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하여튼 C-반 주제에 나댈 때부터 알아봤다.”
레브는 물론 이안과 아이들의 뾰족한 눈빛이 두 반에게 꽂혔다.
C반을 에워싸듯 두르고선 결계 안을 쳐다보고 있는 A반과 B반.
저 지랄 맞은 새끼들이 대개가 고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제에 안 맞는 짓을 하니까 저 꼴 나지.”
“천벌이다, 천벌.”
“따끔한 맛을 보고 나면 좀 덜 나댈려나?”
사람이 죽어가는데 개지랄들을 떨고 있다.
엑사마티오로 사람을 죽이던 살리카 가주를 똑 닮아선.
인간의 껍데기를 쓰고 있다고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나.
살리카들은 죄 저 모양이다.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것들!
역겹고 참을 수가 없었다.
“꺼져, 이 개새끼들아!”
이안은 힘껏 마력을 모아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키이이이잉.
이안의 분노에 여태 이안의 발치에 엎드리고 있던 사냥개가 울부짖었다.
[아우우!]
북풍한설 같은 찬 바람에 실린 하울링.
이는 대기를 찢는 파동이 되어 호노르관 전체를 휘돌았다.
“으읏.”
망할 새끼들이 귀를 막으며 비틀거렸다.
그리고 몇몇은 귓구멍이든 콧구멍이든 피를 쏟아냈다.
그 꼴을 하고도 원망을 담아 째려보는 꼴이라니.
남의 고통에는 무덤덤한 것들이 제 고통에는 참으로 민감했다.
우스워서 절로 비소가 새어 나왔다.
그 웃음이 바람에 녹아들어 A반을 후벼 파던 그 순간.
“커어헉.”
숨이 꼴딱 넘어가는 소리가 이안의 신경을 다시금 잡아챘다.
버러지들에게 관심을 끈 이안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
일순, 몽롱해져 가는 올리브와 눈이 마주쳤다.
몸을 뒤틀던 움직임이 거의 멈춰가고 있는 상태였다.
……한계였다.
손톱이 파고들 만큼 주먹을 말아쥔 이안은 녹스에게 다급히 물었다.
-결계 해제는?
[그게…… 술식이 완전히 꼬여버린 것 같다.]
-꼬이다니?
[하아. 스톨레의 술식은 월등하다. 여기에 실력 차가 나는 새로운 술식이 비집고 들어오면서…….]
-그래서 얼마나 걸려?
[……몇 시간은 걸린다.]
-몇 시간?
[원래라면 며칠 걸린다. 이 시점에 자랑질하고 싶지 않지만, 나라서 몇 시간인 게다.]
-…….
[게다가 술식을 잘못 분리하면 저주가 증폭돼서 충돌로 폭사해버린다.]
-……폭사.
[후우. 방도가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마. 이대로 포기할 순 없으니.]
녹스는 조급함을 누르며 결계를 재차 살폈다.
결계를 두른 빼곡한 고어와 수식을 보고 또 봐도 너무 엉켜있었다.
꼬인 것을 사르르 풀 하나를 찾지 못한 녹스의 날개가 마구 떨렸다.
그걸 보며 이안은 입술을 악다물었다.
녹스라면 교수들이 오기 전에 결계를 해제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수호자는 모든 술식을 이해하고 있는 자니까.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녹스는.’
자신이 가진 힘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순전히 결속자인 이안 그의 등급이 낮기 때문이었다.
또다시 제 곁에 있는 사람을 지키지 못하고 잃을 수도 있는 상황.
아니. 이대로면 분명 잃게 될 것이다.
삐이이-
뇌수를 파고드는 이명 속에 이안은 동공이 탁해진 올리브와 제 손을 번갈아 보았다.
착시인지, 실제인지.
온통 시뻘건 핏물에 절어진 손이 보였다.
버둥거려도 이 꼴이다.
무엇에 낙관하고, 무엇에 안도했던가.
<어중간한 힘은 널 찌르고 말 것이다.>
빛의 정령 루체가 한 말이 이안을 깊숙이 찔러왔다.
현재와 지난 생이 뒤섞이며 뱅글뱅글 도는 시야 속에 문득.
‘……아!’
손목에 새겨진 이빨 모양의 문양이 이안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듀리크의 맹약.
‘……로르, 그 녀석이라면.’
저주 술식의 반동을 무시한 채 결계를 깰 수 있을 것이다.
최상급 암흑 정령이니까.
저주 자체를 무효화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개체니 말이다.
다만.
‘맹약은 결속이 아니니.’
부르고 싶다고 아무 때나 부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게 문제였다.
하지만.
이안은 단 하나의 예외를 혀끝에서 굴려보았다.
맹약자가 생명의 위험에 처했을 때.
까드득.
지체하지 않고 이안은 문양이 있는 자신의 손목 살점을 물어뜯었다.
핏줄까지 뜯기며 뼈가 드러나자 피가 줄줄줄 아래로 쏟아졌다.
금세 바닥에 고인 피 웅덩이.
“이안!”
웅덩이로 쉼 없이 떨어지는 핏물에 레브와 아이들이 놀라 악을 질렀다.
머리 울린다, 이것들아.
이안은 입꼬리를 올려 괜찮다고 말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강제 소환의 반동이 예상보다 컸다.
“크읏!”
내장을 진탕 휘저으며 이안의 목구멍으로 핏물이 왈칵 쏟아졌다.
입술 새를 비집고 나와 목줄기를 타고 검붉은 피가 철철철 흘렀다.
그와 동시에.
“이아아아안!”
로르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거대한 소의 형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호노르관을 뒤덮는 존재감.
거구의 체격뿐 아니라 날것으로 드러낸 카르디아의 기운은 장대했다.
하여 아이들 대개가 견디지 못하고 기절해 버린 가운데.
“대체 뭔 일을 당했길래 강제 소환이?”
로르는 피칠갑을 한 이안을 보며 콧김을 내뿜었다.
녀석의 꼬라지와 결계, 분노가 어린 녹스의 기색.
눈짐작만으로도 대강 알만했다.
변을 당한 게 아니라 필요해서 부른 거였다.
자신이 가진 힘을 넘어선 것을 부르면 소환 도중 으깨질 수도 있는데.
“강제 소환이라니. 이런 미친놈!”
첫인상대로 이안 이놈은 곱게 정신줄 놓은 또라이였다.
“네놈이 언젠가 일낼 줄 알았다.”
“크읏. 로르…… 저 결계 좀…….”
“결계? 고작 저딴 결계 때문에 목숨을 걸어?”
“목숨을…… 걸긴.”
“흥. 하는 꼴을 보니 오래 살긴 글러먹었다.”
“악담은.”
“연약한 인간 주제에 지나치게 겁이 없으니. 무엇이 네 두려움까지 잡아먹어 버렸을꼬?”
로르의 음색은 화가 난 것도 같고, 질책하는 것도 같았다.
모르겠다.
어지럼증에 이미 시야가 뿌예서 뵈는 게 없었으니까.
“입 놀릴…… 시간에…… 어서…….”
“에잇. 나중에 내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기다?”
로르는 강매하듯 못을 박았다.
그러고는 감정을 실어 머리통으로 결계를 들이박았다.
콰앙.
힘을 실은 일격에 결계가 버티지 못하고 금이 갔다.
“크읏.”
덩달아 이안도 피를 왈칵 쏟아냈다.
불러낸 카르디아가 힘을 쓰니 대가가 돌아오는 것이다.
이럴 때만 공평했다.
세상만사 모든 것이 불공평한 것 투성이인데.
이렇듯 대가를 받아낼 때만 정확한 셈을 요구하고 기어이 받아낸다.
“참 엿…… 같지.”
쾅. 콰아아왕.
로르가 연거푸 내려칠 때마다 이안은 피를 쏟아냈다.
그 핏값으로 쩌거걱 결계가 부서지며 힘을 잃었다.
깨진 파편이 흩날리며 달빛을 받자 흡사 반딧불처럼 반짝거렸다.
‘됐……다.’
이안은 다시금 검붉은 피를 토해내며 꼬꾸라져 버렸다.
암전이었다.
흡사 죽음과도 같은 평온함이 그를 창백하게 끌어안았다.
* * *
질척질척.
끈적하고 비릿한 액체가 이안에게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대체 뭐지?
알 수 없는 불쾌감에 그것을 털어내려 이안은 몸을 마구 뒤틀었다.
벗어나려 애쓸수록 제 밑에 깔린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검붉은 덩어리.
마치 한 필의 붉은 비단 같던 그것들이 강제로 뜯기자 드러난 건…….
“아버지?”
시체였다.
불에 타고 짓이겨져 살덩이가 전부 녹아내려 버린 시체.
“…….”
숨 쉬는 것마저 잊어버린 이안은 핏물에 절은 손을 마구 허우적거렸다.
“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른 목구멍이 갈라져 비릿한 쇠 냄새가 났지만 무슨 대수랴.
오롯하게 머릿속을 채운 집념이라곤.
안 돼!
아버지를 저대로 둬선 안 돼!
이대로 저주에 바싹 마른 채 불에 타, 흔적조차 남지 않게 해선 안 돼!
오직 그 일념만으로 이안은 발걸음을 떼려 몸부림쳤다.
그런데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었다.
뒤엉킨 시체들이 그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으니까.
제길. 제길. 제길!
어떻게든 벗어나려 발악하며 애쓰고 또 애썼다.
그러다 보니 바닥을 할퀴던 양손의 살점이 헤지며 너덜거렸다.
[이안, 이안!]
그의 움직임을 만류하려는 듯, 시체 더미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이 이안을 잡아챘다.
작고 말랑한 손.
어딘가 모르게 근심이 어린 것 같은 노르스름한 그 손이 저를 붙들었다.
[정신 차리거라. 한동안 잠잠하더니 어째 또 눈을 긁누. 츠읏.]
“…….”
[검은 소, 고것 좀 소환했다고 이리 맥을 못 춰서야.]
“…….”
[이래서 내 제자라 할 수 있겠느냐? 핏기없이 하찮게 누워있지 말고……. 어이, 사냥개. 네놈이 아무리 작아도 아픈 놈을 그리 누르면 안 된단 말이다.]
타박에 진하게 녹아있는 염려.
끊임없이 이어지는 말소리가 시뻘건 공간에 그득 채워졌다.
재잘재잘.
떨어지는 파장이 그를 부르는 것 같아 이안은 고개를 짓쳐 들었다.
즉답하듯 그를 끌어당기는 말랑한 아귀힘.
그다지 거센 악력은 아니었으나 시큼한 공간에 균열을 일으켰다.
거미줄 같은 틈바구니로 쏟아지는 오색 빛줄기.
“……으윽.”
으깨지는 것 같은 안압에 이안은 눈을 번쩍 떴다.
들어 올린 눈꺼풀 새를 파고드는 강렬한 빛.
그것이 무방비한 틈새를 비집으며 쑤셔대자 안면 전체가 빠개지는 것 같았다.
한계치를 넘긴 고통은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몽롱하게 만든다.
그래서 상아색 천장만 멍하니 보고 있는 사이.
[에고. 이놈, 이제 일어났네. 몇 시간이나 정신 못 차리더니.]
이안이 깨어난 것을 알아챈 녹스가 바싹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비정상적으로 큰 눈, 시원스레 들린 들창코, 동글동글한 몸태.
지나치게 자유로운 외양이 혼몽과 현실의 경계를 갈랐다.
이안은 버석버석 마른 입술을 축이며 말문을 열었다.
“여기가…….”
[치료실이다. 너뿐 아니라 결계에 갇혔던 애들까지 전부 여기 있다.]
“다들…… 무사해?”
[남을 염려할 때가 아니다. 정작 골로 갈 뻔한 것은 너였으니.]
“수업은……?”
[아, 전투학 수업은 중지되었다. 문제가 생긴 터라 교수들끼리 또 시끄럽더구나.]
녹스가 작고 말랑한 손을 이안의 이마로 가져갔다.
미열이 있는지 확인하고 땀까지 닦아주더니, 다시금 녀석이 종알거렸다.
[그리고 레브는 좀 전에 사냥개를 시켜 쫓아냈다. 몇 시간째 네 옆에 붙어서 치유한답시고 비실대는 꼴이 영 볼썽사나워서.]
“잘…… 했어. 녀석도 쉬어야지.”
[골치 아팠던 건 뷔트시겐이다. 긴급 통신을 수십 차례나 날리는 통에 아주. 그뿐인 줄 아누? 칼브란이 당장 오겠다는 걸 말리느라 내가……. 하아.]
어쩐지 불안을 감추려는 수다스러움이었다.
결속자가 피범벅이 되어 기절했으니 그럴밖에.
녹스를 안심시키려 이안은 녀석의 등을 토닥거렸다.
-아이고, 우리 스승님. 뒷수습하느라 통통한 뱃살이 홀쭉해져 버렸네.
[내가 너 때문에 늙는다, 늙어.]
-내가 말했잖아. 본래 제자와 자식은 그런 거야. 속 썩이라고 있는 거지.
[혓바닥이 길어진 걸 보니 살만한가 보네.]
녹스의 비꼼에 미소로 답한 이안은 상체를 일으켰다.
욱신.
코뿔소 떼에 밟힌 것처럼 작열통이 들끓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식은땀이 줄줄 흘렀지만 이안은 침상에서 일어섰다.
제 눈으로 아이들이 무사한지 확인해야 했다.
고통을 무시한 채 이안은 비척비척 옆 침대로 다가갔다.
……올리브가 누워있었다.
다소 창백한 안색이긴 해도 녀석의 숨소리는 안정적이었다.
“다행……이다.”
이안은 결계 안에 갇혔던 다른 아이들의 상태도 꼼꼼히 확인했다.
전부 괜찮은지 확인한 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는 치료실을 나와 곧장 호노르관으로 향했다.
표정 자체가 배제된 얼굴.
아예 감정을 도려내 버린 것 같은 무기질적인 냄새가 이안에게선 물씬 풍겼다.
서늘하다, 그런 수식으론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이에 녹스는 말을 보태지 않고 재빨리 이안을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