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115화 (115/214)

제115화

일정 온도 이상을 유지해야만 소멸하지 않는 이그니스.

그들은 1400도라는 초고온을 지켜내기 위해 호랑줄무늬 물고기와 공생한다.

어떤 방식으로냐면.

사냥꾼들로부터 물고기를 보호해주는 대신 온도를 보장받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건 물고기가 가진 속성 때문이다.

바로 증폭.

약초든 독초든 그게 무엇이든 간에, 본연이 가진 속성을 10배로 부풀려주는 속성이다.

‘이 속성으로 인해 물고기 옆에만 있어도 이그니스는 절대 소멸하지 않지.’

세상천지에 제 목숨줄을 방치할 머저리가 어디 있겠는가.

생존을 위해서 이그니스는 호랑줄무늬 물고기를 지킬 수밖에 없다.

이안은 라젤린 호수로 향하는 이그니스 무리를 눈으로 뒤쫓았다.

호수에 가까워질수록 이그니스의 기세가 댕댕해졌다.

원기가 보충되는 것처럼.

이그니스와 이안을 번갈아 보던 레브가 무심히 말을 툭 던졌다.

“이안, 이제 슬슬 털어놓으시지.”

“……어? 뭘?”

“계획이 뭔지 말이야.”

“아.”

“저것들은 약점 파악이 안 되면 못 잡아. 인위적으로 온도가 낮춰지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생존 사냥꾼을 대동하고 저것들을 잡는 거잖수.”

“그러니까 이안 네가 맨몸으로 왔다면 뭔가 염두에 둔 게 있을 거 아냐.”

“하여간 눈치 빠른 놈.”

티를 내지 않고 있다 툭 던지는 게 천부적인 낚시꾼이었다.

미끼를 언제 던져야 하는지 아는 저 능청맞음이란.

하여간 따라잡을 수가 없다.

무튼.

레브 말마따나 정말 맨몸으로 부딪히려고 왔을까.

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오쿨루스 결.’

기술의 유지 시간이 좀 짧긴 하지만…… 초열의 이그니스가 열 무리 정도인 걸 감안 한다면 약점 파악은 금방 할 수 있다.

한 무리당 약점은 하나로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장이 가진 약점이 곧 무리가 가진 약점이니까.

이안의 동공이 전방 20m쯤 떨어져 있는 한 무리에 고정되었다.

총인원은 여섯.

그중 무리의 한 가운데 있는 놈이 대장이었다.

새끼 고양이 크기, 이마에 달린 곧은 뿔, 하얀색 불을 휘감고 있는 몸체.

대장은 다른 놈들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외양을 지니고 있었다.

눈에 띄어서일까, 약점을 감추기 위함일까.

덩치가 육중한 부하들이 촘촘하게 대장을 감싸고 있었다.

이안은 잘 보이지 않는 대장을 한 번 봐보려고 머리통을 이리저리 기울였다.

얼굴 한번 보기 어렵다. 귀하신 몸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예상했겠지만 나한테 저것들을 잡을 비기가 있어.”

“비기? ……설마 했더니 오쿨루스의 결?”

“어. 그거면 한방이야. 약점을 간파할 수 있으니까.”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고선 이안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초열의 이그니스는 약점을 공략해야만 죽일 수 있는 마물이다.

그 외의 공격은 다 무용지물이라는 뜻.

게다가 한 무리에 있는 마물은 거의 동시에 죽여야 한다.

하나가 죽은 후 5초 이내?

그렇지 못하면 그 수가 공격당한 만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급기야는 약점조차 없어져 버린다.

그런 불상사는 막아야지 않겠는가.

이안은 언제나 그렇듯 계획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으로 입을 뗐다.

“일단은 세 개조로 나누자. 나, 너, 올리브.”

“세 무리씩 맡으면 되겠네. 호수로 가는 길목에 있는 열 무리만 잡으면 되니까.”

“하나 남는 건 가장 빨리 이그니스를 해치운 조가 맡고.”

“간단해서 좋다.”

“근데 약점 파악은 한꺼번에 해야 할 것 같은데.”

“지속 시간 때문에?”

“어. 3분이라 되도록 빨리 파악을 하는 게 좋지.”

“그럼 각자 맡은 것만 기억하면 되겠네. 접수했어.”

레브는 시원시원했다.

아무래도 뭔가를 짐작한 뒤부터 저 또한 이에 대해 생각을 해봤나 보다.

이런 면에서는 레브와 대화하면 편하고 빨랐다.

굳이 말을 길게 끌 필요가 없어 대화는 금방 일단락되었다.

이후 이안은 망설이지 않고 오쿨루스의 결을 시전했다.

츠즈즛.

눈 위로 나무 모양의 진이 생기며 시야가 완전히 판이해졌다.

단조롭던 공간의 흐름이 세밀하게 재구성된 것이다.

초열의 이그니스를 구성하는 무수한 마력의 입자들.

실핏줄 같은 붉은 선들이 뒤엉키며 이안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탓에 되레 분간이 안 갔다.

이게 약점인지, 아닌지.

조금 더 정보를 선별해볼 필요가 있었다.

눈가를 좁힌 이안은 최대한 집중력을 끌어올린 뒤, 다시 한번 무리의 대장을 훑어보았다.

꼼꼼히 하나하나 점검해나가던 그때.

유독 연한 점 하나가 이안의 눈에 들어왔다.

저기가…… 놈의 약점이었다.

붉은 선들이 다른 곳보다 더 심하게 엉켜있고, 마력의 농도가 생각보다 짙은 곳.

이안은 약점 파악이 끝나자 바로 아이들에게 전달했다.

“첫 번째 무리는 쇄골, 두 번째 무리는 팔꿈치, 세 번째는…….”

처음이 어려워서 그렇지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열 번째 이그니스 무리까지 파악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50초.

그러다 보니 오쿨루스의 결의 지속 시간이 2분 넘게 남아 버렸다.

“시간이 좀 남는데 어디 한번 저쪽도…….”

이안은 정찰하듯 호수 저 안쪽 용암 바위가 있는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호숫가는 잠잠했다.

어떤 소리도, 어떤 기척도 없었다.

그저 고요히 용암의 화기만 몰아칠 뿐.

이안은 잠시 호숫가에 머문 시선을 끌어당겨 옆으로 틀었다.

아이들이 제비 새끼처럼 저를 바라보며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더 늦기 전에 시작해볼까.”

“좋지.”

“빨리 끝내고 점심 먹으러 가자.”

이안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재빠르게 이동했다.

조를 이뤄 행동하는 모습이 이전보다 더 능숙해져 있었다.

어찌나 일사불란한지.

기사단에서 십수 년은 구른 듯한 단장처럼 보일 정도였다.

* * *

얼마 후 이안 일행은 마지막 이그니스 무리와 맞닥뜨렸다.

그들을 보자마자.

카아아아악!

광분한 초열의 이그니스 다섯 마리가 사납게 포효했다.

울부짖음이 길어질수록 그들 주위로 완두콩만 한 쇳물이 송알송알 맺혔다.

허공에 내뱉어진 수백의 쇳물.

이그니스가 손을 한번 휘두르자, 쇳물이 포물선을 그리며 곧장 그들에게로 비산했다.

“피해! 쇳물이 몸 안에 흡수되면 그대로 터져버리니까.”

“야, 오스틴! 방어막 뒤로 빨리 와.”

“쇳물이랑 최대한 거리를 벌려야겠는데?”

“일단 보호막부터 계속 덧대자. 쇳물에 녹으면 답 없다.”

이안과 아이들은 쇳물을 피해 높다란 대지의 보호막 뒤에 숨었다.

과연 라젤린 호수의 지척에 있는 마물다웠다.

기운이 엄청나게 드셌으니까.

호수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쉬이 처치했던 첫 번째 무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아마 호랑줄무늬 물고기의 특질이 이그니스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겠지.

무한 동력이 있는 이그니스는 거칠 게 없었다.

덕분에 일행은 좀체 공격 기회를 잡지 못하고 방어만 했다.

‘어떻게든 틈을 비집어야 하는데.’

이안이 기회를 노리며 잠시 이그니스를 주시하던 그사이였다.

투둑. 투두둑. 두두두두두.

이그니스가 뿌린 쇳물들이 두더지처럼 땅을 파고들었다.

보통의 쇳물이면 땅을 녹였을 텐데…… 이상하게 아무 반응 없이 잠잠했다.

그렇게 십여 초?

크그그긍.

굉음과 함께 갑자기 땅이 갈라지더니 쇳물들이 마구잡이로 튀어 올랐다.

그와 동시에 씨앗 형태로 발아한 쇳물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무한 증식이었다.

삽시간에 수만 늘어났을까.

쇳물 씨앗 하나가 둘, 셋으로 늘어나며 뭉치는 것도 일순간이었다.

거대한 전투 정령이 된 쇳물 씨앗.

쏴아아아아.

전투 정령은 쇳물을 무한으로 토해내며 용암 해일을 만들어냈다.

그러더니 이내 이안이 있는 곳으로 사납게 쏘아붙였다.

굶주린 아귀처럼 밀려오는 용암 해일.

그것은 단숨에 흙벽을 덮쳐버렸고 방어막을 무너트려 버렸다.

콰르르르르.

이안은 무너지는 흙벽을 피한 뒤 황급히 방어선을 재구축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얼마 안 가 쩌적쩌적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는 얼마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이맛살을 구긴 이안은 타개책을 마련해보려는 듯 기민하게 주변을 살폈다.

흩뿌려진 쇳물 씨앗들이 또다시 뭉쳐지고 있었다.

이대로 두었다간 해일에 잠식당해 익사할 판이었다.

“안 되겠다. 일단 씨앗부터 잘라야겠다. 전투 정령이 더 만들어지기 전에.”

“알았어.”

이안의 말이 떨어지자 아이들이 즉각 씨앗 제거에 들어갔다.

서걱서걱.

아이들의 무자비한 손길에 쇳물 씨앗의 밑부분이 쑹덩쑹덩 잘려나갔다.

신속하게 벌초 작업이 이루어지길 얼마쯤.

빠르게 제거되는 씨앗을 보며 이안은 다음 대책을 짜냈다.

‘아무래도 이 해일을 이용하면 될 것 같은데…….’

해일 때문에 이그니스에게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약점 공격이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방어하기만 급급할 뿐이지.

이런 바에야 차라리 해일을 방어막 삼아 앞으로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나머지는 이대로 계속 씨앗을 자르고, 오스틴과 에드는 나를 따라서 해일을 밀어낼 막을 만들자.”

“접수했어.”

“빨리빨리 움직이자.”

할 일이 정해진 즉시였다.

이안과 아이들은 가지치기와 해일 밀기를 병행하며 쭉쭉 나아갔다.

거침없었다.

해일을 방어막 삼아 전진하다 보니 어느덧 이그니스 무리의 지척.

조그매서 보이지 않던 대장이 드디어 시야에 들어왔다.

하지만 부하들 때문에 약점 부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안은 연거푸 해일을 밀어내며 때를 기다렸다.

지리멸렬하게 공방전이 이어지길 한참.

키에에에엑!

이 상황에 화가 난 모양인지 대장이 뿔을 벌겋게 달구며 울부짖었다.

새된 울음은 짓이길 듯 위압적이었다.

그 위압감에 몸을 부르르 떤 부하들이 몸을 꿈쩍꿈쩍 움직거렸다.

지금까지 중 가장 큰 동작이었다.

그에 따라 부지불식간에 대장의 약점이 드러났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이안은 빠른 어조로 아이들을 향해 외쳤다.

“지금이야. 발등을 공격해.”

지시가 떨어짐과 동시에 아이들은 원거리 공격을 퍼부었다.

가시, 채찍, 사슬 할 것 없이 다양한 공격이 이그니스들을 몰아붙였다.

아이들이 협공하는 그 순간에 맞춰.

이안 역시 주변의 바람을 움켜쥐듯 끌어모았다.

대기가 한데 응축되며 고이는 열기와 그것이 이지러지며 발생하는 습기.

두 개가 공명하며 일으킨 바람은 단단하게 뭉쳐져 수십의 탄알이 되었다.

쇄액.

허공을 가른 탄알들은 꿈틀꿈틀 움직임을 재개한 이그니스의 발등을 관통했다.

연달아 다섯 차례나.

키아아아악!

발등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자 이그니스들이 몸을 기괴하게 뒤틀었다.

숨통이 잘렸으니 오죽할까.

대기를 긁는 쇳소리를 토해내다 이그니스들은 한 줌의 잿가루가 되어버렸다.

“……잡았다!”

아이들의 함성이 우레처럼 호수를 가득 메웠다.

장닭들이 한꺼번에 소리를 질러대니 어땠겠는가.

군부대가 따로 없었다.

그런데 이 진한 걸쭉함 따위 제가 휘저어놓겠다는 듯.

“이아아아안.”

올리브가 다시 없을 깨발랄한 모습으로 뛰어왔다.

표정이며 발걸음이며 모조리 하늘 끝에 걸려있었다.

그건 레브나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이안은 아이들에게 웃어 보였다.

“수고했어. 이제 비늘을 구해 돌아가기만 하…….”

이안의 말은 채 끝을 맺지 못했다.

그그그그긋.

쇳물이 해일처럼 일며 용암 바위가 쩌억 하고 갈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음산하게 모습을 드러낸 건 거대한 불 정령이었다.

“……?!”

“헉. 저거 이그니스의 우두머리……?”

“카, 카르디아 2성…….”

격노 상태인 우두머리가 뿜어내는 서슬 퍼런 기운.

그 여파로 이안과 아이들은 벽에 부딪힌 것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

“아아아악!”

어떤 대비를 할 새도 없이 강대한 기운에 노출된 탓일까.

온몸 여기저기에 화농 자국이 생기며 피부 가죽이 벗겨졌다.

노란 고름이 일 거나 살이 패인 아이들도 생겨났다.

“대체 우두머리가 왜 지금……?”

우두머리의 등장에 당황한 이안은 황급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양이 중천에 떠 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분명 해가 짱짱하게 걸려있었다.

말이 안 됐다.

우두머리는 빛이 있으면 절대 용암 바위 밖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법칙과도 같은 거였다.

그래서 아침부터 서둘러 온 거였데…….

“대체 왜……?”

이안은 왼쪽 눈을 꾹 누르며 망연자실하게 우두머리를 올려다보았다.

오쿨루스의 결이 박힌 왼쪽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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