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저거, 멜러니한테 주려나 본데?”
“설마 이안이 공개적으로 ‘그거’하는 거?”
“얌전한 고양이인 줄 알았더니. 오오오올.”
모두의 기대와 폰투스의 기대.
그 기대를 한껏 받으며 폰투스 앞에 다다른 사냥개.
사냥개는 폰투스를 한번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에 폰투스의 손이 머리카락에서 슬쩍 움직이던 차.
‘넌 아니다.’라는 듯이 사냥개가 폰투스를 무심히 지나쳤다.
“……?!”
폰투스 포함, 모두의 예상을 빗겨 간 행동이었다.
평온을 가장했지만 어디 폰투스의 속이 속이랴.
파들파들 떨리는 눈가가 이안의 눈에는 또렷하게 박혀 들었다.
피식.
그가 고소를 머금는 동안 사냥개의 걸음이 옆으로 향했다.
애초 ‘내 목적지는 너.’라는 듯.
“……응?”
사냥개가 에이프릴을 보며 엉덩이를 땅에 딱 붙였다.
그런 뒤 앞발을 들고 일어나 그녀에게 케르도스를 건넸다.
당황한 에이프릴은 눈을 끔뻑거리다가 얼떨결에 꽃을 받았다.
“오오올! 뭐야, 뭐야, 뭐야.”
“이안, 이 자식.”
“여윽시 상남자아.”
숨죽이고 지켜보던 C반이 휘파람을 불고 환호하며 난장을 피워댔다.
뜨거운 열기 속.
관심에서 밀린 폰투스의 입꼬리가 와그작 구겨졌다.
표정 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이걸 왜 나한테……?”
아이들의 반응에 에이프릴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주니까 무의식적으로 받긴 했지만, 케르도스를 어쩌지 못하고 어설프게 쥐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퍼뜩.
“……!!”
무언가를 발견한 에이프릴은 꽃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런 연후 꽃잎 안쪽을 살피며 훑어 내려갔다.
금빛 늑대 모양의 전서구.
자연스레 이안에게로 향하려는 고개를 에이프릴은 간신히 억눌렀다.
그래야 할 것 같았으니까.
직감이 시키는 대로 한 그녀는 무심하게 늑대를 손으로 가렸다.
* * *
눈썹달이 뜬 초저녁의 칼바람이 매서웠다.
이안은 허연 입김을 뿜으며 C반 기숙사의 공용 창고에 들어섰다.
수업에 쓸 자재나 학생들의 개인 물품을 모아두는 곳.
노상 관리를 해선지 창고는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여기에…… 그게.”
이안은 정리된 물품 사이를 비집고 제일 안쪽으로 걸어갔다.
생각보다 공간이 넓었다.
기숙사 방 몇 개는 합쳐놓은 것 같은 크기와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짐이 많네.”
그래서 치울 것도 많았다.
끄트머리에 다다른 이안은 푸짐하게 쌓인 짐을 한편으로 치웠다.
몇 번을 반복했더니 금세 평평한 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연 속살처럼 맨들거리는 바닥이 보이자.
퉤엣.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녹스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다소 뜬금없는 행동이었지만 침이 바닥에 스미자, 은밀히 감춰졌던 것이 드러났다.
황실의 문양인 독수리 조각상이.
끼릭. 끼리릭.
이안은 독수리의 몸통을 잡고선 과감하게 돌렸다.
왼쪽으로 다섯 번, 오른쪽으로 세 번, 그리고 마지막엔 날개깃이 정중앙에 오게.
정해진 암호를 실행하니 쿠궁 소리를 내며 벽이 갈라졌다.
[오호, 밀실.]
“황실의 비밀 별장답다.”
[그러니까 내 침으로만 열 수 있지.]
우쭐대는 녹스를 빗겨 이안은 밀실을 밟았다.
일직선으로 널따랗게 뻗은 복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천장에 드문드문 마법 등만 박혀 있을 뿐.
휑뎅그렁한 통로를 5분쯤 갔을까.
이안의 눈앞에 원형의 석조 기둥이 세워진 공간이 나타났다.
비색 수정 코끼리의 뿔을 깎아서 만든 탁자가 중앙에 떡하니 놓여 있는.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구나.]
“먼지만 푸지다.”
[완전히 잊혔군.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오죽하면 먼지가 빵처럼 푹신푹신할까.”
이안은 도톰한 하얀 먼지를 손으로 눌러보았다.
푸욱 꺼지는 압력대로 손자국이 고스란히 남겨졌다.
저야 그다지 앉는 자리를 가리지 않지만.
‘최소한…….’
이따 올 사람이 먼지 구덩이에서 뒹굴도록 놔둘 순 없잖은가.
정리할 필요가 있어 이안은 당당하게 녹스를 불렀다.
“스승님.”
[왜 안 부르나 했다. 날 부려 먹을 기회를 놓치지 않는 놈이.]
녹스는 이안의 개떡 같은 부름을 찰떡같이 해석했다.
그런 뒤 날개를 이용해 먼지를 날려 보냈다.
살랑이는 날갯짓에 이만하면 얼추 구색은 갖췄다 싶을 무렵.
사뿐사뿐한 걸음 소리가 났다.
파동으로 따져보자면 얕은 개울 물이 흐르는 것 같은?
그만큼 유려한 걸음새로 이안의 사선 방향에서 나타난 누군가.
……에이프릴이었다.
그녀는 다가오지도, 멀어지지도 않는 적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긴장과 의혹이 뒤섞인 낯빛을 한 채였다.
이안은 에이프릴의 상태를 보지 못한 양 대화의 서두를 뗐다.
“B반 창고 쪽은 어때?”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어.”
“아, 거기 밀실은 작동하는데 문제없었는지 묻는 거야.”
“문제없었어. 이게 있어서.”
에이프릴이 작은 유리병을 흔들어 보였다.
병 안에는 끈적한 듯 좀체 움직임이 없는 액체가 들어있었다.
그 영롱한 은색이 이안의 눈을 정통으로 찔러 왔다.
밀실을 여는 열쇠, 녹스의 침.
‘멀쩡한 장치 다 놔두고 왜 하필 침인지.’
이안은 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는 듯 눈썹뼈를 문질렀다.
“크흠. 앞으로 쭉 사용해야 하니까 조심히 쓰고. 떨어지면 말해.”
“응.”
‘조심히’란 말에 에이프릴이 걱정하지 말란 눈빛을 보냈다.
‘밀실을 들키지 않게 조심히 쓸게.’라고 말하는 눈빛.
잘못된 해석이었지만 이안은 정정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때론 진실을 아는 것이 독이 될 수도 있으니.
“…….”
대화거리가 떨어지자 곧 침묵이 먼지처럼 날아다녔다.
어색한지 허공만 응시하는 에이프릴.
궁금한 게 많을 텐데도 그녀는 섣불리 입을 떼지 않았다.
지금껏 접점 없는 이안이 왜 불렀는지.
왜 하필 이런 공간에서 만나자고 한 건지.
에이프릴은 무수한 의문을 삭이며 시종 차분함을 유지했다.
‘자제력이 대단하군.’
늘 그랬다.
잔잔한 물결처럼 그녀는 감정적 동요가 그리 크지 않았다.
자신을 죽이려는 게 폰투스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조차도 그러지 않았던가.
결단코 분노를 겉으로 드러낸 적이 없었다.
‘이런 성격인 것을 알고 있었는데.’
아는데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처럼 낯설고 생경했다.
이 기분은 아마 열 번을 회귀해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무언가를 받아들인다는 것에 대해선.
특히 사람이라는 게 정형화되지 않는 거라서.
이안은 고개를 들어 달이 그려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말없이 천장만 보고 있자 에이프릴이 조그맣게 입을 열었다.
“저기…….”
“아, 궁금한 게 많을 텐데 내가 뜸을 들였네.”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아까 네가 전서구에 적은 거, 그거…… 대체 무슨 의미야?”
“쓰여있는 그대로인데.”
“내가 손등을 긁는, 그러니까 피부가 가려운 이유가 독 때문이라고?”
“어.”
“대뜸 독이라니. 나보고 그걸 믿으라는 거야?”
“믿지 못하겠지. 근데 그게 사실이야.”
“사실…….”
“솔직히 말해볼까. 에이프릴 너도 뭔가 의심스러우니까 여기 온 거잖아. 아니었으면 내 말을 무시했겠지.”
“…….”
입을 꾹 다문 에이프릴이 손등을 긁으려다 멈칫했다.
손톱에 긁힌 그대로 빨간 선들이 그어진 살갗.
아물지 않은 상태를 가만히 보며 이안은 탁자에 걸터앉았다.
“혹, 늪지에 자생하는 ‘플로시케’란 식물 알아?”
“그거라면 수면 물약의 재료 중 하나잖아.”
“대개는 그렇게 쓰이는데, 꽃의 암술만 모아 맹독을 가진 사막 전갈을 넣고 한 달 묵히면 극독이 돼.”
“극독……? 플로시케에 그런 쓰임이 있단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
“사막의 소수 수인족만 아는 거야, 지금은.”
아는 자가 없다.
정정해야겠다.
있더라도 발설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도 모른다는 것은 나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무기라는 의미니까.
에이프릴이 누구도 모르게 독에 당한 것처럼.
이안은 허벅지에 놓인 손을 까닥거리며 최대한 건조하게 나열했다.
이 상황을 에이프릴이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암시장에서도 거래가 드문 물건이지.”
“그런 독에 내가?”
“안타깝지만.”
“그럼 어떻게 되는데?”
“그 독에 노출되면 처음엔 가렵다가 시일이 지나면 피부가 악어 등가죽처럼 갈라지고, 나중에 그 부위가 썩어들어가.”
“……!!”
“살아있는 시체가 된달까. 그리고 종내는 죽게 되지. 그래서 플로시케를 다른 말로 ‘시체꽃’이라고 부르는 거고.”
이안의 말이 끝나자 에이프릴은 덜덜 떨리는 양손을 마주 잡았다.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살갗이 희다 못해 푸르딩딩해 보일 정도였다.
고스란히 전해지는 경악과 충격.
결코, 추스를 수 없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그녀는 비틀거렸다.
독에 당해 죽는다는 말을 들어서만은 아니리라.
아마 독을 어떻게 먹게 되었는지 짐작하는 바가 있어서일 터.
이안의 시선이 다시금 천장으로 향했다.
실제 앞으로 한 달 뒤 에이프릴은…… 자살한다.
피부가 썩어가면서 받은 경멸과 조롱.
거기서 오는 괴물 취급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겨우 열다섯, 어린 소녀가 겪기에는 몹시도 잔인한 일이었다.
“대체 왜? 누가 이런 짓을?”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에이프릴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단단하던 자제력이 밑바닥을 쳐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손등을 마구 긁어대는 그녀의 행동에 이안은 에이프릴의 손등을 눌렀다.
“악의에 이유가 있나.”
“그렇더라도 이렇게까지…….”
얼이 빠진 것처럼 에이프릴의 동공이 탁해졌다.
그 상태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니.
“……하아.”
평정심을 되찾으려는 듯 연거푸 한숨을 의도적으로 뱉어냈다.
거의 수십 번을 그러다, 푸른색이 돌아온 동공을 그녀는 이안에게로 고정했다.
“너는 나한테 이런 짓을 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
“안다면?”
“누군지…… 알려줄 수…….”
“네가 짐작하는 그 사람이 맞아.”
“설마…… 그…… 애가?”
“정, 내 말이 의심스러우면 네가 직접 확인해 보는 건 어때?”
“확인?”
“‘그 애’가 범인인지, 아닌지.”
“…….”
에이프릴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짓씹었다.
잇자국이 나게 물어대니 결국 살짝 피가 맺혔다.
진실을 확인하고 싶지 않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긴.
누군가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만약 제 생각대로라면 그 무게를 감당해야 하니까.
이건 순전히 에이프릴의 몫이었다.
이안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서 어설픈 위로를 하지 않았다.
대신 시간을 줘야 할 것 같아서 대화를 서둘러 마무리 지었다.
“네 목숨이 달린 일이니 확인해 봐서 나쁠 것 없잖아.”
“…….”
“일단은 결론이 난 후에 다시 얘기하자.”
이안은 힘겹게 서 있는 에이프릴을 두고 돌아섰다.
목숨줄을 챙길지, 헛된 믿음을 챙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선택에서 ‘당연함’은 없으니까.
자신이 처한 상황, 신념, 주변 인물과 같은 여러 가지가 얽혀 결정되기에.
그럼에도 이안은 에이프릴이 용기 내기를 바랐다.
그래야 열다섯의 겨울을 열다섯처럼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 * *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갔다. 선택을 강요하듯이.
이른 낮, 에이프릴은 기숙사 공용 정원에 들어섰다.
정원은 겨울이라고 해도 휑하지 않았으며 갖가지 꽃이 피어있었다.
겨울꽃은 색감이 수수했고, 그래서 더 눈길을 잡아챘다.
“에이프릴.”
정원의 티 테이블에 앉아 있던 폰투스가 손을 흔들었다.
어서 오라는 손짓에 그만 에이프릴의 눈가가 살폿 떨려왔다.
이안이 한 말들이 귓가를 맴돌았으니까.
에이프릴은 어색한 미소를 매단 채로 폰투스 옆에 앉았다.
“오늘은 더 예쁘다, 에이프릴.”
폰투스가 운을 떼자 즉각 학생회 소속 여학생들이 반응했다.
“드레스의 검은색 프릴이 우아한 너랑 잘 어울려.”
“항상 입는 푸른 드레스가 에이프릴이랑 찰떡이지 않아?”
“맞아. 차분하고 이지적으로 보이잖아.”
티 테이블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여섯의 여학생들.
이들은 폰투스를 주축으로 한 학생회 임원들이었고, 에루리안의 흐름을 주도하는 인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