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53화 (53/214)

제53화

“우어어어!”

제2 약제실에 모인 C반은 쉴 새 없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올리브가 착용한 건틀릿이 발광했기 때문이다.

어찌나 멋있고 삐까뻔쩍하는지.

“지이이인짜 죽인다.”

“이야, 꼭 카르디아가 쓰는 것 같은데?”

“그치? 스톨레 교수님이 쓰는 거랑 엄청 비슷해.”

“봐봐. 정령 보관석이 다섯 개나 있어. 다섯 개짜리는 저택 두 채 사는 가격이랑 맞먹지 않아?”

올리브의 주머니 사정으론 마련할 수 없는 건틀릿.

그 때문이리라.

자꾸 시선이 가는 한편, 내심 속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짜아식, 계 탔네. 계 탔어.”

한입으로 외치던 아이들이 호들갑 떨며 만지려고 하자, 올리브가 바로 제재를 가했다.

닿으면 건틀릿이 녹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허. 손때 타니까 만지지는 말고 눈으로만 구경하거라.”

“와아, 치사하다.”

올리브가 건틀릿을 숨기려 할수록 아이들은 두 눈을 번득거렸다.

오기가 발동한 눈빛이었다.

‘내가 저걸 꼭 만지고 만다!’라는.

의지를 불태우며 아이들은 올리브를 틈 없이 에워쌌다.

도망갈 구멍을 막은 뒤엔, 쉴 새 없이 건틀릿으로 손을 뻗었다.

워낙에 올리브가 철통 방어를 해서 모조리 실패하고 말았지만.

“캬캬캬. 너희들이 쪽수로 밀어붙인다고 내가 당할 것 같아? 택도 없지!”

기세가 오른 올리브의 외침 끄트머리.

“언제나 C반은 활달하군.”

딱 그쯤에서, 기드온 교수가 치유학 수업을 하려고 약제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느 때처럼 자애로웠다.

낙낙한 눈길과 사근사근한 말투는 덤이었고.

그 살가운 위선을 주렁주렁 달고서 기드온은 여유롭게 이안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아케랑코를 선물 받고부터 저런 식이다.

아무래도 선물의 효과가 예상보다 과한 것 같다.

“누차 말했을 터인데. 가르침을 주는 교수를 만나기 전, 바른 몸가짐으로 예를 다하는 건 필수라고.”

“예에.”

“매번 말해도 매번 잊어버리니 안타깝구나. 더욱 정진하거라.”

“안 까먹겠습니다, 교수님.”

아이들은 조언을 아끼지 않는 기드온을 싫어하지 않았다.

어째 하는 말마다 비꼬는 듯 아닌 듯 아슬아슬한데도 말이다.

자신들에게 이렇게 관심 가져주는 교수가 많지 않은 탓이었다.

‘그래도 기드온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 녀석들이 있긴 하네.’

아이들을 둘러보던 이안은 옅게 입꼬리를 휘었다.

레브와 올리브, 그리고 페이라조 2성이 된 열댓 명 정도?

녀석들은 기드온의 심층을 아주 얕게나마 들여다보게 된 것 같다.

표정이 마냥 밝지 않은 걸 보면.

“자, 오늘도 기초가 부족한 너희를 위한 수업을 시작하겠다. 집중하도록.”

* * *

“오늘 알아볼 것은 ‘레멘디움’이다. 정령이 아플 때 쓰는 유일한 치료제지.”

기드온은 수업하는 내내 이안을 한 번씩 흘끔댔다.

오죽하면 개인 수업 받는 것 같단 기분이 들까.

이안은 썩소를 날리고 싶은 걸 참으며 방긋방긋 웃었다.

성질 같아선 눈알을 확 파버리고 싶은데.

‘참자. 우호 관계가 됐다고 여겨선지 내 앞에선 말을 가리지 않으니까.’

기드온의 주절거림은 나름 들을 만했다.

차 선물 이후 두어 번 대화를 나눠보고 내린 결론이다.

개똥도 쓸모가 있다고, 교수라서 하는 말마다 의외의 정보가 들어가 있었으니까.

후일의 쓸모를 위해 이안은 최대한 표정 관리를 했다.

그의 억지웃음에 내적 친밀함이 팍팍 상승한 모양이다.

입꼬리를 한껏 올린 기드온이 수업을 이어갔다.

“유일인 까닭은, 치료제 자체가 물질계에 있는 것들 가운데 유일하게 에테르계의 성질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

“그것이 가능한 것은 치료제의 주요 재료인 ‘케르도스’란 꽃 때문이지. 에테르계의 마력배열로 이뤄졌으니까.”

애초부터 에테르계와 물질계의 마력배열은 완전히 달랐다.

하여 순수한 물질계의 것들은 정령에게 통하지 않았다.

정령이 아프면 문제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에테르계의 무언가가 필요하지만.

‘여신이 사는 그곳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인간은 없지.’

얻을 방도가 없으니, 정령이 아픈 건 난제가 되어버렸다.

물론 황실 주도의 끊임없는 연구로 금세 해법을 찾긴 했지만.

해법을 이토록 쉬이 찾아낼 수 있었던 건…….

이안의 머릿속 생각이 즉각 기드온의 육성으로 조립되어 내뱉어졌다.

“케르도스는 제국 어디든 흔히 피는 들꽃이라 쉽게 구할 수 있다. 이게 가장 큰 장점이지.”

아무리 흔하더라도 주요 생산지는 있다.

그 주요 생산지 열 곳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이어졌다. 지도와 곁들여서.

‘주요 생산지 중 여섯 곳이 살리카 영지라니.’

이안은 생산지를 면밀하게 살피다가 못마땅함에 눈썹을 내려트렸다.

주요 생산지가 살리카 영지라도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럼 언제 문제가 터지냐.

전쟁이 시작되고 살리카 가주가 뷔트시겐에 있는 생산지를 빼앗아가면서 난리가 난다.

꽃의 독점은 곧 치료제의 독점이었으니까.

이로 인해 약을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대개가 정령이 앓다가 소멸하는 걸 손 놓고 지켜봐야 했다.

가족이며 친구였던 존재를 무력하게 잃어야 하는 공포.

그것이 지배한 전쟁 후반의 분위기는 음울하다 못해 기괴했다.

‘승리의 추가 살리카로 기운 원인 중 하나였지.’

이안이 과거를 더듬는 것과 별개로 어느덧 수업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마무리하려는 듯, 기드온은 자신의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엔 ‘C반, 리아트리’란 글자가 새겨진 상자가 놓여있었다.

녹스 다섯은 들어갈 법한 크기.

“알다시피 과제는 이 상자에 케르도스를 가득 채집해 오는 것이다.”

케르도스가 널려있으니 과제를 수행하는 건 간단했다.

거저먹는 것에 가깝달까.

그런데도 C반의 분위기는 일제히 우글쭈글해졌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드온은 다음 말을 이어갔다.

“단, 들꽃을 채집하는 것은 세 살도 가능한 일이지. 하여 나는 너희들의 아름다운 경쟁을 북돋으려 한다. 그런 차원에서.”

“…….”

“이 과제를 1학년 공통 과제로 부여했다. 즉, 반 대항이란 것이지.”

기드온이 시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엇을 하든 제약은 없다. 과제를 진행하는 이틀 동안은. 그러나 장소는 그라나토스 초입으로 한정한다.”

“…….”

“그리고 과제 완료 시 점수를 받는 것 또한 이 상자를 ‘가득’ 채운 반에 한정할 것이다. 그 외에는 점수가 없으니 명심하도록.”

기드온의 헛소리가 참으로 길었다.

비죽이는 이안의 곁에서 녹스가 날개를 퍼덕거렸다.

[하! 저 음흉한 놈!]

화가 나는 만큼 날갯짓하는 횟수가 점점 짧고 거세졌다.

기드온의 의도를 아는 것이다.

상자를 채운 반만 점수를 준다는 것, 이건 두 가지 선택지를 주는 것이다.

협력으로 모든 반이 상생하느냐, 혹은 깽판으로 독식하느냐.

이 갈림길에서 A반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당연히…….

[저건 A반이 활개 치도록 내버려 두겠단 것 아니냐. 교수씩이나 돼서 부러 쌈박질을 조장하다니!]

-우리 스승님 화나셨네.

[교육자로서 용납할 수 없어 그런다. 무릇 과제란 학생들의 성취를 돕는 것이거늘.]

-그렇지. 클로에나 스톨레 교수님이 내주는 과제처럼.

[저자, 1학기 때도 저러했느냐?]

-어. 그래서 기드온이 준 과제를 할 때마다 번번이 C반만 죽어났지.

기드온이 교묘한 건 깽판의 명분을 주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경쟁.

교수가 과제의 성질을 못 박았으니 어떻겠는가.

1학기 땐, C반 아이들 대개가 과제를 받고 나면 성치 않았더랬다.

코뼈가 주저앉고, 이가 몇 개씩 나가고, 화상을 입고.

‘그 일로 클로에 교수님이 몇 번이나 항의하셨지. 씨알도 안 먹혔지만.’

<수업이건 과제건 모두 교수의 재량에 따른 것입니다.>

<이는 다른 교수가 함부로 간섭해선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유 권한의 명분을 들먹이며 기드온은 클로에 교수의 입을 봉쇄했다.

[그리 쥐어 터지는데 여즉 기드온에게 호감이 있다고?]

-과제 후엔 다친 애들을 치료해주며 기드온이 엄청 미안해하거든.

하도 위선을 떠는 통에 뒤탈도 없었다.

분란을 조장한 놈이 진짜 속내를 철저하게 감췄으니까.

‘내가 과제를 준 의도는 그게 아닌데…….’라면서.

대놓고 나쁜 놈보다 더 질 나쁜 음습함과 저열함을 가진 기드온.

이래서 이안은 기드온이 싫다.

“이만 수업을 마치겠다.”

“수고하셨습니다.”

“아, 너희가 채집한 케르도스로 치료제를 추출하는 것이 다음 수업 주제이다. 그러니 열심히 하도록.”

뒷말은 생략됐지만, 그간의 행적으로 보아 이 또한 함정이었다.

꽃을 확보하지 못하면 추출도 불가능하니까.

한마디로 패배한 반은 다음 과제서 점수고 뭐고 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C반의 성적이 꼴찌인 이유 하나가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

떫은 표정의 아이들이 약제실을 나가는 동안, 이안은 레브와 속닥거렸다.

“레브, 다른 반 상황은 어때 보여?”

“집에 가서 독기를 충전하고 왔는지 완전 흉흉하던데. 마치 너처럼.”

“너처럼은 아니고?”

“이젠 도발이 습관이네. 한번 진심으로 싸워볼까?”

“하하핫. 과격하긴. 무튼 애들 다치지 않게 잘 살펴야겠다.”

이안과 레브의 소곤거림.

사부작대는 두 사람의 쿵짝을 기드온이 먹이 낚는 솔개처럼 매섭게 주시했다.

그러다가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세게 찼다.

“츠읏.”

혓바닥 까지게 그러고도 속이 안 풀리는 모양이다.

결국, 기드온은 둘을 떼어놓으려고 이안을 크게 불렀다.

“아, 이안은 잠깐 남으렴.”

차단하고 싶은데 차단할 수 없는 상대.

진상의 부름에 이안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레브가 이안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힘내고. 나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누가 붙잡을세라 녀석은 쌩하니 떠나버렸다.

의리도 없다.

매정한 녀석이 발바닥에 불난 것처럼 떠나버린 직후.

“이안.”

만면에 살인 미소를 머금은 기드온이 이안에게 다가왔다.

마주 웃어주려니 속이 울렁거렸다.

“넌 과제 점수에 대해 걱정할 필요 없단다.”

“무슨 말씀이신지……?”

“2학년이 될 땐 너도 A반이 되어야지 않겠니?”

“물론입니다. A반이 돼서 훌륭하신 교수님의 개인 지도를 받고 싶습니다.”

“네 실력을 키워줄 수 있는 건 나뿐이지. 크음. 그러니 넌 아무 걱정하지 말아라. A반이 될 수 있게 특별히 신경 써 줄 터이니.”

그러니까 이안 혼자만 A 학점을 주겠다는 거였다.

이건 선물의 효과가 과하다 못해 터져버렸다.

[허허.]

어이없다는 녹스의 반응이 이안의 마음을 대변했다.

이런 자를 교수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안은 내색하지 않고, ‘결과’로 보답하겠다며 싹싹하게 굴었다.

대답이 흡족한 모양이다.

이안의 어깨를 두드리는 기드온의 손길이 가볍다 못해 둥둥 떴다.

그 손에서 악취가 풍겼다.

* * *

케르도스 채집을 위한 과제 기간은 이틀이다.

밤을 새우며 진행되는 터라 반드시 거점이 있어야 했다.

그라나토스 서쪽, A반이 모여 있는 작은 언덕.

연하든 진하든 빨간색 머리통들이 씩씩대며 움직거렸다.

“젠장! C반 것들 꼬라지 봤냐?”

“눈도 못 마주치던 것들이 턱을 들고 꼬라봐? 아우 진짜 콱!”

“야, 한번 제대로 밟아줘야지 않겠냐?”

“당연한 소리 지껄이지 마라.”

“지금도 주제를 모르고 기어오르는데 이대로 둘 순 없지. 가만두면 그것들이 우리 머리 꼭대기에서 놀 텐데.”

“젠장!”

그 꼴은 절대 보지 못하겠다는 듯, 살리카 하나가 얼굴을 구겼다.

솔직히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였다.

예전엔 C반을 두고 이런 상의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몇 명이 몰려있든 그냥 가서 기분이 풀릴 때까지 괴롭히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C반 서넛만 모여 있어도 주변을 살피게 된다.

혹시 이안이 있나 싶어서.

<네 자체로 경고가 될 거야. A반 것들에게.>

이안이 올리브를 괴롭히던 티무스를 걸레짝으로 만들며 한 말이었다.

그것이 점점 실체화되어 A반을 짓누르고 있었다.

꽤 실력이 있던 티무스가 병신이 되지 않았던가.

학업이 불가하고 보호가 필요한 상태이니 말 다 한 거다.

그래서 보다 못한 클로에 교수가 티무스 집에 편지를 보냈으나…….

티무스 집에서 답신은 오지 않았다.

더는 정령과 결속을 맺지 못하니 버림받은 것이다.

녀석과 같은 결말을 누구나 맞을 수 있다는 차가운 현실.

묘하게 긴장이 어린 공기를 타고 A반은 일제히 한쪽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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