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화
【스톨레 교수실】
이안은 최소한의 것만 갖추어진 교수실을 훑어보았다.
회귀까지 합쳐 인생 2회차지만 이곳은 처음이라 다소 신기했다.
그래서 구경꾼처럼 눈이 돌아가고 말았다.
물론 이것저것 본다고 해서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는 것도 아니었다.
교수실은 단출했으니까.
단단한 엘다 나무로 만든 코발트색 책상과 책장, 그리고 교수실의 중앙에 놓인 갈색 소파.
고작, 이게 다였다.
교수실을 장식하는 장식품도, 그림 같은 것도 하다못해 화분 쪼가리도 없었다.
인간은 영역의 동물이라 제 방 꾸미기는 본능 같은 건데.
‘금방이라도 떠날 사람이 머무르는 방 같네.’
아닌 게 아니라 메마른 삭막함이 교수실을 강하게 채우고 있었다.
이런 방의 분위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분위기와 상반되는 스톨레 교수의 화려한 안대 때문일까.
생각의 곁가지가 빠르게 메마른 전쟁터로 번져갔다.
저 안대가 늘 피에 젖어있던 지난 생의 어느 지점으로.
<교수의 의무지요. 사랑스러운 제자를 지키는 것은. 그게 전쟁터든 지옥이든.>
스톨레 교수가 이안을 쫓는 살리카의 암살 부대를 처치하며 한 말이었다.
단조로운 어투, 전혀 그렇지 못한 광폭한 공격.
크아아아앙!
스톨레 교수의 수호 정령, 담자색 털을 가진 호랑이가 울부짖을 때마다 암살자들의 몸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머리통에 있는 번개 문양이 번득일 때마다 암살자들은 무참히 도살당했다.
일방적이었다.
호랑이의 속도를 암살자들이 따라잡을 수 없었으니까.
‘속도.’
번개 정령의 특징이었다.
인간이 도달할 수도, 눈에 담을 수도 없는 빠름을 지니는 것.
이는 번개 정령이 가진 장점임과 동시에 단점이었다.
자신과 결속한 정령사의 눈을 ‘멀게’ 만드니까.
번개 같은 속도를 눈에 담으면서 부리다 보면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번개 정령과 결속한 정령사는 반드시 눈에 보호 술식을 새긴다.
눈에 새기지 않을 경우에는 다른 보조 장치를 착용하고.
스톨레 교수는 안대가 그 역할을 했다.
“…….”
이안이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그를 쳐다보자, 스톨레 교수가 안대를 매만졌다.
“날, 충분히 구경한 것 같으니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아, 제 친구가 생각나서 그만.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기분 나쁘지 않으니 넘어가도록 하죠.”
“그런데 절 부르신 이유가…….”
“다름이 아니라 주인을 찾아줘야 할 물건이 있어서 말이지요.”
“…….”
“대꾸도, 물음도 없군요. 이미 짐작하고 있는 건가?”
여상한 투로 중얼거린 스톨레 교수가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피부끼리 마찰하는 음이 끝나자 탁자 위에 차 상자가 나타났다.
이안이 기드온에게 준, 추적진이 새겨진 상자가.
이런 말이 있다.
물건을 훔쳤는데 들키지 않으면 가져온 거고, 들키면 절도라고.
이와 같다.
들키지 않았다면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추적한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들킨다면…….
“…….”
차 상자를 이안은 무미건조하게 쳐다보았다.
일이 터지자마자 차 상자부터 회수하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이미 누군가가 가져간 것이다.
범인이 누굴까 추려보던 차, 스톨레 교수가 보자고 했을 때 알아챘다.
‘교수님이 차 상자를 가져갔구나.’ 하고.
“흠. 그냥 주시는 건가요?”
이안은 반들반들한 웃음을 머금으며 직설적으로 말했다.
어쩐지 팽팽하게 당겨진 것 같은 공기.
곧 끊어질 것 같은 흐름을 타고 스톨레 교수가 해사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주는 겁니다.”
“대가 없이 말입니까?”
“사랑스러운 제자에게 무언갈 뜯어내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다만?”
“내가 호의를 베풀었다는 것만 잊지 않기를 바라겠습니다, 이안 뷔트시겐.”
“흐음. 호의라 쓰고 빚이라 읽어야겠네요. 언제가 갚아야 할.”
* * *
교수실을 나온 이안은 기숙사 지붕 위에 올라섰다.
스톨레 교수의 교수실이 보이는 위치.
“녹스, 부탁해.”
이안은 차 상자를 녹스에게 건넸다.
상자를 받은 녹스가 곧바로 불의 꼬리를 튕겨 상자를 태웠다.
재도 남지 않게 태우는 높은 온도라 처리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상자의 흔적이 지워지는 걸 보며 녹스가 운을 뗐다.
[이안, 스톨레 그자 말이다.]
“교수님이 왜?”
[뭔가 꼬름하다. 네놈보다 비밀이 많아 보인달까.]
“확실히. 왠지 스톨레 교수님답지 않았어.”
[본디 표정이 없는 자였는데, 이번엔 의도가 명백히 보였다. 너에게 빚을 지워야겠다는.]
이안이나 녹스나 의문을 갖는 지점이 똑같았다.
스톨레 교수의 태도가 변했다는 거.
사람이란 게 이유 없이 변할 수도 있지만, 그 교수님이?
적어도 그가 변하려면 제국이 반 토막 날 정도의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한다.
그의 올곧은 성정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사실, 꼬름하다고 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턱을 괸 녹스가 웬일로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며칠간 지켜보니 스톨레 그자의 등급이 아무리 봐도 이상하단 말이지.]
“등급이?”
[카르디아 1성은 분명 아니다. 술식을 짜거나 지우는 실력이……. 으흠.]
녹스의 구겨진 이맛살에는 ‘미심쩍음’이 끼워져있었다.
그 모습에 이안은 비스듬한 시선으로 교수실을 진득하게 보았다.
“하긴. 스톨레 교수님의 실력이 지나치게 출중하긴 하지.”
본디 교수라는 게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변방의 아카데미라도 이는 예외가 아니었다.
기본 실력이 카르디아 1성 이상이 되어야 교수가 될 수 있으니까.
그들 중에서도 스톨레 교수는 유난히 실력이 특출났다.
“그동안엔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스톨레는 오리무리에 섞인 백조다. 그런 자가 무리를 떠나지 않고 남아 있다면…….]
“뭔가가 있는 거겠지.”
이안은 눈썹머리를 휘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스톨레 교수는 당연히 그의 아군일 줄 알았다.
전쟁터를 3년 가까이 함께 누빈 적이 있어 그리 확신했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이마저도 불확실해졌다.
다만 확실한 게 있다면 그가 모르는 스톨레 교수의 단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알지 못하는 정보.
그러나 모르는 채로 그냥 놔두기에는 뒷골 한편이 찜찜해지는 그 무엇.
“흐음.”
스톨레 교수의 감춰진 단면이 어떤 작용을 할지 누가 알겠는가.
지난 생이 이러했다고 현생이 똑같게 흘러가는 것이 아닌 것을.
“혼자서 추측만 할 게 아니라 집에 연락해봐야겠군.”
스톨레 교수에 대해 더 파볼 필요성이 있었다.
타앗.
이안은 교수실에서 시선을 거두고 지면으로 내려앉았다.
* * *
이안이 떠난 뒤였다.
스톨레는 창밖을 보며 오래도록 같은 자세를 유지했다.
어쩐지 싱숭생숭해 보이는 모습.
깨진 평정심을 되찾지 못하던 스톨레는 안대를 문질렀다.
그러다 안대에 수놓아진 거북이를 오래도록 보며 씁쓸한 눈빛을 했다.
거북이, 발리올 일족의 상징.
일족과 제국을 지키는 방패가 되겠다는 의미를 지닌 문양이다.
“발리올은 무슨. 그저 반쪽짜리인 것을.”
스톨레는 자조 섞인 중얼거림을 나직하게 토해냈다.
발리올이되 발리올일 수 없는 자.
그는 어디든 완전하게 속하지 못하는 반쪽짜리였다.
이런 양면적인 삶은 어릴 적, ‘어떤 남자’의 손에 이끌려 바르푸니 가를 떠날 때 정해진 것이었다.
그때부터 스톨레는 남자의 지시가 떨어지면 항상 제 소속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든, 어느 때든 말이다.
일종의 숙명 같은 것이라서 이 어중간한 처지를 거부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사랑스러운 제자들을 가르치는 교수직조차 ‘가짜’이지 않던가.
“…….”
미간을 구긴 스톨레는 검지의 살덩이를 가른 뒤 몸을 굽혔다.
그러고는 책상 마지막 칸의 가장자리에 가져다 대곤 피로 해제 술식을 그려 넣었다.
달칵.
열린 서랍 안에서 스톨레는 서신 하나를 꺼냈다.
피 묻은 지문이 그대로 찍히는 새하얀 봉투와 편지지.
거기에 찍힌 문양은 이마에 세 번째 눈이 있는 여신상이었다.
《이안 뷔트시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보고해라. 특이점이나 행동은 반드시 영상석에 담아…….》
실로 오랜만에 정령사 협회에서 보내온 명령서였다.
협회를 떠나온 뒤로 근 십 년간 소식을 끊고 살았는데.
“그런 나에게 이걸 보낼 정도로 협회가 이안에게 관심을 보인다, 라.”
실제 이안의 성장은 ‘기이’할 정도로 빨랐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 중 하나는 단연코 비상한 머리 회전력에 있었다.
머리를 쓸 줄 알기에 앞날이 기대되는 제자.
이런 이안이, 스톨레로선 참으로 기특했다.
절망에 주저앉지 않고 재능을 꽃피운 녀석이라서.
공평을 신념으로 삼은 그라도 뭔가를 해주고 싶어졌다.
“어떻게든 그 아이의 재능을 키워줄 심산이었는데…….”
협회에서 서신을 받은 이상 이제는 아무 도움도 줄 수 없게 되었다.
스톨레는 불쾌한 심정을 담아 서신을 팔락팔락 흔들어댔다.
“뭐든 강제하려 하는 협회의 작태가 짜증 나는군.”
강압적인 그들이 정말 마음에 안 들었지만, 한편으론 저들의 행동이 이해는 갔다.
확실히 이안에게는 뭔가가 있었으니까.
그게 뭔지 추측해 보자면 유력한 단서는 빠르게 좁혀진다.
이안이 마력핵을 얻었다는 거.
그 과정이 아마 이안을 특별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이것이, 협회가 규정한 미지수일 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협회가 처리하려고 무던히 애쓰지만 글쎄.
“탑에 틀어박혀 지내시더니 스승님께서도 노망나신 모양입니다.”
예전처럼 했어야만 했다.
이안이 미지수란 판단이 들었을 때 ‘즉시’ 죽였어야 했다.
어떤 무리를 둬서라도.
그러지 않고 그저 감시만 해선 자라는 늑대를 억누를 수 없다.
새끼 늑대가 어디 보통 늑대랴.
나중엔 설원을 호령할 패자가 될 늑대인데.
“그땐, 스승님께서도 수습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이안, 그가 속한 집단이 뷔트시겐이니까.
4대 가문 중 가장 강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던가.
‘설랑’이라 불리는 그들이 무서운 것은 결속력에 있다.
개인주의가 강한 살리카나 루하흐, 느긋함이 지나친 발리올과는 천성이 달랐다.
악착같고, 독하고, 동족 하나가 죽으면 백 명이 개떼처럼 달려든다.
이에 관한 유명한 일화도 있다.
백여 년 전쯤 히토리아 협곡에서 벌어진 ‘히토리아 대전투.’
세력을 키운 달마티아 신성 왕국과 그 협곡에서 혈투가 벌어졌었다.
전쟁 초반.
협곡이 무너져 제국군이 뿔뿔이 흩어지고 뷔트시겐 몇몇 부대만 달마티아 대군과 남겨졌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
『마치 하나의 핏덩어리 같았다, 뷔트시겐의 검은 늑대들이 눈을 부릅뜬 채 서서 죽은 모습은.』
역사서에 남겨진 그들의 최후는 처절하고 비장했다.
뷔트시겐 하나가 죽으면 그 시체에 등을 기대 몸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대로 삼았다.
그가 죽으면 그 또한 그 자리에 박혀 또 다른 지지대가 되었다.
그리고 뒤를 이은 자 역시 그리했다.
숨 한 줌마저 으스러져 끊길 때까지.
자신이 죽인 적 하나가 동족의 생이 되기를 바라며.
자신의 시체가 동족이 버틸 수 있는 지지대가 되길 바라며.
그렇게 포개진 시체가 하나가 되고 둘이 되고 기어코 기백을 넘었을 땐 공포감을 주었다.
적군인 달마티아에게.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뷔트시겐에겐 들끓는 복수심을 남겼다.
늑대는 결코, 동족의 죽음을 가벼이 넘기지 않았다.
그 죽음이 명예가 되도록 기어이 달마티아를 무너트려 멸망에 이르게 했다.
“그런 뷔트시겐을 어찌 상대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그리 아끼는 정령사 협회를 내던질 것도 아니시면서.”
스톨레는 서신을 내려놓고 창문 너머를 보며 중얼거렸다.
어중간한 마음으로 덤볐다간 개박살 나는 게 어느 쪽일진 뻔했다.
그걸 스승은 간과한 것 같았다.
늙으면 그리되는 것인가.
세상을 보는 지혜가 생긴다고 하나 겪어온 만큼 아집도 생긴다.
문제는 지혜가 아니라 아집이 눈꺼풀을 가렸을 때다.
그땐 답이 없는데.
“늙으신 스승님을 위해 이안에게 빚을 지워놓긴 했으나…….”
추적진이 담긴 차 상자.
그것을 이안에게 고스란히 넘긴 까닭은 명확했다.
이안의 성정상 빚을 지면 반드시 갚을 테니까.
훗날을 위해 안배를 깔아두어야 했다.
“후우. 빌어먹을 탑을 떠나왔는데도 그곳에 매인 것 같군.”
스톨레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짚으며 눈을 감았다.
사실 뜨고 있나 감고 있나 안대 때문에 비슷비슷한 밝기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