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48화 (48/214)

제48화

제1 연무장.

레브는 가만히 서서 팔찌를 문질렀다.

예전에 신동 소리 듣던 것이 무색하게 수련은 기복이 있었다.

억눌린 마력을 쥐어짜서 쓰던 7년간의 버릇, 이게 쉽사리 고쳐지지 않아서였다.

실상 남들보다 마력량이 많다고 한들 무한이란 의미는 아닌데…….

그래서 요즘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이안이 아이루스 상단 문제를 해결하는 걸 본 후론 더더욱 그랬다.

“후우.”

녀석은 무서울 정도로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고 있었다.

한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철저한 계산과 판단을 덧대면서.

그게 경이롭지 않다면 거짓일 것이다.

때론 부럽고. 때론 질투도 나고. 때론 욕심도 나니까.

“대등해지려면, 나도.”

촤아아악!

레브는 물의 채찍을 만든 뒤 세차게 허공에 내질렀다.

공기를 가르는 물의 파동.

기묘한 울림은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상흔을 남겼다.

마치 뱀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흔적처럼.

몇 번이고, 또 몇 번이고 같은 마력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다.

단계를 10으로 나눈다면 무조건 절반인 5.

딱 그쯤의 힘만을 채찍 한번 휘두르는 데에 사용했다.

그렇게 팔의 근육이 찢어질 것 같을 때까지 수련은 강행되었다.

“허어억.”

레브는 거친 숨을 쉬며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노력한 만큼 성과는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 만족스럽지 않다.

아마도 기준점이 높아서일 터.

“아직 멀었어.”

레브는 저를 다그치며 다시 수련을 이어 나가려 했다.

마력이 성성한 물의 채찍이 재차 굽이치던 때.

“엄격함은 나태해지지 않을 비결이나, 과하면 스스로를 해치는 독이 되는 법이지.”

채찍의 파공음에 실려 나직한 음색이 날아들었다.

그 탓에 레브는 물의 채찍이 흐물흐물해질 정도로 깜짝 놀랐다.

무얼 판단하기도 전에 머릿속에서 ‘가주님이다.’가 스쳐 갔으니까.

격한 반응.

어쩐지 아이가 귀여워서 뷔트시겐 가주는 슬며시 입가를 말아 올렸다.

“혹, 내가 수련을 방해한 것이냐?”

“아니, 아닙니다.”

손을 격하게 내저은 레브는 괜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제국에서 가장 강한 자가 자신의 수련을 지켜보고 있었다니…….

어설픈 몸부림을 다 봤을 것 같아 부끄러웠다.

‘이 아이가…… 아드리안의 남겨진 핏줄.’

볼이 발긋해진 레브를 대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주의 눈매가 깊어졌다.

아드리안, 전대 루하흐이며 그의 친우.

녀석과 굳게 맹세를 한 적이 있다.

어느 때든 도움이 필요하면 이해관계를 따지지 말고 돕자고.

그렇기에 아드리안이 손을 내밀면 언제든 그 손을 맞잡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한데…….

도움은커녕, 녀석에게 닥친 참변조차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드리안의 ‘수호검’이었던 자와 뜻하지 않게 조우하고 나서야.

‘…….’

가주는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상념을 접고 레브에게 말을 붙였다.

“기술에 담기는 마력량을 낮추는 수련을 하는 것이더냐?”

“아, 예.”

“흐음. 수련의 목적은 그것뿐이더냐.”

“예.”

“그렇단 말이지……. 난 또. 허상의 적이라도 둔 듯 채찍질이 하도 매섭길래 살상력을 높이려는 줄 알았다.”

“…….”

레브는 그 잠깐 지켜본 것으로 분석을 끝낸 가주 때문에 입이 벌어졌다.

역시 천외천이라 불리는 이는 남달랐다.

심층까지 꿰뚫어 보는 예리함을 지니고 있잖은가.

이 말인즉슨, 제 문제를 물어볼 가장 적절한 상대란 뜻이었다.

“가주님, 부탁이 있습니다.”

레브는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허리를 굽혀 예를 다했다.

“미리 선수를 치는 것이더냐?”

“예?”

“인사까지 받았으니 모른 척할 수 없어서 하는 말이다.”

“아, 그게 아니라…….”

“하하핫. 농이다, 농. 이안 그 녀석은 이럴 때 능글능글 넘어가던데.”

호탕하게 웃는 가주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유들유들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레브의 머릿속엔 이런 생각이 스쳤다.

세간에 알려진 가주님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고.

피를 뒤집어쓴 늑대라고 불리는 모습과는.

‘그래서 더 좋다.’

찰나를 스친 마음의 단편에 괜스레 멋쩍어지고 있는데, 가주가 재차 물었다.

“네 문제에 관한 것이라면 그전에 내 하나 묻지.”

“예.”

“어린 정령사들은 열 살까지 기초 교육을 반복한다. 그 연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그건 나쁜 버릇이 들지 않게 토대를 쌓기 위함입니다.”

“그렇지. 버릇이 굳어지면 고치기 쉽지 않으니. 그게 자의든 타의든.”

“…….”

“고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버릇이 생기면 더 최악이 될 테고.”

“…….”

가주는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긴 레브를 내려다보았다.

페르나로 인해 생긴 버릇.

그것을 잡으려다 또 다른 나쁜 버릇이 생길 가능성이 농후했다.

지금껏 했던 것처럼 혼자서 골몰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그러니 고민이 생기면 언제든 물어보렴. 오늘처럼 말이지.”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배움에 있어서 수용력이 높은 아이였다.

말귀도 쉬이 알아듣고.

“괜히 말이 길어졌구나. 익힘에 있어 말이 길 필욘 없지.”

떠먹여 주는 것보다 답을 찾아가도록 유도하는 것.

이 방식을 가주는 선호한다.

하지만 때론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시범이 더 나을 때가 있다.

“흐음. 어디 그럼…….”

시종 유들유들하던 가주의 기도가 서늘해졌다.

바람의 마력이 그를 감싸자, 가주는 바람 화살을 가볍게 쏘았다.

힘들이지 않는 동작과 달리 묵직한 파공음.

공기를 가른 화살은 그대로 땅에 꽂히더니 바람으로 흩어졌다.

“이것과.”

가주는 다시 한번 바람 화살을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다만 다른 점은 화살이 다섯 개라는 거였다.

바람 화살 다섯 개가 일제히 같은 속도로 허공을 누볐다.

“이것. 각각의 전체 마력량이 어떠했지?”

“하나의 화살에 든 마력량과 다섯 개의 총합에 든 마력량이 같았습니다.”

“이것처럼, 3의 마력량만 필요한 기술에 늘 10의 마력량이 운용된다면 그 10을 쪼개면 될 터.”

“아, 억누르지 말고 차라리 여러 개를 만들어보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지. 억누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니.”

“억누르는 것만이…….”

“최대치의 마력량 하에서 여럿으로 나누는 수련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익히게 되겠지. 하나에 필요한 마력량을.”

“아!”

***

집에 온 뒤로 노상 아침의 시작은 똑같다.

아버지와 레브, 그리고 올리브와 둘러앉아 식사하는 것.

“……푸흡.”

이안은 튀긴 식빵 조각이 들어간 포타주를 우물거리며 웃음을 삼켰다.

이게 다 레브 때문이다.

아버지 한 번, 포타주 한 번.

번갈아 보느라 담이 올 정도로 목을 바삐 움직이는 녀석 때문에.

그뿐일까.

표정은 또 어찌나 열렬한지.

마치 짝사랑하는 아가씨를 훔쳐보는 것 같았다.

발그레한 저 뺨을 문지르면 빨간 물감이 묻어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

‘본래도 아버지를 존경하던 녀석인데, 어젯밤 이후로 광신도가 되어버렸네.’

하는 꼴이 재밌지 않은가.

이안은 장난스러운 어조로 대화의 서두를 뗐다.

“레브, 혹시 요리가 맛없어?”

“어?”

“수프는 안 먹고 아버지만 애절하게 봐서 난 또.”

“……그런 적 없거든.”

이안을 잠깐 흘긴 레브는 쑤셔 넣다시피 포타주를 떠먹었다.

가주의 시선이 느껴져서 절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니. 들 수가 없었다.

“괜히 관심 집중시키지 말고 수프나 ㅊ……먹어.”

“매정하기가 아주-. 섭섭합니다, 레브 도련님.”

이안의 말투와 표정 모두 장난기가 걸려 있었다.

놀릴 건수를 잡은 모양이다.

한숨을 푹 쉰 레브는 결국 팔을 뻗어 이안의 팔뚝을 가격했다.

녀석과 만나고 점점 폭력적인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건 친구가 아니라 웬수다.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프다고 어찌나 엄살을 떠는지.

한 대 더 때릴까 고민하던 차, 이안의 유들유들함이 얼마쯤 걷혔다.

아무래도 진짜 본론은 다음에 올 말인가 보다.

“레브, 이제 길이 보이는 것 같아?”

“수련 말이야?”

“어. 그동안 답답해하더니 아버지랑 얘기 나눈 뒤론 괜찮아진 것 같아서. 새벽 수련이 막힘 없는 걸 보면.”

“길이 보이는 것 같아.”

“다행이네. 아버지 말마따나 정 안 되면 마력을 팍팍 써버려.”

“어째 가주님이 해준 말과 결이 다른데?”

“그게 그거지 뭘 그렇게 따져?”

“수련이면 모를까 전투라면, 그러다 마력 고갈로 위험에 노출돼.”

“거야 알지. 그런데 마력이 고갈되기 전에 적을 쓰러트리면 그만 아냐?”

“뭐?”

“훗. 압도하면 그뿐. 간단하잖아.”

‘강력한 기술로 적을 빠르게 쓰러트리는 거, 아주 쉽죠?’였다.

마냥 허무맹랑하지만은 않은 헛소리.

이에 대꾸하지 못한 레브는 눈꺼풀만 끔벅거렸다.

“레브 너니까 하는 말이야.”

“…….”

“페이라조 3성이라도 네 마력량은 그 등급을 훌쩍 웃도니까.”

단단한 말투.

레브는 이안이 이렇게 단언할 때마다 얼마쯤 신기했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확신이 곁들어 있었으니까.

대체 근거가 뭘까, 의문이 들어 골몰하는 잠깐의 틈.

“하하하핫.”

찰나를 비집고 뷔트시겐 가주가 화통하게 웃어 젖혔다.

어젯밤부터 느꼈지만 과묵하고 묵직해 보이던 가주는 웃음이 많았다.

생각보다 행동이 가볍고.

“이안 네 말이 맞구나.”

가주는 비프스테이크를 썰며 이안에게 동조했다.

“마력을 어떻게 쓰는지가 무에 중요할꼬. 적을 ‘압도’할 수 있다면.”

“전투에서 중요한 건 이기느냐 혹은 지냐니까요, 결국.”

“그러하지. 승과 패는 곧 생과 사의 다른 말이니.”

“예. 비겁하게 이기더라도 살아야 다음이 있는 거잖아요.”

“전투의 본질을 잘 알고 있구나.”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혀에 기름칠하는 방법은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그것도 아버지께서 장로님들을 상대할 때 곁눈질로 배운 겁니다.”

미끄덩한 이안이 눈꼬리를 접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여태 소외당하던 올리브가 끼어들었다.

“뭔지 모르지만 가주님 저도 가르쳐주세요.”

“하하하. 녀석. 그래, 올리브 넌 요즘 수면 치기를 한다지?”

“예. 물이 튀지 않게 폭발력을 한곳에 응집시켜야 하는데 상당히 힘들어요.”

“힘들어도 꾸준히 하려무나. 그 수련법은 발리올 가주가 지금까지도 하는 것이니.”

“……발리올 가주님께서요?”

수면 치기를 하는 건 마력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발밑의 대지를 쳐서 자신이 원하는 지점을 타격할 수 있느냐.

대지의 형상을 얼마큼 세밀하게 구현해낼 수 있느냐, 그것을 위한.

가주는 빵을 손톱보다 더 작게 떼어 식탁에 늘어놓았다.

“정밀도가 높아지면 이 작은 빵조차도 수백, 수천 개로 나누는 게 수월해질 터.”

“와우.”

“그때가 되면 발리올 가주 그놈보다 더 강해질 수 있을 게다.”

“그렇게 되면 가주님처럼 멋져지겠네요.”

올리브는 아버지를 별로 어려워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랬다.

긴장을 많이 했다고 해서 그게 상대가 어렵다, 와 연관되진 않는다.

긴장감조차 이틀째 되니까 훨훨 날아가 버렸고.

“아, 가주님. 고자질할 게 하나 있는데요. 맨날 이안이랑 레브가 방금처럼 말하거든요.”

“방금처럼?”

“예. 막 생사가 어떻고, 그런 말들요. 당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지들끼리 막.”

“흠. 내가 보기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닌 것 같구나.”

“아…….”

“혹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냐?”

“그냥…… 살고 싶은 건 당연한 거잖아요. 그래서 더 오래 살아 보려 수련하는 거고. 그거면 됐지, 비겁한 거 그런 거 뭐하러 따지나 싶어서요. 왜 고민하나 싶고.”

“……하하하하핫.”

올리브의 해맑은 답변에 가주는 허리까지 굽히며 파안대소했다.

뭔가를 얻은 울림이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든 가주가 즐거워하자, 올리브도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처럼 단순함은 곧 명확함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직시하고 있다는 거였고.

* * *

‘원하는 것.’

이안은 식탁에서 오갔던 풍경을 곱씹어 보았다.

특히 아버지가 올리브와 레브에게 고기를 나눠주던 모습을.

올리브는 잘도 덥석덥석 받아먹는데, 레브는 간간이 아버지의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마치 어떤 날의 기억을 더듬는 듯이.

“……흐음.”

상념을 걷은 이안은 나란히 걷고 있는 레브에게 눈길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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