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137화 (137/214)

제136화

“웬 초대하지 않은 날파리가 우리 진영에.”

“……이안!”

구겨졌던 레브와 올리브의 안색이 대번에 펴졌다.

시합 전에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안심이라는 표정들.

순수한 안도를 지나친 이안의 시선이 폰투스에게로 꽂혔다.

승기를 잡았다는 낯짝이 참 재수 없었다.

“봉사는 무슨. A반에서나 통하는 지랄을 왜 여기 와서 떨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모르긴요. 아까 다 합의가 됐잖아요.”

“협박이 아니고?”

“후훗. 이안 님의 비밀을 매개로 서로의 이익을 위해 원만하게…….”

폰투스의 말은 살점 하나 없는 고기 뼈와 같다.

들어봐야 영양가 없다는 의미.

듣고 있기 고역이라 이안은 중간에 말을 새치기해버렸다.

“걸핏하면 협박이군. 저급하게. 교양도 없이.”

“……그럼 어때요. 이안 님을 손에 쥘 수 있는데.”

“흐음.”

이안은 유난히 기분 좋은 폰투스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폰투스는 모를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진즉 저를 제거해 버릴 수도 있었다는 것을.

정말로 그리할까 고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 또한.

하나 그렇게 하지 않은 건.

폰투스에게 죽음은 지독히도 가벼운 형벌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죽으면 그걸로 끝이지 않던가.

하니 죽음보다 더한 죗값을 치르게 해주고 싶었다.

폰투스가 가지고 싶어 한 것들을 하나하나씩 빼앗고 난 후에.

“내가 너를 왜 여태껏 살려두었는지 아나?”

“그게 무슨…….”

“우선은 하나. 두려움이든 경애든 추앙받는 걸 즐기는 너에게서 레기나를 빼앗고.”

이안은 폰투스에게로 한 걸음을 떼었다.

기척 없는 서늘한 걸음에 폰투스는 순간 움찔했다.

“명예를 얻고 싶은 너에게서 파라칸시스 시합의 우승을 빼앗고.”

“…….”

“종내에는 절망에 일그러진 얼굴이 보고 싶었거든.”

무척 오래된 염원이었다.

살려달라 말하는 어린 뷔트시겐과 그 여린 몸을 찢어발기던 폰투스를 지켜만 봐야 했던 때부터.

연구소에 붙잡혀 키메라가 되어 버린 호위부대원, 그들을 검투 노예로 폰투스가 내몰았을 때부터.

마지막 전투 때 저를 감싸던 칼브란의 등뼈를 폰투스가 바스라뜨렸을 때부터.

어느 찰나든 그런 염원을 품고 있었더랬다.

폰투스와의 거리감을 좁힌 이안은 식인 꽃을 물끄러미 마주 보았다.

기쁨이 가신 얼굴에는 희미한 두려움이 일고 있었다.

보기 좋은 표정이지 않은가.

이안은 말없이 폰투스의 낯짝을 스치는 감정들을 읽어냈다.

그럼에도 어느 무엇도 담기지 않아 텅 빈 동공.

저를 무생물 보듯 하는 눈빛에 폰투스는 한기가 스민 팔을 문질렀다.

배고픈 뱀 앞에 선 개구리가 된 것 같았다.

유리한 상황에도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폰투스는 턱을 당겼다.

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끝까지 투지를 놓지 않는 성질머리가 어지간했다.

‘이러니 방심할 수 없지.’

폰투스를 살려두려면 어떤 제약을 걸어야 했다.

“해서 뭐가 좋을까 고민했는데, 생각해 보니 너에게 아직 남은 게 있더군.”

“남은……거라니요?”

“이것. 이것까지 빼앗아야 전부를 빼앗은 거지.”

이안은 상체를 숙여 폰투스 가까이 얼굴을 붙였다.

두려움에 떨 때조차 화사한 이 얼굴.

이것을 없애야 한다.

설령 마력핵을 부순다 치자.

정령사가 아니게 되어도 폰투스는 제 야망을 이룰 여자였다.

라이라프스, 살리카 가주의 사냥개를 말발로만 꼬여냈으랴.

히에로스 제국 제일가는 미녀.

이 수식에서 알 수 있듯 폰투스의 외양은 절대적인 무기였다.

그러니 이것까지 부서트려버려야만 한다.

* * *

지독하게 순수한 적의를 드러낸 이안의 얼굴이 무척 말갰다.

그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섬뜩함을 가져왔다.

흠칫.

두려움이 잠식해오자 폰투스는 이안과 거리를 두려고 뒤로 물러났다.

이대로는…….

“영악한 이안 님께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제가 가진 게 무엇인지 모르나요?”

“…….”

“이안 님을 배려해서 여러 번 기회를 드렸는데 도리어 이런 식의 협박을 받게 될 줄은.”

“…….”

“이런 식이면 제가 더는 이안 님을 봐 드릴 수가 없잖아요.”

아무리 폰투스가 떠들어도 이안은 단 한 번의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지그시 바라만 볼 뿐.

어디 한 번 실컷 떠들어봐라, 딱 그거라서 폰투스는 입술을 잘근 짓씹었다.

“……제가 가진 게 그것뿐이겠어요?”

“그뿐이 아니면.”

“클로에 교수님 말이에요.”

“…….”

“이안 님의 비밀을 묻기 위해 클로에 교수가 알리노헤르를 죽인 거잖아요.”

“흠.”

“그 사실이, 제가 가진 것과 함께 살리카 가주의 손에 들어가면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그분은 자신을 속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그래, 이안은 절대 저를 해칠 수 없다.

말을 할수록 확신이 들어 폰투스는 떨림을 내리눌렀다.

괜히 겁먹었다는 미약한 안도가 그녀의 얼굴에 내려앉은 순간.

스으윽.

기다렸다는 듯 이안이 폰투스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등을 덮은 기괴한 문양이 그녀를 응시했다.

당장이라도 덮칠 것처럼.

어쩐지 섬뜩해져서 눈을 홉뜨니 이안이 손을 옆으로 움직였다.

폰투스는 끌려가듯 이안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갔다.

……친위대?

얼굴 양쪽에 붉은 줄이 그어진 일곱과 멀쩡한 자들.

그리고 나름 쓸만해서 끌고 다니고 있는 카스티야가 있었다.

‘내 친위대에게 이안이 왜 손을 내밀지?’

의아해하는 폰투스를 뒤로 한 채 이안이 명령조로 짧게 말했다.

“가져와.”

“…….”

무엇을?

이해하지 못하는 폰투스의 곁, 묵묵히 서 있던 누군가가 움직였다.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길한 예감이 등줄기를 내려치던 찰나.

“……대니얼?”

친위대 중에 가장 충직하고 그녀가 유일하게 믿었던 자, 멀끔한 친위대가 이안에게로 단호히 걸어갔다.

한 발, 한 발.

망설임 없는 걸음에는 미련 따위가 묻어있지 않았다.

진득한 감정을 끊어낸 족적만을 남기며 나아가던 친위대.

그는 이안 앞에 멈춰 선 후 제 손에 끼워진 반지에서 뭔가를 꺼냈다.

선연한 우윳빛을 뽐내는 구체를 말이다.

“……그건!”

구체를 보자마자 폰투스는 새된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저 구체, 이안의 비밀이 담긴 영상석이었다.

“그, 그걸 어떻게…….”

폰투스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 말까지 더듬었다.

동요할 수밖에 없는 게, 영상석의 존재는 어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만전에 만전을 가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대니얼은 영상석의 존재를 어떻게 안 거지?’

설령 우연히 알았다손 치자.

대체 숨겨둔 곳은 무슨 수로 찾아냈고.

도끼눈을 뜬 채 폰투스는 친위대를 노려보았다.

기가 찼다.

다른 놈들이 다 배신해도 저놈만은 아닐 줄 알았다.

제가 에루리안을 떠날 때 데리고 가려고 했던 놈이었으니까.

“그거 아나? 광신도는 신을 위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지.”

폰투스의 분노를 비집고 들어오는 이안의 목소리는 무덤덤했다.

바삭 태워져 가루로 흩날리는 재 마냥.

그러나 동공만은 기이한 집요함을 품은 채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폰투스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음미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존재가 신에게 배신감을 느끼면 어떻게 될까.”

추앙이 적의로 돌변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리고 그것만큼 신에게 위협적인 건 없다.

“신의 목을 조르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내가 알려주었지.”

“무엇……을요?”

“친위대 일곱이 오르기온을 위해 바친 정령, 그게 실은 정신 지배에 의한 선택이었다는 것.”

“…….”

“그뿐일까. 네가 그들을 가차 없이 죽이려 했다는 것도 같이 까발렸지.”

실제로 폰투스는 카스티야에게 그렇게 지시를 내렸었다.

<저 쓸모없어진 버러지들을 전부 죽여.>

<그럼 이 에루리안을 나갈 때 너만은 데리고 가줄 테니까.>

카스티야가 누구 끄나풀인 줄도 모르고 입방정을 떤 것이다.

이안은 그게 우스워서 입매를 비틀었다.

* * *

폰투스가 모르는 게 카스티야의 정체뿐이랴.

그가 영상석의 존재를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즉.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듯 영상석의 주인은 본래 폰투스가 아니다.

‘죽어버린 알리노헤르지.’

그러니까 이 모든 건 알리노헤르의 버릇에서 비롯되었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장면을 영상석에 저장하는 고약한 그 버릇.

그를 위해 알리노헤르는 수고스러움도 마다치 않았다.

영상석을 위한 공간을 따로 구성하고, 그 공간에 보호 술식까지 걸어놓는다.

혹여 공간 복사가 깨져도 영상석에는 충격이 가지 않도록.

‘그 버릇 어디 가지 않을 테니 그냥 회수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찾지 못했다.

알리노헤르가 죽은 걸 확인한 뒤 호노르관으로 되돌아가 샅샅이 뒤졌지만…… 없었다.

애초 존재하지 않았던 물건인 양 말이다.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고심을 거듭하고 있던 때.

폰투스가 제 발로 찾아와 어설픈 협박을 하며 자진 납세를 했더랬다.

‘하룻강아지가 겁 없이 잔망을 떤 거지.’

가뜩이나 짧은 명줄, 죽음을 재촉한 셈이다.

이안은 마른 웃음을 덧대며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입을 열지 않아도 그 선이 말해주는 감정이 비수처럼 폰투스를 찔러왔다.

짙은 열망.

이안이 가진 감정에서는 기괴할 정도로 케케묵은 냄새가 났다.

아주 오래전부터 눌러 담고 눌러 담아 발효해 버린.

곰팡내가 날 정도라 폰투스는 그것이 숨구멍을 모조리 틀어막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질식할 듯 숨이 가빠왔다.

“커흑.”

입까지 벌려가며 억지로 숨을 쉬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도리어 점점 더 그녀를 옥죄고 비틀며 으깨듯 짓눌러 왔다.

‘날…… 죽일 거야.’

걷잡을 수 없는 공포가 폰투스의 심장을 쥐어짰다.

비명이 절로 터져 나왔지만, 소리가 되지 못하고 입만 뻐금거렸다.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그래야 도망을 가서 후일을 기약하는데…….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아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몸뚱어리가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주저앉아 심장만 긁어대는 폰투스에게 짙은 음영이 드리워졌다.

공포에 질린 그녀를 이안은 질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이 표정.”

“…….”

“절망에 어린 이 표정을 보려고 참 오래 기다렸군, 지독히도 오래.”

메마르고 삭막한 눈빛 위로 스산함이 피어올랐다.

눈꼬리를 휜 이안은 손을 들어 폰투스의 경동맥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손끝을 타고 불끈불끈 튀는 생의 맥동이 느껴졌다.

“저, 저리 가!”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느낀 폰투스가 양손을 마구 휘저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얼굴을 긁었지만 이안은 개의치 않았다.

상처가 끝마무리보다 중요하랴.

누가 제 대가리를 깨도 반드시 이것을 폰투스에게 새겨넣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된 끝이 아니었다.

해서 이안은 묵묵히 폰투스의 모가지를 누르고 있는 손끝에 힘을 주었다.

츠슷. 츠스슷.

그의 손등을 덮고 있던 기괴한 문양이 일어나 꿈틀거렸다.

마치 촉수 같은 보라색 덩어리의 문자나 도형들.

그것들은 기생할 곳을 찾는 것처럼 폰투스에게로 기어갔다.

“오지맛!”

눈깔을 까뒤집으며 폰투스가 끝이 갈라진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공허한 외침일 뿐이었다.

보라색 덩어리들은 폰투스의 경동맥 쪽으로 스며들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그러자 왼쪽 모가지를 덮으며 턱까지 기이한 문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아악!”

“말했다시피, 죽이지는 않을 거다. 살아가는 게 지옥인 것만큼의 형벌은 없으니까.”

이안이 그랬다.

예언자로 떠받들어지며 남의 생목숨을 잡아먹었던 시절.

그 시절의 저는 기생충에 불과했다.

남의 숨을 빨아먹으며 숨을 쉬었고, 남의 생살을 뜯어 먹으며 하루를 연명했고, 남의 피눈물로 웃음을 채웠다.

살아있으면 안 되는 그저 덩어리일 뿐인 생.

그래서 이안은 제가 끔찍이도 싫었다.

구역질이 나서 죽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해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살아있되 죽어버린 삶.

그 지독한 고통을 알기에 폰투스를 살려두는 것이다.

너도 그렇게 살아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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