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130화 (130/214)

제130화

“장관이네, 불꽃이.”

이안은 본진 하늘을 가득 메운 불꽃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같은 불꽃인데, 참 달랐다.

조금 전의 폭발로 인해 생긴 것과는 느낌 자체가 판이하게.

[1차전 승리를 축하하는 불꽃이로구나.]

-멋지지.

[아-주 형식적이고 좋다.]

-하하. 형식적이어도 뭐.

[하긴. 저거라도 있어야 이긴 티가 쪼금이라도 나지.]

-눈을 크게 뜨십시오, 스승님. 저건 쪼금이 아니라 많이 입니다.

[아유, 눈부시다.]

-능청은. 어쨌건 시합의 정해진 수순이긴 하지만 기분은 좋다.

축포는 원래 파라칸시스의 진행 과정 중 하나이다.

솔직히 종일 구르고, 머리 써서 이기는데 보상이 없어서야 쓰겠는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매회 마다 결과가 나오면 이긴 반 진영에서 불꽃이 터진다.

‘잘했다.’라는 칭찬과 아낌없는 격려.

이른바 사기 고취였다.

이안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불꽃을 오래도록 감상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화려한 불꽃을 계속 보고 있노라니 어느 틈엔가 기분이 묘해졌다.

그저 다른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만 여겼던 것.

그랬기에 예전엔 그 화려함을 도서관에서 우두커니 바라만 봤더랬다.

조금은 부러웠다.

한편으론 질투도 일었다.

한데 그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랴.

어차피 제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을.

그랬었는데…… 오롯이 제 진영을 밟고 서서 이 광경을 생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예측할 수 없는 생이란 참 재미있다.

모가지 아픈 줄도 모르고 밤하늘만 보는 이안.

이안은 모르겠지만 C반 아이들은 불꽃 대신 그를 보고 있었다.

“…….”

어째 그 눈빛들이 승리한 것치곤 이안만큼이나 복잡다단했다.

언제나 밝기만 하던 올리브가 특히 더 그랬다.

‘정말 기적이…….’

이전까진 상상해본 적 없는 기적이 일어났다.

어디 한 군데 쥐어 터지지 않은 채 사지 멀쩡한 게 첫 번째요.

죽지 않고 지금껏 생존해 있는 게 두 번째였다.

무엇보다 승리했다는 게 가장 큰 기적이었다.

본래라면 파라칸시스 내내 다른 반에게 쫓겨 다녔을 것이다.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로.

그저 비참하게 도망만 치며 맞지 않을 방법만 모색했을 테지.

장담컨대 살아남기 급급해서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

자존심도 없는 짐승처럼.

A반이 원하는 대로 발밑을 기며 하루를 버텨내기 바빴을 텐데…….

‘내가 뭔가를 해냈어.’

아주 작은 몫이지만 승리에 보탬이 되었다.

발바닥 터지게 노력해서 이룬 결과였다.

그 사실이 올리브에게는 승리한 것만큼이나 크게 와닿았다.

공연히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그래서 애꿎은 주먹만 말았다 폈다 하며 괴롭히길 반복했다.

그러면 꿀렁거리는 목구멍이 가라앉기라도 하는 것처럼.

올리브가 손만 꼬무작거리고 있자.

“오늘 잘했다.”

이안이 평소처럼 담담한 말투로 칭찬을 건네왔다.

그 말투가 오히려 더 사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올리브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게 비단 저뿐일까.

다른 아이들의 사정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짜식들. 다 컸네, 다 컸어.”

“…….”

지금 상태가 어떤 줄 알면서 저런 말을.

이를 앙다문 올리브는 와다다 이안에게 달려가 그 등을 치며 요란을 떨어댔다.

“캬캬캬. 내가 아니었으면 우리 반 승리 못 했다. 그거 알지?”

“와, 올리브 저거 또 후려친다.”

“하여튼 쟤는 입을 열 시간을 주면 안 돼.”

“야, 레브 빨리 한마디 해라. ‘닥쳐’라고.”

“그래야겠다. 요새 그 말을 뜸하게 했더니 저 자식이 또 날뛰네.”

올리브를 놓고 한 덩이가 된 C반은 엎치락뒤치락했다.

덩어리져서 넘어지고 바닥을 구르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복잡한 마음은 사라져버렸다.

그저 승리의 기쁨만 남겨졌을 뿐.

강아지 같은 몰골들에 웃음을 흘린 이안은 중요한 일과를 잊지 않았다.

바로 저녁 챙겨 먹기 말이다.

승리했건, 대패를 해서 몇 명 살아남지 않았건 먹어야 했다.

머리가 돌아가는 것도 두둑한 뱃심에서 나오는 거니까.

치이이익.

이안은 나무 정령을 사냥할 때 미리 잡아다 손질해 놓은 순록 고기를 구웠다.

지천에 깔린 허브로 재어 놔서 누린내는 나지 않았다.

살점이 익는 고소한 냄새만 났지.

* * *

꿀꺽.

호위대는 이안이 준 순록 고기를 보며 군침을 흘렸다.

종일 따라만 다닌 게 다인데도 배가 고팠다.

결국, 허기를 참지 못하고 호위대는 고기를 게걸스럽게 뜯었다.

역으로 도련님이 챙겨주는 형국이라니.

사실 파라칸시스에서는 호위대가 할 일이 없었다.

설령 이안의 목숨이 위험할지라도 이번만은 개입해선 안 됐다.

왜냐면 파라칸시스는 이안만의 시련이기 때문이다.

오롯이 그의 힘만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시련.

그렇기에 호위대로서는 그저 지켜보며 응원만 해야 했다.

“정말 도련님은 대단하십니다.”

“쓸모없는 산화초와 나무 정령의 핵을 활용한 것만 봐도 알만하지.”

“전 그것들에 그런 쓰임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누구도 모르는 것을 알고 계시는 게 도련님이지.”

“이런 걸 천재라고 하는 겁니까.”

“크흠. 천재도 한 수 접고 들어갈 거다.”

“전 벌써 도련님과 임무 나갈 날이 기다려집니다. 그러면 도련님이 세운 작전을 수행하게 될 것 아닙니까.”

호위대는 오지 않을 앞날까지 끌어다 쓰며 감탄했다.

그가 넋을 놓고 중얼거리는 동안 알란은 제 수하의 오른손을 신경 썼다.

손에 들린 영상석의 각도가 삐뚤어지고 있었다.

다소 뜬금없는 이 물건, 영상석이 그들에게 지급된 까닭이야 당연히.

<도련님의 활약상은 후대에 남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뷔트시겐의 손실이지. 숨소리 하나 놓치지 말고 모조리 기록해 보내라.>

칼브란이 광기 어린 눈으로 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거절할 수도 없었거니와, 혹여 거절한다?

열 일 제쳐 두고 칼브란이 직접 에루리안에 행차할 것이다.

왠지 알란은 그 사태만은 막고 싶었다.

팔불출인 칼브란이 오면 어떤 사달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으니까.

‘내 도련님…….’으로 시작하는 대하 장편 서사시가 펼쳐지겠지.

그건 정말이지 듣기 무서웠다.

눈을 희번덕대는 칼브란의 모습 덕택에 더더욱.

까놓고 말해 칼브란은 친숙하면서도 멀리하고 싶은 존재였다.

그냥 그랬다.

그냥 선선함을 유지한 채 거리를 두고만 싶었다.

“그거 제대로 들고 있지 않으면 칼브란 님과 개인 면담해야 할 거다.”

“……?!”

화들짝 놀란 호위대의 손에 군기가 팍팍 들어갔다.

제 수하 놈도 칼브란은 만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마음을 알겠기에 알란은 더 말을 보태지 않았다.

잔소리할 시간을 아껴 그저 이안을 가만히 볼뿐.

이안은 잘 구워진 순록 고기를 먹성 좋게 뜯고 있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없던 식욕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잘 먹는다.

“크으. 내가 한 요리지만 진짜 맛있다.”

알란의 침샘을 자극한 이안은 한 점 남은 고기를 목구멍으로 미끄러트렸다.

그러고는 배를 두드리며 포만감을 만끽했다.

여유로운 모양새가…….

좋게 보면 배부른 사자였고, 나쁘게 보면 그냥 잘생긴 꽃 거지였다.

종일 구른 탓에 옷은 꾀죄죄하지.

냉기가 올라오는 맨바닥에 앉아 고기를 뜯고 있지.

움막 같은 천막 안에는 달랑 모포 몇 장뿐이지.

그야말로 상거지 중의 상거지 꼴이었다.

한데도 이 와중에 레브란 소년과 얘기를 나누는 이안의 눈만큼은 총기가 넘쳤다.

“레브.”

“응?”

“내일은 협곡에서 난전을 치르잖아.”

“아, 개싸움이 벌어질 예정이지.”

“그러니까 2차전은 동맹을 맺어야 할 것 같다.”

“B반을 끌어들이자고?”

“어.”

본래는 A반의 평균 능력치가 살짝 웃도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 폭발의 여파로 전력 손실이 일어난 상태였다.

그에 반해 B반과 C반은 전력 손실이랄 게 없었다.

즉, 세 반의 전력이 현재 비등비등해졌다는 얘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겠는가.

바로 쪽수였다.

“폰투스도 지금 우리랑 같은 생각 중일걸.”

“하긴. 손실을 메꾸려고 B반을 이용하려 들겠지.”

“게다가 B반은 대개가 치유라 폰투스 구미에 딱 들어맞을 테니까.”

“아주 그냥 두 눈에 쌍불을 켜고 달려들겠구만.”

A반과 B반이 동맹을 맺는 것.

헤어진 연인이 재결합하는 것처럼 두 반이 달라붙게 해선 안 된다.

그간 합을 맞춰 봤던 것들이라 징글징글해질 테니까.

당연지사, 무너진 힘의 균형으로 인해 이쪽은 몹시 곤란해질 테고.

이는 내일뿐 아니라 3일 차 시합의 변수로도 작용할 것이다.

그리되면 시합의 결과를 장담할 수 없게 될 터.

이안이 생각의 끄트머리에 눈썹을 내려트리자, 그를 주시하던 레브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럼 폰투스가 움직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겠네.”

“그래야지. 시간을 끌어서 좋을 거 없으니까.”

지금은 이것저것 잴 게 아니라 움직여야 할 때였다.

“레브, 일단 난 에이프릴 좀 만나고 올게.”

“알았어. 그럼 난 애들이랑 정비하고 있을게.”

이안은 레브의 어깨를 툭 친 뒤 미적거리지 않고 일어섰다.

한데 그 움직임은 얼마 가지 않아 그대로 고정되었다.

어둑한 사위를 뚫고 에이프릴이 미소 지은 채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푸흐흘. 청춘이다, 청춘.]

“…….”

[전시 중에도 사랑은 꽃핀다더니.]

녹스가 이안의 주위를 배회하며 안면을 실룩거렸다.

그 면상이 정말 밉살스러웠다.

저 벌름대는 돼지 코에 장침이라도 찔러넣고 싶을 만큼.

이안은 그 꼬락서니를 눈에 넣고 싶지 않아 고개를 반대쪽으로 홱 돌렸다.

그랬더니.

‘부끄러워하긴’이라는 어이없는 말이 옆통수에 꽂혔다.

[인간미 없는 네놈을 이렇게 만드는 아이라니, 내 저 아이가 맘에 쏙 든다.]

“…….”

[아니다. 두 청춘 사이에 내가 끼면 안 되지. 이제부터 난 입 다물련다. 어여 저 아이와 오손도손 얘기 나누거라. 난 신경 쓰지 말고. 흘흘흘흘.]

게슴츠레한 웃음이나 거두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지.

녹스의 방정맞은 웃음소리가 계속 귀를 잡아챘다.

고 주둥이를 주욱 늘려버릴까 생각하던 차, 에이프릴이 차분히 말을 건네왔다.

“아, 이안. 다친 데는 없어? 아까 폭발이 크게 났잖아.”

“우리 쪽은 별 피해가 없어서 멀쩡해.”

“다행이다. A반은 부상자만 수십이라고 들어서.”

에이프릴은 근심 어린 낯을 슬쩍 내비쳤다.

“아까 정찰가서 언뜻 봤는데 A반 본진이 쑥대밭이 됐더라고. 그래서 걱정했거든.”

“쑥대밭을 만든 장본인이 난데 걱정하긴.”

“후훗. 한 건 크게 하신 분을 내가 괜히.”

이안은 옅은 미소를 내보이는 에이프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평범하게 행동하고 있지만, 에이프릴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다 늦게 C반 본진까지 찾아온 것만 봐도 알만하지 않은가.

그게 뭔지 대충 짐작이 갔기에.

이안은 에이프릴이 꺼내 들 본론에 관해 먼저 운을 뗐다.

“그나저나 B반 본진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들었는데.”

“아, 오늘 내내 수성에 초점을 두고 진영을 바꾸는데 전력을 쏟았어.”

“3차전을 위해서?”

“응. 그때가 가장 점수가 높으니까 거기에 만전을 기하려고.”

“진행은 수월했고?”

“생각보다 수월하게 끝냈어. 이안 네 덕분에.”

“내 덕분이라니?”

“A반이 너희와 씨름하느라 우리한테는 관심을 두지 않았거든.”

“아, 그쪽이 좀 바빴지. 우리 애들이랑 노느라.”

“우리 애들…….”

에이프릴이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어째 다들 똑같다.

한결같이 같은 단어에 꽂히는 게 거기에 꿀이라도 발라진 모양이다.

다소 싱거운 생각을 하던 이안은 천천히 발걸음을 늦췄다.

B반 본진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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