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123화 (123/214)

제123화

알리노헤르의 죽음이 조용하게 묻힌 그날 밤.

C반 기숙사가 잘 보이는 곳에 시커먼 그림자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았다.

한껏 옹송그린 그림자는 오늘따라 상당히 풀이 죽어 보였다.

“대장, 우리가 호위를 제대로 서고 있는 게 맞습니까?”

검은 두건을 둘둘 감고 있는 남자가 물었다.

그의 질문이 향한 곳으로 네 쌍의 눈이 향했다.

무리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건 꼿꼿하게 서 있는 한 남자였다.

그의 얼굴에는 왼쪽 눈을 덮은 문신이 있었다.

“도련님께서 제 일에는 최대한 관여치 말라고 명하셨다.”

“아니, 그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니잖습니까.”

“크흠.”

“최대한 멀찍이, 아니 에루리안 내 진입 금지란다고 진짜로 그러다 오늘 같은 일이 대체 몇 번째인지.”

“크흐음.”

“걸핏하면 도련님이 위험에 처하시는데, 우리는 뒷북이나 치고.”

“크흐…….”

“대장, 헛기침은 그만하고 대답 좀 해보십시오.”

호위대가 눈을 희번덕대자 알란은 슬그머니 눈알을 옆으로 굴렸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어쩌다 유능의 상징인 친위대가 무능의 상징이 되어버렸는지.

정작 한숨을 쉬고 싶은 건 알란이었다.

이번만 해도 그랬다.

이안에게 일이 터지고 난 후에야 부랴부랴 수습하는 꼴이라니.

“물론 압니다. 도련님의 수업까지 따라다니며 밀착할 순 없다는 것을.”

“그랬다간 도련님께서 대번에 뭐라 하실 거다. 육아하는 거냐고.”

“그래서, 어떤 일에든 개입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하지.”

“그러다 오늘 같은 일이 터지는 거고요. 노상 한 발짝 늦는 반응.”

말을 예쁘게 잘하다 급발진이었다.

주절대는 수하를 알란이 말없이 바라보자, 호위대는 슬쩍 말을 돌렸다.

“진짜 오늘도 대장 아니었으면…….”

“…….”

“대장이 뭔가 흐름이 불안정하다며 호노르관으로 밀고 들어가지 않았다면 또 뒷북쳤을 겁니다.”

이에 대해 곱씹다 보니 또 울화가 치미는지 호위대가 눈썹을 와그작 구겼다.

“아이고. 무능하다, 무능해. 몇 달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봤으면 뒤통수를 확.”

“크흠.”

“솔직히 걱정됩니다. 도련님께서 우리를 어찌 생각하실지.”

“별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호위대의 한탄이 끝나기도 전 불쑥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

그에 호위대는 눈을 크게 뜬 채 소리 나는 쪽을 응시했다.

“이, 이안 도련님!”

“뭘 그렇게 놀라? 뒷담 하다 들킨 사람처럼.”

“어, 어찌 쉬시지 않고 나오셔서…….”

“쉴 수가 있나. 누가 영양가 없는 자책들을 해대는데.”

이안의 정곡에 호위대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도련님 들으라고 한 소리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앉아서 천 리를 보는 이안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괜스레 민망하게.

귓가가 달아오른 호위대는 크게 헛기침하곤 그런 적 없다는 듯 시치미를 뚝 뗐다.

“유능의 상징인 저희가 자책이라니요. 저희 사전에 그런 단어는 없습니다, 도련님.”

“없긴 하지, 대신 땅굴을 파는 건 있어도.”

“땅굴…….”

이건 빼도 박도 못하게 이안이 다 들었다는 증거였다.

호위대는 발뺌이 소용없어지자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도련님이 어떤 분인지 알면서 주둥이 좀 조심하지.’

‘나라고 알았겠냐. 도련님이 우리를 보러 올 줄.’

‘그나저나 대체 도련님은 언제 오신 거냐.’

‘그러게나 말이다. 어떤 낌새도 없었는데…….’

기척 감지라면 어디 내놔도 남부럽지 않은 그들이었다.

추적에 특화된 뷔트시겐인데 두말해 봐야 입만 아플 뿐.

그렇기에 이안의 기척도 당연히 감지해냈어야 했다.

엄연히 등급 차도 존재하는 마당에 더더욱 그랬어야만 했고.

한데…….

어째 매번 도련님의 기척은 놓치고 마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기척이란 걸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의 뒤를 쫓는 것 같달까.

그게 새삼스러워 호위대는 무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안을 살펴보았다.

이안 자체가 밤의 기운에 묻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안이 밤이고, 밤이 곧 이안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선지 저 창백한 얼굴이 노상 도드라져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

오늘만큼은 저 허염이 그 때문이 아닌데.

호위대는 이안의 안색을 보곤 기척 감지나 따질 때가 아니라고 여겼다.

“한데 도련님, 정말로 무슨 일이 있으신 겁니까.”

“딱히.”

“그러시면 저희에게 하명하실 일이라도.”

“하명은 무슨. 그저 그대들과 산책이나 할까 하고.”

“……산책이요?”

생각지 못한 단어에 호위대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피칠갑을 하고 쓰러진 날에 산책이라니.

아무리 치료가 잘 됐다고는 하나 며칠 정양은 필수였다.

이렇게 무리하다 또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염려가 들어 호위대는 바로 반응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렸다.

그러자 이안이 그들의 마음을 읽은 듯이 즉답했다.

“내가 그리 무를까. 다 죽어 나간 전장에서도 혼자 살아 돌아온 사람인데.”

“…….”

“정히 그러면 날 기숙사까지 호위한다 생각해.”

이안은 더 생각할 거 없다는 듯 홱 돌아 앞장서 걸었다.

잔말 말고 따라오라는 몸짓.

이안의 박력에 호위대는 엉거주춤 일어나 그의 걸음을 뒤쫓아갔다.

걱정이 많았던 것치곤 소리 나지 않는 걸음들이 되게 가벼웠다.

신선한 풀을 뜯으러 가는 염소 마냥.

그 모양새가 확연히 연상되어 알란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어쩜 저리 단순들 한 건지.

저것들은 이안과 에루리안을 걷는 것 자체가 마냥 좋은 것이다.

원체 도련님을 좋아하는 놈들이니 그럴 수밖에.

아까는 죽상도 그런 죽상이 없더니만.

‘고새 또 마음이 풀렸네.’

혼잣말하다 알란은 근엄한 표정을 한 채로 이안 곁에 바투 붙었다.

일종의 ‘난 방정맞은 저놈들과 달라.’였다.

하지만 제3자가 보기엔 알란이나 호위대나 피장파장이었다.

쫄랑쫄랑 따르는 어깻죽지가 하늘까지 치솟아 있었으니까.

* * *

이안과 호위대가 도란도란 대화 나누는 모습.

꽤 보기 좋은 광경을 알란은 뒤에서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정말 평범한 얘기들뿐이다.

아침에 먹은 비프스튜가 맛있었다던가.

옆에 있는 놈이 이를 득득 갈아서 잠을 설쳤다던가.

하다 못 해 어제는 화장실을 몇 번 갔다던가.

시시콜콜한 말들을 주워듣다 보니 알란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안이 호위대와 잡담이나 나누려고 왔을까 하는.

왠지 아닐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안이 찾아올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바로 그것.

‘내가…… 그분을 본 것 때문이겠지.’

확신하는 알란의 의식이 빠르게 낮으로 되돌아갔다.

타닷타닷.

알란은 땀에 흠뻑 젖은 채로 그라나토스를 질주했다.

일족을 해하려 했던 자를 가만두는 건 뷔트시겐의 수치였다.

설령 그자가 살리카 가주의 수족일지라도 그딴 건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건 무조건 대갚음해야 한다는 사실일 뿐.

하여 알란은 오직 사냥꾼의 마력 흐름을 쫓는 데만 기감을 집중했다.

그라나토스가 저를 찍어누르는데도 개의치 않았다.

팔다리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물어뜯어야 하는 놈을 두고 그깟 격통쯤.

고통을 참아가며 쫓다 보니 어느새 사냥꾼의 마력이 진해졌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알란의 걸음이 빨라질수록 상대의 출렁이는 마력은 더욱 거세졌다.

거의 다 잡았구나, 싶던 차.

<제 분수도 모르는 하등한 것이.>

알리노헤르의 모가지를 쥐고 있는 은발의 남자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더랬다.

그러나 그 남자의 오색 동공이 저를 향한 순간, 절로 알게 되었다.

알리노헤르의 처분권은 저 남자가 쥐고 있다는 것을.

그와 동시에 아작을 내겠다는 제 결심도 이행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의 존재 자체가 절로 그렇게 수긍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이해와 별개로 들이친 의구심을 떨칠 수는 없었지만.

……대체 도련님과 무슨 관계이길래.

저 남자는 알리노헤르에게 극도의 분노를 드러내는 걸까.

알란이 가진 의문들은 그 크기가 커지기도 전에 금세 쉬이 풀렸다.

‘황가의 수호자와 결속한 게 도련님이었다니.’

이 때문이리라.

이안이 호위대를 직접 찾은 것은 어떤 당부를 하기 위함일 것이다.

결속을 비밀에 부쳐 달라는 것일 터.

수호자와의 결속이란 게 쉬이 떠벌릴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알란은 깊은 사명감을 느꼈다.

도련님의 비밀을 앞으로도 함께 지켜나가야 하는 동지로서.

수호자와 도련님과의 결속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자로서.

비밀 함구는 당연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가주님조차 모르고 있는 것을 저만 알고 있다면…….

히죽.

그 사실에 알란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어쩌지 못하고 실실거렸다.

표정 관리가 안 되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도련님과 둘만 공유할 수 있는 비밀이 생긴 것이 기꺼웠으니까.

“알란, 뭐가 그렇게 재밌어?”

“……예?”

“똥밭에서 황금을 무더기로 발견한 사람 얼굴인데.”

이안의 짓궂은 물음에 알란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제가 낮에 있었던 일을 되짚는 사이 어느새 기숙사에 당도한 모양이다.

누가 기숙사를 저도 모르는 새 옮겨 놓았을까.

여기까지 오는 길이 참으로 짧단 생각이 알란의 뇌리로 들이쳤다.

“아. 도련님을 앞으로 어찌 모셔야 하나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결론은 잘 났고?”

“예, 아주 깔끔하게.”

알란의 즉답에 이안이 그를 빤히 직시해 왔다.

아니, 정확하게는 제 왼쪽 눈의 문신을 보는 것 같았다.

매번 그랬다.

이 문신을 볼 때마다 도련님의 표정은 복잡해지곤 했다.

사연이 백 만개쯤 있는 얼굴이 된달까.

아니나 다를까.

그와 비슷한 기색을 하곤 이안이 말문을 열었다.

“다소 뜬금없겠지만 하나만 물을게. 산책은 즐거웠어?”

“무척 즐거웠습니다. 도련님과 함께라서.”

“나와 함께라서, 라…….”

말의 끝머리를 흐린 이안의 눈길이 지나온 돌담길에 머물렀다.

직선으로 쭉 뻗은 길이 무척 고즈넉했다.

눈 덮인 낙엽, 그것을 툭툭 건드리는 메마른 바람, 그 공기에 녹아든 적막.

뭐 하나 역동적인 게 없었다.

“길이 지나치게 조용하긴 하네.”

“…….”

“뷔트시겐의 심장인 가주의 친위대, 그대들이 걷기에는.”

알란은 선뜻 이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시려고 이런 서두를 떼신 걸까.

보아하니 지금껏 제가 염두에 두었던 비밀 엄수와는 많이 동떨어진 얘기 같았다.

그래서 더 감을 잡지 못했다.

묵묵히 이안의 의중을 헤아려 보는 알란.

그리고 그를 따라 떠다니는 말뜻을 가늠해보는 호위대.

‘그저 내 일이라면 늘…….’

진지하게 골몰하는 그들의 모습에 이안은 슬며시 입꼬리를 꺾었다.

제 일이라면 사소한 것에도 신경을 옴팡 쏟는 이들이었다.

그러니 제 부상에 어찌 반응할까.

또 한참을 자책하고 있을 터였다.

할 짓들이 빤해서, 눈에 훤히 그려져서, 그래서 찾아온 참이었다.

예상과 한치도 다르지 않을 이들을 알기에.

어울리지도 않게 덩치를 쪼그리고 앉아 땅굴 팔 것을 알기에.

“아, 무슨 말인가 싶지. 괜한 땅굴 파며 자책하지 말라는 얘기야.”

“아…….”

“뷔트시겐으로서 걷는 길을 자책으로 물들이는 건 좀 모양 빠지잖아.”

이안의 말이 빌미가 된 모양이다.

호위대는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그런 호위대의 면면을 이안은 다시금 찬찬히 뜯어보았다.

첫 호위대이자 가장 오래 제 곁을 지켰던 자들.

이들은 아버지의 명으로 에루리안 시절부터 자신을 호위했었다.

물론 그가 제국을 떠돌던 시절에도 멀찍이서 지켜보았고.

본가로 돌아갔을 적엔 또 그 채로 이안의 곁을 지켰던 자들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이들에겐 그 어떤 영광도, 그 어떤 명예도 주어지지 못했다.

아니, 쥐여주지 못했다.

이안에겐 그럴 능력이 없었기에.

누군가는 전쟁통이라 오히려 전공을 세우기 쉽지 않느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눈먼 전공이라도 그게 아무한테나 굴러들어오는 것이랴.

마력핵이 없는 예언자는 입을 터는 것이 다라 전공이랄 게 따로 없었다.

이런 주인 곁에 있으니 호위대에게 무엇이 떨어졌겠는가.

그저 아무 의미 없는 죽음만이 그들이 쥘 수 있는 전부였다.

아니, 제가 쥐여줄 수 있는 전부였다.

‘예전엔 그랬지만 지금은…….’

한숨을 삼킨 이안은 과거를 뒤로하고 찬찬히 입을 뗐다.

기회가 되면 언젠가 호위대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아니지.

그들에게 반드시 증명해내 보이고 싶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실은 이 말이 해주고 싶었어.”

“……어떤.”

“지금은 나와 걷는 길이 이 돌담길처럼 조용할 거야. 환희도, 영광도 그 무엇도 없이.”

“…….”

“하지만 내 약속하지.”

이안은 호위대를 향해 단단한 얼굴을 했다.

“언젠가는 이 길 끝에 시끌시끌한 꽃길을 깔아줄게. 그대들이 긍지와 자부심만으로 속을 가득 채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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