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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114화 (114/214)

제114화

“아무래도 여기부터는 용암이 솟구치는 자리를 예측해봐야겠다.”

출발 전에 지켜본 바론 그랬다.

두 번째 기암절벽까지는 용암이 대체로 조금 먼 곳에서 분출되었었다.

그런데 이후부터는 교묘하게 기암절벽 근처에서만 생성되었다.

계속 지금처럼 가다간 용암에 순삭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꽃다운 청춘에 비명횡사할 순 없잖은가.

무대책에 예측 한 스푼을 얹어야 할 순간이었다.

이안은 제 옆에 딱 붙어 따라오는 사냥개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자 사냥개가 뭔가를 기대하듯 눈을 반짝거렸다.

“코르키.”

[크륵.]

“잿불의 일렁임을 시전해 봐.”

[크르륵.]

잿불의 일렁임.

시전자의 반경 5m 내에 있는 불길을 감지하는 기술이다.

누군가의 기술로 인한 것이든, 촛불이든, 부싯돌에서 튀는 불꽃이든.

불 속성을 가진 것이라면 전부 추적이 가능했다.

사냥개의 눈에는 지도처럼 불길이 붉은 점으로 찍혀 보이니까.

콰광.

이안의 지시에 사냥개가 은색 털을 바싹 세우며 앞발을 세게 굴렸다.

그러자마자 하얀 귀가 불그스름하게 변하더니 그 주변으로 구름이 몽글몽글 피어났다.

허공을 동동 떠다니는 희뿌연 뭉게구름.

그것들이 빙그르르 돌면서 천천히 팽창하고 수축하길 반복했다.

“코르키, 지도에 용암 기둥이 점으로 찍혀?”

[크르르르륵.]

“아, 용암이 가까이 오면 찍힌다고?”

운이 좋았다.

잿불의 일렁임을 써먹을 수 있다는 얘기였으니까.

5m 내의 불길 감지라는 거리 제한이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한 경우였다.

천 길 낭떠러지에 있는 용암은 제외되고, 근접한 용암 기둥은 표시되니까.

“그럼 수고스럽겠지만 부탁한다.”

[크륵!]

사냥개는 듬직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

방심은 사고로 이어지니까.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위협을 염두에 두며 조금씩 전진해나가길 수십 분.

사냥개의 활약으로 여섯 번째 기암절벽까지 다소 수월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그러게. 슬슬 끝이 보인다.”

레브의 대꾸에 이안은 김이 폴폴 나는 녀석의 팔을 쳐다보았다.

어깻죽지부터 손끝까지 땀으로 푹 절어진 채였다.

평소에는 더위를 타지 않는 녀석인데 이번만은 상태가 참 별로였다.

“근데 레브. 지금 마력은 어때?”

“후훗. 나야 아직 거뜬하지. 내 마력량 알면서. 너야말로 괜찮냐?”

“이 형님이야말로 밤새도록 쓸 수 있지. 마력핵이 없어도 천재였던 이 형님에게 쓸데없는 질문을.”

힘든 상황에서도 이안이 티를 내지 않자 레브가 흘끔 곁눈질했다.

원래도 피부가 창백한 편인데 이안의 안색이 더 허예져 있었다.

“…….”

사실 오는 내내 가장 많이 마력을 소진했던 건 이안이었다.

흙이 더 단단하게 뭉쳐지도록 흙길에 풍압을 덧댔지.

파도의 보호막의 온도를 낮추느라 계속 바람을 주입했지.

끊임없이 마력을 운용해서 많이 지친 상태일 것이다.

그런데 괜찮기는.

하여튼 힘든 거 하나는 감쪽같이 감추려 한다.

겉으로 드러내고 투덜거리면 죽는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말이다.

갖다 팔아도 은화 한 개 안 나올, 저 망할 놈의 ‘난 괜찮아’ 병.

레브는 인상을 구기며 이안에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힘들면 빼지 말고 말해. 치유사 뒀다 뭐 하냐.”

“아이고, 동생의 고혈을 짜기는 싫습니다.”

“지랄한다, 또.”

둘이서 아웅다웅하며 쫀득하게 말을 치는 사이.

[크륵.]

앞을 주시하던 사냥개가 적황색 귀를 옆으로 젖히며 3시 방향을 가리켰다.

용암이 나타날 거라는 신호.

쏴아아아아아.

이에 루하흐들이 즉각 파도의 보호막을 온전히 3시 방향에 집중시켰다.

방어 태세가 갖춰진 즉시였다.

용암 기둥이 맹렬하게 치솟으며 파도와 뒤엉켰다.

밀어내는 파도와 틈을 비집으려는 용암의 엎치락뒤치락.

치열한 공방전은 한동안 끈질기게 이어졌다.

하지만 이안의 바람이 더해진 거센 물살을 용암이 이길 순 없었다.

꿀렁.

순식간에 위력이 약해진 용암 기둥은 술에 취한 것처럼 휘청거렸다.

그 과정에서 찐득한 쇳물이 연거푸 토해졌고, 이내 용암은 사그라들었다.

“후우.”

한고비 넘겼다 싶어 이안의 목구멍에선 짧은 숨이 굴러 나왔다.

그런데 그 꼴은 눈꼴시려 못 보겠다는 듯.

촤아아아악.

시퍼런 용암 기둥이 또다시 솟구쳤다. 막 불길이 사그라든 자리에.

뿐이랴.

딛고 있는 발판 밑동에서도 기둥 하나가 더 생기며 용트림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한데 이마저도 그게 끝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크르르륵!]

점이 겹쳐 보인 탓에 예측이 늦었던 사냥개가 새된 목울음을 토해냈다.

그 울음이 닿은 곳.

단단하던 흙길이 뚫리며 앞쪽 발판이 무너져 내렸다.

이안의 발 바로 앞이었다.

“이안!”

소리 없이 낙하하는 흙덩이를 따라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드러났다.

식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뒤로 천천히 물러나는 이안을 보며 아이들이 숨을 미약하게 내뱉었다.

솜털 하나만 얹어져도 너덜거리는 발판이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

그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신중해서 나쁠 것 없지만.

문제를 복구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이안은 차분하게 지시를 내렸다.

“난 괜찮으니까 일단 빨리 발판부터 보강…….”

이안의 말보다 발판이 꺼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절벽 쪽에 붙어 있던 나머지 발판마저 통째로 뜯겨나간 것이다.

“어어억!”

삽시간에 이안은 물론 아이들 모두 발판째로 자유 낙하를 했다.

* * *

“이안 진짜 대박이다.”

“대-박이지. 그 상황에 어떻게 바람 그물 만들 생각을 하냐?”

“그니까. 나는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생각도 안 들던데.”

“너만 그랬겠냐? 아마 다들 그랬을 거다.”

“나 완전 감동 먹었잖아. 이안이 만든 그물이 나를 감싸는 순간.”

“완전 동감.”

“근데 그 그물 크기 봤냐? 우리뿐 아니라 발판까지 전부 감싼 거.”

“제정신 차리고 보니까 기암절벽과 기암절벽 사이에 촘촘히 이어져 있더라.”

“크으으. 예술이었지.”

아이들은 소금에 절어진 배추 꼬락서니를 하고서도 입을 쉬지 않았다.

죽을 고비를 넘겨서 과도한 흥분 상태였으니까.

그로 인해 맞은편 절벽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진즉 뒷전이 되어버렸다.

“이제 알겠다. 호숫가에서 그렇게 바람 그물만 짜대더니 다 큰 뜻이 있었어.”

“우리 형님 아니냐. 형님께선 다 계획이 있으시다.”

“아암. 어쨌든 이안 아니었으면 우리 한날한시에 세상 떴던 거?”

“말해 뭐해. 굳이 너랑 같이 묻힐 뻔했다.”

아이들의 찬양이 끊이지 않자 녹스가 신이 나서 코를 벌름거렸다.

콧구멍 넓이가 코끼리도 집어넣을 정도로 무한정 늘어나 있었다.

[푸흘. 푸흐흐흘.]

저리 좋을까.

가만 보면 참 칭찬에 약하다.

그래도 이번만은 왜 저러는지 알기에 이안은 좋아죽는 녹스를 지켜봐 주었다.

‘발판이 꺼졌을 때 녹스가 없었다면…….’

녹스는 참변을 막아준 숨은 공로자였다. 아이들은 모르지만.

촤아아아악!

자유 낙하에 몸이 기운 즉시였다.

이안은 본능적으로 바람 그물을 만들어냈다.

설백색 안개가 섞인 그물은 습기를 머금으며 기암절벽에 거칠게 박혀 들었다.

물기로 인해 예상보다 더 단단히 흡착된 그물.

이제 발판을 위로 끌어올리기만 하면 되는 건데.

화르르르륵.

망할 용암이 솟구치면서 그물의 왼쪽 끝자락을 그대로 관통해 지나갔다.

트득. 트드득.

그물이 뜯기는 소리가 사신의 낫처럼 이안의 고막을 음산하게 할퀴었다.

어떻게든 손상된 부분을 메워보려 했지만…….

“후우.”

마력이 거의 소진된 탓에 그럴 수가 없었다.

기암절벽을 통과하며 써댄 마력에 더해, 그동안 짜본 적 없는 크기의 그물을 짰으니.

그래도 남은 마력을 박박 쥐어짜 구멍을 기워보려 했더니만, 젠장맞을.

또 다른 용암 기둥이 일어나, 끊어질 듯 붙어 있던 그물의 끝을 불살라버렸다.

“……!”

역시 불은 제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

이안이 이를 으득 갈면서 두 번째 자유 낙하를 맛본 순간이었다.

<염병할. 보고만 있으려고 했더니.>

녹스의 나직한 음색이 울림과 동시에 오색 그물이 발판 밑동을 뒤덮었다.

검은 날개로 만들어낸 촘촘하고 두툼한 그물.

그것은 탄탄한 생명줄이 되어 이안과 아이들을 지옥 문턱에서 끌어올렸다.

파닥파닥.

이안은 우쭐대며 물결치는 녹스의 날개깃에 눈꼬리를 접었다.

새삼 다시 느낀 거지만 역시 대단하다.

모두의 목숨줄을 살리지 않았던가.

하여 이안은 녹스의 날개 끝을 살살 문질러 보았다.

무형의 바람이 손끝을 타고 비단처럼 사르르 빠져나갔다.

-제가 원래 이런 말을 자주 하는 편이지만, 오늘도 하겠습니다.

[무엇인가?]

-고맙습니다, 스승님.

[에헴. 웬만해서는 성장하는 너희들의 일에 끼어들지 않으려고 했으나, 죽어버리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해서 부득불 참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참견이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내 이번 공치사만은 기꺼이 받아주지. 10초 주겠다.]

개입과 관망.

이 사이에서 녹스의 날개가 한정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평소 녹스는 이안이 하는 일에 깊숙이 개입하지 않는 편이다.

항상 관망하는 자리에서 저를 필요로 할 때만 소극적인 간섭을 하지.

난관이 있든 실패하든 스스로 헤쳐나가며 성장하길 바라서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적극적인 개입을 한 후라선지 칭찬 또한 대놓고 수용하고 있었다.

-스승님 덕분에 앞으로도 계속 삼시세끼를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호그의 휘파람에서 밥 한 끼 못 먹고 죽나, 아까 떨어지면서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그것이 칭찬이냐?]

-이거 아닌가?

[됐다, 이놈아. 네놈한테 뭘 바랄까. 입 그만 털고 마력 보충이나 더 해라.]

녹스가 이안의 등을 바람 날개로 툭툭 밀어냈다.

아이들 옆에 가서 쉬라는 뜻이었다.

그에 이안은 빼지 않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이들 곁으로 다가갔다.

* * *

두어 시간 후.

저벅.

이안 일행은 최종 목적지인 용암산 초입에 발을 내디뎠다.

시뻘건 산은 흡사 작열하는 태양 같았다.

울컥울컥 쏟아내는 용암과 지글지글 끓고 있는 수증기.

덕분에 그 화기가 고스란히 피부로 전해졌다.

따끔거릴 정도로 과한 열기에 레브가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란 거지? 호랑줄무늬 물고기가 있는 곳이.”

“어. 서쪽 11시 방향의 라젤린 호수에 서식해.”

“물고기가 코앞에 있는 걸 보니까 이제 거의 끝나가는구나, 싶다.”

“여기까지 오는데 한 일주일은 걸린 것 같다.”

“진짜. 알리노헤르 때문에 종일 이게 무슨 개고생인지. 아, 그 진상.”

단순히 과제가 어려워서 줄창 교수 욕을 하는 것이랴.

알리노헤르가 준 과제의 의도가 불순해서 그런 거였다.

실패할 것이 분명한 걸 내어주고 그걸 빌미로 본때를 보이려는 거니까.

‘그것도 해내지 못한 비루한 것들이 어디서 감히 수업의 수준을 논해?’라는 식으로.

이안은 알리노헤르가 실패를 예지한 원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푸른 불을 휘감고서 무리 지어 다니는 불 정령에게로.

“초열의 이그니스.”

그들은 산의 초입과 라젤린 호수를 왕복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순찰이라도 하는 걸까.

삼삼오오 짝을 이뤄 경계하는 모습이 자못 날카로웠다.

형형한 기세를 훑은 이안은 눈가를 가느스름하게 좁혔다.

“방비가 꽤 살벌하네.”

“그러게. 여기까지 그 살기가 느껴질 정도다.”

“호랑줄무늬 물고기를 지키려는 거니까 아무래도.”

“하긴. 이그니스로서는 삼엄해질 수밖에 없지.”

“응. 저들에게 있어 호랑줄무늬 물고기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니까.”

그에 대해 생각하느라 이안의 미간에 주름이 연하게 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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