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104화 (104/214)

제104화

“아, ‘오쿨루스의 결.’”

[아아. 괴팍한 기린 놈이 선물이랍시고 네 눈에 박은 거?]

녹스는 입을 놀리다 말고 이안의 왼쪽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녹색끼가 진하게 더해진 동공.

어째 갈수록 저 눈은 점점 더 묘해지고 있었다.

[흥. 본질을 꿰뚫는 눈, 좋아하시네.]

오쿨루스의 결.

시전자가 보고자 하는 공간의 모든 것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기술이다.

소리, 냄새, 형태, 감정 등을 고스란히 말이다.

좀 더 풀어 말하자면 이런 거다.

사냥개의 눈을 통해 시각을 공유하는 오쿨루스의 눈.

그리고 바람의 소리를 통해 정보를 얻는 바람의 속삭임.

이것들의 상위 호환 기술이라고 볼 수 있는 기술이다.

이뿐 아니라, 오쿨루스의 결은 환술까지 뚫고 ‘본질’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술식 등으로 겉모습을 바꾼 누군가의 본 모습이라던가.

그 무언가를 구성하고 있는 마력 그 자체, 근원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말이다.

그리고 이는 상대의 등급과 무관하게 적용된다.

이안은 생각을 이어가다 고개를 옆으로 까닥였다.

“이 기술, 동쪽 관리자의 ‘고유 기술이’지 않나?”

[고유 기술이지.]

“근데 이걸 왜 나한테 줬지?”

[그걸 왜 나한테 묻누. 네 꿈이 그 기린 놈 맘에 들었나 보지 뭐.]

“오호.”

[솔직히 나도 처음 본다. 그놈이 누군가한테 그 기술을 주는 거.]

“내가 처음이라고?”

[내가 아는 한.]

“오, 녹스 너한테 과거를 알려주다 이런 것도 얻고. 난 참 운이 좋아.”

[그게 운이 좋은 거냐? 써먹지도 못하는 기술인데?]

“크큿. 하긴. 시전만 하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아예 손도 못 대고 있긴 하지.”

이것이 오쿨루스의 결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

뇌의 연산을 넘어선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탓에, 자칫하다간 뇌가 녹거나 터져버릴 수 있다는 것.

시종 불퉁하던 녹스가 앞발을 탁탁 굴렸다.

[그놈이 주는 게 다 그렇지.]

“이게 운용만 가능하면 사기에 가까운 기술 아냐?”

[왜 또. 그 고통 다 참아가며 시전 한번 해보시게?]

“크크큿.”

이안은 녹스의 타박에 자신의 왼쪽 눈을 꾹꾹 누르며 중얼거렸다.

“이 좋은 걸 썩히긴 아까운데.”

[…….]

“이걸 쓸 수 있게 만들 방법이…….”

[별거 있나. 머리만 안 아프면 되는 거 아니누.]

“그렇지.”

[그렇다면 쏟아지는 정보를 선별해서 가지치기해 줄 뭔가만 있다면 될 터인데.]

“으음. 그러니까 통신석에 들어있는 ‘보석안’처럼 말이지?”

통신석은 수만 개에 달하는 마력의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많은 선이 정보를 받아들이다 보면 꼬이거나 엉켜 터져버릴 수 있는데, 그걸 막아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보석안’이다.

어마어마한 정보를 예쁘게 가지치기해주는 물건.

아메디스트의 정수라 불리는 이 ‘보석안’은 피그미족의 기물이다.

그 기물이면 오쿨루스의 결이 가진 문제를 곧장 해결할 수 있을 터.

[흠. 그럼 가자.]

그를 찬찬히 뜯어보던 녹스가 뜬금없는 소릴 내뱉으며 파닥파닥 날았다.

이에 이안은 고개를 기울이며 녹스에게 물어보았다.

“어딜?”

[거기. 네 머릿속에 이미 해결 방법이 들어있을 거 아니냐.]

“이렇게 다짜고짜?”

[개떡 같은 선물을 받아도 알아서 고쳐 쓰는 게 네놈이 아니냐. 이틀이나 지났는데 아무 계획이 없다고?]

녹스가 ‘넌 분명 있어.’라며 이안의 목덜미를 붙잡고 잡아끌었다.

그 채로 쭉 딸려서 일어난 이안은 헛웃음을 지었다.

“허어어어. 있어도 없다고 하고 싶은 이 기분은 뭐지?”

[네 기분 따위 넣어두시고요, 제자님. 그라나토스 서쪽으로 갈 거지?]

“어. 그곳에 가야 보석안을 얻을 수 있으니까.”

[사설이 길어서 뭐하누. 후딱 해치우고 오자.]

“…….”

이안은 시원하다 못해 단호한 녹스의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

궁금해서 매달리고 툴툴대야 재밌는데…….

너무나 건조한 녹스의 반응은 이안의 맥을 빠지게 했다.

놀리는 맛을 잃어버렸다.

아쉽지만, 그렇다고 오쿨루스의 결을 포기할 건 또 아니었다.

그래서 이안은 생각해둔 바가 있는 서쪽 숲으로 이동했다.

* * *

어느 동굴 앞에서 걸음을 멈춘 이안과 녹스.

둘은 육각형 모양의 동굴 수십 개가 촘촘히 얽혀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마치 벌집 같았다.

하나하나 유기적으로 연결된 모양새가 더없이 오밀조밀한 것이.

뿐이랴.

색감은 또 어찌나 화려한지.

동굴의 입구를 감싸고 있는 막이 무지개처럼 형형색색의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이것들은 참말 아기자기하구나.]

“‘피그미족’의 특징이지. 귀여운 외모만큼이나 세밀한 건.”

[그래도 힘은 거인만큼 세지 않으냐.]

“그러니 아메디스트 마광석을 캐는 일을 하지.”

아메디스트는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캘 수 없는 광물이다.

피그미족의 낫처럼 생긴 팔로만 절삭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특질로 피그미족은 ‘광부 조합’을 결성하고 의뢰를 받아 아메디스트를 캔다.

이안은 그것에 대해 생각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보석안을 얻으려면 수장부터 만나야 하는데.”

[수장만이 보석안을 만들 수 있다지?]

“어. 제련과 관리 모두 수장의 권한이라고 들었어.”

[보석안을 동굴 입구에 있는 방어 결계의 재료로 사용하니 그럴 수밖에.]

“결계가 곧 저들의 안전이고 생존이라 중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을 거야.”

이안은 무지갯빛 막을 훑다가 시선을 한곳에 고정했다.

동굴의 아래쪽 끄트머리, 막의 한 귀퉁이가 깨져 있었다.

의아한 마음에 이안의 눈썹머리가 아래로 늘어졌다.

“근데 저게…… 왜 깨져 있지?”

[그러게 말이다. 막 자체가 열리는 경우는 피그미족이 새 둥지로 이사할 때뿐인데.]

“설마 이사 간 건가?”

[기척은 있다. 일단 들어가 보자.]

둘은 쪼개진 막을 통과해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 * *

오밀조밀한 입구에 비해 안은 상당히 넓고 깊었다.

동굴 하나가 거의 집채만큼 넓다고 해야 하나?

그 넓은 곳을 아메디스트 광맥이 꽉 채우고 있는 광경이 실로 놀라웠다.

마치 담녹색 강물이 흐르는 것 같달까.

[히야. 이것 봐라, 이안. 눈이 핑핑 돈다.]

“로르 동굴에 있는 것처럼 순도가 굉장히 높다.”

[비교해도 하필 그것과 비교라니. 피그미족 자존심 상하게.]

“크큿. 로르 듣겠다. 또 종일 갈굼 당하려고.”

이안은 킥킥대며 웃다가 일순 아메디스트에 꽂힌 시선을 가늘게 좁혔다.

웃고 떠들 땐 몰랐는데…… 뭔가 이상했다.

너무나 조용하고 공기가 퍼석거렸다. 아무도 기거하지 않는 것처럼.

“녹스, 분명 기척을 느꼈다고 했지?”

[희미하긴 한데 분명히 느껴진다. 저 안쪽에서.]

“그래?”

이안은 다시 한번 동굴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누군가가 있다기엔 아메디스트를 캔 흔적이 전혀 없었다.

아니지. 피그미족이 돌아다녔다는 흔적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피그미족이 사는 곳은 곡괭이질 소리와 뜨거운 쇳물의 열기가 끊이질 않는다는데…….

이상한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동굴 이곳저곳 부식된 흔적들은 대체 뭘까.

“녹스, 더 들어가 보자.”

이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녹스가 가리키는 쪽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갔다.

꽤 들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무렵.

“제길!”

누군가의 거친 음성이 동굴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소리는 막다른 곳의 석벽 안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수장님, 언제까지 숨어 있어야 하는 거요?”

“일족의 안전이 우선이야.”

“이래죽으나 저래 죽으나. 우리는 아메디스트를 캐지 못하면 죽는 거, 수장도 알 거 아니요.”

“그렇다고 박쥐 무리의 아가리에 제 발로 들어갈 순 없잖나.”

“빌어먹을, 박쥐 새끼들!”

분위기가 심각했다.

뭔가 문제가 생긴 듯 큰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올 때 본 광경과 연관이 있는 게 확실했다.

-일단 가자.

이안은 거침없이 석벽의 작은 틈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동굴 벽면에 붙어있는 작은 집이었다.

벌통 모양의 알록달록한 집.

집주변에는 보기 좋게 아기자기한 장식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딱 봐도 피그미족의 본 주거지였다.

이안은 전방의 얇은 가림막을 돌아 중앙 광장으로 한 발자국 뗐다.

‘흠. 부지런하기로는 제일인 종족인데.’

바닥 여기저기에 활력 없이 축 처진 피그미족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의욕이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

오죽 의욕이 없으면 목숨처럼 여기는 ‘아메디스트 가루’가 담긴 자루를 내팽개쳐 놨을까.

“실례합니다.”

“…….”

이안의 한 마디에 피그미족들의 기세가 돌변했다.

늘어져 있던 이들이 맞나 싶게 삽시간에 안색이 형형해졌다.

그러더니 하나같이 모두 손을 낫으로 바꾸었다.

전투 태세였다.

‘아메디스트를 못 캐 생기를 보충할 수 없어서 싸울 기력조차 없을 텐데.’

피그미족은 신선한 광을 캐는 것으로 생기를 채운다.

그게 곧 주식인 셈.

물론 캐진 광을 먹어서 생기를 채우기도 하지만 그건 간식거리일 뿐이다.

하여 오랫동안 광을 캐지 못하면 그들은 결국 소멸하고 만다.

싱긋.

이안은 자신이 무해한 사람이라는 걸 알리듯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저 나쁜 사람 아닙니다. 수장님을 만나려고…….”

이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인파가 갈라지며 누군가가 등장했다.

딱 봐도 저 다부진 여자가 수장이었다.

인간 나이로 치면 40대 중반쯤?

수장이라기에는 젊은 편이었지만, 피그미족은 나이로 수장직을 뽑지 않는다.

‘아메디스트 가루’를 얼마나 많이 채취할 수 있느냐로 뽑지.

그 가루가 결계의 핵심인 보석안이 되기 때문이다.

스릉.

수장은 낫을 이안에게 겨누며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시선과 낫, 두 가지가 서슬 퍼렇게 이안의 모가지를 위협했다.

“나쁜 놈이 제 입으로 나쁜 놈이라고 하는 걸 본 적 있나?”

“제가 꿍꿍이가 있는 놈이었으면, 수장님의 낫에 얌전히 목을 맡기고 있지만은 않을 겁니다.”

이안의 매끄러운 말발에 수장이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대체 어떤 놈인가 하는 면접관의 눈빛이었다.

이쪽저쪽 살피며 견적을 내는가 싶더니 수장이 혀로 입술을 축였다.

“날 만나려는 이유가 뭐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수장님께 얻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아아, 아메디스트의 보석안?”

“예. 혹, 그것을 하나만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리 다짜고짜 와서 보석안을 내놓아라?”

“아, 물론 공짜로 달라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나와 거래하시겠다?”

수장의 낮은 말투가 낫만큼이나 뾰족뾰족했다.

이에도 이안은 둥글둥글함을 유지한 채 수장을 마주 보았다.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말씀하시면…….”

“애송이의 만용이 과하군. 내가 무엇을 원할 줄 알고.”

이안의 말에 되레 수장의 한쪽 입술이 올라갔다.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닌데?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면 어쩌려고.”

“저도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지는 않습니다. 상황 보고 발을 뻗은 거지.”

“…….”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수장님께서 직면한 문제를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수장의 낫이 찰나 움찔거렸다.

이안의 낯짝에는 하고자 하는 말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었다.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긴 거 아니냐. 그래서 문제를 당장 해결해 줄 누군가가 필요한 상황인 거고.’라는.

눈썰미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할 줄 아는 인간이었다.

그러니 맨몸으로 와서 거래니 뭐니 떠들었겠지.

이런 부류는 붙잡고 입씨름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피식 웃은 수장은 이안의 목에서 천천히 낫을 거뒀다.

그러고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누그러진 말투를 구사했다.

“그래? 네놈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단 말이지.”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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