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67화 (67/214)

제67화

결계를 건드린 쥐새끼를 찾아내기 위해 다시 찾은 호노르관.

“고작 몇 시간 만에 마력의 흔적을 이만큼 지우다니.”

쥐새끼의 잽싼 행태에 이안은 비소를 머금었다.

결계를 변형시킨 마력.

그 흐름만 읽어내도 대충 누구 것인지 가려낼 수 있다.

정령사마다 마력의 배열이 달라 고유의 파장을 지니기에.

한데 남겨진 흔적이 너무나 희미했다.

거의 추적이 불가능한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못 알아낼까.

“선 읽기를 해야겠어.”

[호오. 선 읽기? 뷔트시겐의 고유 기술?]

“이것 때문에 우리 일족이 ’추적자‘로 유명하지.”

[허긴. 마력의 선 하나만 읽어도 거기서 시전자를 알아낼 수 있으니, 그냥 사기다.]

“그 덕을 오늘 보네.”

스스슷.

마력을 눈에 집중하자 이안의 동공 위로 어떤 문양이 나타났다.

금빛 늑대였다.

늑대는 당장이라도 설원을 내달릴 것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흐음.”

이안은 아직 흩어지지 않은 마력의 선을 낱낱이 복원해 나갔다.

집요하다 못해 섬뜩했다.

감정이 고스란히 읽히자 지켜보고 있던 녹스가 여과 없이 물었다.

[범인을 아는 모양샌데, 누구라 생각하누?]

-멜러니 폰투스.

[식인 꽃? 꽤나 단정적이구나.]

-틀림없으니까.

[단정은 시야를 좁아지게 만들 수 있다. 하나 궁금하군. 네놈이 그리 단정 짓는 이유가.]

-인면수심.

[인면수심?]

-자신의 목적을 위해선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잔인함. 그거 아무나 갖는 거 아니니까.

[내 보기에도 그것의 기질이 보통은 넘었다.]

보통?

폰투스의 실체를 알면, ‘보통’이 얼마나 얌전한 단어 선택이었는지 깨닫게 될 거다.

그 여자의 목적은 만인의 우위에 서는 것.

이를 위해 지난 생에도 가족을 자신의 손으로 무참히 도륙했었다.

오로지 살리카 가주의 눈에 들기 위해서 말이다.

가주의 눈에 든 이후로 자행한 악행은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였고.

‘가장 큰 피해자가 뷔트시겐이었지.’

이안이 상념에 잠긴 사이 녹스가 오동통한 팔로 턱을 괴었다.

[한데 말이다, 이안. 평소엔 그것이 뒷공작만 하지 않았누.]

-그랬지.

[음습하게 사람을 조정하다가 요번엔 전면에 나섰다. 궁지에 물린 쥐처럼.]

-나 때문에 몇 번 타격을 입었으니까. 입지가 흔들린다고 여긴 거겠지.

[꼬리에 불 좀 붙었다고 호들갑을 떤다, 라.]

-저쪽 사정이 어떻든 이건, 나한테 보내는 경고야. 나대지 말란.

[목숨줄 아까우면 거슬리지 말란 그런 거? 하! 건방지긴.]

녹스가 콧방귀를 흥흥 뀌어댔다.

노기 어린 콧김을 정통으로 맞으며 이안은 완전히 복원된 마력의 선을 읽었다.

감지한 선은 총 세 개.

폰투스, 페이라조 3성 하나, 그리고 카르디아 1성 하나.

“역시 단독 행동이 아니었군.”

애초 엑사마티오란 저주 술식 자체가 그랬다.

에르그 3성 이상이 되어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술식이다.

그러니 폰투스로선 카르디아와 협력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선 읽기를 안 해도 누구일지 예측 가능한 카르디아는 일단 제쳐두고.

‘이것.’

이안은 유독 흐릿한 3성의 선을 꼼꼼하게 탐색했다.

[흠. 실행범은 이놈이구나.]

맥락을 파악한 녹스의 확신에 이안은 고개를 까닥거렸다.

짓이겨진 곤충의 내장과 엇비슷한 빨강, 이 옅은 파장을 본 적 있다.

그것도 여러 번.

‘수업 첫날부터 자꾸 결계를 만져대던 그놈.’

눈이 마주치자 후다닥 도망간 폰투스의 친위대 중 하나.

확신을 얻은 이안은 어슬렁어슬렁 호노르관을 빠져나갔다.

그가 떠나고 난 뒤.

스스슷.

기다렸다는 듯이, 스톨레가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쩐지 이안의 잔상을 쫓는 눈길이 상당히 냉랭했다.

표정도 헤아릴 수 없이 묘했고.

* * *

A반 기숙사인 글록시아관.

이안은 불빛 한점 없는 기숙사를 무감하게 응시했다.

얼핏 잔잔해 보여 목적을 가늠키 어렵게 만드는 시선이었다.

그만큼, 기색 또한 고요한 수면처럼 가라앉아있었다.

후우우웅.

그러나 이와 대비되게, 이안의 전신에서 뜯겨 나오듯 부는 바람은 혹한처럼 시렸다.

그 바람이 글록시아관을 노도와 같은 해일처럼 뒤덮었다.

와장창.

봐주는 법 없는 파동에 글록시아관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모조리 박살 났다.

예고 없는 날벼락.

“으아아아악!”

이에 자고 있던 A반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A반은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고 속속 깨진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안 뷔트시겐?”

앞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이안.

그를 보고선 다들 ‘쟤가 왜 여기 와서 깽판을?’이라는 의구심을 내비쳤다.

물론 의문보다는 불쾌감과 짜증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아무리 뷔트시겐이라 한들.

이안은 버러지들이 속한 C반이고, 자신들은 월등한 A반이었으니까.

“대체 뭔데 또 행패를…….”

2층의 누군가가 용감하게 입을 뗐다.

하지만 누군가의 항의는 단 1할도 이안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4층 오른쪽에서 세 번째 창문.

오로지 그곳에만, 이안이 관심을 집중하고 있어서였다.

저벅저벅.

이안은 바람계단을 이용해 4층에 당도했다.

‘4층’은 폰투스의 친위대들만 사용하는 공간이다.

그중 세 번째 방이 그의 목적지였다.

이안은 깨진 유리를 지근지근 밟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폰투스의 사주를 받은 멍청한 페이라조가 있는 곳이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갑작스러운 이안의 등장에 인상을 구긴 남학생이 고함을 질렀다.

목청은 컸지만, 남학생의 눈은 이제 막 졸음기가 가시고 있었다.

“머론 파토스.”

“아무리 직계인 너라도 이런 식의 무단 침입은 징계감인 거 몰라?”

“개새끼가 개새끼스럽네.”

“뭐?”

“사람 죽일 뻔한 새끼가 잠을 처자? 엿 같이 달게?”

“너야말로 무슨 개소릴 지껄이…….”

퍼억.

파토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 이안은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다.

마력까지 실은 공격은 매서웠다.

“꾸억!”

이에 제대로 인중을 가격당한 파토스가 혀를 씹으며 돼지 멱따는 소릴 내질렀다.

요란스러운 만큼 제대로 공격이 먹힌 모양이다.

입술 새로 피가 줄줄 새어 나오는 걸 보면.

혀 좀 씹은 게 퍽 억울했는지 입을 틀어막으며 파토스가 꽥꽥댔다.

“이런 미췬 새끼!”

“보채지 마. 봐줄 생각 없으니까.”

“죄 없는 날 핍박하면…….”

“하! 죄가 없다?”

나불거리는 파토스의 주둥이를 이안은 채자 후려쳐버렸다.

나쁜 피의 종족 특성이었다.

누구보다 뻔뻔하고 놀라우리만치 당당한 거.

“좀 눈치껏 알아 처먹어라. 네가 주둥이를 놀릴 때마다, 내 자비심이 바닥나고 있다는 걸.”

“크윽.”

“그러니까 아가리 닫아. 쉽게 죽이기 싫으니까.”

이안은 사정없이 파토스의 빨간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벗어나려 반항하는 놈이 손등을 할퀴건 말건.

텅. 터엉.

깨진 유리창에 문대진 놈의 등허리가 찢기건 말건.

타아앗.

이안은 기숙사 앞마당 쪽으로 파토스를 내던져버렸다.

“우왁.”

대리석 바닥을 자신의 방처럼 구른 파토스.

놈은 이마를 바닥에 찧고서야 데굴거림을 멈췄다.

되게 세게 박았는지 대가리가 깨져 피가 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안은 눈깔까지 탁해진 파토스의 울대뼈를 사정없이 짓밟아 버렸다.

“케에엑!”

틀어막힌 숨통.

인정 없이 누르는 압력에 이제야 머리가 돌아가는 모양이다.

두려움에 젖은 파토스가 바람 빠지는 소리로 자비를 구걸했다.

“사, 살려줘!”

“힘드냐?”

“커, 커어억!”

“힘드냐고 묻잖아, 지금.”

“주글 거 가타.”

산소 결핍으로 퍼렇게 질린 파토스를 이안은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목울대를 누르던 발을 살짝 들어 올렸다.

“허어어억.”

허겁지겁 숨을 들이켜는 파토스는 죽다 살아난 표정을 내보였다.

다소 안심하는 기색.

곰팡이 핀 빵처럼 생긴 놈의 안색이 다시 본연의 혈색을 찾아갔다.

그 과정을 무심하게 지켜보던 이안은 돌연.

콰드득.

다시 파토스의 목울대를 발로 짓이기며 숨통을 조였다.

“끄억!”

발차기의 반동으로 펄떡거린 파토스가 ‘왜’라는 눈빛을 보내왔다.

의문에 답해줄 자비심 정도는 남았으니.

“그냥.”

“…….”

“네 면상이 구역질 나고 X 같아서. 이 살인범 새끼야.”

네가 C반을 괴롭힌 이유가 없듯 나도 그렇다.

이안의 답변에 ‘그래도 이만하면 됐지 않냐.’고 눈치 없는 파토스가 지껄였다.

이만하면 됐다고?

이안은 이대로 끝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숨통이 막혀가던 아이들의 모습이 이토록 생생한데.

그것들을 구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떠나보낼까 봐 미치도록 두려웠는데.

이만하면 됐냐니.

“가해자면 가해자답게 납작 엎드려서 빌어. 되먹지 못한 협상질 하지 말고.”

이안은 이대로 용서할 생각도, 어설프게 끝낼 생각도 없었다.

굳이 A반 전체가 볼 수 있는 앞마당에 파토스를 전시한 것도 같은 이치.

처형.

그냥 처형이 아니라 공개 처형을 할 셈이다.

A반 전체에게 C반을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려는 것이다.

몇 번 쓰다듬으며 말로 경고하는 거?

두 번이나 했음에도 오히려 복수는 몇 배가 되어 되돌아오지 않았던가.

그러니 어설픈 자비는 그만 베풀 때였다.

‘우선은.’

이안은 어둑한 사위를 눈알만 굴려 죽 둘러보았다.

처형이 은밀해서야 어디 쓰겠는가.

모두가 똑똑히 볼 수 있도록 밝고 환할 필요가 있었다.

따악.

이안이 손을 튕기자, 은신한 녹스가 ‘등불 밝히기’를 시전했다.

그 즉시 녹스만 한 오색 구슬 열 개가 일렬로 공중에 띄워졌다.

보름달 같은 구슬들.

거기서 새어 나온 낮은 조도가 이안의 검푸른 동공을 반사했다.

어쩐지 어둠 속에서 안광을 번뜩이는 짐승의 형태.

핏기마저 없어선지 스산함은 덤이었다.

이안을 마주한 A반은 어떤 항의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이를 드러낸 짐승에게 속박당한 것처럼.

* * *

“너희들은 내가 등신 같지? 살려달라고 빌면 살려주니까.”

“그, 그런 적 없…….”

“아가리 닥치라고 했을 텐데.”

“……끄읍.”

“그러니까 C반을 건들지 말란 내 경고를 무시하고 이딴 짓을 벌였겠지.”

이안은 파토스의 목울대를 누르고 있던 발을 가슴께로 옮겼다.

그러고는 어느새 앞마당에 나와 있는 폰투스를 물끄러미 직시했다.

식인 꽃에게서 희미한 짜증이 읽혔다.

나서고 싶어도 그럴 수 없으니 그렇겠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두둔하다가 수습에 실패하면 어찌 되겠는가.

그간 쌓아놓은 권위가 무너지게 된다.

죽으면 죽었지 그 꼴을 자처할 여자가 아니었다.

‘제 꾀에 제가 빠진 꼴이지.’

손발이 묶인 폰투스에게 이안은 시선을 고정했다.

그 채로 보란 듯이 느릿하게 발을 들어 올렸다.

“내가, 조용히 살자 했을 때 말을 들었으면, 서로 공존할 수 있었을 텐데.”

‘당분간’이라도 말이다.

발길질에 마력을 실어 이안은 파토스의 심장을 후려쳤다.

묵직한 한 방.

심장으로 전해진 형용할 수 없는 충격에 파토스가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끄어어억!”

수용할 수 있는 허용치를 넘겨선지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사람 죽이려던 개새끼가 엄살 부리긴.

“가만히 있으라고 했을 때 귓구녕 열고 잘 들었으면.”

“끄륵.”

“이런 일 안 당할 수 있었잖아?”

“제발! 내, 내가 잘못했어, 이안!”

“뭘 그렇게 잘못하셨을까?”

“마, 말 안 들은 거. 이제부턴 기라고 하면 길게. 제발, 마력핵만은.”

“남의 목숨을 빼앗을 작정 했으면, 네 모가지도 내놨어야지.”

“제, 제발! 핵은 부수지 말아줘!”

“웃긴 새끼. 네놈은 좋은 본보기가 될 거야.”

이안은 마력의 고리가 있는 파토스의 심장 정 가운데에 마력을 때려 부었다.

팽그르르 도는 검은색 마력.

그것은 서너 번 소용돌이 치다가 파아앗 불똥을 일으켰다.

마력핵에 도넛 형태로 구멍 내기.

‘살리카 가주가 레브 동생들을 인질로 잡으며 사용한 수법이지.’

핵은 그대로 둬서 살려두되, 다신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다.

풀어 말하자면 핵에 구멍이 나도 목숨은 건진다.

대신 핵과 마력 회로가 연결이 안 돼서 마력을 운용할 수 없게 된다.

“끄륵. 끄르르륵.”

핵과 마력 회로의 연결이 끊긴 즉시, 파토스는 게거품 물며 기절해버렸다.

축 늘어져 미동도 없는 걸 확인한 이안은 발을 거둬들였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더는 손질이 무의미했다.

터억.

이안은 파토스의 멱살을 쥔 연후 폰투스 쪽으로 내던졌다.

그녀의 발치로 떨어지는 쓰레기를 뒤에 서 있던 친위대가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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