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61화 (61/214)

제61화

장난스럽게 넘겼지만 루체의 말들은 이안의 정곡을 찌르는 거였다.

그래서일까.

에루리안으로 돌아와 전투학 수업을 들으면서도 이안은 집중하지 못했다.

<오롯 힘을 키우는 데만 집중해라. 자비를 구걸하지 않아도 될 만큼. 네놈이 생사를 결정할 수 있을 만큼.>

<그러나 네놈이 쥘 수 있는 힘의 한계를 알아라. 자만하거나 방심하지도 말고.>

<어설픈 힘은 독이며 흉기이니. 애송이 널 찌르게 두지 마라.>

루체의 염려는 이안이 지향하는 목표였다.

페이라조 3성이 됐다고 만족한 적 없고,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자신의 적은 천외천이라 불리는 살리카 가주였으니까.

현재로선 발바닥이 터지고 살덩이가 뭉그러지도록 노력해 닿으려 해도, 발끝조차 닿을 수 없는 상대.

그자가 살아있는 한 이안은 언제나 허기질 수밖에 없었다.

‘강해질 제일 좋은 방법이 보류됐으니 더 치열하게 노력하는 방법밖엔…….’

[왜 요절하시려고?]

이안의 속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녹스가 바로 말꼬리를 잡았다.

상념이 많아진 제자 놈의 상태를 알고 있었으니까.

-아니, 스승님. 어찌하여 아침부터 제자에게 악담을 퍼부으십니까?

[네 머릿속이야 빤해서 그런다. ‘피똥 싸게 노력할 거야!’ 이딴 작심이나 하고 있겠지.]

-그래서 안 도와줄 거야?

[헹. 여기서 더 노력했다간 내년쯤 네놈 관짝을 짜야 할 거다.]

-그러지 말고, 지금까지처럼만 도와줘. 올해 말까지 에르그 1성이 목표니까.

[에르그 1성?]

-어. 열다섯이면 그게 평균이니까.

[거야 태어날 때부터 마력핵을 가지고……. 끄응. 됐다. 말려서 뭐하누. 강해질 수 있다면 독극물이라도 처먹을 놈인데.]

-내가 에르그가 되면 우리 스승님 모습도 원래와 가까워질 텐데?

[원래?]

녹스가 커다란 눈을 끔벅거렸다.

이안의 성장과 자기 자신의 모습을 연결지어 보는 모양새였다.

머릿속으로 연거푸 비교해보다가 녹스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물론 그러면 좋겠지만…….’이 얼룩진 고갯짓.

잠깐 화색을 띠더니 이내 녹스가 얼굴을 굳히며 도리머리 쳤다.

가뜩이나 강해질 수 있다면 뭐든 하는 녀석이 바로 이안이다.

미친놈에게 ‘그럼 나야 좋지. 빨리 강해져서 내 모습을 찾을 수 있다면.’이란 말을 한다?

이건 활활 타는 불에 기름을 들이붓는 격이었다.

아니지.

죽으라고 절벽 위에서 떠미는 꼴이었다.

그럴 수 없어서 녹스는 격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굳이, 서둘 필요 없다. 이 모습 이대로도…….]

-그래도 스승님의 멋짐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몸, 기꺼이 불살라야지요.

[되, 되었다니까. 신경 쓸 것도 많은데 나, 나는 괘념치 말래도.]

커흠. 커흐흐흠.

녹스는 말까지 더듬으며 자꾸 헛기침해댔다.

예전 모습을 되찾고 싶은 열망과 그를 염려하는 마음의 충돌.

그 모양새가 퍽 귀여워서 그만.

“푸흡.”

이안의 웃음이 밖으로 터지고 말았다.

“이안 뷔트시겐, 어지간히도 내 수업이 재미있나 보네요.”

바람 새는 소리에 따라붙듯 누군가가 말을 건네왔다.

부드러운 음색이, 세월에도 닳지 않는 바위처럼 단단했다.

‘……아.’

단단한 음색의 주인은 스톨레 교수였다.

교수의 직시에 이안은 그제야 전투학 수업 중이었음을 상기했다.

하필.

‘마력 고갈을 다룰 때 딴생각을 하다니.’

수업의 주제를 잊고 있었던 이안은 눈썹머리를 문질렀다.

난감했다.

적어도 마력 고갈은 정령사로서 함부로 취급해선 안 되는 문제니까.

“죄송합니다.”

“솔직해서 좋군요. 사실, 이번 주제는 집중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학기 초에 고막이 닳도록 들었을 테니까요.”

“…….”

“자, 그럼 질문 하나를 하죠. 이안, 마력 고갈이 실제 전투에서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죽습니다. 무력해진 적에게 인정을 베풀 자는 없을 테니까요.”

“그렇습니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죠. 이 에루리안을 졸업한 여러분들이 ‘언제든’ 맞닥뜨릴 수 있는.”

스톨레 교수가 화려한 안대를 건조하게 매만졌다.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손길에는 염려가 담겨 있었다.

그건, 어느 때든 꺼질 수 있는 생에 대한 연민이었다.

“그렇기에 대련으로 미리 경험해보는 거랍니다. 살아남기 위해 말입니다.”

“…….”

“그럼, 이 끊임없는 예행 연습을 통해 무엇을 익힐 수 있을까요?”

“마력 고갈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술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방법과 고갈이 일어났을 시 대처하는 방법 등등 실전 감각을 익힐 수 있습니다.”

“그것이 끝인가요?”

“아닙니다. 궁극적으론 내면을 단련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쇳물에 담가 몇 번이나 내려치는 검과 비슷하죠. 대련을 통한 단련으로 ‘평정심’을 얻으면, 그게 곧 살아남음의 첫걸음이니까요.”

스톨레 교수는 끊임없이 강조했다.

오늘의 수업뿐 아니라 줄곧.

전투학 수업은 그저 단순한 아카데미의 한 과정이 아니라고.

앞으로 살아남기 위한 토대라고, 그는 늘 말해주었었다.

“그러나 일대일의 대련 방식으론 이를 알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

“해서 오늘부로, 항상 해오던 방식을 벗어나 일탈을 해 보려 합니다.”

“……?”

아이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그러자 시종 차분하던 스톨레 교수의 입매가 미려하게 올라갔다.

어째 얄궂어 보인달까.

“여러분은 앞으로 ‘5일간’, 1학년 전체가 참여하는 무한 대련을 치르게 될 겁니다.”

“억! 무한 대련?”

“우리가 무한 대련을 한다고?”

“A반이랑 B반만 하는 거 아니었어? 1학기 땐 걔들만 했잖아.”

아이들은 술렁거렸다.

전투학 수업의 꽃, 무한 대련.

무한 대련은 상대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싸우는 수련방식이다.

마력 고갈이 날 상황을 인위적으로 조장해 극한까지 몰아가는.

그래서 C반은 당연하게도 예외였다.

한계를 시험해볼 능력치조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평온하던 물웅덩이에 커다란 돌멩이가 던져진 상황.

아이들의 동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톨레 교수가 딱 자르듯 말했다.

“무한 대련을 위해 모든 수업은 휴강합니다.”

“…….”

“물론 오늘 수업도 여기서 끝이죠.”

“…….”

“후훗. 수업이 일찍 끝났는데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네요. 단 한 사람만 빼고.”

스톨레 교수의 지목에 당연하다는 듯이 모두가 한곳을 응시했다.

옅게 미소 짓고 있는 이안에게로였다.

한껏 무한 대련에 대한 흥미와 열의를 드러내고 있는 이안.

그로 인해 스톨레 교수의 미소가 진해졌다.

“아, 모두가 그렇겠지만 이안도 무한 대련이 처음이겠네요.”

“예.”

처음이지만, 무한 대련이 우스울 정도로 전투 경험은 많다.

지난 생의 8년이 그러했다.

그때는 진짜 모가지가 걸린 사활이라 마력이 있고 없고는 중요치 않았다.

살려면 이로 물어뜯든, 손톱으로 생살을 파내든.

하다못해 적의 눈에 흙이라도 뿌려 도망갈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런 시절을 지나왔는데 처음이든 뭐든 모의 대련쯤이야.

자신감 넘치는 이안에게 스톨레 교수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이안, 건투를 빌어주죠.”

“감사합니다.”

웬일로 객관성보다 마음을 드러낸 스톨레 교수가 수업의 끝을 고했다.

“그럼 각자 준비를 마치고 내일 호노르관에서 보도록 하죠.”

“…….”

으레 그렇듯 스톨레 교수가 대지를 쳐 홀연히 사라지는 연출을 보인 후.

“으아아악!”

아이들은 참았던 비명을 내지르며 널브러졌다.

“지옥의 무한 대련을 우리가?”

“와씨. 그걸 어떻게 하냐?”

“그러게. 1학기 때 그거 끝나고, B반 네댓 명이 한 달 동안 드러눕지 않았냐?”

“그것들도 못 버틴 것을. 아씨.”

“그래도 우리는 중앙보다 낫지. 밥도 주고 잠도 재워주니까.”

“하긴. 거기보다야.”

휴식과 밥, 그리고 잠.

이 세 가지는 에루리안 무한 대련의 특징이다.

엄밀히 따져 이것이 중앙 아카데미와 가장 다른 점이었다.

거긴 밤이나 낮이나 일주일 동안 개싸움을 하니까.

그들을 떠올린 아이들은 오싹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 * *

지옥의 무한 대련을 견디려면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먼저 자신을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유황불에 발이라도 담가볼 수 있을 테니까.

“…….”

C반은 눈을 감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력 회로를 돌렸다.

일명 ‘관조를 위한 명상의 시간.’

명상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자신의 마력을 들여다보며 현재의 기량을 가늠해보는 것.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

끊임없이 되물으며 내면을 단단히 다지려는 것이다.

이는 무한 대련을 견디는 초석이 될 터.

“잘한다.”

“그러게. 이젠 마력 회로를 돌리는 시간이 많이 늘었네, 다들.”

아이들과 몇 걸음 떨어진 채로 그들을 지켜보는 이안과 레브.

두 사람은 감독관을 자처하며 줄곧 서 있었다.

혹여 모를 불상사, 마력 회로가 꼬일지도 모를 사태를 대비하려는 것이다.

“흐음.”

이안은 다시금 아이들이 내뿜는 마력의 흐름을 찬찬히 살폈다.

마력이 전신을 매끄럽게 유영하고 있었다.

능숙하게 해내는 모습은 확실히 처음 명상 수련을 했을 때와는 달랐다.

그땐, 마력 회로를 30분 이상 돌리는 걸 꽤 어려워했었는데.

체계적인 수련을 꾸준히 받아본 적 없어 더 그랬을 것이다.

C반뿐 아니라 에루리안에 온 학생들 대개가 비슷한 경우였다.

가문에서 받는 수련에서 늦되니까 배제되어 버린.

그러니 뭘 해보고 싶어도 엄두를 내어봤으랴.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다 에루리안으로 떠밀려 온 게 열다섯.

이 나이쯤 되면 가지고 있던 자질도 시들다 못해 죽어버린다.

‘하지만 녀석들은 아직.’

시들지 않았다. 헤르세의 환희를 먹은 덕에.

이대로 꾸준히 수련한다면 말라가던 자질을 다시금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이안의 입가에선 내도록 흐뭇함이 가시질 않았다.

“레브, 내일 전투학 수업이 기대되지 않아?”

“어. 나도 예감이 좋아.”

“오, 나보다 더 까칠하던 감독관께서 웬일로 덕담을?”

“나도 칭찬할 땐 하거든? 여하튼, 질 땐 지더라도 맥없이 지진 않을 것 같다.”

“뻔한 소리를. 내가 스승인 이상 당연하지.”

“오늘도 이렇게 잘난 척의 총량을 채워가네.”

“총량?”

“있어, 그런 게. 하루에 잰 척 열 번은 떨어야 이안이다, 뭐 그런 거.”

“에이. 열 번은 너무 적다. 스무 번쯤은 돼야지.”

“아예 백 번쯤으로 하지그래?”

레브의 타박이 길어질수록 이안의 웃음도 꼬리가 길어졌다.

하하하하핫.

몸통까지 떨어대며 파안대소하는 이안.

녀석은 참 사소한 것에 잘 웃는다.

그런 감상이 레브의 머리통을 스치자마자였다.

찰나의 스침이 무색하게.

이안이 웃었던 적 없었던 것처럼 갑작스레 표정을 굳혔다.

공간을 장악하며 침투하는 낯선 기운이 살갗을 찔러왔기 때문이었다.

“……?!”

빙하 그 자체인 것 같은 시린 마력의 파장.

엘다 나무 우거진 곳에서 흘러나오는 강대한 기운은 거침없었다.

어찌나 노골적인지.

티를 팍팍 내며 퍼지는 통에 모두가 그 기운을 알아챌 정도였다.

기운에 압도된 아이들이 침을 꿀떡 삼키자, 레브의 미간이 구겨졌다.

“이 정도 마력이면…….”

“장로급인데…….”

“기척을 숨기지 않고 도리어 티를 내는 게 영.”

“그러게. 숨기는 것보다 더 거슬린다. 의도가 명확치 않으니.”

이안의 눈썹머리가 내려감과 동시에 아이들이 따닥따닥 서로에게 붙었다.

추위를 피하려고 모여든 펭귄무리 같았다.

긴장으로 얼룩진 분위기 속에 이안은 느릿하게 걸음을 뗐다.

걱정을 매단 아이들에게 괜찮단 눈짓을 보낸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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