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이안은 알리노헤르 교수의 책상에 유리병을 내려놓았다.
병 안에는 비늘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호랑이 털에 난 줄무늬와 똑같은 비늘이.
그 비늘을 확인한 알리노헤르의 이맛살에 옅은 고랑이 패였다.
……놀라움, 아니 마뜩찮음?
알리노헤르가 찰나 내보인 감정은 분명 그것이었다.
실패하라고 내준 과제에 보란 듯이 성공했으니 저런 반응을 보일 밖에.
하여튼 꼬인 심사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이안은 알리노헤르의 이맛살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능청맞게 말문을 열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호랑줄무늬 물고기의 비늘입니다.”
“흠. 생각보다…….”
“빨리 구해오지 않았습니까.”
“…….”
“저조차도 놀랐습니다. 우리 애들이 어찌나 훨훨 날아다니던지.”
“…….”
“그 덕에 이 어려운 걸 단시간에 구하는 쾌거를 이뤄냈지요.”
팔불출이 된 이안은 교수가 입을 다물고 있건 말건 제 할 말을 이어갔다.
“이만으로 충분한 답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약속대로 교수님께서 보여주실 차례입니다.”
“내가 보여줄 차례다?”
이안의 말끝을 되새김질한 알리노헤르가 유리병을 들어 올렸다.
매끈한 표면을 문지르는 성긴 손길이 뭐랄까.
무언가를 가늠해보는 것 같았다.
그게 뭘까 했더니…….
“좋다. 기꺼이 해드려야지. 이렇듯 귀한 비늘도 구해왔는데.”
비늘을 쉬이 구해온 것이 구미를 당기게 한 모양이다.
순순히 대꾸한 알리노헤르의 입매가 위로 한껏 끌어올려 진 것을 보면.
알리노헤르의 급격한 표정 변화에 이안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저 여자가 뭔가에 흥미를 보여 좋은 결과를 보인 적이 있었던가.
전혀 없었다.
누군가가 반드시 죽어 나가면 죽어 나갔지.
대체 또 뭔 허튼 생각을 하는 건지.
불길한 예감에 이안은 알리노헤르를 뚫어지게 보았다.
“하루 만에, 것도 우두머리까지 나왔는데 다들 멀쩡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지.”
“…….”
“생존 사냥꾼도 대동하지 않았는데.”
알리노헤르는 고개를 모로 꼬고 이안을 쳐다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고무적인 게 아니라 실로 놀라운 성과였다.
C반의 평균 전력이 어떻던가.
높게 쳐줘서 페이라조 2성이었다.
한데 그것들을 이끌고 이런 결과를 도출해내다니.
설령 에르그 3성일지라도 초열의 우두머리가 나온 이상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참 흥미롭군.”
그에 대해 여러 차례 곱씹던 알리노헤르는 비죽 입꼬리를 올렸다.
과제 하나로 생각지도 못한 소득을 얻었다.
표적을 단순하게 약점으로만 볼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안에게는 확실히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미칠 듯한 성장 속도 이외의 다른 무언가가.
그렇담 조금만 더 파보면 살리카 가주에게 보고할 게 나오지 않을까.
“꽤나 흥미로워. 이안 뷔트시겐 너라는 인물이 말이지.”
알리노헤르가 재밌다는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이안은 진상녀의 관심은 사절이라는 듯 눈꼬리를 접었다.
물론 밖으로 내뱉는 말은 속마음과 전혀 달랐지만.
“아, 제가 교수님의 무료한 일상에 재미를 더했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교수님 덕분에 유익한 경험을 했으니까요.”
“그리 마음에 들었다면 앞으로도 이런 과제를 종종 내주어야겠군.”
“그 또한 기대 하겠습니다. 이번처럼 저희에게 영광이 될 테니.”
“…….”
이안이 ‘영광’을 힘주어 말하자 알리노헤르의 이맛살이 꿈틀했다.
그 단어가 목구멍에 콱 막히는 모양이다.
하긴.
몇 명쯤 다치거나 골로 가길 바란 결과와 반대가 됐으니 저러는 거겠지.
실제로 에루리안에선 지금 C반이 화제의 중심이었다.
생존 사냥꾼 없이 초열의 정령을 잡았다는 소문이 쫙 깔렸으니 오죽할까.
한두 명만 모여도 입을 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자신도 C반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더러 생겨났고.
이러니 배알이 꼬일 수밖에.
그 속이 훤히 보여 이안은 알리노헤르 보란 듯이 입매를 씨익 쪼갰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
기가 차는지 알리노헤르의 눈가가 양옆으로 쭉 찢어졌다.
눈구멍이 딱 붙은 게 개미핥기가 친구 먹자 할 정도로 볼썽사나웠다.
딱 고만큼의 심보를 가지고 알리노헤르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오래 얼굴 맞대고 있을 사이는 아니니 그만 가보라는 뜻이었다.
“과제도 제출했고, 더는 할 말이 없을 듯싶은데.”
“아, 제가 교수님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군요. 신경 쓰실 게 많으신 분인데.”
“…….”
“불철주야 에루리안 내의 잡다한 것들에 하나하나 참견하시느라 말입니다.”
돌려 까며 염장을 박박 긁는 화법.
모르긴 몰라도 저 말발만은 확실히 카르디아 급이었다.
알리노헤르는 몰려오는 피로감에 이마를 꾹 짚었다.
번번이 이안과 맞부딪히면 속절없이 평정심을 잃고 만다.
클로에를 상대할 때와 똑같이.
누가 그 스승에 그 제자 아니랄까 봐 남의 속 하나는 기가 막히게 뒤집는다.
하여간에 망할 것들.
불편한 심기가 스멀스멀 밖으로 기어 나왔다.
하나 애송이 앞에서 하수처럼 굴 순 없으니 어떻게든 봉합하려 했건만.
“아, 알리노헤르 교수님.”,
소용없는 짓 하지 말라는 듯 이안이 알리노헤르를 불렀다.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한 심정으론 듣고 싶지 않았다.
“……아직 할 말이 남은 건가?”
“교수님 그거 아십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해라. 이런 식으로 자꾸 되묻지 말고.”
“그럼 사양치 않고 허심탄회하게 말하겠습니다.”
이안은 알리노헤르를 똑바로 응시한 채 애초부터 하려고 했던 말을 내뱉었다.
“격이란 건, 혈통이 만들어주는 게 아닙니다.”
“무슨…….”
“그 사람의 언행, 눈빛, 몸가짐, 다른 이를 대하는 마음, 그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갖추어지는 것이지.”
“…….”
“그러니 테사 알리노헤르, 그 격에 맞는 품위를 지키고 싶거든 ‘고기 방패’란 말부터 삼가십시오.”
너, 굉장히 싼 티 나 보인다.
이것의 다른 말이었다.
이에 알리노헤르의 안면이 싸대기를 맞은 것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잔뜩 혈압 오른 인간을 고이 관짝에 묻으려는 심사인 건지.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안이 연속으로 입을 놀렸다.
“잘 모르시는 것 같아 말씀드리는 건데, 약제실의 물품들 말입니다. 교수님이 격에 맞지 않는다며 한쪽으로 치워버린 물품들.”
“그 낡아빠진 것들은 또 왜.”
“교수님 눈에는 그것들이 낡고 비루해 보이겠지만 실상은.”
“실상?”
“무려 초대 황제 때부터 내려온 골동품들이라 그 값을 매길 수조차 없는 물건입니다.”
“…….”
“아마 교수님 가문을 팔아치워도 그만한 물건은 어디 가서도 구할 수도 없다는 말이지요.”
이안의 일침에 알리노헤르의 표정이 후려 맞은 파리 같아졌다.
어찌나 우스꽝스럽던지.
그 낯짝이 아주 볼만해서 이안은 조소를 머금었다.
“귀한 것을 알아보는 안목이 발밑에 달려있으니 보는 내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번 말은 ‘그렇게 눈이 후져서 어디다 쓰냐.’였다.
몰아치는 2연타 공격 후.
이안은 알리노헤르에게 고개를 까닥하고는 시원하게 돌아섰다.
남의 염장을 활활 태워놓고는 저 혼자만 가뿐했다.
어쩜 저리 꼴 보기 싫은지.
알리노헤르는 더럽게 재수 없는 이안의 뒤태를 흉흉하게 째려보았다.
* * *
이안이 떠난 알리노헤르 교수실.
알리노헤르는 적막 속에서 유리병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눈빛만으로 병을 깨버릴 수 있겠다 싶게 아주 오랫동안.
눈알 빠지게 그러다 그녀는 병을 한쪽으로 밀어내며 중얼거렸다.
“애송이처럼 굴 순 없지.”
알리노헤르는 제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빠르게 갈무리했다.
그런 연후 흘끗 쪽문 쪽을 쳐다보았다.
무심히 스치는 시선 뒤, 그녀는 손끝에 만든 불씨로 마법등을 두드렸다.
은은한 빛을 뿜어내던 등의 겉면이 삽시간에 불꽃에 휩싸였다.
교수실을 감싸는 타원형의 불꽃.
불꽃은 일종의 차단막으로 감청이나 탐지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신호였던 모양인지.
끼이이익.
교수실 왼쪽에 난 쪽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문을 열고 교수실로 들어온 이는 폰투스였다.
폰투스의 사뿐사뿐한 걸음은 회색 소파에 다다라서야 멈췄다.
“이안님은 말로 상대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고.”
“주둥이가 살아있긴 하더군. 말하는 족족 상대를 열 받게 하는 것이.”
“예사는 아니지요. 후려치는 솜씨가.”
“그런 놈들은 빨리 뒈지기 십상이지.”
“그렇긴 하지만 이안님은 예외지요. 말발만 믿고 나대는 부류가 아니니까요.”
“꽤나 단정적이군.”
“그동안 많이 당해봤으니까요. 그만큼 이안님을 아는 것뿐이랍니다.”
입술을 샐쭉 접은 폰투스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현재 대척점을 이루고 있긴 하지만 이안은 훌륭한 적수였다.
지략과 힘을 모두 갖추고 있는 매력적인 적수.
이런 까다로운 자를 상대하려면 어찌해야 하겠는가.
신중에 신중을 더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칫 역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번 레기나 때처럼.
그때의 치욕을 맛보지 않기 위해선 동맹을 맺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목표가 동일한 알리노헤르 같은 자와.
계산을 마친 폰투스는 유리병을 보는 알리노헤르 교수를 응시했다.
“알리노헤르 교수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해봐라.”
“교수님께서 이곳에 가주님의 명으로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흠. 그에 관해선 폰투스 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알고 있으나…… 오랜 인연의 값으로 제가 언질을 드리고 싶어서요.”
“언질?”
“예. 이안님을 너무 단순한 시각으로만 보지 마세요.”
“흐음.”
“실은…….”
말을 하다 말고 폰투스가 버릇처럼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올렸다.
나긋한 손길에 붉은 머리카락에서 사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딘가 모르게 매료가 되는 울림.
그 소리에 알리노헤르의 시선이 폰투스의 머리핀에 가 닿았다.
나비 모양의 핀.
핀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정령 보관석이었다.
알리노헤르의 주시가 끈질기게 이어지자 폰투스가 핀을 매만졌다.
“교수님도 알고 계시겠지만 제게 매혹의 정령이 있잖아요.”
“알고 있지. 그 핀에 깃들어 있다는 것 역시.”
기실 폰투스는 매혹의 정령이 없어도 그 자체로 예쁘고 매력적이었다.
아마 스물 정도쯤에는 목을 매는 남자들이 기백은 되지 않을까.
그건 지금의 상황만 봐도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
‘에루리안에 밀려나 있는데도 구혼자가 넘쳐나는 실정이니.’
본디 타고난 게 이럴 진데 매혹까지 더해졌으니 말해 뭐하랴.
에루리안 것들이 폰투스에게 넋을 빼놓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제 정령이 매혹 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알고 계실 테고요.”
“등급이 2성 이상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예. 그게 당연한 건데…….”
“그런데?”
“이안님에게는 매혹의 기술이 통하지 않아요.”
“흔치 않은 경우지만 같은 등급이라도 지배력이 높은 경우엔 면역이 될 수도 있지 않나.”
“아니요.”
“응?”
“이안님은 페이라조 1성이었을 때부터 통하지 않았어요.”
“페이라조였을 때부터?”
알리노헤르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령이 있어야 지배력이라는 것도 생긴다.
그러니 정령이 없는 페이라조 1성은 매혹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한데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다면…….
알리노헤르의 생각을 짚어내듯 폰투스가 명료하게 말했다.
“제가 언질을 드리려는 것도 이것이에요. 이안님에게는 분명 남모르는 비밀이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매혹의 정령이 있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숨긴 것처럼.”
“…….”
“하니 이에 대해 조금 더 파보시는 것이…….”
폰투스가 말을 슬쩍 흘리며 알리노헤르의 기색을 살폈다.
교수는 생각이 많아진 듯 표정에 미동이 없었다.
이는 빠른 시일내에 그녀가 움직임을 보일 거라는 신호였다.
그를 확인하고는 폰투스가 알리노헤르 모르게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순간의 일이었는데…….
약삭빠르게 잡아낸 알리노헤르가 픽 웃더니 손을 내저었다.
같잖아서 봐 주겠다는 의미였다.
“일단 알겠으니 너는 이제 그만 가봐라.”
“……그럼 필요할 때 또 불러주십시오, 교수님.”
축객령에도 목적을 이룬 폰투스는 발걸음 가볍게 조용히 떠났다.
이목을 피하려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한 채였다.
폰투스의 말소리가 사라지고 난 자리.
홀로 남게 되자 알리노헤르는 적색 마법등을 꺼트렸다.
불빛이 꺼지며 차단막도 자동으로 같이 풀렸다.
비밀스러운 만남이 끝났음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
그리고 차단막이 꺼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유리병에 그득한 비늘 중 하나에서 검은 연기가 일었다.
알리노헤르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연기는 소리 소문도 없이 창문을 타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