기를 강타하는 울림에 지켜보던 올리브는 파드득 몸을 떨었다.
그 채로 이안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자신을 포함해 C반 녀석들에게는 한없이 상냥했는데…….
그것이 거짓이었단 양, 감정이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이안은 이런 상황이…… 무척 익숙해 보였다.
물 만난 고기 같달까?
‘……개멋있다!’
올리브는 티무스를 응징한 이안에게로 눈을 빛내며 다가갔다.
‘나보다 세면 형님’, 영락없이 그 눈빛을 하고는.
그에 피식 웃은 이안과 그를 따르는 올리브.
두 사람이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숲을 떠난 후였다.
스르륵.
적막한 공간이 찌그러지며 수문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냥개는 콧잔등을 실룩거린 뒤 티무스에게 다가갔다.
[크르르르륵.]
뭔가 못마땅한 것 같은 울부짖음.
흉흉해진 사냥개가 티무스의 가슴팍에 주둥이를 가져다 댔다.
그런 연후 쩌억 주둥이를 벌렸다.
츠스스슷.
즉각, 티무스의 가슴팍에서 어떤 마법진이 드러났다.
독수리가 은색 달을 움켜쥔 형태의 진.
그 위에 쓰인 고대 문자들이 사냥개의 숨결 따라 서로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식 배열이 재조립되며 이어지길 얼마간.
티무스의 가슴팍에서 도마뱀 형태를 띤 주홍색 구슬이 튀어나왔다.
마력핵의 정수.
희미한 빛을 품은 그것은 곧장 사냥개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크륵. 크르륵.]
재차 콧잔등을 실룩한 사냥개는 티무스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그러고는 금식 3일 만에 오동통한 닭고기를 뜯은, 딱 그 표정을 지으며 사라졌다.
‘……정수 삼키기?’
이안의 머리통에 앉아서 이동하던 녹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심연처럼 아득한 마력의 농도.
이것이 느껴진다는 건 사냥개가 마력을 운용했다는 의미였다.
‘녀석이 살리카 그 잡것들에게 고유 기술을 시전한 건가?’
정수 삼키기라면, 최고의 형벌이 될 것이다.
저 기술에 당한 자는 ‘다신’ 정령과 결속을 맺지 못하게 되니까.
* * *
기숙사로 돌아가는 도중.
“오올. 이안, 너 진짜 대단하다. A반 애들 여섯을 때려눕히다니.”
올리브가 눈을 빛내며 이안을 올려다보았다.
퉁퉁 부은 뺨으로 인해 발음들이 부정확했다.
심지어 피로 앞섶이 축축했지만 발랄함은 어딜 가지 않았다.
조금 전 다리가 아작 날 뻔한 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하긴. 원래 이런 녀석이었으니.
덕분에 날카로움을 잘 갈무리한 이안은 가장 묻고 싶은 질문을 했다.
“재수 없는 그것들 얘긴 그만하고. 정령 얻기는 잘 돼 가?”
“아, 아니. 쉽지 않네.”
“초조해하지 말고 천천히 해. 맘이 급해지면 될 것도 안 되니까.”
“응. 그렇지 않아도 네가 준 헤르세의 환희 덕분인지 교감은 잘 돼. 예전엔 정령들한테 아예 말도 못 붙였는데.”
올리브의 얼굴은 희망에 차 있었다.
과제 기한이야 일주일이지만 그게 정령을 얻을 수 있는 마지노선은 아니다.
언제라도 얻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에.
비록 늦은 출발일지라도 올리브에겐 유의미할 것이다.
정령과 결속을 맺고 공식적인 정령사가 되는 거니까.
“그러다 보니 새삼 이런 생각이 든다. 이안 네 덕분에 내 상황이 달라졌다고.”
“…….”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이 빌어먹을 상황이 꽤나 많이. 그래서 새로운 꿈이 생겼어.”
“새로운 꿈?”
“응. 번듯한 정령사가 되고 싶단 꿈. 네가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원래 꿈은 농사꾼이었거든.”
올리브는 멋쩍은 듯 붉은 멍이 든 볼을 긁적거렸다.
“물론 망상으로 끝날지도 몰라. 그래도 노력해 보려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포도색 덤불 숲이었다.
뭘 하는지 몰라도 요즘 이안이 죽치고 있는 곳.
그 정도 노력을 들이는 거라면 중요한 일일 테니, 더는 시간을 뺏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올리브는 말의 매듭을 짓듯 먼저 흐름을 끊었다.
“어쨌든 오늘 고맙다, 이안.”
“낯간지럽게 인사는.”
뚝뚝하게 이안은 코트에 손을 넣어 치유 물약을 올리브에게 건넸다.
그러고는 유리병을 톡톡 두드렸다.
다친 거 그대로 두면 고생한다는 손짓은 다소 건조했다.
마냥 살갑지 않았으나, 물약 병을 빤히 보는 올리브의 동공은 잘게 떨렸다.
어쩐지 묘한 표정.
“이안.”
“어?”
“나 열심히 할게. 너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 이거 하나는 정정해야겠네.”
“정정?”
“살리카 찌질이들이 말한 거. 졸업해도 너흴 외면할 생각 없어.”
“…….”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거고.”
이안은 맞아서 개구리 눈알이 돼버린 올리브의 눈을 직시했다.
마력도 미약한 녀석의 동공이 진한 레몬색으로 물들었다.
“그러니까 노력은 본인을 위해 해. 나 말고.”
“…….”
물약 병을 꽉 쥔 올리브의 표정이 몹시 다부져졌다.
“알았어. 강해져서 반드시 이안 너랑 동등한 친구가 될 거야.”
어찌나 그 얼굴이 결연하던지.
종내엔 ‘강해지겠다’란 말을 남기고 올리브는 절뚝거리며 떠났다.
오른 다리가 끌리는 뒤태.
이안의 시선은 올리브에게 고정된 채 미동이 없었다.
탐색, 그리고 미약하게 엿보이는 반가움.
그것을 주시하던 녹스가 틈을 엿보다 말을 흘렸다.
[한데 이안, 너는 저 애를 꽤 신경 쓰는 것 같구나.]
-내가?
[네가 줄곧 레브 만큼이나 자주 본 아이가 저 애였다. 올리브 필로스.]
-그런……가?
이안은 ‘내가 그랬나?’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깐 의문을 가졌으나 그리 깊숙이 파고들지 않았다.
자신이 그랬다면 ‘어떤 기억’ 때문일 테니까.
절뚝거리는 저 모습이 도리어 익숙한 그 어느 때의 기억으로 말미암아.
* * *
절뚝절뚝.
말간 얼굴의 병사가 다리를 절며 아는 척을 해 왔다.
“이안, 반갑다. 나 모르겠어? 에루리안을 2년 동안 같이 다녔는데.”
올리브와 만난 건 대전쟁 초기였다.
말단 병사와 책략가.
그런 신분으로 조우했을 당시, 이안은 사실 녀석을 알아보지 못했다.
에루리안의 2년.
지옥 같던 시간을 꾸역꾸역 버텨 내는 것만으로도 힘겨웠던 시절.
그 악몽 같던 시절에 대체 누굴 기억하랴.
“넌 여전하네. 그거 알아?”
“…….”
“네 표정이 하도 무뚝뚝해서, 다들 네가 언제 웃을지 내기까지 했었던 거.”
마치 어제 헤어진 것처럼 서글서글하게 인사하던 녀석.
올리브는 전쟁하러 온 사람 같지 않았다.
항상 밝은 기색이었고, 언제나 유쾌함을 흩뿌리며 주변을 살뜰히 살폈다.
특히 그를 챙길 땐 유난히 더 그랬었다.
몸이 약하니 모포 잘 챙겨 다니라는 둥.
젖은 채로 돌아다니지 말라는 둥.
밤새 끙끙 앓을 거 무거운 거 들지 말라는 둥.
자식을 애지중지하는 부모처럼 어찌나 극성이던지.
몸이 약한 제 동생과 닮아서 그냥 둘 수 없다나 뭐라나.
녀석의 오지랖은 전투가 끝난 후면 더욱 강하게 발휘되었다.
피 냄새와 생이 지워질 때 나는 비명이 머릿속을 장악한 상황.
하여 이안은 독한 럼주가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나마 토할 때까지 마시고 나면 선잠을 잘 수 있기에.
그에 대해 잘 아는 올리브는 언제나 술친구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렇게 반년.
‘오늘도 여지없이’였다.
올리브는 모닥불 앞에 앉아 이안에게 럼주를 건넸다.
“크으. 달다. 전투 끝나고 요놈 마시는 재미에 산다니까, 요즘은.”
“술주정뱅이 다 됐네. 처음엔 한 모금 넘기고 위장이 탄다고 엄살 부리더니.”
“누가? 내가?”
“애송이가 걸음마 뗐다고 우쭐하긴.”
“크크큭. 이 형님을 갈구기엔 이안 너도 아직 애송이거든?”
전투를 끝낸 직후라기엔 가벼운 분위기.
하지만 부러 꾸며냈다는 것을 알리듯 공백 사이사이는 무거웠다.
아무리 버둥거려도 대기의 을씨년스러움을 어쩌진 못했으니까.
결국, 올리브가 침잠한 손길로 나무잔을 느리게 돌리며 목소리를 쥐어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