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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95화 (95/214)

제95화

합이 척척 맞는 둘의 동시다발적 공격에 레브가 작게 웅얼거렸다.

자칫했다간 두 사람도 위험해질 수 있었던 상황이니까.

“나야 신호를 보내려고 했지. 근데 기드온 교수가 틈을 안 보이더라.”

“어허. 변명은 금물이다.”

“그래도 살짝 항변이란 걸 해보자면, 세르펜을 소환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기드온 교수 자체가 상식을 벗어난 인물인데, ‘상식’선에서 판단하단 X 되는 건 순간이다.”

“‘형님’, 이에 대해선 유구무언이로소이다.”

“이럴 때만 형님이지.”

레브는 더 말을 덧대지 않고 뒷덜미를 문질렀다.

솔직히 말하면 기드온의 동태를 미리 파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견습생이라 매일 만나니까 말이다.

거리가 가까우면 상대의 행적을 쉽사리 파악할 수 있지 않던가.

더군다나 기드온의 교수실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으니 더 자신했다.

“후우. 기드온 교수가 약삭빠르긴 진짜 약삭빠르더라. 어떤 흔적을 안 남겨.”

“남 뒤치다꺼리하고 산 세월이 길어서 그래.”

“그러니까 이래저래 쉽지 않네.” 레브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쨌든 기드온도 난 놈은 난 놈이라는 고갯짓이었다.

잠깐 그러는가 싶더니, 찰나 레브가 눈썹머리를 까닥거리며 눈을 반짝였다.

뭔가를 건졌다는 눈빛.

“그런데 또 내가 누구냐. 음흉하기로는 한 가닥 하는 이안 네 친구 아니냐.”

“왜, 그 와중에 한 건 했수?”

“당연하지.”

그게 뭔지 알려주겠다는 듯, 레브가 자신의 정령에게로 손을 뻗었다.

뭔가를 달라는 손짓에 정령이 입김을 후-하고 불었다.

그러자 레브의 손에 얼음처럼 투명한 영상석이 얌전히 놓였다.

영상석을 살살 흔들며 레브가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후훗. 여기에 기드온 교수가 지랄 떠는 거 다 담겼다.”

“오오, 진짜 한 건 하셨네.”

* * *

교수가 세르펜을 이용해 학생을 죽이려 한 사실.

누구나 경악할 만한 사건에 교수들이 전원 학장실에 모였다.

그들은 영상석에 담긴 내용을 보곤 목에 핏발을 세웠다.

“세르펜이라니요?”

“그 무시무시한 것이 대체 어떻게 소환이 됐단 말입니까.”

“죽은 정령사 ‘만 명’분에 달하는 피와 ‘정령의 재’ 1톤이 있어야 소환되는 놈인데.”

“소환 재료를, 수도의 암시장에서 구했다고 했습니다.”

“암시장이라도 절대 구할 수 없는 물건입니다. 돈 되는 거라면 제 마력핵이라도 파는 암시장 상인들도, 그건 팔지 않겠다고 ‘영혼의 맹약’을 맺지 않았습니까.”

“허허. 2학년의 정령학 교수가 봤다지 않습니까. 며칠 전에 기드온 교수가 수상한 물건을 사는 것을.”

다들 흥분 상태였다.

교수들의 모습에 학장의 얼마 없는 머리카락이 해파리처럼 늘어졌다.

……피곤했다.

조용히 살고 싶은데, 요즘 들어 통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2학기가 시작되고 한시도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으니까.

허구한 날 학생들끼리 패싸움을 해대지.

걸핏하면 파벌 싸움을 해서 가문의 파벌로 번지게 하지.

결계 변형이 일어나 학생들이 죽을 뻔했지.

이번엔 책에서나 보던 세르펜까지 등장하다니…… 이건 정말!

“허어어어어.”

학장 플로이드의 진한 한숨이 길게 꼬리를 빼물었다.

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클로에 교수가 계속 자신을 보며 짐승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르르.”

분노를 어쩌지 못하는 클로에의 모습.

당장이라도 자신을 물어뜯을 것 같은 흉포함에 학장의 머리카락이 움찔거렸다.

살리카 가주님의 동생이라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크, 클로에 교수 일단 진정하고…….”

“진정? 지금 진정하란 말이 나오십니까, 학장님?”

“다들 무사하니 된 것 아닙니까. 우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니…….”

콰아앙.

탁자를 친 클로에 교수가 붉은 동공을 희번덕거렸다.

“예상 못 했다? 그딴 변명이, 내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 면피용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기드온에 관한 처분을 차분히 논의하려…….”

“논의가 왜 필요합니까! 그 개자식의 모가지를 당장 따버려야지!”

“…….”

클로에 교수의 지나친 솔직함에 학장은 식은땀을 흘렸다.

이 이상 건드리면 당장 뭣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학장은 번들한 이마를 문지르며 황급히 시선을 회피했다.

그런데 하필!

호랑이 피하려다 용을 만난 격이라고, 사선 방향에도 무언가가 있었다.

어둑한 밤에도 환히 빛나는 하얀 초 같은 덩어리들.

그것은, 새하얀 후드를 뒤집어쓴 ‘정령사 협회원들’이었다.

이들이 나선 건 금지된 정령이 소환되어서였다.

다른 무엇도 아닌 마력을 먹는 정령 뱀 세르펜이 아니던가.

이는 이 사건이 더는 에루리안 아카데미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세르펜을 인위적으로 소환할 시, 마력핵을 도려내고 사지를 절단한다.』

제국법 첫째 장에 명시된 항목.

이를 집행하기 위해 기드온을 데려가야 해서 협회원들이 온 것이다.

정자세로 서 있는 협회원들의 기세가 어느 때보다 형형했다.

그리고 북풍한설보다 더 차디찼다.

기실 협회원들은 소소한 법이라도, 그것을 어긴 자를 극도로 증오한다.

제국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짓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모든 정황은 확인이 끝났습니다. 그러니 기드온 디오크스를 압송해가겠습니다.”

젊은 협회원이 입을 열자 일순 학장실이 조용해졌다.

숨소리도 나지 않는 분위기 속에 협회원의 딱딱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 점 의혹도 없는 터라 의의는 없을 줄 압니다. 관련 학생들이 제출한 영상석으로 증거도 확보했으니 말입니다.”

냉랭한 협회원들을 피해 학장의 눈알이 다시 도르르 굴렀다.

그래 봐야 보게 되는 게 흉포한 클로에 교수뿐이었지만.

“히끅.”

두 맹수 사이에 낀 학장은 연신 딸꾹질을 하고 말았다.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모습이 절로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유약한 학장을 대신하려는 듯 스톨레 교수가 나섰다.

“사실 논의는 불필요하지요. 증거와 증인, 그리고 현장까지 제대로 보존이 됐으니 말입니다.”

그가 입을 떼자, 협회원들이 모두 스톨레를 주시했다.

자칫하다간 불에 타겠다 싶은 뜨거운 눈빛.

그러나 스톨레는 학장과 달리 주눅 들지 않고 할 말을 내뱉었다.

“게다가 처벌까지 ‘확정’인데, 회의가 필요할까요?”

“스톨레 교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으니, 공연한 시간 낭비 말고 회의를 파하도록 하죠.”

“그럽시다. 가해자의 인권과 사건의 공정성을 위해 회의를 했으나 지금은 그닥.”

교수들의 ‘만장일치’에 젊은 협회원이 입을 뗐다.

“그럼 정식 절차대로 기드온 디오크스를 당장 협회로 데려가겠습니다.”

“아, 집행관님. 아직 학생들이 사건 보고서를 끝내지 못한 상태입니다.”

“학장님, 그 보고서는 나중에 제출해도 됩니다. 어차피 죄질이 명확해서 재판 때 참고용 정도로만 쓰일 테니까요.”

* * *

본관 1층 면담실.

이안은 사건 보고서를 작성하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이었다.

기드온이 본관을 나와 마차로 향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를 양옆으로 포위해 도망을 차단한 정령사 협회원들도.

“내가 누군 줄 알아? 네깟 것들이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기드온은 당당했다.

마력 구속구를 차고서도 삿대질하는 모양새가 그랬다.

“내가 너희 정령사 협회장이랑도! 어? 개인적으로 만나는 사이였어. 알아?”

지랄이 풍년이다.

혀를 찬 이안은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그의 생각에 동조하듯.

“기드온!”

우렁찬 외침이 앞마당을 그득 채웠다.

심지어 목소리에 마력이 섞여 있어서 거센 해일처럼 대기를 진동시켰다.

그 탓에 같이 보고서를 작성 중이던 레브까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응? 클로에 교수님?”

마차에 타려는 기드온을 부른 건 저만치서 달려오고 있는 클로에 교수였다.

“내 아이들의 귀한 목숨을 가지고 논 대가다, 이 새끼야.”

퍼어억!

그녀가 내달려 얻은 추진력만큼, 불을 휘감은 주먹이 기드온의 안면에 내리꽂혔다.

“꾸억!”

어마어마한 힘과 뜨거움에 기드온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자빠져버렸다.

기드온의 콧구멍과 입에서 주르륵 튀어나온 피.

검붉은 액체가 새하얀 마차에 보기 싫은 얼룩을 남겼다.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퍼억!

정령사 협회원들의 발길질이 기드온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죄수의 권리 같은 것보다 새하얀 마차의 청결이 더 중요하다는 몸짓.

저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미쳤다고 해야 할지.

협회원들은 기드온이 비명을 내지르든, 죽어 나가든 핏자국에 대한 견적만 냈다.

그리고 열띤 논의가 끝나자, 더는 얼룩이 퍼지지 않게 웬 작은 정령을 꺼냈다.

……‘실키’였다.

청소 특화 정령까지 데리고 다니다니 정말 지극정성이다.

실키가 핏자국을 지우는 동안, 클로에 교수가 기드온의 안면을 한 번 더 후려쳤다.

시원한 분풀이였다.

이에 나가떨어진 기드온은 꼬르륵 게거품을 물며 기절해버렸다.

“휘유. 진짜 화끈하시다.”

이안의 감탄에 레브가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그러게. 클로에 교수님 성격에 여태껏 참은 것도 용한 거지.”

“조금 이따 올리브가 오면 엄청 시끄럽겠다. 저 명장면을 놓쳤다고 얼마나 입을 털까.”

“배고프다고 징징거리다 식당 간 놈이 죄지 뭐.”

“오늘 잠자긴 애저녁에 글렀다. 그 녀석의 한탄을 들어주려면.”

“아이고야.”

거하게 한탄을 내뱉은 레브가 창틀에 기대고 있던 몸을 떼며 말했다.

“기드온의 교수 자격증이 박탈될 거라더라.”

“죄목이 학생 위해죄에 질서 교란죄이니 그렇겠지.”

“제 무덤을 제 손으로 판 거지 뭐. 아름답고 크게도 팠다.”

이안은 포대 자루 실 듯 옮겨지는 기드온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기드온 디오크스.

필요는 하나, 때가 되면 죽여야 했던 자.

그자가 자격지심과 열등감에 결국 스스로 파멸하고 말았다.

그 때문인지 이안의 머릿속에는 어떤 상념이 몰아쳤다.

어쩌면…….

그 어느 때에…….

힘을 얻지 못한 이안이 선택했을, 어떤 결말일지도 모르겠다.

기드온의 현재는 말이다.

마차가 떠나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녹스가 옆에 딱 붙으며 혀를 끌끌 찼다.

[아둔한 놈이다. 똘똘한 내 제자와는 엄연히 다르지.]

공연한 생각 말라는 선 긋기처럼 들렸다.

어차피 너는 저자와는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가 녹아있는 선 긋기.

이에 이안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아무 생각 안 했다는 양 응수했다.

-어쨌건 난, 덕분에 손 안 대고 코 풀었네.

[좀 아쉽구나.]

-뭐가?

[그동안 저놈의 돼먹지 않은 착각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말이야.]

-하하. 그러게.

이안은 짧은 웃음을 내보인 뒤 다시금 레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녀석은 굉장히 편안하고 느슨한 상태였다.

그동안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는 적을 두고 어찌 편했으랴.

기드온이 없어진 지금에야 비로서 진정한 평온을 얻은 것 같았다.

결과가 참으로 깔끔했으니 미련이 없어진 것에 가까우려나.

덤덤한 얼굴로 레브가 앞발을 모은 사냥개의 등으로 살포시 손을 뻗었다.

까칠한 녀석이 의외로 동물을 좋아했다.

이안은 은색 털을 살살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을 가만히 보았다.

“이제 두 발 뻗고 자겠다, 레브.”

“네가 속만 썩이지 않으면.”

“아니, 나 같이 반듯한 놈이 어딨다고?”

“다쳐도 쉬질 않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놈, 그놈은 어디의 누구시더라?”

레브가 뾰족하게 쏘아보았다.

이런.

불리한 주제라 이안은 눈알을 옆으로 데굴데굴 굴렸다.

아무래도 이쯤에서 발을 빼야 할 듯싶었다.

“아이고, 올리브 이놈이 늦네. 나, 잠깐 나갔다 와야 하는데.”

“저거, 저거 불리할 때면 꼭 저러더라.”

“…….”

“근데 또 어디 가게?”

“아. 스톨레 교수님이 좀 보자고 해서.”

“스톨레 교수님이?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면담하는 분이 아니신데 왜?”

“글쎄. 긴히 하실 말씀이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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