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이안이 단박에 여자를 알아봄과 동시에.
“테사 알리노헤르!”
똑같은 이름을 날카롭게 부른 클로에 교수가 여자 앞을 가로막았다.
클로에의 표정은 험악했다.
숫제 원수 보듯 했고, 알리노헤르란 성에서 오는 친밀함 따위는 일절 없었다.
그 알리노헤르 가인데.
‘알리노헤르 가’는 살리카의 직계를 수호하는 가문이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클로에 교수와 가까울 수밖에 없다.
뿐이랴.
동갑내기에 사촌지간이란 특수성을 고려하면 더욱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둘을 보면 생판 남보다 못했다.
“네년이 대체 왜 여길!”
클로에 교수가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기며 눈꼬리를 치켜떴다.
극명하게 싫어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
클로에의 적의에 새로운 교수, 아니 알리노헤르가 대답은 하지 않고 콧방귀를 뀌었다.
무시였다.
‘여전들 하네.’
두 사람은 전쟁 중에도 틈만 나면 서로를 물어뜯었었다.
적을 앞에다 두고도 서로에게 칼춤을 춰댔으니 오죽할까.
딱 그만큼의 증오를 가진 관계였다.
‘사실 클로에 교수님이 싫어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테사, 그녀는 사냥꾼이란 이름처럼 살리카 가주의 ‘정찰견’이다.
가주가 조사해 보라는 것에 대해 정보를 모으는.
문제는, 이 조사가 언제나 피바람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물론 살리카 가주의 묵인도 한몫했지.’
살리카 가주는 신중하다 못해 돌다리가 깨질 때까지 두드리는 성정이다.
그래서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가주의 ‘조사’는 이미 상대를 척결하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주인의 뜻이 그러하니 명을 받은 수족들의 태도야 말해 무엇하랴.
상대를 이미 죽은 자 취급했다.
안하무인에 무자비함이 더해진 대환장의 조합이 되는 건 당연지사.
이것이 어떤 결과를 부르는지 아는 클로에 교수의 눈꼬리가 하늘까지 치솟았다.
“당장 돌아…….”
달칵.
흐름을 끊으려는 것처럼 마차 문이 열렸다.
이번에 내린 것은 승급 시험을 마치고 돌아온 폰투스였다.
폰투스는 우아하게 고개를 숙여 예를 다했다.
“클로에 교수님.”
“아, 시험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니?”
“예. 방향이 같아 알리노헤르 교수님과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폰투스, 에르그 1성이 되었다고 들었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제 영광은 교수님들께서 잘 가르쳐주신 덕분이지요.”
“겸양은 되었다. 알아서 컸지, 잘 가르치긴.”
클로에 교수는 폰투스에게 들어가 보라는 손짓을 했다.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더 비비고 있을 명분이 없자 폰투스는 슬쩍 새로운 교수, 아니 알리노헤르 교수를 쳐다보았다.
찰나 마주친 시선에서 오가는 눈짓들이 되게 묘했다.
“그럼.”
폰투스는 더 뭉개지 않고 A반 기숙사 쪽으로 걸어갔다.
끼어들 제3자가 없어지고 나자 클로에 교수는 찬기 서린 입을 뗐다.
“다시 묻지. 여긴 어인 행차 시지?”
“패배자 따위에게 할 말 없는데.”
“아하. 잘난 척은 있는 대로 하시던 중앙 아카데미 교수께서 된통 미끄러지셨나?”
“내가 너처럼 머저린 줄 알아, 클로에?”
“머저린 아니겠지. 알리노헤르 넌 아예 뇌가 없으니까.”
“넛!”
“시키는 것밖에 못 하니, 매년 있는 교수 자질 평가에서 날 이긴 적이 없지.”
클로에 교수의 도발에 알리노헤르가 그녀를 표독스럽게 쏘아보았다.
선명한 증오, 그리고…….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따로 뗄 수 없게 엉겨있었다.
그 거무튀튀한 감정을 이안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내.
“후우.”
심호흡 한번.
딱 한 번의 숨만으로 알리노헤르는 금세 얼굴을 무표정으로 바꾸었다.
자신의 감정을 갈무리하는 솜씨가 퍽 예사롭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안이 익히 기억하는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를 죽이려 결성된 살리카의 암살 부대 ‘레퀴에스’의 대장인 그 모습으로.
‘저게 교수의 민낯이지.’
심장 없는 골렘처럼 감정이 없는 암살자.
다만, 클로에 교수 앞에서만큼은 여전히 예외였다.
“뇌가 없어도 클로에 너보단 낫지. 난 중앙에서 잘린 게 아니니까.”
“잘린 게 아니면 좌천? 푸흡. 이를 어쩌나.”
“클로에, 괜히 할 말 없으니까 물고 늘어지는 거 추하다. 너도 내가 왜 여기 왔는지 다 알고 있을 텐데.”
“하! 쥐새끼처럼 염탐하러 온 게 자랑할 만한 일이던가?”
“가주님의 명을 받은 거니 당연히.”
“꺼져. 여긴 너 같은 살인자가 조사할 것 따윈 없으니까.”
“클로에 살리카, 아주 오래전에도 한 말을 또 하게 돼서 유감이야.”
알리노헤르는 짧은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느릿한 손짓에서 드러난 감정은 조소였다.
“내게 명령하려면, 자격을 갖춰. 살리카라는 성 말고 제대로 된 자격을.”
“…….”
“그러지 않으면.”
알리노헤르가 냉랭한 클로에 교수의 어깨를 짚었다.
그러고는 귓가에 입술을 붙이고선 속살거렸다.
“10년 전 ‘그때’처럼 지키지 못하게 될 거야. 네가 아끼는 제자를.”
경고라도 하듯 알리노헤르의 눈길이 이동했다.
3층 창틀에 턱을 괴고 있는 이안에게로.
이안과 부러 눈을 맞부딪힌 알리노헤르는 입가를 건조하게 찌그러트렸다.
‘내 표적이 너구나.’라고 다시금 확인하는 듯한 모습.
그 속에는 오로지 어긋난 흥미만이 담겨있었다.
<반푼이 예언자, 다리 한 짝만 나 주라. 그럼 5분간 살려줄게.>
섬뜩한 제안을 하면서도 환하게 웃던 어떤 때처럼 말이다.
이안은 그 안색을 찬찬히 주시하다가 알리노헤르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표적 확인은 잘하셨냐는 안부 같은 미소였다.
“알리노헤르 교수님, 반갑습니다.”
입만 벙긋거렸는데도, 이안의 의사는 명확하게 알리노헤르에게 전달되었다.
표적의 도발에 짜증 난 모양이다.
알리노헤르의 눈가가 패일 정도로 깊게 꿈틀거렸다.
“이안 뷔트시겐.”
“아, 교수님을 위해 저희 C반이 조촐한 축하선물을 마련했습니다.”
이안은 알리노헤르가 입을 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유들유들함이 묻은 오른손을 대강 들어 올렸다.
이안의 신호에 맞춰, 아이들이 손에 든 올드 로즈를 창밖으로 뿌리기 시작했다.
흩날리는 꽃잎은 흡사 재 같았다.
알리노헤르의 발치로 꽃잎이 쌓이며 더 그렇게 보였다.
어쩐지 뼛가루 같기도 했고.
그래선지 꽃잎을 털어내는 알리노헤르의 안색이 묘했다.
그 낯짝을 보며 이안은 입꼬리를 휘었다.
가시는 걸음걸음 꽃잎을 지르밟고 지옥으로 꺼지길.
* * *
‘명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딴 비루한 곳에.’
알리노헤르는 눈가를 찌푸리며 고개를 모로 꼬았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카데미의 위치도, 답지 않게 정경이 고풍스러운 것도, 무엇보다 클로에를 봐야 하는 게 끔찍하게 싫었다.
클로에의 ‘ㅋ’만 입에 담아도 두드러기가 날 것 같았으니까.
이만으로도 환장하겠는데…….
“쯔읏.”
여기서 저 비루먹은 것들을 가르쳐야 한다니.
알리노헤르는 얼굴을 구기며 C반 학생들을 노려보았다.
저것들이 클로에의 제자라는 것만으로도 없던 호감이 뚝뚝 떨어졌다.
가뜩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데, 저것들은 출신마저 비천했다.
어차피 가문으로 돌아가면 고기 방패로나 쓰일 것들.
쓰레기보다 못한 것들이라, 저것들한테 시간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낭비니까.
치이이익.
알리노헤르는 손수건을 꺼내 펼치고는 향수를 진하게 뿌렸다.
그런 뒤 주변의 냄새를 맡지 못하겠다는 듯 손수건을 코로 가져다 댔다.
이제 살 것 같다는 몸짓.
그녀는 일련의 행동을 마치고서야 작게 입을 열었다.
“서로 시간 낭비할 필요 없겠지.”
“……?”
“요는 이거다. 교육이라는 건 각자의 수준에 맞아야 한다는 것.”
“…….”
“분수에 맞지 않는 수업은 가르쳐서도, 배워서도 안 된다는 뜻이지.”
알리노헤르 교수의 말이 끝나자, 아이들의 한숨이 길어졌다.
아이들의 표정이 썩어가든 말든.
알리노헤르는 눈알만 굴려 약제실의 이곳저곳을 훑었다.
가지런히 놓인 비품들이 오래된 것을 보니, 그동안 수업을 어찌했을지 알 만했다.
정말, 에루리안에 어울리는 하등한 수준이었다.
비소를 날린 알리노헤르는 잘 떼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었다.
“이 에루리안의 방식도 그러한 줄 안다.”
“하지만 그 방식도…….”
“사족은 필요 없다. 너희들의 의견을 듣고자 말한 게 아니다. 내 방침을 전달하는 것일 뿐.”
알리노헤르는 아이들에게서 몸을 반쯤 돌린 채로 손을 대강 휘저었다.
입 다물라는 뜻이었다.
이에 아이들은 허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알리노헤르는 다시금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상급자의 냉엄함에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바로 꼬랑지를 내리는 꼴들 좀 보라지.
투지도, 패기도 없었다.
“하여 나는 너희들의 수준에 ‘딱’ 맞는 것만 가르칠 것이다.”
알리노헤르는 숨도 쉬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
“어차피 네놈들은 가문으로 돌아가 봐야 ‘고기 방패’로 쓰일 뿐이니 말이다.”
“…….”
“그러니 더 배워 뭐할까.”
알리노헤르가 경직된 아이들을 낮잡는 눈빛으로 스쳐보았다.
오래 보지도 않았다.
시선이 마주치면 눈알이 썩기라도 하는 것처럼 굴었다.
“다만, 고기 방패로라도 쓰임이 있으려면 목숨줄이라도 질겨야겠지.”
알리노헤르는 불길을 일으켜 약제실 왼편의 네 번째 책장을 뒤엎었다.
와르르.
책장에 정리되어 있던 것들이 전부 바닥에 쏟아지며 뒤섞였다.
그 재료들을 알리노헤르는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러 가지 물약에 쓰이는 재료들이다. 아무리 멍청해도 이미 내 의도를 파악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알리노헤르의 시선을 따라 아이들이 바닥을 응시했다.
각종 씨앗, 뿌리, 이파리, 내장 조각, 뿔 등 식물과 동물을 총망라한 재료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어질러졌다면 다음 수순은 치우는 것일 터.
역시나.
“이것들이 네놈들의 목숨줄을 이어가도록 만드는 것이니. 열과 성을 다해 분류하고, 전부 외워두도록.”
알리노헤르는 자율 수업을 명한 뒤 더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이쯤 되니 아이들은 허탈함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저.
‘마가 꼈나 보다. 치유학 교수들은 왜 다 저 모양이래?’
‘그니까. 진짜 재수 없다.’
‘망조가 들었다, 망조가. 살풀이라도 해야 하나.’
이런 눈빛만 주고받을 뿐이었다.
단추 구멍이라도 아이들의 기색이 보일 법하건만.
알리노헤르는 철저히 무시하며 감시 대상인 이안에게 시선을 두었다.
뷔트시겐 가주의 약점.
뭐라도 꼬투리를 잡아야 그자의 모가지를 비틀 수 있을 텐데…….
어제와 오늘, 관찰한 바로는 딱히 책 잡을만한 게 없었다.
‘……묘하군.’
게다가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 수업만 해도 그랬다.
제 말에 따라 다른 아이들은 수시로 표정이 바뀐 반면, 이안은 줄곧 무표정이었다.
어디 한 번 계속 떠들어보라는 듯이.
마치 그 모습에서 살리카 가주가 엿보였다.
배부른 고양이처럼 느슨한 태도인데, 제 모가지를 쥐고 있는 것 같달까.
‘흠. 역시 직계란 건가.’
이 똥통에 있어도 격을 감추지는 못했다.
까놓고 말해 살리카가 아닌 게 조금 아까울 정도였다.
한데 왜…… 저런 적자를 뷔트시겐 가주는 여기에 처박아 놓은 걸까.
의문이 들긴 했지만 살리카로서야 다행 아니겠는가.
이딴 곳에선 자질을 꽃피우지 못할 테니까, 위협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만하면.’
자연스레 이안을 관찰했으니 더는 교실에 머물 이유 따위가 없었다.
교수 노릇이나 하려고 이 에루리안에 온 게 아니었으니까.
알리노헤르는 흘끗 이안을 한 번 더 보곤 교실을 나섰다.
이안은 멸시가 묻은 그 뒤태를 말끄러미 직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