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35화 (35/214)

제35화

“퀘에투스?”

“어. 이대론 안 되겠어. 마력량을 대폭 늘려야지.”

“내가 말이다. 노상 하는 말이라 그만하고 싶지만…… 그거 얻기 꽤 까다로운 거 너도 알지? 아무 때고, 아무나 얻을 수 있는 영약이 아니다.”

“후훗.”

이안은 청사과가 놓인 손바닥을 사냥개의 주둥이로 가져갔다.

한입에 털어 넣는 녀석의 혀가 까끌까끌했다.

“요놈만 있으면 어려울 것도 없지.”

[크륵.]

이안은 금화 덩어리를 보듯 사냥개를 쓰다듬었다.

괜히 두 달간 사냥개에게 공을 들였겠는가.

퀘에투스를 얻을 수 있는 조건 중 하나라서 그랬다.

오롯, 지옥 사냥개만이 캘 수 있는 퀘에투스.

이 버섯은 ‘삭’에만 물질계에 모습을 드러내서 환상종으로 분류된다.

“귀견이야, 귀견.”

이안이 눈에다 양봉장을 차렸다.

고 모양새를 보다가 녹스는 사냥개의 등에 벌렁 드러누웠다.

“예쁘겠지. 무에 안 예쁠꼬. 이놈이 널 강하게 만들어 줄 터인데.”

“흐흐흐. 요 뭉툭한 꼬리마저 늠름하네.”

“하여튼 저 써먹지도 못할 콩깍지.”

“아이쿠. 위대하신 수호자님이 관심을 못 받아서 심통 났네.”

“헹!”

녹스의 콧방귀에 콧물이 한 방울 묻어 나왔다.

자신의 추태는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지 않겠는가.

민망한 모양이다.

슬쩍 몸을 옆으로 돌린 녹스가 콧물을 닦으며 물었다.

“크흠. 그 버섯이 왈라우 영역에 있다 하였지?”

“어.”

“에효효. 하필 그 지랄 맞은 곳에.”

녹스의 거한 한숨.

이를 노래 삼아 이안은 북쪽 구역의 서단으로 향했다.

발목까지 쌓인 눈길에도 어찌나 발걸음이 가볍던지.

날아온 것처럼 단숨에 목적지였다.

왈라우족이 사는 곳.

입꼬리를 올린 이안은 전방을 주시했다.

시야가 닿는 족족 가시나무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뾰족뾰족 위협적인 나무는 일종의 결계인 셈.

이는 곧 인간이 출입할 수 없는 구역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저곳 중앙에 퀘에투스가 있는데.’

막무가내로 들어간다고 버섯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철저한 준비만이 영약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길이니.

“일단 몸을 숨길 만한 장소를 찾자.”

말은 그랬지만 이안의 발걸음은 명확했다.

가시나무의 맞은편, 몇백 년은 됨직한 고목나무.

그 고목의 뒤편으로 간 이안은 차분하게 눈더미를 치웠다.

그러자 움푹 파인 구멍이 드러났다.

성인이 들어가도 불편하지 않은 적당한 크기.

“여기가 좋겠다.”

고목나무 구멍에 자리 잡은 이안은 한쪽 무릎을 굽혔다.

그 후 사냥개와 마주 보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금부턴 이 녀석이 매우 중요하다.

가시나무 너머는 인간의 출입을 불허하기에, 사냥개 홀로 임무를 해내야 하니까.

“코르키, 내가 저번에 말했지?”

[크륵.]

“너 혼자 가야 하지만, 그래도 걱정하지 마. 내가 길을 안내할 거야.”

복잡한 미궁으로 이루어진 왈라우족의 본거지.

그곳에서 헤매다 죽지 않으려면 반드시 안내자가 필요했다.

“잘 부탁해.”

[크륵. 크르륵.]

‘나만 믿어!’라는 것처럼 녀석이 콧잔등을 실룩거렸다.

듬직하게 눈을 빛내더니.

샤아악.

사냥개가 발톱으로 이안의 양쪽 눈을 긁었다.

통증도, 상처도 없었다.

녀석이 ‘오쿨루스의 눈’이란 기술을 시전했기 때문.

이제 사냥개와 이안은 시각을 공유하며 같은 것을 보게 되었다.

펄럭.

눈꺼풀이 감긴 이안을 에워싸고 녹스가 양 날개를 펼쳤다.

무방비 상태가 된 이안을 보호하려는 것.

감각 공유를 하면 자그마한 충격에도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염려되는 건 매한가지.

뒤이어 사냥개가 그의 무릎에 앞발을 올렸다.

혹여 문제는 없나 이안의 상태를 재차 확인하려는 거였다.

[녀석은 안전할 거다. 위대한 이 몸이 곁에 있으니. 그러니 네놈 걱정이나 해라.]

녹스의 뚱한 목소리에 사냥개는 스르륵 은신을 시전했다.

[캬앙.]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한 후.

사냥개는 퀘에투스를 구하려 힘찬 출발을 했다.

* * *

‘역시나 길이 복잡하네.’

이안은 사냥개의 시각을 통해 주변을 살폈다.

길을 헤아리기 힘든 완벽한 미로.

천만다행인 건, 이 미로에 관한 지도가 예언서에 적혀 있다는 거였다.

‘길은 이미 다 외웠지.’

지겹도록 복기해서 나무의 가시가 몇 개인지까지 다 알 정도다.

‘이대로 직진하다가 저 갈림길에서 왼쪽.’

[크륵.]

사냥개는 이안의 지시대로 빠르게 미로를 질주했다.

왼쪽으로 틀어서 오십 걸음.

오차는 없었고, 다시 오른쪽 길을 따라 스무 걸음을 갔다.

이대로…….

[크르륵!]

‘피 냄새……!’

냄새의 진원지는 11시 방향의 모퉁이 쪽이었다.

사냥개가 가야 하는 곳.

조심스레 모퉁이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자 마주한 광경은.

“ábλεύωĕo(죽어! 죽어!)”

캥거루처럼 생긴 소인 하나가 가시나무 창을 미친 듯이 휘두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창날에 갈기갈기 찢기고 있는 누군가.

그 누군가는 소인과 똑같은 외형이었다.

……탁한 동공.

숨이 끊긴 지도 오래된 것 같은데.

그런데도 소인은 난도질한 시체를 자르고 또 잘랐다.

‘동족의 시체를 저렇게까지……. 잔인하기로 유명한 왈라우족 답네.’

상체는 사람의 형태지만 하체가 캥거루인 ‘왈라우족.’

그들은 천적을 만나면, 제 동족을 서슴없이 먹잇감으로 바칠 만큼 잔악했다.

그게 형제든 자식이든 상관없었다.

오직 본인의 생존에만 관심이 있을 뿐.

하여 왈라우족은 절대로 인간과 결속을 맺지 않는다.

전투로 인해 소멸의 가능성이 있으니까.

인간만 보면 닥치는 대로 죽이는 이유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니 이안의 기운이 섞인 사냥개가 조심해야 하는 건 당연지사.

‘조용히 지나가자.’

[크르륵.]

사냥개는 왈라우를 지나쳐 더 깊숙이 안으로 진입했다.

슬슬 정찰병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영역의 중앙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발을 내디뎠다.

나비처럼 나아가다가, 사냥개의 걸음이 멈칫하고 말았다.

코앞에 있는 정찰병 하나.

“……!”

흉흉하게 생긴 왈라우가 사냥개 쪽으로 몸통을 홱 돌려서였다.

본능적으로 뭔가를 감지한 모양.

움찔한 사냥개는 민첩하게 앞발을 들고 몸을 가시나무에 딱 붙였다.

녀석의 발끝에 정찰병의 꼬리가 왔다 갔다 했다.

땅바닥에 부채꼴의 궤적을 남기는 움직임을 따라 사냥개의 발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끝내 감지 못한 정찰병은 다시 정면을 보았다.

‘후우.’

마력량 늘리려다 수명이 먼저 단축되겠다.

이안과 사냥개는 동시에 한숨을 쉬며 다시금 중앙으로 나아갔다.

서너 번의 정찰을 민첩하게 피했을 무렵.

가시나무 곳곳에 걸린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왈라우들의 주거지.

이안은 입구 초입에서 더 나아가지 않고 이곳저곳을 탐색했다.

먹고 자는 생활 공간인데도 등불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삭’인 상태까지 더해져 천막 씌워 놓은 것처럼 사위가 어두웠다.

완전한 칠흑.

‘코르키와 시야를 공유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안 보였겠는데?’

이안은 중얼거리며 주거지 정중앙을 응시했다.

이곳에서 빛을 뿜어내는 건 오로지 버섯뿐이었다.

여인의 주름치마처럼 생긴 퀘에투스.

오색이 뒤섞인 색감 탓인지 퀘에투스는 정말로 화사했다.

“저게 바로…….”

화려한 색감에 홀린 듯 이안은 버섯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 *

움찔움찔.

누가 잡아끄는 것처럼 나아가려는 의식을 이안은 꽉 붙들었다.

매혹적인 퀘에투스의 자태와 향.

무척 진한 감각을 선사했으나 저것은 진짜가 아닌 허상이었다.

호수에 비친 달 같은 거랄까.

‘진짜’는 에테르계와 물질계의 틈바구니에 존재한다.

그 틈을 가를 수 있는 건 오직 ‘중간자’라 불리는 지옥 사냥개뿐이고.

‘틈을 가르려면 허상부터 깨야 하지.’

그래야 진짜 퀘에투스를 획득할 수 있다.

이안은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사냥개의 앞발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너한테 맡기고, 시야 공유를 끊어야겠다.

[크륵?]

-퀘에투스가 소멸해 버리거든. 인간의 기척이 조금이라도 감지되면.

[크륵.]

-지금까지 수고 많았어. 나랑 왔던 길을 되짚어 올 수 있지?

[크르르륵.]

-그래. 이따 보자.

이안의 따스한 음색에 사냥개는 턱을 치켜들었다.

잘 해낼 테니 걱정하지 말란 몸짓이었다.

듬직한 녀석을 두고 이안은 종이를 찢듯 의식을 분리해 나갔다.

치직. 치지직.

한 겹 덧씌워졌던 눈꺼풀이 벗겨지는 것 같은 느낌.

그것이 사라지고 나자 사냥개는 혼자 남았다.

빛 한 점 없는 새까만 어둠 속에 덩그러니.

[캬앙.]

사냥개는 머리 두 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이안이 해 준 말들을 복기해 보려는 것이었다.

틈바구니에 있는 버섯을 캘 것.

그것을 입에 잘 물고 돌아올 것.

굉장히 단순한 임무라 그다지 어려울 게 없었다.

잽싸게 은신한 사냥개는 자신만만한 보폭으로 퀘에투스에게로 다가갔다.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버섯.

오색의 퀘에투스를 보며 ‘흥’ 콧방귀를 뀐 사냥개는 발톱을 세웠다.

이깟 것!

샤아악.

사냥개가 앞발을 휘두르자 퀘에투스는 깔끔하게 잘렸다.

바닥에 떨어진 허상의 버섯.

동시에 쩌저적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날카로운 울림은 허상이 갈라지며 나는 거였다.

버섯이 부서지자마자 쩌억 벌어지는 공간.

그곳에서 수백 개의 꽃이 뭉개진 것 같은 향기가 났다.

에테르계와 물질계의 틈바구니가 모습을 드러낸 것.

[캬아앙.]

으쓱한 사냥개는 그 틈으로 머리통을 디밀었다.

물에 뜬 기름처럼 이지러지는 공간에 은색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나무뿌리 부근에 ‘진짜 퀘에투스’가 소담히 자리했고.

<밑동까지 상하지 않게 뜯어야 해.>

이안의 말을 명심하며 사냥개는 앞발로 퀘에투스를 살살 캤다.

밑동을 잘라 냄과 동시에 버섯의 빛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완벽한 성공.

사냥개는 우쭐대며 퀘에투스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리고 은신하려다…….

[……크륵?]

당황하고 말았다.

별자리처럼 몸 전체가 발광했으니까.

머리통부터 꼬리까지 선을 따라 오직 자신만 휘황찬란하게.

어둠을 밝히는 거룩하고 영롱한 오색 빛.

그 빛은 거주지에 있는 왈라우의 관심을 단박에 끌어모으고 말았다.

“διάρρinvásorηξη!(침입자다!)”

왈라우가 외쳤다.

그를 필두로 고함을 쳐대며 달려드는 수십의 왈라우들.

그 뒤로 줄지은, 아롱아롱한 등불들이 족히 기백은 돼 보였다.

[캬우울.]

잠깐 당황했지만, 사냥개는 왔던 길을 재빠르게 되짚었다.

이안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그렇게 내달리는 사냥개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단순하고도 명쾌한 두 가지 생각뿐이었다.

퀘에투스를 뺏길 순 없다.

‘대단해. 진짜 멋지다. 잘했어.’란 칭찬을 이안에게 듣고 싶다.

명확하게 그 두 가지.

퍼억. 퍼버벅.

질풍 같은 사냥개의 동선을 따라 가시나무 창이 무수하게 꽂혔다.

꼬리를 스치고, 앞발을 스치고.

“#@%#%#%@!”

격분한 왈라우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악착같이 따라붙었다.

사냥개가 미친 듯이 쫓기던 그 시각.

[코르키가 조금 늦는구나. 네 예상대로라면 진즉 나타났어야 할 시간인데.]

오매불망 사냥개를 기다리던 녹스는 목을 길게 뺐다.

가시나무 너머는 결계로 인해 뵈는 게 없었다.

상황을 파악할 수 없으니 이안의 표정에도 근심이 어렸다.

“잘하고 있겠지?”

[그놈이 보기보다 똑똑해서 자알 해낼……. 어? 웬 흙먼지가 저리 요란하게…….]

녹스가 눈가를 좁히자, 이안도 눈을 가늘게 떴다.

검은 배경을 뒤덮으며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회색 흙먼지.

뭐지?

그 거대한 흙먼지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

“……가까워져?”

그제야 선명하게 보이는 광경에 이안은 말을 잃고 말았다.

해맑게 질주하며 오색으로 발광하는 사냥개.

녀석의 뒤를 쫓는 백이 넘는 왈라우들.

이들이 피워 내는 광대한 흙먼지 바다.

장관이었다.

“……빛이? 꺾인 버섯에서 빛이 난다고? 그런 말은 없었는데.”

당황한 이안의 머릿속이 멍해진 그때.

“βασ! λεύωinvásorβασ!(죽인다! 침입자를 죽인다!)”

험악한 가시나무 창들이 사냥개의 몸통을 스쳤다.

파르르 떨리는 창의 진동, 그와 함께 꼬리를 지지대 삼은 왈라우가 허공을 박찼다.

두어 번 회전하며 꼬리를 이쪽저쪽 흔들자마자.

스릉. 스르릉.

땅에 꽂힌 창들이 자아를 갖춘 것처럼 튀어 올라 사냥개를 겨눴다.

위험천만한 상황.

“이런!”

퍼뜩 정신을 차린 이안은 녹스에게 소리쳤다.

“녹스, 코르키 끌어당겨!”

다급한 목소리에 녹스가 날개를 늘려 사냥개를 잡아챘다.

촤아아아악!

그 즉시 이안도 지체하지 않고 이동 스크롤을 찢어발겼다.

그러자 은색 빛이 폭발하며 이안 일행을 꿀꺽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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